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꽃다울 화(花) : 혼돈의 중원(3)
강무련이 불안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남궁진휘와 달리 강무련은 역천마제의 등극식이 내분으로 아수라장이 된 게 그들에게 좋은지 나쁜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수라장이 된 적진 한복판에 동료들을 남겨 두고 온 강무련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강무련과 달리 남궁진휘는 거침없이 신 제국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도 신 제국에 와 본 적 없으면서 일행을 황도까지 안내하던 때처럼 그는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황궁에도 와 본 적 있는 거 아니야?’
강무련이 남궁진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내내 일행과 함께 있던 남궁진휘가 혼자 황궁을 와 봤을 리 없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의심이 들게 만드는 남궁진휘가 신기할 뿐이었다.
‘묘하게 능숙하다니까. 참 이상한 사람이야.’
수상쩍을 정도로 요령이 좋고 능청스러웠지만 그게 밉기는커녕 믿음직스러워 보일 정도라. 강무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궁진휘를 따라 신 제국 황궁 깊숙이 신건궁까지 왔다.
* * *
신건궁 현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남궁진휘가 전음을 보냈다.
-이제 날아오르는 까마귀는 모두 죽여야 합니다.
‘까마귀?’
단둘만 있어서일까.
남궁진휘가 강무련에게 존대를 했다.
하지만 진지하고 단호한 말투 때문인지, 강무련은 그 어느 때보다 남궁진휘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강무련의 눈이 신건궁 주변을 매섭게 향했다.
그때.
쉐에에에엑---!
“큭!”
남궁진휘가 검기를 날리자, 신음과 함께 누군가 지붕에서 떨어지고.
파팟! 팟! 팟!
서너 명의 교성흑오대원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앗!”
강무련은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향해 강기를 날렸다.
퍼-엉!
강무련의 강기를 피해 교성흑오대원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동시에 강무련이 땅을 박차고 지붕 위로 올랐다.
쉐에에엑-!
깊게 찔러 들어오는 검.
강무련이 당황하지 않고 몸을 회전해서 그 검을 피했다.
휘익! 쉭! 쉭!
검을 피한 강무련에게 순식간에 여섯 명의 교성흑오대원이 달려들었다.
툭.
깊게 디딘 한 발.
그리고 체중과 내공이 함께 실린 주먹이 따라 나갔다.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전신의 기운을 담은 주먹이 교성흑오대원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퍼—억!
우각살호권은 미친 소가 뿔을 흔들어 호랑이를 죽이는 모습을 본떠 만든 무공이었다.
미친 소의 움직임에서 어떤 규칙을 찾은 것이 아니라, 미친 소가 흥분한 상태로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어 낸 움직임을 그대로 모방하여 전투 중 투기와 혈기를 전부 쏟아 내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퍼억! 퍼억!
강무련이 뻗은 주먹이 더할 나위 없이 힘차게 교성흑오대원의 머리에 꽂혔다.
뻐-억!
주먹질 한 번에 두개골이 움푹 함몰되고, 그 모습을 본 다음 사람이 머리를 숙이자 주먹이 늑골을 부수고 명치 깊숙이 박혔다.
적이 한 번이라도 주춤대면 끝이었다.
강무련의 주먹은 인정사정없이 인간의 약한 부분을 깨부쉈기 때문이다.
퍽! 퍽!
퍼--억!
“후우.”
마지막 교성흑오대원을 쓰러뜨리고 강무련이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그리고 더 이상 교성흑오대원이 나타날 것 같지 않자, 지붕 밑으로 내려갔다.
남궁진휘는 이미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강무련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신건궁 안에는 남궁진휘가 한 것인지 병사 넷이 쓰러져 있는 것 외에 궁인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수림……!”
“아주버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야무지게 들리는 목소리.
한수림을 부르며 뛰어든 강무련이 멈칫한 사이, 한수림과 남궁진휘가 그를 돌아보았다.
“형-아!”
한수림이 해맑은 얼굴로 강무련을 맞았다.
“뭐 하다가 이제 온 거야! 하여튼 꾸물대지! 그래서 장가는 제때 가겠어?”
제 유모처럼 자연스럽게 늘어놓는 잔소리가 전혀 납치당해 있던 인질답지도, 어린아이답지도 않았다.
“……한 공자 좀 챙기시겠소?”
“아앗! 아주버님, 저 다 했어요. 이제 가면 돼요!”
“…….”
