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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36)화 (336/425)

남궁마제

엿볼 진(診) 그림 화(畵) : 수읽기(1)

신 제국에서 일어난 분열 사태가 무림 전역에 퍼질 대로 퍼졌다.

중원 무림이 크게 동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 제국 국경이 흔들렸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 제국군이 국경선을 정리하러 들어오고 다시 전쟁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정의맹 무단들도 대대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천성이 신 제국을 삼키며 관무가 합쳐진 거대하고 막강한 세력이 된 게 아니라 한 제국과 정사연합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패착에 빠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혼현마제가 우리 편이 아닌가 싶어?”

“신 제국을 삼키자고 한 것도 혼현마제였겠지?”

“진짜 우리 편인가?”

“……개소리하지 말고 손을 움직여라.”

“쳇.”

팽수의 한마디에 황계수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들은 지금 커다란 상선에서 짐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뱃일은 건장한 일꾼들에게도 힘든 일이라 늘 일꾼들이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팽수, 팽신 형제와 이천평, 황계수가 나타났을 때 신원 조사는커녕 선주들끼리 서로 데려가려 난리였다.

숨 쉬듯 쉬운 위장 임무였다.

한쪽에서는 몸에 자연스럽게 귀태가 배어서 위장 임무를 할 수 없었던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상자 뒤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튀는 외모를 한 군조는 장기를 살려 아예 이국의 상인으로 위장했다.

“헤이-! 거기! 쌀람 탄다! 우리 쌀람 크다! 짐 빼라!”

누구도 이국의 상인이 정사연합 소속일 거라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진화가 연기현 외곽 마을에 있던 역천비지를 없애 버린 날 이후.

숙청단은 일 조와 이 조, 삼 조의 개념이 사라졌다.

“사기 치는 건 남궁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군조 저 녀석도 만만치 않군.”

“흥, 사기 치는 걸로 남궁세가가 하오문에 비할 것 같은가요?”

“……비야, 자랑할 게 아니야.”

“남궁구를 평범한 남궁세가로 생각하면 곤란해. 저 작자는 타고났다고!”

“부처님도 무심하셨지. 후우.”

그날 이후로 숙청단은 남궁구와 군조가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을 파고들고, 팽가 형제와 이천평, 황계수가 힘을 쓰면, 당혜군과 제갈상, 관서겸, 초서비가 원거리 공격으로 적을 암살하고 적진에 침투하는 작전을 펼쳤다.

정과 사에 관계없이 서로의 장기를 살려 협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강무련이 조금 아쉬운 얼굴로 저와 함께 선 사람들을 보았다.

진화가 없을 때의 나하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현오는…… 오늘도 소림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있었다.

“먹겠소?”

“괜찮소.”

아깝다는 얼굴로 만두를 내밀던 현오는 강무련의 거절에 화색이 되었다.

강무련은 제가 왜 나하연, 현오와 함께 묶인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삐이이이이이이-----!

신호였다.

이천평이 피가 흐르는 장소를 확인하고 남궁구가 신호를 쏘아 올렸다.

약속한 신호가 울리자마자, 당혜군과 제갈상이 침과 편을 날리고, 관서겸과 초서비는 적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입구를 막고 있던 자들을 죽였다.

그리고 강무련, 나하연, 현오가 튀어 나갔다.

퍼-억! 퍽! 퍽!

무슨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핏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미친…… 무슨 힘이……!”

뻐--억!

나하연의 주먹이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며 철봉을 우그러뜨렸다.

퍽! 퍽! 퍽!

현오는 양 주먹에 염주 알을 감고 귀천성 무인들의 머리를 터뜨리고, 강무련의 우각살호권은 애초에 미친 황소가 날뛰는 것을 본뜬 무공이었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이 조용해졌다.

“여긴가?”

“아아. 이번엔 조사가 끝나기 전에 우리가 찾아낸 모양이야. 하긴 저놈들도 설마 작은 포구의 창고로 쓰던 동굴이 역천비지일 줄은 몰랐겠지.”

“동굴 자체를 무너뜨리고 다음으로 움직이지.”

“충.”

역천비지로 유력한 곳을 발견한 숙청단은 어김없이 그곳을 파괴했다.

정사 간의 갈등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아! 쓰불! 내가 먼저 봤잖아!”

“본 게 뭐! 눈깔이 있으니까 보긴 봤겠지!”

파파파파파팟---!

퍼-엉!

시끄러운 다툼이 들려오는 곳에 어김없이 진화의 뇌전이 쏘아졌다.

“움직여.”

