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진압할 진(鎭) 시끄러울 화(譁) : 욕망의 힘(3)
연회장
일황자와 진화, 호양공주가 가운데 자리에 앉고, 원미인과 그 소생들이 왼쪽으로, 전 허미인의 소생들이 오른쪽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누가 이런 식의 자리 배치를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호양공주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원미인과 그 소생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미인은 제 자리가 측면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에 불쾌감을 숨기지 못했고, 삼황자와 그 소생들은 폐서인의 자식들과 마주하고 겸상한다는 데에 얼굴을 찌푸렸다.
사황자와 육황자, 관도공주 또한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려 드는 이들에게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양측이 마주 보는 자리였다.
원미인은 호양공주보다 낮은 위치에 앉아야 했고, 그 자식들 또한 똑같은 위치에서 서로 마주 보아야 했다.
그게 현재 그들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원미인 소생들과 전 허미인 소생들이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힐끔힐끔 일황자와 진화를 향한 곁눈질을 했다.
일황자와 진화는 당연한 듯 가운데 자리에 앉아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같은 듯하면서도 가운데를 우러러보는 듯한 배치.
그것은 유일한 적통 황자이자 군공을 세운 황자로서 다음 황태자 위에 가장 유력한 진화의 위치를 보여 주는 듯했다.
아마도 건희전에서 연회를 주최했어도 이런 식으로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숙청단과 사신들을 비롯한 연회에 초대된 손님들이 황실 가족들의 뒷줄에 자리를 했다.
손님을 초대하고 무슨 푸대접이냐 할 수 있지만, 이것도 가벼운 환영연회였기에 이렇게 황족 가까이 자리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숙청단은 진화를 지키는 그의 뒤쪽으로 자리했는데, 팽가 형제와 이천평, 황계수가 뿜어내는 거대하고 험악한 인상에 진화를 노리던 이들이 눈길도 돌리지 못했다.
* * *
연회장 가운데에서 무희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모두가 화려한 황실 공연을 지켜보며 눈호강을 하는 가운데, 원미인과 그 소생들은 내내 뻣뻣하게 굳은 표정을 한 번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무희들의 공연이 최고조로 올라가자, 이때다 싶은 삼황자가 불만을 터뜨렸다.
“젠장, 왜 우리가 죄인의 자식들과 겸상을 해야 하는 겁니까?”
“폐하의 자식들이야.”
삼황자의 불평에 원미인의 장녀인 열양공주가 차갑게 얼굴을 굳히고 입술만 움직여 답을 했다.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고 표정 관리를 하는 본보기를 보였건만, 삼황자의 불평은 가시질 않았다.
“그러면 일황자는 왜 저기에 앉습니까? 따지고 보면 일황자는 폐서인이 아닙니까?”
“쉿! 황제 폐하께서 그건 입 밖으로 내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결국 열양공주가 삼황자를 째려보며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그래 봐야 폐서인의 자식이라는 게 달라집니까? 저 자리는 우리가 앉던지, 아니면 일황자가 내려와야지요!”
“들린다! 조용히 좀 해!”
“누님도 따지고 보면 왕후가 될 몸인데 관도 공주와 한자리에 앉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저 죄인들 자식과 함께 있어야 하느냔 말입니다!”
열양공주가 목소리를 낮추고 삼황자를 자중시키려 했지만, 어릴 때야 엄한 누님의 말이 통했지 지금 와서 그게 통할 리 없었다.
그때, 남매들의 옆에서 조용히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눈이 많다. 소란스럽구나.”
“하지만 어머니……!”
“한유창, 닥쳐.”
“…….”
생각지도 못한 거친 말에 삼황자가 놀란 눈을 떴다.
열양공주의 눈짓을 따라 아래를 보자, 원미인이 탁자 아래로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겨우 감추고 있었다.
