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벼락 진(震) 태울 화(火) : 혼돈의 시작(1)
쉐에에에엑----!
“으아아아악-!”
“꺄아아--!”
비명이 머릿속을 온통 메아리쳤다.
“안 돼!”
“제발……!”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심장을 때렸다.
아름다운 잠삼현.
남궁세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닿아, 온통 붉은색인 중원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닮은 듯 푸르른 곳.
남궁세가의 방계조차 되지 못한 저에게도 환하게 웃어 주고 고개를 숙여 주던 사람들.
언제나 밝은 사람들의 표정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시끄러운 삶의 소리로 가득하던 곳이…… 빨갛게 죽어 있었다.
밥 냄새가 올라와야 할 담벼락 너머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 있고, 집집마다 걸어놓았던 푸른 천 조각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주렁주렁 널린 것은 과실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장이었고, 부서지고 함몰된 얼굴엔 생전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났다.
짐승조차 살육에 대한 거리낌이 었을지언데, 같은 인간을 향한 존엄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진화는 자신의 낙원을 잃었다.
한 번도 편하게 숨 쉬고 웃어 본 적 없었지만, 지옥 같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던 낙원을 잃어버렸다.
파파파파파팟-----!
푸른 번개가 눈앞에 보이는 땅을 헤집고 나아갔다.
“크아아악--!”
진화의 번개는 성문을 부수고, 땅을 가르고, 그 위에 서 있던 모두를 집어삼켰다.
파지지지직--!
거대한 번개에서 퍼져 나간 뇌전들이 땅속에 빠졌던 이들을 모두 관통하고 지나갔다.
퍼런 빛이 사람의 몸을 순식간에 태우고, 그들의 시간은 비명을 지르던 순간에서 멈춰 버렸다.
진화는 거리낄 것 없이 앞으로 나갔다.
진화의 눈에 비치는 건 여전히 붉은 잠삼현의 광경이라. 진화는 붉게 물든 소천로를 엎어 버리겠다는 듯 땅을 향해 뇌전을 휘둘렀다.
파파파파팟---!
콰광! 쾅! 콰-앙!
진화가 땅을 향해 뇌전을 뿜자, 땅이 무너지며 그 위에 세워 놓았던 겹겹의 성벽 또한 차례로 무너졌다.
“으아아아악--!”
“아악!”
“피해라! 뛰어내려!”
성벽 위에서 적호단을 노리던 희멸문을 비롯한 귀천성 무인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을 향해 어김없이 진화의 뇌전이 관통했다.
번----쩍!
소천로는 남궁세가 영웅들을 맞이하던 길이었다.
“네놈들의 피는 흘리지 마라. 그렇게 더럽힐 땅이 아니니!”
천뢰제왕검법 현천섬뢰가 번쩍인 순간.
섬광은 수십 명의 귀천성 무인들의 목숨을 끊어 놓았다.
끈 떨어진 인형들이 일순간에 무너지듯, 그들 또한 명줄에 매달려 있던 인형들처럼 그렇게 무너졌다.
진화가 무너진 성벽과 시체를 넘어 희멸문 본관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때.
휘이이이이익---!
팍! 팍! 팍! 팍! 팍!
촤롸라라라라!
순식간에 날아든 사슬들이 진화를 가두듯 진화의 발을 빙 둘러 박히고, 진화의 검에도 감겨 들었다.
“…….”
진화가 고개를 들었다.
희멸문 본관 지붕 위, 흑의 귀면을 쓴 광룡귀면대가 죽음의 사자들처럼 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들의 한가운데로 흑룡의 비늘처럼 차갑고 검은 가면과 장갑을 낀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갑주까지 차려입은 사내는 진화의 검에 사슬을 걸고 위풍당당하게 진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흑룡수 무맥…….”
진화가 사내의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진화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인지, 흑룡수 무맥이 진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걸었다.
“주군의 제물이니 죽이진 않겠다.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잡히면 다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진화의 검을 잡고 마치 새장처럼 진화의 몸을 빙 두른 사슬에서 광룡귀면대의 의도가 느껴졌다.
진화는 제 주변을 둘러싼 사슬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너희는 최선을 다해 발악해다오!”
흑룡수 무맥 때문에 다 하지 못했던 말을 마저 하면서, 진화가 환하게 웃었다.
촤아아아-!
진화가 저를 둘러싼 모든 사슬을 검에 걸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의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분노를 토해 내듯 천뢰기를 토했다.
파지지지지지직----!
콰광광----콰앙!
검푸른 뇌전이 사방에 번개를 뿌리며 사슬을 타고 광룡귀면대를 향했다.
* * *
순식간에 혼자서 앞으로 나가는 진화의 모습에 적호단 십 조가 바쁘게 그 뒤를 따랐다.
“저 녀석……!”
