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320)화 (320/425)

남궁마제

떨쳐 일어날 진(振) 불행 화(禍) : 선택이라고 한다(4)

“마지막이구나.”

깜깜한 동굴.

한쪽에는 시뻘건 불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가 있었다.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 인영이 그 가마에서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까만 가면과 장갑이었다.

인영은 가마에서 꺼낸 그것들을 까만 독수에 던졌다.

쏴아아아!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동굴 안이 독기로 가득했다.

꿀렁꿀렁꿀렁.

까만 가면과 장갑이 거품을 물고 독수 밑바닥까지 가라앉고, 잠시 후.

우웅-! 팟! 팟! 파-앗!

사방에 있던 붉은 혈정들이 부서지며 그대로 독수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만년 독수와 혈정.

귀천성이 만들어 낸 모든 죽음과 악의, 집념의 산물들이 점점 뭔가에 빨려 들어갔다.

쓰으으읍. 쓰읍…….

마침내 만년 독수와 혈정이 녹아든 그것이 바닥을 드러내고, 안에는 까만 가면과 장갑만이 남았다.

가면과 장갑은 여전히 검었지만, 빛에 따라 붉고 푸른 오만 가지 색을 뿜고 있었다.

다만 어떤 색을 띠던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워서, 차르르 철편들이 움직일 때마다 마치 흑룡의 비늘이 꿈틀대는 것 같았다.

“허허허, 이제 다 되었구나!”

진심으로 기쁜 듯 목소리에서 흥분이 느껴졌다.

인영은 먼저 가면을 꺼내 한쪽으로 가져갔다.

가면이 번뜩이는 아래로 침상에 누워 있는 사내가 비쳤다.

사내의 모습이 비치는 위로 인영, 광기를 품고 있는 광마제의 눈이 겹쳐졌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광마제가 사내의 얼굴 위로 가면을 갖다 대었다.

쉬이이이이----!

뭔가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가면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사내의 얼굴로 파고들었다.

덜컹! 덜컹-덜컹!

“……!”

비명도, 신음도 없이.

사내는 전신을 비틀고 부들부들 떨었다.

광마제가 희열에 찬 눈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내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사내가 두 눈을 번쩍 뜨고 곧바로 일어나 앉았다.

광마제가 기대감과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사내를 보며, 손가락으로 아직 남아 있는 장갑을 가리켰다.

사내는 광마제의 손가락을 따라 장갑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끼웠다.

쉬이이이이---!

역시나 가면이 씌워졌을 때처럼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장갑이 사내의 손으로 파고들었다.

“……으득…….”

사내가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뎠다.

얼굴의 핏줄이 터질 정도의 고통은, 장갑이 본래 사내의 몸에서 비늘이 돋은 듯 일부만 남기고 흡수되고 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차르르……. 꾸욱.

검게 물든 듯한 손.

두 손을 폈다가 주먹을 쥐어 본 사내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이름은 무엇으로 하겠느냐?”

광마제의 목소리에 사내가 급하게 뒤를 돌아 부복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무맥(無脈)이라 하겠습니다.”

“허허허, 너희들은 늘 그 이름을 가지려 하는구나. 다시 태어난 것을 환영한다, 무맥. 하하하하하하!”

광마제가 광소를 터뜨리고, 스스로의 이름을 무맥이라 정한 사내의 눈은 감격에 젖은 듯 일렁였다.

무맥(無脈).

광마제가 중원을 종횡할 때도, 결전을 치르고 정파에 철퇴를 가할 때도, 그리고 큰 부상을 입고 영면에 들었을 때도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모두 무맥이었다.

세 개의 광신기 중에서 마룡삭과 마룡아의 소유자로, 광룡귀면대를 이끌며 주군의 뒤를 지켰던 가장 충성스러운 수하, 그의 이름이 무맥이었다.

그래서일까.