결국 이 자리가 가장 굴욕적인 사람은 어머니인 원미인이라. 그제서야 삼황자도 입을 꾹 다물고 굳은 얼굴로 정면만 바라보았다.
연회 내내 원미인과 그 소생들이 있는 자리가 살얼음판처럼 조용한 것과는 반대로.
사황자와 육황자, 관도공주가 있는 자리는 간간이 웃음소리가 나올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신료들이 사황자와 육황자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황자들이 그것을 살갑게 받아 주면서 시종일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관도공주 또한 신료들의 여식들과 내내 웃음꽃을 피웠다.
허미인이 죽고 난 뒤 관도공주는 참고 있던 자유를 얻은 양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무관들의 여식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면서 영애들 사이로 제법 큰 세력을 이루었다.
한결 대조적인 양쪽을 보며 일황자가 슬쩍 입꼬리를 말았다.
“요즘 사황자와 육황자가 살판이 났지. 허미인과 허임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활개를 치고 다니니까.”
일황자의 말투에서 냉소가 묻어났다.
“미친 허씨가 벌인 비극적인 사연과 육황자를 살리려 한 사황자의 우애가 고상한 유학자들의 입맛에 맞아떨어진 모양이야. 허임이 죽고 눈치만 보고 있던 황도 호족들도 다시 사황자에게 붙으려는 듯하고. 웃긴 건,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 저 육황자라는 거야. 은혜 갚기를 하려는 건지 제 형을 황태자 위에 올리려 꽤나 열심히라는군.”
일황자가 슬쩍 진화의 얼굴을 살폈다.
자신의 말에 사황자와 육황자를 슬쩍 쳐다보기는 했지만, 표정이 전혀 달라지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저놈들은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 건가?’
일황자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진화는 그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체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진화가 그들, 아니 육황자를 본 것은 독부의 독에서 얼마나 회복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해독이 되었다곤 하지만 누워 있는 동안 장기와 혈맥이 많이 상했었어. 황실 태의들이 달라붙어 치료를 하는데도 여전히 혈색이 창백하고 빈맥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나 보군. 의선문이 곁에 있는 천수현인의 회복은 어찌 되어 가고 있을까. 다음에 볼 때 유심히 봐야겠어.’
진화는 육황자의 회복이나 천수현인의 회복에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전 생에 남궁강과 남궁가주에게 있었던 독살 시도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에 숨어든 첩자나 수상한 의도를 가지고 제 욕심만 챙기던 장로까지 모조리 치워 버리긴 했지만, 중독 시점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독이야 진화가 해독할 수 있었지만 회복은 다른 문제였으니. 진화는 천천히 태의와 의선문의 회복 능력을 비교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화가 육황자를 쳐다본 유일한 이유였다.
진화가 사황자와 육황자에 더 이상 관심이 없어 보이자, 일황자의 화제는 반대편 원미인과 그 소생들에게 넘어갔다.
“그래, 사실 지금 같은 세상에 낙양의 호족이나 문신 들이 모여 봤자 큰 힘은 발휘하기 힘들지. 아직은 저쪽을 좀 더 경계하는 게 좋아. 북위대장군부와 서장왕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니까.”
일황자의 말처럼 원미인과 삼황자가 있는 자리 뒤쪽에는 여전히 많은 대소 신료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자리까지 참석하기엔 체면을 차릴 수밖에 없는 고관들은 그 자식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젊은 무관과 장군부의 후계들 또한 삼황자와 가까웠다.
하지만 진화가 보는 눈은 좀 달랐다.
그들 모두 삼황자의 세력인가 하면,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
삼황자의 바로 뒷자리에 북회대장군의 삼남이자 북회군 종사 원자균이 참석해 있었다.
북회대장군부에서는 위장군은 물론이고 장남인 원자기도 참석하지 않았기에, 원자균이 북회대장군부의 대표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젊은 장수들과 장군부의 자제들은 원자균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그런 원자균이 오매불망 진화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인사를 해 왔다.