적호단주가 화가 난 듯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그때, 남궁진혜가 적호단의 앞으로 나섰다.
“진화야! 우리 진화 건드리면 죽여 버린다--!”
“야, 인마!”
남궁진혜는 적호단주의 부름이 들리지 않는 듯 앞으로 달려가더니 어느새 적호단 십 조를 따라잡았다.
“저 새끼들! ……젠장! 빨리 가자!”
적호단주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적호단주는 더 이상 진화와 적호단 십 조, 남궁진혜를 탓할 수 없었다.
눈도 귀도 닫은 듯이 오로지 진화만 보고 달리는 남궁진혜의 모습에서,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흥분해서 덤비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적호단주는 예전에 한번 남궁진혜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남궁진혜에게 적호단주가 물었었다.
“야, 너희는 왜 그렇게 강한 놈을 애지중지 못 해서 난리냐. 싸움판에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몰라?”
그러자 남궁진혜가 처음으로 적호단주에게 살기를 번뜩였다.
“쓰불! 누가! 누가 우리 진화더러 더 성장하길 바란대요? 그러다가 다치면!”
“무인이 싸움판에서 조금씩 다치면서 강해지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 진화는 이제 그만 다쳐야 한다고요! 그 씨, 미친 씨불 새끼들이 그 어린애의 온몸을 난도질하고 닫았다가 또 난도질하고, 짐승처럼 헤집어서…… 우씨! 하여튼, 우리 진화 죽다가 겨우 살았는데! 지금도 우리 진화는 혈맥이 모자라서 대연심법도 못 익혀서 그 개떡 같은 독거신검이나 사부로 삼았는데…… 흐어어어엉! 불쌍한 내 동생-!”
남궁진혜는 여전히 진화가 창궁대연심법을 익히지 못해 의천신검을 사부로 삼은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적호단주는 남궁진혜가 울음을 터뜨리며 주사를 부리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지만, 진화가 광마제의 제물로서 겪었던 일이 가히 평범치는 않았을 거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귀천성 놈들이 제물이 어리다고 배려를 해 줬을 리도 없고. 눈앞에 생살을 가르고 헤집던 놈들이 나타났으니 눈깔이 뒤집히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그렇지. 눈깔 뒤집어 놓고 싸우다가 다치면 어쩌려고, 젠장!’
적호단주는 내심 진화의 흥분을 이해하면서 혹시나 진화가 위험해지진 않을지 걱정했다.
그때.
콰광광----쾅!
적호단주의 앞에 성문과 성벽이 부서졌다.
콰광-! 쾅! 쾅!
성문 뒤로 성벽들이 하나, 둘 무너지는 것을 보며, 적호단주는 물론 적호단 전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앞을 보았다.
“허! 미친놈…… 내가 누굴 걱정한 건지!”
적호단주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 와중에서 적호단주와 적호단의 다리는 부지런히 진화와 적호단 십 조의 뒤를 쫓았다.
퍼-억!
퍼버버버벅-!
성스러운 금빛 광채를 뿜는 금강붕산권이 백팔 개의 주먹으로 쏟아지자, 붉은 무복을 입은 귀천성 어디 문파 소속 무인들의 머리가 두부처럼 부서졌다.
“야아--! 피 튀잖아! 깔끔하게 죽이라고!”
“팽 씨! 팽 씨! 돌--!”
남궁구가 고함을 지르자, 팽가 형제들이 달려와 그들 쪽으로 무너지는 성벽을 밖으로 밀었다.
쿠----웅!
“지시 사항이 애매하군.”
“팽 씨가 둘이잖아!”
팽수와 팽신이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들의 불만은 불만도 아니라는 듯, 옆에서 당혜군이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오, 씨! 미친년아! 그걸 내 앞에서 깨면 나는 대체 어디로 침을 날리냐! 저기 발린 독이 얼마짜리인 줄 알아? 아아악! 내가 던진 다음에 깨라고-!”
“……시끄럽군.”
“하하하하! 그 덕에 현오가 사람 머리 터뜨리는 소리는 안 들어도 되지 않는가.”
당혜군의 불만에 제갈상이 당장 귀를 막고 싶은 듯 얼굴을 찌푸렸으나, 그 또한 죽은 듯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적을 향해 검을 휘둘러야 했기에 귀를 막을 순 없었다.
관서겸이 긍정적인 면을 보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리로 검을 휘두를 뻔했다.
“둘 다 죽여 버리고 싶군.”
“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돌이 아니라 놈들의 대가리를 깨고 싶다!”
제갈상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하연이 크게 동의하며 현오를 부러운 눈으로 보았다.
진화가 막무가내로 앞을 나아가는 동안, 적호단 십 조는 그들끼리 상황을 정리하며 진화의 뒤를 쫓았다.