진화의 검은 눈동자에 이천평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의 손은 성실하게 벽을 내리치고 있었다.

“……씨발, 내가 더러워서.”

“쉿! 들린다.”

황계수가 이천평의 옆구리를 치며 경고했다.

소중한 머리카락이 재가 되어 흩날리는 걸 본 이후 황계수는 자존심도 흩날려 보냈다.

“실력 행사가 그 실력이 아닌데!”

“그러지 말고 네가 도련님한테 한번 말해 보지그래?”

“……부처님, 방금 저를 암살하려는 한 사특한 자를 용서하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숙청단의 임무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결과는 고요하게 마무리되었다.

숙청단은 조용하고 난폭하게 다음 행보를 이어 갔다.

* * *

국경선을 정리만 하는 것으로 조금 느긋한 한 제국과 달리, 정사연합은 광폭한 행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신 제국 북쪽에서는 현무단이 장안 무림을 이끌고 귀천성 세력을 몰아내고 있었고, 청룡단이 한중권문으로 내려와 귀천성을 위협했다.

사패천과 주작단, 남궁세가가 혼현마제의 세력에 넘어간 교주 일대를 공격해 들어갔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사천 무림이 드디어 일어섰다.

쏴아아아아아---!

타다다닥!

“죽여라! 잃어버린 우리의 땅을 되찾는다!”

“와아아아아--!”

사천 무림은 사천당문과 아미파, 청성파 등 전 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명문 대파가 즐비할 정도로 귀천성 이전까지 가장 강성했던 무림 중 하나였다. 

하여 사천 무인들은 사천 무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게다가 사천 사람들 자체가 자존심을 목숨보다 중시하고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으니, 사천 무림을 두고 맵고 사납다고 하는 말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천 무림이 터전을 두고 도망쳤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사천의 무인들은 귀천성에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오명을 되새기고 곱씹으며, 최대한 세력을 온존한 채 지금껏 복수의 날만 기다려 왔다.

무려 수십 년 동안.

그리고 드디어 검을 든 그들은 그 어떤 무인들보다 격렬하고 잔인하게 귀천성 무인들을 몰아붙였다.

쏴아아아아!

타다다다닥-!

“도, 독공이다! 피해! ……크흣 ……컥!”

파스스스슷-!

소리치던 사내의 얼굴이 삽시간에 검게 물들더니 온몸으로 검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모두 죽여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남겨 두지 마라!”

당가독수대를 이끄는 비산혈해 당재는 일대를 피로 물들이며 스스로 별호의 의미를 증명했다.

정사연합은 파도처럼 거세게, 그리고 거대하게 귀천성을 몰아붙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정사연합이 분열된 귀천성을 각개격파 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정사연합은 아직 세력을 정비하지 못한 양쪽 세력을 모두 노리면서 최대한 많은 땅을 되찾는 것을 택했다.

모두 천수현인 제갈길현을 위시한 정사연합 군사부 덕분이었다.

그들은 정사연합의 모든 전투에 대한 전략과 지원, 보급은 물론, 중원 전역에서 일어나는 전투들끼리의 유기적인 시기 조절과 이동 경로 대비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율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천수현인의 군사부의 지원을 받은 정사연합 무단들은 이전에 귀천성이 중원을 몰아붙였을 때처럼 빠르게 그들의 땅을 침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눈속임일 뿐이었다.

“귀천성 놈들이 제왕검과 십이좌회를 죽이지 못해 반쪽 무림을 포기했던 것처럼, 우리도 결국 역천마제를 비롯한 마제들을 죽여야만 온전히 승리할 수 있다.”

천수현인의 말처럼 중요한 건 땅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중원 무림의 반격에 쏠린 틈을 타, 정사연합에서는 마제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들이 힘을 확보할 수 있는 역천비지를 파괴하는 데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지.”

“그러게요. 아무리 역천비록을 해석했다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 많은 역천비지를 찾아낼 줄은…….”

“한 달 전에 군사부에 들어간 친우가 있는데, 무슨 짓을 한 건지 사람이 한 달 만에 피골이 상접했더라고요. 무슨 기만책을 이렇게 진심으로 합니까?”

“저기, 진짜 해 떠요. 미친…… 제갈가주가 진짜 해 뜨는 시간까지 맞췄습니다. 와, 완전 소름!”

붉은 무복을 입은 사내들이 산길을 오르며 구시렁거렸다.

긴장감이 너무 없는가 싶지만 그것도 아닌 것이, 하나같이 언제든 발검할 수 있도록 검에 손을 올려 두고 있었다.