빳빳하게 굳은 얼굴로 정면만 보고 있던 원미인이나 삼황자는 결코 알지 못했지만, 진화와 함께 그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일황자는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일황자가 의외라는 듯 진화를 보았다.
“지난번 삼황자가 반란을 토벌하러 갔을 때, 원자균이 너를 보필했다고 했던가? 상당히 우호적인 얼굴이군.”
“…….”
슬쩍 떠보듯 말을 건넨 일황자는 이마저도 진화가 아무 반응이 없자, 결국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약간 김이 샌 듯한 표정이었다.
‘관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일황자가 의아한 듯 진화를 보았다.
그때까지도 진화의 시선은 삼황자가 있는 곳에 닿아 있었다.
거의 반나절 정도 이어진 긴 연회였다.
눈길을 빼앗는 무희들의 공연부터 귀를 쉬지 않게 울리는 악사들의 음악, 쉴 새 없이 내놓는 황실의 오찬과 술.
날이 저물어 가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보통은 날이 저문 후에 본격적인 술과 향락의 연회가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당금 황제의 치세에서는 어지간해서는 그런 연회가 자주 벌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진화가 연회가 끝나기만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화가 일어서자 숙청단이 뒤를 따랐고, 일황자와 호양공주도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
결국 자연스럽게 연회가 끝이 난 것이다.
원미인과 그 소생들이 지금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
인사도 없이 연회장을 나가는 원미인과 그 소생들의 곁으로 혼현마제가 보낸 사신들이 따라붙었다.
계속해서 사신들을 지켜보고 있던 진화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빛냈다.
진화의 시선이 사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삼황자에게 닿았다.
사신들의 말을 듣던 삼황자가 눈을 번쩍 떴다.
황급하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
진화가 하고자 했다면 급하게 뛰고 있는 삼황자의 심장 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안으로 가서 긴히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그분께서 황자님을 위한 안배도 전해 주셨으니 말입니다.”
은근하게 지껄이는 사신의 말에 진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혼현마제의 안배라…….’
드디어 기다렸던 말이 나왔다.
“군조.”
진화의 부름에 숙청단에서 군조가 슬쩍 모습을 감추었다.
손님을 배웅하듯 서 있는 진화에게 사황자와 육황자가 다가왔다.
그들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처음보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형님,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아.”
진화가 별다른 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육황자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
그리고 진화를 향해 눈을 치켜뜨는 순간.
“조만간 꼭 보자고요. 하하하하!”
사황자가 웃으며 인사를 마무리하곤, 한쪽으로 육황자를 끌었다.
사황자의 만류에 육황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다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진화의 시선이 그들의 뒷모습에 머물고, 일황자가 은근히 웃으며 진화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앞에서 이빨을 보이니까 이제 실감이 나나? 그러니까, 내가 긴장 풀지 말라고 했지 않나.”
“…….”
진화가 일황자를 돌아보자, 일황자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황좌 앞에서는 얼마든지 안면을 바꾸는 족속이 황족들이야. 은혜를 입은 놈들도, 패배하고 내려앉은 놈들도 황좌 앞에선 얼마든지 무치(無恥)할 수 있다.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거지. 관심 없다고 무신경하면 곤란해. 관심을 가져 보기도 전에 빼앗길 수도 있다고. 앞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약을 올리는 건지, 협박을 하는 건지.
일황자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진화에게 앞날을 경고했다.
* * *
연회가 끝난 뒤.
삼황자는 기어코 제국의 초대받지 않는 손님들을 염녕전까지 데려왔다.
그곳에 보는 눈이 수십, 수백 개였다.
원미인은 삼황자의 경솔한 행동에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게 우리에겐 나쁠 것이 없는 말이라…….”
원미인의 눈초리에 삼황자가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눈빛에 벌벌 떠는 아이가 아니라는 듯 반항적으로 원미인과 눈을 마주쳤다.