진화가 무너뜨린 성벽이 앞으로 떨어지면 팽가 형제가 뒤로 밀어서 넘어뜨리고, 남궁구와 남궁교명, 현오는 진화의 손에 죽지 않은 이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나하연은 당혜군과 제갈성, 관서겸의 앞으로 오는 바위를 깔끔하게 쳐 냈고, 당혜군과 관서겸은 진화를 향해 날아가는 비수나 화살을 막아 내고, 제갈상은 비겁하게 일행의 뒤를 노리는 적들을 막았다.
진화가 신경 쓰거나 배려해 주지 않아도, 적호단 십 조는 오히려 진화를 도우면서 진화의 뒤를 쫓았다.
혼자 동떨어져 앞으로 나간 진화 때문에 하마터면 적들에게 둘러싸일 뻔했으나, 제갈상의 뒤로 남궁진혜의 거대하고 푸른 검강이 적호단과 십 조원들 사이를 이어 주고 있었다.
어느새 빠르게 쫓아온 적호단이 희멸문을 비롯한 귀천성 무인들과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퍼퍼퍼퍼퍽--!
퍼-억!
“죽어, 죽어!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고혈방 무인의 가슴에 수습대의 파격추를 때려 박은 적호단주가 끝내 그의 얼굴을 뭉개 버렸다.
그런 적호단주의 옆으로 익숙하게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투에서의 흥분은 좋지 않다.”
청룡단이 때를 맞춰 희멸문의 옆을 치고 들어왔다.
적호단주의 본의는 아니었지만 적호단이 정면에서 크게 일을 벌여 준 덕에 적의 측면을 치려던 청룡단은 아무런 피해 없이 희멸문으로 들어왔다.
쉐에에에엑-!
챙! 챙!
숫자로 따지자면 여전히 희멸문에 모인 귀천성 무인들의 수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정면에서 그들을 지켜 주던 성벽이 무너지고 앞과 옆에서 공격을 당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애초에 광룡귀면대가 그들을 억누른 상태에서 그대로 방치했기에 제대로 된 지휘체계가 없다는 것도 지금처럼 정신없이 밀리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상황은 귀천성에 점점 더 나빠졌다.
“창궁무애단, 무적진이다--!”
남궁경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푸른 무복을 입은 창궁무애단이 희멸문의 후방을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났던 귀천성 무인들이 그들에게 밀려서 적호단과 청룡단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젠장! 그들은 대체 뭘 하기에!”
“쓰불, 닥쳐라-! 쓰레기는 문답무용!”
남궁경의 검이 희멸문주 백수옥선 여승천의 등을 때렸다.
퍼---억!
백수옥선 여승천이 온몸의 혈기를 내보낸 듯 붉은 기운을 양팔에 두르고 그것을 막았지만, 결국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살이 터져 나가 하얀 뼈를 드러낸 그의 두 팔은 진정한 의미의 백수(白手)가 된 듯했다.
“허! 남궁진혜의 검강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네. 남궁제일검이 아니라 남궁세가 문설주 아니냐?”
“…….”
적호단주의 비아냥거림에 청룡단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퍼—억! 퍼억!
남궁세가 문설주처럼 크고 두꺼웠지만 그래도 검강은 검강이었는지, 남궁경의 검이 무너진 성벽을 가르고 그 뒤에 숨어 있던 고혈방 무인들의 몸을…… 터뜨렸다.
“크흐흐흐흐!”
적호단주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청룡단주는 못 들은 척했다.
적호단과 청룡단, 창궁무애단이 순조롭게 귀천성 무인들과 전투를 이어 갔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지휘체계도 제대로 없는 적들이 갈가리 찢어진 것이 주효했다.
다만 걸리는 것은, 아직 광룡귀면대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야, 안으로 들어가라.”
“뭐?”
“적호단은 우리 부단주 놈이 안으로 들어가서 나까지 못 들어가. 그러니까 청룡단이 부단주에게 지휘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적호단주의 말에 청룡단주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창궁무애단의 지원은…….”
“진화야-! 내 아들 어디 있냐!”
청룡단주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남궁경이 진화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벌겋게 부라리고 사방을 희번덕거리는 모양에, 적호단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약간 남궁경을 떠맡기는 모양새였지만, 어쩌겠는가.
광룡귀면대가 안쪽에 있다면, 남궁경과 같은 고수의 힘이 필요했다.
청룡단주가 한숨을 쉬며 남궁경을 불렀다.
하지만 그때.
청룡단주보다 먼저, 더 큰 소리로.
“진화야----!”
비명과 같은 남궁진혜의 목소리가 울렸다.
“……!”
남궁경과 청룡단주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약속되었던 정예 단원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콰광광-----쾅-!
하늘에 범상치 않은 천둥소리와 함께 검은 번개가 번뜩였다.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적호단주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