광마제의 충성스러운 수하들은 모두 무맥의 마룡삭과 마룡아는 물론 무맥의 자리, 역할, 하다못해 무맥의 이름까지도 가지고 싶어 했다.

마치 그것이 광마제에 대한 충성심의 증거인 것처럼.

그래서 광마제도 마지막까지 세뇌를 확인할 때 이름을 물었다.

“무맥, 나를 위해 해 줘야 할 일이 있구나.”

광마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맥이 고개를 숙였다.

* * *

척척척척척.

흑의에 귀면을 쓴 일련의 무리가 성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선두에는 광마제의 삼 대 광신기 중 하나인 흑룡수를 낀 무맥이 있었다.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희멸문주 백수옥선 여승천이 밝게 웃으며 광룡귀면대에 다가갔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완전히 달랐다.

희멸문주는 갖가지 흉측한 귀면을 쓴 광룡귀면대원들보다 무심한 듯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검은 가면만 쓴 무맥이 훨씬 소름 끼쳤다.

그가 눈을 움직일 때마다 검은 가면이 마치 뱀의 비늘처럼 촤르르르- 움직이며 빛을 번들거렸기 때문이다.

“다들 있나?”

“물론이오. 사흘 전부터 고혈방과 해왕문이 왔고, 서패문, 성심당도 바로 어제 도착했소!”

“…….”

흑룡수를 한 무맥이 희멸문주를 보았다.

그리고 무심한 가면 안에서 피식- 비웃음 소리가 들린 듯했다.

“그런 떨거지를 묻는 게 아니다. 남해 검문에 잡아야 할 사냥감이 다 있냐고 물은 거다.”

“무, 무슨……!”

흑룡수 무맥의 말에 희멸문주가 당황해서 뭐라 말을 하기 전에.

탕-!

“이봐! 말이면 단 줄 알아?”

뒤에서 광룡귀면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중 성심당 당주가 화가 난 듯 발을 굴렀다.

“씨발, 진짜 무맥도 아니면서 있는 척은!”

“…….”

차르르르…….

흑룡수 무맥의 갑주가 성심당 당주를 향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는 무지막지한 큰 근육을 자랑하는 사내는 무맥의 시선에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꼴에 광룡귀면대라고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서는! 네가 광마제야? 씨발, 광마제도 아니고 고작 햇병아리 새끼 맞으러 이렇게 나와 있는 것도 내장이 쏠리는구먼! 뭐? 꼬라보면 어쩔 건데!”

성심당 당주는 흑룡수 무맥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쉐에에에엑----!

흑룡수 무맥의 주먹이 검은 용처럼 날아가 성심당주의 배에 박힌 것은.

“커억!”

“다, 당주님-!”

성심당 무인들이 놀라 당주를 불렀다.

하지만 그 전에, 흑룡수 무맥이 팔을 휘두르며 흑룡에 물린 성심당주의 배가 뜯겼다.

파-핫!

성심당주의 말처럼, 그의 피와 허연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당주님!”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성심당 무인들은 물론 주변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놈들-!”

채-앵!

성심당 무인들이 검을 빼 들었다.

그와 동시에.

퍽. 퍽. 퍽. 퍽. 퍽.

광룡귀면대의 갈고리가 그들의 등과 배, 온몸을 뚫고 박혀 들었다.

쉐에에에엑---!

이 선에 있던 광룡귀면대원들이 사슬을 타고 올라 갈고리에 박혀 꼼짝도 못 하는 성심당 무인들의 목을 베었다.

팟-! 파파팟--!

수십 명의 성심당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었다.

희멸문의 본관 앞은 순식간에 피가 작은 내를 이루며 흐르고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을 했다.

희멸문주는 물론 다른 문파 사람들도 엉거주춤한 모습 그대로 얼어붙었다.

흑룡수 무맥이 그들을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광마제가 아니라 광마제 님이다. 존칭 똑바로 하도록.”

“…….”