“미친 건 저놈들이지. 아무리 정보를 파악했다지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역천비지를 찾아내는 거지?”

“에이, 단주님도. 남궁구 몰라요? 그놈이 마음만 먹으면 오늘 단주님 속옷 색깔도 알아낼 겁니다. 거기에 하오문 후계자까지 붙었다는데…….”

“그런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확실히 걱정한 것보다 꽤 순조롭게 잘 이끄는군.”

일 조 조장 서장원이 친근하게 대하긴 했어도, 적호단주가 괜히 진화 일행을 적호단 십 조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명문 대파 출신에 손에 꼽을 정도의 인재들이라, 그만큼 자존심도 세고 기질도 강했다.

심지어 소림 출신인 현오마저 전투 시에는 통제가 어려울 정도였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밑에 순순히 고개를 숙일 이들이 아니라, 적호단주조차 진화에게 그들을 떠맡기다시피 한 것이다.

정파 출신들만 해도 그러한데, 사패천에서 사파오봉으로 불리는 신진 고수들까지 합쳐진다니.

적호단주는 상상만 해도 골치 아픈 상황을 진화가 상상 이상으로 잘 풀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펑-! 펑펑!

적호단주가 언덕 아래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 저 새끼들, 싸우면서 신호 보내지 말라니까.”

“하하하, 한창 혈기 왕성할 때가 아닙니까.”

“혈기는 지랄, 똘끼겠지. 뭐 하냐! 어린놈들에게 맛있는 거 다 뺏기겠다! 가라!”

“예이! 얼른 갑니다요, 추-웅!”

“가자-!”

신호와 함께 떨어진 적호단주의 명에 적호단이 망설임 없이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밑에는 벌써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적호단에게는 가장 익숙한 전투장이었다.

* * *

툭. 툭. 툭.

손가락이 일정하게 탁자를 두들겼다.

“연기현, 무성포구, 전수현, 보각현…… 거리도 멀고 전부 제각각 떨어져 있어. 그곳을 중점적으로 움직이는 무단도 없고, 귀천성 휘하 문파들 중 주요 문파라곤 없는 곳이야. 남궁진화를 위시한 정사연합의 신진 고수로만 구성된 새 무단에서, 이렇게 쓸데없는 곳을 노리는 이유가 뭘까?”

화려한 비단 금포가 깔린 탁자.

거기에 새하얀 문사복에 깔끔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혼현마제의 모습은 마치 제갈세가에 있었던 시절로 돌아간 듯 온후하고 청순해 보였다.

차향과 묵향이 어우러진 방이, 고심에 빠진 혼현마제와 한 몸처럼 어울렸다.

“아…….”

방에 들어오던 독부 은요가 혼현마제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곧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가.”

“오, 왔느냐.”

혼현마제가 은은하게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 독부에게 손을 내밀었다.

독부는 수줍게 웃으며 혼현마제에게 전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전서를 읽는 혼현마제를 흐뭇한 얼굴로 보았다.

‘평화로운 냄새. 신 제국 황성에서 벗어나니 가가에게서 본래 가가의 냄새가 나는구나. 가가도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야.’

독부는 혼현마제가 전서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조차 아깝다는 듯 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점점 독부의 눈빛이 독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지킨다! 누구도 당신을 변하게 만들도록 두지 않을 거야!’

달그락.

독부가 습관적으로 손톱을 부딪쳤다.

그때.

“교룡방…… 교룡방과 수전보…… 그러고 보니 일전에 그들에게서 보고가 들어왔었지!”

전서를 보며 뭔가를 떠올리던 혼현마제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부스럭, 부스럭.

탁자 위에 다 담기지도 못할 정도로 거대한 중원의 지도가 펼쳐졌다.

“연기현, 무성포구…… 전수현, 보각현…… 허!”

혼현마제는 지도에서 진화가 다녀간 곳을 찾아 하나하나 짚어 보다, 뭔가를 알아차린 듯 헛숨을 내쉬었다.

헛숨은 곧 호탕한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허허허허! 그렇군. 이 녀석들…… 역천비지를 찾고 있구나! 역천비지를 찾아 없애고 있었어!”

한바탕 웃은 혼현마제가 지도를 향해 눈빛을 번뜩였다.

요요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지도 위의 한곳에서 멈추었다.

“남궁진화가 역천비지를 찾아 없애고 있다니. 이거 일이 재미있게 되었군. 허허허허.”

정순한 학사 같던 혼현마제의 얼굴에 섬뜩할 정도로 시린 비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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