소설리스트

남궁마제 (317)화 (317/425)

남궁마제

떨쳐 일어날 진(振) 불행 화(禍) : 선택이라고 한다(1)

사랑탑주 전각사(典刻士) 마모섬.

사패천주와 함께 사파 무림에 등장했을 때부터 그는 전각사였다.

사패천주가 그를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사파 무인들은 정파 무림의 학사들처럼 말끔하고 단정한 마모섬의 복장과 행동에, 다들 그를 사패천주의 책사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틀렸다.

마모섬이 사패천주를 도운 방식은 사뭇 폭력적이었다.

마모섬은 사패천주가 유일하게 등 뒤를 맡기는 수하이자, 사패천주의 싸움을 지켜보는 방관자이자, 사패천주의 밤을 지키는 그림자 호위였다.

그는 사패천주가 사파를 일통할 동안, 사패천주의 싸움에는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으면서 비열하고 음습한 방식으로 사패천주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로부터 사패천주를 지켜 냈다.

“나는 천주님에게서 사파 무림의 미래를 찾았소. 흑도라 배척당하던 우리가 정파와 동등한 무림인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사파다운 모습을 지켜 낼 수 있는, 새로운 사파의 질서였소.”

“저 억눌려 있는 짐승들의 아귀다툼이 안 보여요?”

며칠 내내 사패천엔 피 냄새가 가실 때가 없었다.

서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고, 고함지르고,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고.

하오문주가 지금도 결사대전이 벌어지는 곳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천주님의 그늘 아래에 있기에, 최소한의 평화가 유지되면서 정파만큼 강해질 기회를 얻었지.”

“강해진 만큼 더 잔인하게 싸우고들 있죠.” 

하오문주가 쌀쌀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사랑탑주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싸우라지! 사패천은 무인들에게 어떤 것도 제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소. 싸우고 싶으면 싸우면 그만이오. 그게 사파 아니오?”

“…….”

“천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으니까, 더는 격렬해지지 않는 것이오. 천주님께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생각이 없으시니, 모두가 만족하는 것이오.”

사랑탑주의 단언에 하오문주는 달리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사랑탑대전은 그야말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위로 올라가고 싶은 사파 무인들의 욕망을 풀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신분과 배경, 재력 등 많은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정파 무림과 달리 사파 무인들은 사랑탑대전을 통해 오직 본인의 실력만으로 위로 오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랑탑주의 말처럼, 이 모두가 정점에 선 사패천주가 무수히 많은 도전을 그대로 받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긴 정파에서 어떤 어중이떠중이가 제왕검에게 도전하고 싶다고 칼을 들었다면, 제왕검에게 닿기도 전에 남궁세가 무사들에게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겠지.’

하오문주는 사랑탑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탑주가 제게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제게 하고픈 말이 무엇이죠?”

“나는 천주님을 지켜 내는 것이 지금 사파 무림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오. 하여, 천주님을 해하려는 모든 것들을 치워 버릴 것이며 어떤 불안도 남겨 둘 생각이 없소.”

사랑탑주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구시렁거리기 좋아하는 옆집 아저씨 같던 인상은 어느새, 사패천을 공포로 물들였던 소리 없는 암살자 전각사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살각을 조사해 주시오, 특히 살각주의 동태에 대해.”

“……단순한 의심인가요?”

“하오문주, 내가 그자에게서 어떤 증거를 찾았다면, 그자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오.”

서늘하게 미소를 짓는 사랑탑주의 모습에 하오문주는 등에서부터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하오문주 채명지 또한 서쪽의 암고래라 불리는 거물이었다.

“하오문에서 따로 증거를 찾도록 하죠. 하지만 그 전에, 하오문에서 조사해 볼 여지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살펴볼 것입니다.”

하오문주 채명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만으로 마음에 들었는지 사랑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면 됩니다. 문주님의 눈을 믿습니다.”

사랑탑주가 다시 사람 좋은 아저씨처럼 자애롭게 웃어 보였다.

* * *

사랑탑주의 은밀한 부탁이 있고, 하오문주 채명지는 살각주 보곡성과 살각 사람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들은 사랑탑대전에 집중하며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구태여 이상한 점을 찾고자 한다면.

‘다른 때와 달리 너무 많은 인원이 참가했어.’

