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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37)화 (337/425)

남궁마제

엿볼 진(診) 그림 화(畵) : 수읽기(2)

무성포구에서의 일 이후.

적호단이 무성포구에 있던 귀천성 휘하의 문파들을 휩쓰는 사이, 숙청단은 교주 외곽의 전수현과 보각현을 다니며 역천비지를 파괴했다.

그리고나서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숙청단과 적호단은 교주 깊숙이 육림군에서 다시 만났다.

“휴우, 덮네.”

“사시사철 더운 곳이라고 했으니까요.”

적호단주가 가만히 있어도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적호단원들도 처음 겪는 더위에 거의 널브러지듯 탁자에 앉아 있었다.

“좀 쉬자고요. 날씨는 덥고 지치는데, 음식은 시고 맵고, 뭔 놈의 벌레는 이렇게 많은지 잘 때도 스멀스멀 몸 위를 기어오른다니까요. 피곤이 풀리는 게 아니라 더 쌓이는 게, 아주 죽을 맛입니다.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할 때까진 이렇게 널브러져 있자고요.”

“맞아요, 그냥 둬요. 낙양 촌놈들이 적응할 시간은 있어야죠.”

일 조장 서장원의 말을 부단주인 남궁진혜가 맞장구쳤다.

그 모습을 보며 적호단주가 한숨을 쉬었다.

서장원과 남궁진혜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으나 언행일치가 무척 안 된다고 해야 할까.

모두가 지쳐 널브러져 있는데 서장원과 남궁진혜는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하며 입에 음식을 밀어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을 맛이 아니라 죽은 맛 같은데?”

“아, 왜 그러십니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근데, 이건 뭐래요? 완전 맛있는데요.”

“쥐.”

“네?”

“들쥐래. 네가 들고 있는 게 뒷다리네.”

“…….”

적호단주의 말에 서장원이 조용히 젓가락을 놓았다.

그때까지도 남궁진혜는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부단주가 먹고 있는 건 뭔데요?”

“……천산갑.”

“…….”

적호단주의 말에 서장원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남궁진혜를 보았다.

드르르르, 드르르르.

남궁진혜가 천산갑의 등껍질에 붙은 살을 젓가락으로 야무지게 긁어내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는 적응할 시간 따윈 필요 없을 듯 보였다.

“그나저나 숙청단은 어제부터 계속 움직이는 것 같던데?”

“우리보다 먼저 역천비지를 알아내는 게 숙청단 임무니까요.”

적호단주의 물음에 서장원이 제 앞에 있는 음식을 밀어내고 차로 입을 씻으며 답했다.

적호단주는 부산해 보이는 서장원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물었다.

“……괜찮던가?”

“안 괜찮으면 뭐요? 이제는 단주님 새끼도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서장원의 타박 어린 대답에 적호단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하지만 곧 미간을 찌푸리고 서장원을 째려보았다.

“너, 이상하다? 대답이 왜 그러냐?”

적호단주가 뭔가 수상쩍다는 듯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장원은 반쯤 소찬회 소속인 동시에 귀한 댁 도련님 같지 않게 변죽이 좋다며 남궁구를 동생처럼 아꼈었다. 진화 일행이 적호단을 나갈 때에도 잘 해낼 걸 알면서도 누구보다 아쉬워했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사패천 인물들과 부딪힐까 봐 걱정을 내려놓지 않았는데…….

“저놈들, 진짜 미쳤습니다.”

서장원이 진지하게 말했다.

적호단주는 그래서 더 당황했다.

“뭐 때문에 그래?”

“여기 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남궁구는 남만 말로 쌍욕을 하더라고요.”

“남만 말?”

“군조라는 놈은 서역 상인 역할에 빠졌나 봐요. 자꾸 ‘우리 쌀람, 조은 쌀람’ 이러면서 낙양에서 가져온 면경을 서역 걸로 속여 팔아요.”

“장사도 해?”

“팽가 형제랑 사패천의 덩치 큰 도적 두 놈은 밤중에 사람도 업어 갑니다.”

“팽가가…… 납치를?”

스스로 팽가의 망나니라 불리며 동생들과도 데면데면한 적호단주였지만, 팽가 형제가 납치까지 한다는 소식에는 더 이상 데면데면할 수 없었다.

“다른 놈들은? 남궁진화는 뭐 하고?”

“……만두가게에 가 보세요. 아침부터 있어요.”

“뭐? 그래도 돼?”

“안 되면요? 귀천성 역천비지를 알아내는 데에 고작 며칠밖에 안 걸려요. 길어도 나흘을 넘기지 않는단 말입니다. 지금 정의맹 군사부에서도 놀라 나자빠질 지경이에요. 이런 상황에, ‘사실 그 엄청난 정보 수집 능력은 사기, 협박, 납치, 고문의 결과이고, 젊은 고수들은 정과 사를 뛰어넘은 화합은커녕 남궁진화의 뇌전에 얻어맞기 싫어서 더러워도 함께하는 관계이며, 자꾸 신호를 늦게 주는 건 싸움판에서 참고 있던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다!’라고 어떻게 말합니까? 결과가 완벽한데!”