어쩐지 남궁진휘의 한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강무련은 저도 모르게 남궁진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강무련이 한수림을 안아 들고 뛰어나오는 길.
품에 안긴 작은 몸뚱어리와 제 목을 꼭 잡은 짧은 팔, 어린아이 특유의 살냄새와 뜨끈한 입김을 느끼며, 강무련이 힐끗 한수림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으냐? 다친 곳은 없고?”
“…….”
강무련의 물음에 한수림은 몸을 움찔할 뿐 답이 없었다.
‘녀석…… 아무리 괜찮은 척해도 어린아이가 귀천성 마제들에게 잡혀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강무련은 한수림을 더 꼭 안아 들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야무지게 싸서 둘러맨 봇짐이 먼저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남궁진휘와 강무련이 신건궁을 벗어나려는 찰나, 갑자기 앞서 달리던 남궁진휘가 멈춰 섰다.
“멈춰라-!”
“하아, 이미 멈췄잖아.”
갑자기 나타나 앞을 가로막은 사내의 말을 남궁진휘가 전혀 놀라지 않은 듯 태연하게 받아쳤다.
“닥쳐! 그 아이를 노리고 온 걸 보며 사패천의 개로군. 쥐새끼 같은 놈들이 감히 폐하의 등극식에 황궁으로 들어와?”
“사패천의 개 다음에는 개새끼가 와야 자연스럽지 않나?”
“젠장! 닥쳐!”
사내가 버럭 화를 내자, 남궁진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 허름한 옷차림으로도 감출 수 없는 귀태. 그리고 조곤조곤 타이르는 듯한 여유로운 말투.
‘재수 없군.’
강무련은 사내가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척. 척. 척. 척.
어느 순간 나타난 신 제국 병사들이 남궁진휘와 강무련, 한수림에게 창을 겨누었다.
그러자 사내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남궁진휘를 비웃었다.
“이 몸은 신 제국 황궁 경비대장 장형방이다! 순순히 오라를 받으면 다치게 하지 않으마.”
이제 보니 사내는 신 제국군의 비장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갑주를 걸친 밖으로도 느껴질 만큼 우람한 근육과 두둑한 뱃살, 구레나룻부터 연결된 턱수염이 덥수룩한 외모는 신 제국 하급 장수라기보다 녹림의 채주에 더 어울릴 법했지만 말이다.
“다치게 하지 않는다라…… 후후.”
남궁진휘가 경비대장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전혀 순순히 오라를 받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경비대장이 사나운 눈으로 남궁진휘와 강무련을 노려보았다.
보이는 외모와 달리 남궁진휘와 강무련을 살피는 태도가 몹시 신중했다.
“무림인들이다. 섣불리 다가서지 마라.”
경비대장은 남궁진휘와 강무련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도 손짓으로 병사들을 한 걸음씩 물리고, 서서히 움직여서 신건궁을 빠져나가는 문 쪽을 병사들로 가렸다.
강무련이 한수림을 안고 남궁진휘의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잔뜩 기운을 벼르고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그때, 남궁진휘가 신 제국 황궁 경비대장과 병사들을 향해 싱긋이 웃어 보였다.
“더 도와주러 올 병사들은 없나 보군. 하긴 등극식에 그 난리가 터졌으니…….”
그 말을 끝으로 남궁진휘가 땅을 박차고 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강무련도 놀란 눈으로 남궁진휘의 신형을 좇았다.
“조심해……!”
쉐에에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푸른빛이 번뜩이고.
남궁진휘의 검이 순식간에 병사 셋의 목을 갈랐다.
그 뒤로 병사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크아아악!”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강무련은 도와줄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그 광경을 보았다.
남궁진휘의 검은, 적호단 부단주 남궁진혜나 남궁진화와 달랐다.
남궁진혜의 검보다 날카롭고, 남궁진화의 검보다 무거웠다.
그래, 중검(中劍).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누구보다 남궁의 검다운 검이었다.
쉐에엑!
챙! 샤-악!
“크악!”
“으아아악!”
“젠장, 물러서라!”
경비대장이 소리쳤을 땐 이미 병사들 대부분이 쓰러졌다.
“이놈-!”
채-앵!
경비대장이 분노를 폭발하며 남궁진휘의 검을 막아섰다.
하지만 검을 맞부딪히고 남궁진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경비대장은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본 적 있지. 신 제국 황궁 경비대장 장형방. 신 제국 서한군 비장 출신으로 석 달 전, 전 경비대장 황우찬을 밀어내고 새롭게 승차한 젊은 장수. 힘이 좋은 편이고 지략은 고만고만, 우직하고 인내심이 좋아 수하들에게 신망이 높은 편.”