사랑탑대전에 사파의 여러 세력에서 많은 인원이 참여했기에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인원이 줄어들었을 때, 하오문주는 남아 있는 살각의 인원이 다른 일곱 세력에 비해 너무 많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작해야 문주나 그 후계자, 그리고 떠오르는 신진 고수 하나, 둘 정도 내보낸 다른 세력과 달리, 살각은 살각주 보곡성과 후계자인 낭영검 소명 그리고 다섯 명의 비선들까지 총 일곱 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암살문에서 굳이 명성과 서열에 집착한다고? 명성을 높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고 해 봤자 고작 의뢰비를 올리는 것뿐이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알려지지 않는 편이 나아. 살각도 그걸 알기 때문에 이전의 사랑탑대전에는 후계자인 낭영검 소명 외에는 누구도 내보내지 않았었는데…….’

사랑탑주의 부탁 때문일까.

하오문주는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을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다면, 저 아이가 눈치챌 테니까.’

하오문주의 눈이 사랑탑 앞에 마련된 연무장을 향했다.

이제 남은 인원도 몇 없어서 대부분의 대전이 연무장에서 치러졌다.

오늘 연무장에 오른 이들은 하오문의 후계자인 대붕 군조와 살각의 후계자인 낭영검 소명이었다.

하오문의 주요 사업은 암살이 아니라 정보업이지만, 그림자에 숨어 은밀하게 활동한다는 점에서 하오문과 살각은 자주 비교가 되었다.

그런 차에 두 문파의 후계자이자 사파칠봉으로 이름 높은 후기지수들이 연무장에 오르자, 수많은 사파 무인들이 둘의 대결에 주목했다.

큰 키, 유난히 흰 얼굴과 붉은색 머리가 눈에 띄는 청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이야, 우리 둘이 붙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군조가 친근하게 말을 걸자, 얼음 같던 낭영검 소명의 미간이 작게 움찔거렸다.

군조와 소명은 이전에도 두 번 대결해 본 적이 있었는데, 두 번 모두 군조의 승리였다.

그래서일까.

소명의 눈빛에 불꽃이 튄 듯한 것은.

“방심하지 마라, 이번엔 다를 테니까.”

소명이 싸늘하게 경고했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고.”

군조 역시 코웃음을 치며 비소를 날렸다.

그 순간.

쉐에에에엑---!

소명의 검이 군조의 앞머리를 스치며 결전이 시작되었다.

챙! 챙챙!

군조는 양손에 한 자 정도의 너무 짧지 않은 단검 두 개를 들고 소명의 검을 막았다.

소명은 가볍고 빠른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군조의 뒤를 노렸고, 군조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소명의 공격을 막고 빈틈을 공략했다.

챙챙! 챙!

소명의 검과 군조의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일었다.

‘움직임은 막상막하.’

퍼-억!

군조가 소명의 검을 밀어내고, 긴 다리로 소명의 가슴을 박찼다.

쉐에에엑-!

소명이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려 군조의 턱을 노렸다.

가벼운 몸놀림에 탄성이 붙으며 속도가 더 빨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턱 밑을 찌르는 칼날을 보며, 군조가 황급히 움직였다.

채-앵!

군조가 양 검을 교차하여 소명의 검을 막았다.

불꽃이 군조의 눈앞을 가렸다.

‘지금이다!’

소명의 눈빛이 번뜩이고.

숨겨 두었던 소명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쉐에에에엑-!

퍼—억!

“비겁한 노림수도 그대로고.”

“……!”

소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소명이 낭영검이라 불리는 진짜 이유는, 이리의 이처럼 날카롭고 매끈하게 굽은 검에 숨겨 둔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라. 소명은 제가 숨겨 두었던 비수를 발로 차 낸 군조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소명의 숨겨 둔 비수는 투구벌레의 뿔처럼 날이 벌어진 단검이었으니, 부지불식간에 제 간장을 향해 들어오는 검을 차 낸 군조의 다리도 정상은 아니었다.

군조의 복사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비장의 수를 들킨 소명과 발을 다친 군조.

두 사람 모두 치명적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빠른 몸놀림이 모든 무공의 바탕인 상황에서 발을 다친 군조가 더 큰 타격을 입은 듯했다.

“…….”

“…….”