순식간에 일어난 살육을 본 뒤, 흑룡수 무맥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흑룡수 무맥과 광룡귀면대가 본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들은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희멸문에 있던 깃발이 일제히 내려갔다.

그리고 광마제를 상징하는 광룡귀면대의 깃발이 모든 자리에 올라갔다.

* * *

사패문의 문이 활짝 열렸다.

오늘은 사패문으로 올 수 있는 거의 모든 사파 무인들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연무장 주변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물러나! 물러나라니까!”

“아, 쒸펄! 그만 좀 밀어-!”

“이 미친 새끼들이! 구경하다 뒈지고 싶어? 천주님 주먹에 빗맞아서 대대손손 앉은뱅이로 영광스럽게 살 거야? 뒤로 물러나라고!”

흑살대와 홍랑대가 나서서 사람들을 뒤로 물리고서야 겨우 일 장 정도 거리가 나왔지만, 그들의 눈엔 여전히 불안하기만 했다.

“한 석 장은 물러나게 해야지.”

“저치들이 물러날까? 그냥 둬. 몇 놈 죽고 나면 알아서 뒤로 물러서겠지.”

흑살대주와 홍랑대주의 말을 들은 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연무장 주변이 정리되고 나자, 북소리가 울렸다.

결사대전이 시작된다는 걸 알리는 소리였다.

천천히 살각주 보곡성이 걸어 나왔다.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이목구비, 흑의 무복 위로 화려한 검은색 도포를 걸치고 나오는 보곡성의 모습은 살선(殺仙)이라는 별호가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사라락…….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습만으로도, 사파 무인들은 살선의 도포를 밟지 않는 곳까지 물러섰다.

까맣게 모여 있는 사람들에 비해 보곡성의 주변은 기묘할 정도로 적막했다.

살각주 살선 보곡성이 연무장에 오르고 그의 후계자 소명과 비선들이 그 아래 자리를 잡자, 기묘한 적막감은 사패천 전체에 퍼졌다.

하지만.

“와, 와아아아아-! 천주님-!”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기묘한 적막이 대번에 사라졌다.

한쪽 끝에서 사패천주가 모습을 드러내고, 사파 무인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를 질렀다.

사파 사람들에게 사패천주는 그러한 존재였다.

그들이 잔뜩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을 때에도 등장만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 주는, 사파 무인들의 자부심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천주님! 다 죽여 버리십시오-!”

“힘내십시오!”

일방적인 응원과 지지가 사패천주에게 쏟아졌다.

척.

연무장에 오르기 전, 사패천주가 밑에 자리를 잡은 강무련에게 패천아랑도를 던졌다.

“진짜 안 가져가시게요?”

“뭘 저딴 놈한테.”

강무련의 걱정 어린 말에 사패천주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펄럭-!

걸치고만 있던 도포가 강무련을 향해 떨어졌다.

“와아아아아----!”

진갑을 넘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의 누구보다 크고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는 사패천주의 모습에 사방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사파인들의 환호를 마음껏 즐긴 사패천주가 연무장으로 올랐다.

“아, 진짜. 곧 죽어도 멋진 척은…….”

뒤에서 천주의 패천아랑도와 도포를 주워 든 강무련이 구시렁거렸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에 젖은 사패천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마침내 연무장에 사패천주 한구혈과 살각주 보곡성이 마주 섰다.

사패천주는 오랜만의 도전자를 향해 씨익- 웃음을 보였다.

“네놈이 이렇게 용감할 거라곤 생각을 못 했는데 말이야.”

“…….”

명백하게 깔보는 듯한 말.

하지만 살각주 보곡성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미친……! 이게 천주의 기운이라고?’

사패천주가 연무장에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점점 살각주를 내리누르는 기운도 강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 보게 된 사채천주는 거대한 산처럼 살각주를 내리눌렀다.

목을 조를 듯한 살기, 뼈를 부술 듯한 투기 그리고 절대적인 내공의 격차.