“……다 했잖아, 새끼야.”

서장원은 속으로 끙끙 참고 있던 말을 토해 내며 후련한 표정을 했다.

적호단주는 황당한 듯 서장원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 서장원보다 급한 건 진화와 숙청단이었다.

아무리 정의맹이 아닌 정사연합 차원에서 만든 무단이라지만 일 처리 방식이 너무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옳지 못했으니.

적호단주는 어쩌면 처음 무단을 맡은 진화가 혹시 기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충고를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부단주, 혹시…….”

적호단주는 저보다 누나인 남궁진혜가 말을 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녀의 생각을 물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곧 남궁진혜와 눈을 마주하고는 입을 닫았다.

“왜요?”

“아니다. 먹어.”

적호단주와 눈을 마주친 것은 총 두 쌍이었다.

남궁진혜와 그녀가 물고 있던 오리 머리의 것.

오리의 안구가 있던 자리가 텅 빈 것처럼 그들 사이의 대화도 텅 비었다.

그때.

끼이이이—덜컹.

낡은 문소리와 함께 진화와 현오가 객잔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어쩐지 그리운 향기가 퍼졌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만두냐?”

“양청현의 오성반점과 비슷한 맛을 내는 집을 찾았습니다. 드릴까요?”

“아니, 됐다. ……다른 녀석들은?”

“임무 중에 있습니다.”

“그……래.”

그리운 향기가 아니라 그리운 맛이었던가.

진화가 슬그머니 내민 만두는 적호단주의 거절과 함께 당연한 듯 남궁진혜의 몫이 되었다.

“애들은 괜찮……냐?”

적호단주의 물음에 진화가 멀뚱멀뚱 눈을 깜박이며 적호단주를 보았다.

적호단주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순진한 모습에 적호단주의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서로 싸우진 않고?”

“아! 이제 괜찮습니다.”

“그래?”

“조언해 주신 대로 실력을 행사했더니 괜찮아졌습니다. 늦었지만 조언 감사합니다.”

“아니,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런데 진짜 괜찮다고?”

진화의 인사에 적호단주가 손사래를 쳤다.

저렇게 감사 인사까지 하는데 뭘 더 캐묻는단 말인가.

‘군사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전언이라도 있었던 걸까. 하긴, 사패천 고수들과도 함께하는 일이니 방법이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겠지. 진짜 도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결과는 좋으니까.’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 적호단주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그 순간, 적호단주의 눈앞에서 불꽃이 번뜩였다.

적호단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 정도만 하면 타격도 없이 아프기만 한 게 딱 좋더라고요. 황계수의 머리카락을 태워 먹은 이후로 요즘에는 잘 조절합니다.”

진화가 쥐꼬리만 한 번개를 번쩍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경지를 넘은 고수이면서도 이 정도로 세밀하게 뇌전을 조절해 내는 것이 퍽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래. 내 상상 이상으로 잘 지내는구나.”

적호단주는 뭔지 모르지만 제 조언대로는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더는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 * *

교주 땅은 풍습과 문화, 사회 전반에서 중원과 달랐다.

특히 남만이라 부르는 교주 서남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생김새마저도 한인들과 달라졌다.

교주는 장안보다 더 많은 이민족들이 각자 부족사회를 중시하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많다는 육림군도 사실은 한인과 검은 두건과 허리띠를 한 장족이 반반 섞여 있었다.

“계산 깊숙이에 한족들이 많다고?”

“원래 산에는 우리 장족 마을이 대부분인데, 얼마 전부터 한인들이 마을을 만들었다.”

“그놈들이 산에는 왜 들어갔대?”

“호족에게서 도망쳤겠지. 요즘에 그런 사람들 많다 들었다. 그런데 넌, 상인인데 모르나?”

큰 수레에 실린 곡식을 거래하던 장족 중년인 이상하다는 듯 젊은 상인을 보았다.

그러자 젊은 상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는 다른 데서 와서 아직 이곳 사정은 잘 몰라.”

“아, 너는 양주에서 왔나? 양주 사람들은 호족도 없고 맹족도 없어서 편하다고 들었다.”

“어, 엉! 하하, 아저씨, 잘 아네? 난 양주에서 와서 잘 몰라. 맹족은 뭐야? 호족만큼 안 좋은 거야?”

“쉬-잇!”

젊은 상인이 너스레를 떨며 묻자, 장족 중년인이 당황한 듯 상인을 조용히 시키며 주변을 돌아봤다.