군조와 소명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때, 갑자기 군조가 씨익 개구진 웃음을 보였다.

“패배를 인정하지.”

“뭐?”

군조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나서자, 소명이 제 비장의 수가 막혔을 때보다 더 크게 놀라며 군조를 보았다.

“이렇게 패배를 인정하고 도망치겠다고?”

“응,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라서.”

“이 비겁한 겁쟁이 새끼!”

소명이 크게 반발하려 했지만, 그 전에 군조가 먼저 등을 돌렸다.

“우우우우우---!”

소명의 말처럼 군조가 싸움을 피하는 듯한 모습으로 대전이 싱겁게 끝나 버리자 많은 사파 무인들이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군조 본인이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해 버렸으니, 소명이나 구경하는 이들이 반발해 봐야 소용없었다.

소명이 연무장 위에서 군조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런 소명의 시선과 사람들의 야유를 뒤로하고 사랑탑 안으로 들어온 군조의 얼굴도 그렇게 편하진 않았다.

하오문주가 차갑게 얼어붙은 군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잘했다. 고맙구나, 자존심 이전에 대의를 선택해 주어서.”

하오문주의 위로에 군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군조에겐 이전이나 지금이나, 제 자존심이나 목숨보다 하오문주가 더 중요했다.

“확실히 이상해요, 어머니. 놈의 심리 상태나 전략, 몸놀림 어떤 것도 성장하지 않았는데, 내공만 비약적으로 늘었어요. 다른 때였다면 그대로 놈에게 돌아갔어야 했는데, 단검에 실린 내공이 제 예상을, 아니 놈의 수준을 뛰어넘었어요.”

군조가 제 발목에 난 상처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확실히 이상했다.

사람도, 무공도 그대로인데 내공만 늘었다는 건.

그것도 후계자인 소명만이 아니라 살각 전체가 말이다.

군조의 말에 하오문주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공짜 의뢰는 싫지만, 조사해야 할 이유를 찾았으니 탑주의 부탁을 들어드려야겠구나. 이제부터 살각의 모든 행적을 조사하겠다!”

“충.”

하오문주의 명에 군조가 먼저 부복했다.

그날 하오문 전체가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신 제국 황도.

“저것이 이번 흑룡수인가?”

“호오, 자네도 이제 가는가?”

광마제는 갑자기 제 옆에 나타난 검마제의 존재에 짐직 놀란 듯 물었다.

하지만 검마제는 그런 어설픈 연기 따위를 상대해 줄 정도로 농담을 잘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흑표범 가면이라. 무맥과 같군.”

“허허, 어째 그걸 손에 쥐는 녀석들은 충성심이 높아.”

“세뇌가 원활하다고 해야겠지.”

“허허허, 저거나 그거나.”

비꼬는 듯한 검마제의 말에도 광마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광마제는 광룡귀면대를 이끌고 배에 오르는 흑의 흑면의 사내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지난날, 제물의 손에 아끼던 수하를 잃고 겨우 다시 만들었다.

사람을 믿지 않는 광마제는 수하의 충성심도 믿지 않았으니.

그는 기어이 충성심마저 제 손으로 만들고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룡삭, 마룡아에 이어서 흑룡수라…… 광신기 중 둘이나 잃으면 꽤 뼈아프겠군.”

“음? 아니야. 이번에는 그렇게 어설프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허허허.”

광마제의 웃음소리에 검마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검마제는 비꼬는 듯한 것이 아니라 정말 비꼰 것이었다.

그는 평소 주군인 역천마제에게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 광마제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광마제를 싫어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일 뿐, 역천마제를 위해서는 광마제가 임무에 실패하지 않아야 했다.

“걱정? 난 당신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주군의 일을 망쳐서는 곤란하니까 말해 주는 것이다. 당신이 만든 제물, 그것이 현경을 바라보고 있다.”

검마제는 광마제의 제물, 진화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겨우 약관도 되지 못한 나이에 감히 저와 검을 맞대던 괴물 같은 놈이었다.

만약 자신이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환마제는 물론 혼현마제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을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놈의 무위가 혼현마제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이번에 광마제의 수하들이 상대해야 할 자가 그 제물이라는 이야기에, 검마제는 개인적인 감정을 뒤로하고 경고를 해 주기로 했다.