십이좌회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사파 무인으로서 사패천주는 처음부터 살각주에게 격차(隔差)를 보여 주었다.

살기에 특히 민감한 암살자로서 살각주의 이마와 등 뒤로 벌써부터 비처럼 땀이 쏟아졌다.

‘등.’

땀 때문에 등 쪽 옷이 달라붙는 느낌에, 살각주가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봐주지 않는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호오. 그런 생각을 못 하도록 아예 짧게 부러뜨려 주마!”

사패천주가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두 주먹이 포효했다.

크아아아앙--!

포악한 기운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 같았으니, 사패천주의 패천아룡권이 호랑이의 송곳니처럼 살각주를 향해 들어갔다.

퍼----억!

퍽!

살각주가 암살자다운 몸놀림으로 사패천주의 패천아룡권을 피했다.

땅이 파이면서 돌과 흙이 튀었지만, 살각주의 시선이 그 너머 사패천주를 향했다.

허리를 굽혀 정면으로 오는 것을 피하며 어느새 손바닥에 올린 철 접선을 공중으로 날리고, 땅을 굴러 다음 주먹을 피하면서 사패천주의 뒤로 철 접선을 날렸다.

휘이이익-!

날듯 몸을 일으킨 살각주가 공중에서 몸을 회전했다.

쉐에에에엑-!

회오리바람에 이끌리듯 살각주가 공중에 날려 보낸 철 접선이 순식간에 사패천주를 향해 쏟아졌다.

쉐에에에엑--!

파파파파팟---! 

파—앗!

“우아아악!”

비명은 사방에서 터졌다.

파괴력이 세다고 느릴 거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었다.

야생의 호랑이는 날아다니는 새도 잡는 민첩한 사냥꾼으로, 사패천주의 패천아룡권은 날아드는 철 접선을 남김없이 모조리 주먹으로 터뜨렸다.

철 접선의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구경하던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그러나 곧 환호성이 터졌다.

살각주 보곡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으로도 안 된다면……!’

살각주 보곡성의 양손에 숨겨져 있던 단검이 나왔다.

빠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죽음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목을 찌른다.

숨겨 둔 한 수를 위해 살각주 보곡성의 눈에 살기가 번뜩이고.

동시에 그의 몸이 새하얀 빛에 둘러싸여 앞으로 쏘아졌다.

“아앗!”

비명이 터졌다.

번-쩍!

갑자기 눈앞에서 번뜩인 빛에 모두가 눈을 깜박인 후, 소리도 없이 조용히 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웅.

사람들이 일제히 연무장을 보았다.

“제법인데? 확실히 네 다리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니군.”

사패천주가 사나운 얼굴로 그에게 밀려 연무장에 떨어진 살각주 보곡성을 향해 말했다.

사패천주의 왼손은 살각주 보곡성의 부러진 단검 날을 잡고 있었고, 나머지 단검은 그의 어깨에 박혀 있었다.

“…….”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사패천주와 살각주를 보았다.

이제까지 사패천주의 몸에 검을 박은 사람은 살각주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패천주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피가 튀면 튈수록, 저항이 거세면 거셀수록 즐거워하던 그가 아니던가.

그랬던 사패천주가 지독하게 냉정한 눈으로 살각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주는 힘인가? 고작 이 정도가?”

그……것?

사패천주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살각주를 보았다.

동시에 쓰러진 줄 알았던 살각주의 몸이 공중으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아니, 살각주에게서 나온 무언가가 그를 공중으로 올린 것이었다.

“역시 당신은 대단하군. 하지만…… 고작 이게 끝일 리가!”

파-앗!

살각주의 검은 도포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살각주를 공중으로 들어 올린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르르르르---!

마치 수백 마리의 뱀이 뭉쳐 있는 듯, 뾰족한 창이 달린 검은 사슬들이 살각주의 등에서 꿈틀거렸다.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수십 개는 살각주를 떠받치고 수십 개의 창끝은 사패천주를 향했다.

