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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34)화 (334/425)

남궁마제

성낼 진(嗔) 합칠 화(和) : 새로운 무단(3)

한가로운 포구.

정의맹에서 출발한 진화와 일행은 무릉 포구에서 사패천 무인들과 만나기로 했다.

“언제 오는 거야?”

“가까운 데 있는 것들이 더하다고.”

남궁진혜처럼 멀미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선상에서 밤을 지내는 것이 편할 리 없었다.

툴툴거리며 불평을 하는 남궁구와 남궁교명 외에 당혜군과 현오, 제갈상의 얼굴에도 짜증이 가득했다.

성격이든 감각이든 예민한 부분이 있는 이들에게 내내 흔들리는 선상 생활은 단 반경도 연장하기 싫은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저기, 온다!”

팽수의 말과 함께 일행의 시선이 한 방향을 향했다.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서 느릿하게 걸어오는 사패천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같은 검은 무복을 입고 있었지만 형체만으로도 쉽게 구분이 갔다.

초서비는 다른 사람들과 부피감이 아예 달랐고, 강무련은 건장한 체격에 반듯한 걸음걸이, 당당한 태도가 멀리서도 느껴졌다. 게다가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이천평과 황계수는 건장하다 못해 거대한 체구였으니. 새롭게 합류한 인물은 멀리서도 그 붉은색 머리칼이 눈에 띄었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여유롭다 못해 느긋하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에 일행의 심사가 뒤틀렸다는 것이다.

“하하하! 먼저 와 있었군.”

“그쪽이 늦은 거겠지.”

“음? 하하, 그런가?”

호탕하게 웃으며 알은척을 하는 강무련의 말을 남궁교명이 툭 내뱉듯 받았다.

반갑게 인사한 강무련의 표정이 잠깐 민망해졌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묘하게 민망하고 뻘쭘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 시커먼 옷은 왜 입고 온 거야?”

사패천 무인들의 복장을 본 남궁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사패천 무인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스스로의 복장을 살폈다.

“응? 이게 왜? 이제 정식으로 다 같은 소속이기도 하고, 이게 제일 기본 아닌가?”

“그래. 기본적으로 낯선 곳에서 경계심을 사기 딱 좋은 복장이지. 동네방네 ‘심상치 않은 떼거리가 왔소!’ 떠들고 다닐 일 있어? 그냥 일상복도 있지? 어서 갈아입어.”

남궁구가 귀찮은 듯 쏘아붙였다.

하지만 사패천 무인들은 여전히 그의 말을 납득할 수 없는 듯했다.

“어차피 이 덩치로 무인인 걸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뭘 입든 길 다니면 다 쳐다보지 않나?”

이천평과 황계수가 구시렁거렸다.

그러자 당혜군이 피식 웃었다.

“댁들은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게 시커먼 옷까지 입고 있으면 관아에 잡혀갈 수도 있지 않아?”

당혜군의 말에 이천평과 황계수가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당혜군은 몰랐겠지만, 그들은 평소 스스로를 산적이 아니라 산중호걸이라 말하고 다니며 그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뭐야?”

“무슨 뜻이지?”

이천평과 황계수가 정색하고 되묻자, 이번에는 당혜군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로서는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는데 상대가 진지하게 나오니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당혜군이 느끼기에 이천평과 황계수의 태도는 제법 위협적이었다.

물론 당혜군은 상대가 위협적이라고 겁을 먹는 여자가 아니었다.

당혜군은 상대가 위협하면 더 독을 뿜는 여자였다.

“아니, 뭐. 덩치가 큰 건 비슷한데 팽가 형제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풍기는 분위기가 위협적이라 그런가?”

당혜군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때, 보다 못한 남궁구가 나서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자, 그만하고. 갈아입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데 앞으로 뱃길로 이틀은 더 가야 해서 계속 그것만 입고 있긴 불편할 거야.”

“음, 일단 선상 생활을 먼저 해 본 사람들 의견이니까, 나와 비아, 군조는 옷을 갈아입도록 하지.”

“……쯧.”

남궁구의 중재 아닌 중재에, 강무련까지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강무련까지 나서자 이천평과 황계수도 첫날부터 싸우진 않겠다는 듯 참고 돌아섰다.

그사이, 군조가 남궁구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너도 왔네?”

“내가 오는 걸 몰랐나?”

“알았어. 근데 달리 할 말이 없어서 해 본 말이야.”

“…….”

남궁구의 말로 둘 사이가 더 어색해졌다.

아니, 그들뿐 아니라 선상의 분위기 전체가 어색해졌다.

강무련이 그런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시도는 했지만…….

“우리 명칭이 숙청단이라고요?”

“급조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혹시 다른 의견 있다면 차후에 변환하도록 하지.”

“하하하, 아니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면, 숙청단, 숙청단…… 무지막지하게 들리는 것이 나름 괜찮은 듯하오.”

“그게 그 숙청이 아닌데…….”