“준비 제대로 해라. 당신 수하가 이전의 무맥과 같은 수준이라면 무맥과 같은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허허허, 그런 거라면 정말로 쓸데없는 소리로군. 이번엔 놈을 데려오려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놈의 수준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보내는 것뿐이니까.”

검마제의 경고를 듣는 둥 마는 둥, 광마제는 흑룡수와 광룡귀면대를 태운 배가 떠나는 것을 보며 히죽 웃었다.

“놈이 또 소중한 것을 만들었더군. 그걸 부순다면 바닥까지 드러내며 난리를 치겠지? 그놈 성질머리도 보통이 아니니까. 허허허허!”

광마제는 고약한 장난을 치기 전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검마제가 그런 광마제의 모습을 혐오스러운 눈길로 보았다.

“흥, 계속 여유 만만할 수 있을지 두고 보지.”

검마제는 악담 같은 경고를 남기고 볼일 다 봤다는 듯 싸늘하게 떠났다.

광마제는 그런 검마제가 귀엽다는 듯 힐끗 눈길을 주며 미소를 지었다.

* * *

남해 검문의 성벽.

정의맹에서 ‘귀천성이 신 제국을 잡고, 남해 검문으로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준 뒤, 남해 검문의 경계는 어떤 때보다 삼엄해졌다.

남해 검문의 제자들이 성벽에 고루 분포된 가운데, 희멸문과 마주한 서문과 북문 쪽에 청룡단과 적호단, 창궁무애단이 집중되었다.

“저기!”

“저 새끼들, 고혈방 깃발이군!”

“해왕문 깃발도 보인다!”

희멸문에 귀천성 소속 다른 문파의 깃발이 하나둘 오르자, 남해 검문 전체에 김장감이 고조되었다.

그때.

댕- 댕- 댕- 댕--!

남해 검문에 적습을 알리는 시끄럽게 종소리가 울렸다.

희멸문의 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당황한 정의맹 무사들이 검을 빼 들고 적을 찾는 사이, 남해 검문 제자들은 빠르게 성벽을 내려갔다.

“무슨 일입니까!”

적호단주가 남해 검문 장문인 해천검 계용백에게 물었다.

그러자 해천검 계용백이 사납게 웃으면서 답했다.

“적은 적인데, 해적일세.”

해천검 계용백이 어리둥절한 적호단주를 남기고 빠르게 남문으로 향했다.

해적의 공격은 근 반년 만의 일이라 이전에 이곳에 와 있던 청룡단이나 창궁무애단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투는 이미 벌어졌고,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성벽은 청룡단과 창궁무애단이 맡지. 우린 남해 검문을 도우러 가겠네.”

“지원이 필요하면 요청하시게.”

“지랄. 성벽을 비웠다가 저놈들이 쳐들어오면 어쩌려고?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빠졌다가 후다닥 해치우고 오지!”

적호단주가 서둘러 적호단을 이끌고 뛰어 내려갔다.

그때까지 성벽에 선 청룡단원들은 미동도 없이 희멸문만 노려보고 섰다.

“제길! 저 새끼들이 제발 몰라야 할 텐데!”

남궁경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말했다.

해적과의 전투 중에 희멸문이 이곳의 위기를 알아채고 공격하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었다.

남궁경과 청룡단주는 물론, 남해 검문을 돕기 위해 내려가는 적호단주도 그것을 알기에 발걸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호단주와 적호단이 남문에 도착했을 때.

적호단주는 언젠가 한번 보았던 것과 비슷한 광경을 보며 저도 모르게 그때와 비슷한 말을 뱉었다.

“……이번엔 마라탕이 아니고, 청탕인가?”

적호단주의 말에 적호단 조장들이 뜨악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때, 진화가 웃으며 그들에게 왔다.

“해적들은 이미 끝났으니, 하시던 일 계속하시면 됩니다.”

“이건 뭐, 뭐가 있었나 싶네요. 계속 이런 적들이면,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당분간 낚시는 안 해도 될 듯합니다!”

진화와 함께 남궁구와 현오를 비롯한 십 조원들이 의기양양하게 웃거나 팔근육을 자랑했다.

그런 적호단 십 조의 뒤로, 해천검 계용백과 남해 검문 사람들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들은 마치 대낮에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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