“왜, 왜?”

“저기.”

당황한 젊은 상인이 목소리를 죽이며 묻자, 장족 중년인이 소심하게 손가락과 시선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동물 가죽으로 된 모자를 쓰고 길고 굵은 채찍을 등에 맨 사람들이 곡식을 거래하고 있었다.

“저자들이 맹족이다. 계산에 사는 놈들 중에 제일 나쁜 놈들이야. 거칠고 포악해서 평소에는 짐승을 사냥하고 살다가 식량이 부족해지면 근처 부족들까지 사냥한다고.”

“부족을 사냥해?”

“무림 귀천성 어쩌고 하면서, 저번에도 계산 서쪽 부족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어.”

“오, 그래?”

장족 중년인의 말에 젊은 상인이 무섭다는 듯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맹족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눈빛에는 이채가 반짝였다.

“이것만 사면 된다. 이거면 우리 마을은 충분하다.”

“아아, 그래. 돈도 딱 맞네. 고마워! 다음에 또 와! 다음에도 내가 싸게 해 줄게.”

“하하, 많이 팔아라.”

장족 중년인이 거래를 마치고 자리를 뜨고.

장족 중년인을 배웅하던 젊은 상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젊은 상인은 하던 장사마저 접어 버리고 다시 가게를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래를 하던 맹족도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이날따라 저자에 이민족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툭.

객잔에 들어온 젊은 상인이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을 벗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도 시원하게 올려 묶었다.

땀 때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치워지고 얼굴이 드러나자, 서글서글한 눈매에 말끔한 호남형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특히 오뚝하게 솟은 콧대와 매끄러운 피부, 곧은 자태를 놓고 보니, 영락없이 젊은 상인 같던 사내가 순식간에 귀공자로 변모했다.

“덥다, 더워. 이 더운 곳에서 머리를 풀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네.”

“수고했다.”

남궁구가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자 군조가 그 앞에 물을 놓아 주었다.

“수고는 무슨. 나는 한 것도 없어. 이건 뭐 속아 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너도 맹족이라던가?”

“아니, 대놓고 귀천성이라고 알려 주던데? 하하하!”

이국 상인 행세를 하던 군조도 남궁구와 같은 소릴 들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입을 맞추지 않고는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은 정보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심지어 그때만 한어가 유창해져. 사람을 속이려면 뭔가 성의라도 좀 보이던가. 멍청한 놈들.”

“대놓고 함정이라고 알려 주는군.”

다른 일행도 황당한 듯 웃어 보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웃지 못한 사람은 있었다.

“그래서 맹족이야, 장족이야?”

“……둘 다지.”

“븅신, 바보냐? 한 놈은 수상한 척 모습을 비추고, 한 놈은 물건 사는 척 우리에게 정보를 흘리는데, 이건 완벽하게 짠 거잖아!”

“모를 수도 있지!”

이천평의 말에 남궁구가 조금 뒤늦게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황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남궁구의 한심하다는 눈길과 황계수의 타박에 이천평 또한 울컥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 사람의 고개가 일제히 한 곳을 향해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파지지직-!

“도련님, 멈춰!”

“단주, 오해야! 우리 안 싸웠다!”

“그래! 우리는 그냥 대화한 거다!”

진화의 손에서 번뜩이는 뇌전을 발견한 남궁구와 황계수, 이천평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들의 변명 아닌 변명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뇌기를 없애고, 다른 일행은 웃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단주, 어떻게 할 건가? 일단 우리를 유인하는 함정이 뻔한 듯한데.”

강무련이 은은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물었다.

그는 진화가 어떤 대답을 할지 대충 알고, 오히려 기대하는 중이었다.

그건 강무련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임무는 역천비지를 찾아서 부수는 거지. 거기에 벌레들이 있다면…….”

역시나 모두의 예상 그대로 진화의 답이 떨어지고.

“흐흐흐, 벌레도 부수면 되지. 안 그래?”

“간만에 청소 좀 하면서 몸 좀 풀겠네.”

일행이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한편, 계산 깊은 숲.

짐승 가죽으로 된 모자를 쓰고 등에 거대한 채찍을 맨 맹족 두 명과 검은 두건과 허리띠를 한 장족 중년인이 밀회를 나누고 있었다.

“함정인 걸 알아챘나?”

“완전히 눈치챈 듯했습니다.”

“다른 놈들은?”

“사호는 적호단을 감시 중입니다.”

“됐군, 사호만 두고 모두 철수하지.”

“흐흐흐, 오랜만에 중원 놈들 살 좀 씹어 보겠군요.”

잠시 생각하던 장족 중년인이 결정을 내렸다.

그의 말과 함께 맹족 사내 두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렸다는 듯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머리에 검은 두건을 묶고, 중년인을 따라 숲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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