“응?”

“아무것도 아니다.”

진화는 이 기회에 무단의 이름을 바꿔 보려 했지만, 의외로 사패천 무인들은 숙청단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다.

결국 진화는 끝까지 숙청단의 진짜 의미가 정의무학관 숙소 이름이라는 걸 밝힐 수 없었다.

* * *

장기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연기현, 그곳에서도 꽤 외진 마을이었다.

진화를 비롯한 숙청단이 마을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워낙 외진 마을이라 외부인의 출입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숙청단은 장기군에서 익주군으로 가는 상인으로 위장을 했는데, 마침 숙청단의 총인원이 열다섯 명이었기에 작은 상행으로 보이기 딱 좋은 수였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객잔으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숙청단을 반갑게 맞았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객잔도 서너 개밖에 없었지만, 방문자는 그보다 더 적어서 그마저도 경쟁이었다.

점소이는 모처럼 맞은 큰손을 놓칠세라 숙청단을 얼른 안으로 모셨다.

“여기, 여기! 저희 객잔에서 최고로 좋은 방입니다.”

“아니, 가격은 똑같이 지불했는데…….”

“아이고, 고된 상행을 책임지는 분은 더 좋은 곳에 묵으셔야죠. 저희 객잔의 성의입니다, 성의!”

성의를 강조하는 점소이의 시선이 진화의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연륜과 체격을 들어서 행수로는 강무련이 더 어울리네, 남궁구가 더 장사치같이 얍삽하게 생겼네, 귀한 영애들 두고 뭐 하는 짓이냐…… 등등.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지만 결국 점소이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 준 듯했다.

당혜군과 나하연, 초서비도 이제는 체념을 한 듯했다.

잠시 후.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던 일행이 진화의 방으로 모였다.

“와. 방이 진짜, 넓긴 넓네.”

진화의 방에 들어온 이천평이 연신 방 안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그 말이 살짝 비꼬는 듯 들렸는지 남궁교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쁘니까 자리에 앉지.”

남궁교명의 말에 이천명이 입술을 이죽거렸다.

“허! 누구는 다른 일 하나? 유달리 누구씨들만 바쁘다네.”

“누구씨들만 성실한 거겠지. 아니면 누구들이 불성실한 것이거나. 제 버릇 개 못 주고.”

이제는 완전히 서로를 향해 날 선 말이 오갔다.

지금이야 진화를 공손하게 떠받든다고 하지만, 오만할 정도로 자존심이 센 남궁교명이 적대적인 상대를 위해 말조심을 해 줄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이천평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탕-!

“뭐야? 말 다 했어?”

“흥! 성미하곤.”

이천평이 탁자를 내리치며 남궁교명을 노려보고, 남궁교명을 그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거만한 정파의 애송이 따위가!”

“천둥벌거숭이 산적 나부랭이 주제에 감히!”

서로 마주 보는 이천평과 남궁교명의 눈빛에 불꽃이 튀고, 그들은 상대에 대한 비하 발언까지 참지 않았다.

“이봐, 그만들 해!”

“자, 자, 그만하게! 우리끼리 싸워서 일을 그르치려 하는가!”

남궁구와 강무련이 나서서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하지만 남궁구는 남궁교명을 탓하지 않았고, 강무련은 ‘우리’라고 말을 하며 이천평만을 보았다.

남궁교명과 이천평이 서로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말없이 자리에 앉고, 다른 일행도 덩달아 말이 없어졌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정파 무인들과 사패천 무인들끼리 따로 앉았다.

‘난장판이군. 대체 무슨 생각이지?’

군조가 눈살을 찌푸리고 진화를 보았다.

숙청단의 단주는 남궁진화였고 신분으로나 무위로나 그가 모두의 우위에 서 있는 것이 확실한데, 어찌 된 일인지 방금 전 부딪힘부터 지금까지 자잘하게 이어진 갈등에도 남궁진화는 단 한 번도 나서지 않았다.

아예 중재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진화는 무심한 얼굴로 서로 편을 가르듯 앉아 있는 숙청단원들에게 아예 진짜 편을 갈라 주었다.

“세 개 조로 나누지. 일 조는 나와 남궁구, 남궁교명, 팽수, 팽신. 이 조는 현오를 조장으로 당혜군, 나하연, 제갈성, 관서겸. 삼 조는 강무련을 조장으로 군조, 초서비, 이천평, 황계수.”

“……허!”

아예 대놓고 편을 나누듯 사람들을 나눈 진화의 발언에 사패천 무인들 사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다.

아무도 서로와 섞이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역천비지에 대한 사전 정보는 미리 공지한 대로다. 각자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마을에서 새로운 정보를 모으고,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사흘 뒤 한 번에 취합하도록 하지.”