남궁진휘의 입에서 자신에 대한 말이 줄줄 나오자, 경비대장이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남궁진휘가 그런 경비대장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이 다였다. 내 책장 위에 올라온 흔하디흔한 다섯 줄짜리 인적 보고서. 고작 다섯 줄짜리 주제에 감히 대남궁세가 소가주를 향해 개새끼를 운운해?”
웃음기가 사라진 남궁진휘의 눈빛에 살기가 번뜩였다.
사아아악.
경비대장 장형방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식어 내린 듯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그 순간.
끼이이……!
경비대장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남궁진휘의 검이 새파란 빛을 내며 점점 그의 검을 잘라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던 서늘한 기운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 것 같았다.
“역적 집 개 주제에 짖을 곳을 잘못 찾았구나.”
채--앵!
“……아!”
눈앞에서 새파란 빛이 번뜩였다.
경비대장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파팟--!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찢어질 듯 크게 뜬 눈이 먼저 땅에 떨어지고, 머리를 잃은 턱과 몸뚱어리가 바닥에 허물어졌다.
‘저, 저것이 남궁세가 소가주, 남궁진휘의 본모습인가!’
강무련이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보았다.
남궁진휘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 뒤를 돌아보았다.
“서두르지. 우리 진화가 많이 기다리면 곤란하니까.”
평소와 같은 남궁진휘의 팔불출 발언임에도 강무련은 웃으며 답할 수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형아, 예쁜 형아도 왔어?”
“쉿! ……지금은 아니다.”
강무련이 진화의 이름에 반응하는 한수림을 품에 더 꼭 껴안았다.
* * *
남궁진휘와 강무련이 단둘만으로 한수림을 쉽게 데리고 나올 수 있었던 만큼.
등극식이 벌어지던 대전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죽어라--!”
챙! 챙!
쉐에에에엑!
“이 천하의 역도들! 내 칼을 받아라!”
“감히 주군을 배신하다니!”
쉐에에엑!
“누구든 죽어라!”
혼현마제의 편을 든 귀천성 세력, 신료들, 장군들과 여전히 역천마제를 따르는 귀천성 세력, 신료들, 그리고 등극식을 하고 황관을 쓴 황제를 따르기로 한 본래 신 제국 장군과 병사 들. 거기에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망나니 칼춤 추듯 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정의맹 첩자들까지.
적아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는 아수라장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주변 모든 것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지옥도를 연출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퍼---엉!
파파파파파팟---!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
땅에서 솟구치는 검은 흑룡.
파—팟!
흑룡이 벼락을 삼키고.
퍼엉! 펑! 펑!
흑룡을 터뜨리고 번개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인세의 경지를 넘어선 광경에, 성문 쪽에 매달려 바동거리던 사람들마저 그쪽으로 한눈을 팔고 말았다.
“진화야-!”
남궁진휘가 다급한 목소리로 진화를 불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광마제의 기운이 진화를 덮치면서, 남궁진휘의 목소리가 진화에게 닿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크하하하핫! 이놈!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은 내게 삼켜지고 말 것이다-!”
광마제가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진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진화는 광마제의 손을 피하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웃기는 소리군.”
쉐에에엑-!
광마제의 손목을 당겨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그의 팔을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헛!”
광마제가 황급히 다른 쪽 팔을 휘둘러 진화를 때리고 검을 피했다.
둘이 서로를 밀어내며 거리가 벌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은 서로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운명? 하하하!”
광마제의 말에 진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화가 웃는 모습에 광마제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차분한 듯하면서도 제 말이라면 발작을 하던 제물이, 진심으로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악의나 분노를 담은 반항이 아니라, 정말로 대등하게 눈을 마주치고 저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완전히 저를 벗어난 것 같지 않은가!
“네놈……!”
광마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달라졌다.
제 제물이 달라졌다.
그 사실이 광마제를 그 무엇보다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럴 수 없다! 넌 날 벗어날 수 없다!”
광마제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입을 벌리고 진화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달려갔다.
“벗어나지 못하는 건 당신이겠지.”
진화의 눈동자에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진화의 온몸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검강과 같은 푸른빛이 온몸에서 번쩍거렸다.
진화는 마치 광마제의 흑룡을 반기듯 검을 들고 그 입속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화야---!”
남궁진휘가 이전보다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