“암림혈귀갑이다! 살각이 배신했다-!”

강무련이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챙! 챙챙! 챙-!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 있던 흑살대와 홍랑대가 살각 사람들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때.

파파파파팟---!

암림혈귀갑의 무시무시한 창이 살각 사람들을 공격하려는 흑살대와 홍랑대의 앞에 박혀 들었다.

“결사대전의 신성함은 사패천주 당신이 정한 법이 아닌가?”

“…….”

살각주의 말에 사패천 전체가 술렁거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사패천주를 향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네놈은 내가 이 연무장 안에서 끝장을 본다. 다른 놈들은…… 조까!”

사패천주의 대답과 함께 강무련이 사패천주에게 패천아랑도를 던졌다.

“놈들을 죽여라-!”

강무련의 명과 함께 흑살대와 홍랑대가 연무장에 올라가지 않은 살각 후계자 소명과 비선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남해 검문의 북문에서는 희멸문 성벽이 훤히 보였다.

그들의 깃발이 모조리 뒤바뀌는 것도 당연히 정의맹 무사들의 눈에 훤히 보였다.

“미친놈들. 그냥 소리를 질러서 알려 주지그래?”

“흐흐흐, 뭐라고? ‘야, 내가 왔다. 가면 쓴 미친 뱀 새끼들이 왔다-!’ 이렇게?”

적호단원들이 광룡귀면대의 깃발을 보며 킬킬거렸다.

유쾌한 농담과 달리 그들의 눈빛엔 살기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으니.

잔뜩 겁을 먹은 남해 검문 무사들이나 긴장하고 있는 창궁무애단과 달리, 이미 그들과 부딪혀 본 적이 있는 적호단과 청룡단은 광룡귀면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 쌍노무 새끼들…… 시작하지.”

남궁경이 남해 검문 장문인을 재촉했다.

그러자 장문인이 마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열거라.”

“충.”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남해 검문의 장문인은 여전히 성문이 열리는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못했지만, 적호단과 청룡단, 창궁무애단을 이끄는 남궁경은 돌진만 기다리는 황소처럼 콧김을 뿜고 있었다.

“정의맹 본부를 방어하는 무단은 적호단이지요. 왜일 것 같습니까?”

“그, 글쎄요. 방어를 잘해서?”

“반쯤은 맞습니다.”

“그……럼?”

“현 군사부에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 수단’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일 공격적이거든요. 흐흐흐!”

불안해하는 남해 검문 장문인에게 적호단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청룡단주가 코웃음을 쳤다.

“동의할 수 없군. 정의맹의 검은 명백하게 우리 청룡단이다.”

청룡단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남해 검문 장문인은 약간 배신감 어린 눈으로 청룡단주를 보았다.

그때, 남궁경이 창궁무애단을 향해 말했다.

“기억해라, 무적진이다, 무적진.”

“그렇게 말하니까 어렵잖습니까? 그냥 쉽게 돌격진이라고 이름 지으시지.”

창궁무애단 단주가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남해 검문 장문인은 이들을 말릴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끼이이이이.

성문이 모두 열리고.

“가…… 야아!”

적호단주의 말이 있기도 전에 적호단 십 조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들의 선두에는 당연히 진화가 있었다.

“저 쌍놈의 새끼들! 가! 저 새끼들 사고 치기 전에 따라잡아!”

적호단주가 다급하게 외쳤다.

“적호단보다 늦는 새끼들은 제왕무적단으로 끌고 가 주마!”

남궁경의 말에 창궁무애단원들이 이를 악물고 양쪽으로 흩어졌다.

‘이전과 다르다. 여긴 최선의 방어, 최고의 복수를 원하는 자들만 있으니까.’

이전 생의 지옥 같던 잠삼현의 광경.

‘똑같이 만들어 주마!’

진화의 눈에서 번쩍이는 것과 똑같은 번개가 진화의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퍼----엉!

희멸문 성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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