진화가 숙청단 단원들을 하나, 하나 둘러보며 말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할 때마다 단원들은 어쩐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중요한 건 결국 역천비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귀천성 무인들이 없으면 우리끼리 역천비지만을 파괴할 것이고, 귀천성 무인들이 있다면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지원에 알린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사흘 뒤에 이 방에서 보지.”

진화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사패천 무인들, 아니 삼 조 단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떴다.

이번에는 강무련 또한 굳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싸우지도 않고 지원부터 부르자니, 빈집털이만 하고 다닐 셈인가? 누가 겁쟁이 정파 놈들 아니랄까 봐!”

“들었잖아? 벌써부터 중요한 건 정확한 위치 파악이다, 에-베베베 밑밥부터 까는 거…….”

진화의 방문을 멀리 벗어나지도 않은 채, 삼 조 단원들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그들 중 하나는 괴상망측한 목소리로 진화의 말투를 따라 하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저, 저 작자들이 감히!”

남궁교명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듯 크게 분노했다.

“흠, 무례한 자들이로군.”

“본 데 없이 무식한 놈들이 그렇지.”

제갈상과 당혜군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다른 일행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만 가득한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도련님, 이거…… 그냥 제대로 한번 잡고 가는 게 어때?”

드물게 남궁구마저도 눈빛을 벼르며 진화에게 물었다.

진화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한 일행을 보며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임무를 마치는 거니까. 일단 사흘 후에 결과를 보고 다시 논의하지.”

숙청단의 단주도 진화였지만 그동안 계속해서 일행을 이끌어 왔던 진화의 말이었다.

일행은 여전히 뭔가 불만이 남았지만, 일단은 진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보았다.

* * *

마을에 도착하고 이틀 동안, 숙청단원들은 내내 뭐가 바쁜지 바쁘게 돌아다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안하다고 해야 할지.

일 조, 이 조, 삼 조 할 것 없이 모두 마을 사람들 속에 녹아들거나 주변을 돌아다니며 임무에 몰두했다.

서로에게 느끼는 불만과 분노가 경쟁심으로 이어진 듯했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는 이틀 내내 할 일 없이 제 방에 오는 현오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그러자 현오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고기 먹는 소림승도 이상한데 소림승이 상행까지 따라다니면 완전 이상하다고. 남들한테 그냥 뚱뚱한 빡빡이라고 했다는군. 식당에서 밥 먹으면 점소이의 눈총이 장난이 아니야.”

“…….”

“밥 먹는 걸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고 점소이를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자비를 베풀어야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애초에 스님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 아닌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임무에 나가지 않고 제 방에 죽치는 걸 의아하게 본 것을 두고, 현오는 다른 것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대체 왜 밥을 내 방에 와서 먹는 거지?”

“그야, 이 방으로 음식을 시키면 음식의 질과 양이 달라지니까.”

당당한 현오의 대답에 진화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현오도 자연스럽게 음식에 집중했다.

“…….”

“합! ……쩝쩝쩝. 합!”

침묵 속에 묘하게 맛있는 소리만 들리는 공간.

진화와 현오는 그 속에서 어색함 없이 어울렸다.

잠시 후.

마지막 한 술을 입에 넣은 현오가 처음으로 그릇에서 눈을 떼고 진화를 보았다.

뚫어져라 보는 시선에 창밖을 보고 있던 진화가 고개를 돌렸다.

“……왜?”

“아니, 신기해서.”

“무엇이?”

“그 녀석들.”

“삼 조?”

“아니, 전부. 양쪽 다 똑같은데, 뭘. 이상한 건 너지. 내가 아는 너는, 네 일에 걸리적거리는 자들을 그냥 두지 않는 인간인데 말이야. 정사연합의 평화 같은 걸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면, 관도생일 때 왕부 왕자를 납치해서 고문하지도 않았겠지. 대체 녀석들을 왜 그냥 두는 거야?”

현오의 질문에 진화야말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둘만 있어서인지 살짝 달라진 말투.

하지만 진화가 놀란 것은 현오의 말투 때문이 아니었다.

저를 보는 현오의 무심한 얼굴 뒤, 현오의 눈빛에 살기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림이 아니라면 애초에 어떤 생명체에게도 감정이라는 것을 품었을 리 없는 인간.

그게 진화가 아는 현오였다.

그런 현오가 다른 이들처럼 진화를 위해 사패천 무인들에게 살기를 드러낸 것이다.

“……네 세상도, 소림을 넘어서 더 커진 듯하군.”

“음? 무슨 말인가?”

진화의 말에 현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진화는 현오의 반응에 상관없이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곳에 오기 전, 적호단주께서 충고해 주시더군.”

“단주가?”

“천둥벌거숭이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도 단주의 실력이라나?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진화의 시선이 다시 밖을 향했다.

창밖에는 뭔가 알아 왔는지 경쟁적으로 객잔으로 뛰어오고 있는 숙청단원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는 진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저들이 임무만 완벽하게 수행한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파지지직.

진화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튀었다.

그것을 본 현오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후식으로 챙겨 온 경단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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