“어차피 폐하의 눈 밖에 났는데 뭘 더 두려워할 것이 있습니까?”
“황자!”
삼황자의 눈빛에서 원미인에 대한 원망이 드러났다.
삼황자는 원미인이 황태자를 건드려 귀빈 자리에서 강등되면서 저도 함께 황제의 눈 밖에 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삼황자의 반항심을 점점 키운 것이다.
모두 삼황자를 위해 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저를 원망하는 삼황자를 보며, 원미인은 꽁꽁 싸매고 있던 맥이 풀리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도 빈틈을 만들었다.
‘그래. 언제나 품 안의 자식일 수는 없지……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니까.’
원미인의 눈빛에 분노가 빠져나가는 것을 눈치 챈 삼황자가 목소리를 키웠다.
“어머니, 이게 기회입니다. 저들은 신 제국도 아니고 당장 폐하도 저들을 토벌하러 갈 수도 없으니, 결국은 폐하도 진(眞)국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삼황자의 말이 점점 원미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때, 잠자코 있던 사신단의 대표가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삼황자 저하께서 상황을 바로 보고 계십니다. 신 제국에서 지금 장안을 함락했습니다.”
“뭐라?”
사신의 말에 원미인이 눈을 크게 떴다.
장안 함락이라니!
조정이 뒤집어졌을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소식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단 말인가! 연회 내내 자균이 녀석이 자리를 지켜 놓고도, 왜!’
원미인은 이런 중차대한 일을 전하지 않은 북위장군부에 분노했다.
하지만 집안에 분노하기 전에 눈앞의 사신이 먼저였다.
“그래서 그대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진국의 군주께서는 이 모든 일을 내다보고 계시지요. 폐하께서는 결국 진국을 인정하실 겁니다.”
“허! 그래서, 그걸 자랑하려는 것이냐?”
“하하하,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진국은 그저 한 제국의 제후국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제후국으로 인정받은 후에는, 다음 황제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우방으로 남고자 하는 것이고요.”
“……허.”
노골적인 사신의 말에 원미인이 코웃음을 쳤다.
제후국이 되어 삼황자의 우방이 될 테니, 제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말을 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쪽에서 손해 볼 것은 전혀 없는 거래였다.
원미인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그때, 사신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 원미인과 눈을 마주했다.
“진국 군주께선 언제나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를 원하시지요. 폐하께서는 결국 진국을 인정하실 테니, 그것은 거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곡을 찌르는 사신의 말에 원미인이 사신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사신이야말로 자신만만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서장왕의 장자가 열양공주님의 혼약자로 계신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는 말에 원미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황제 폐하의 장녀의 혼약자가 겨우 왕자일 뿐이라니, 섭섭한 일이지요. 황제는 거기에 대해 아직 관심도 없으시고…… 저희 군주님께서 서장왕의 장자를 태자로 만들어 주겠다 하셨습니다.”
“뭐?”
사신의 말에 원미인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사신의 미소가 짙어졌다.
“저희 진국의 수뇌부는 무림에 기반을 둔 이들이 많지요.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재주가 있는 이들도 많고요. 경쟁자를 없애 준다면 장자가 태자 자리에 오르는 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삼황자 저하의 뒤에는 북회대장군부 외에도 한 제국의 남북을 감싼 강대한 세력이 둘이나 서게 되겠지요.”
“……!”
사신의 말에 원미인의 눈이 커지고.
“어머니……!”
대충 흘러가는 대화의 결과를 눈치챈 삼황자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원미인을 불렀다.
물론, 창밖 풀숲에 숨어 있던 인영도 속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창틀의 그림자에 교묘하게 숨긴 대롱으로 그들의 모든 대화를 들은 군조는 대롱에서 귀를 뗐다.
‘서장이라니……! 서장이 혼현마제와 손을 잡는다면, 장안까지 들어온 신 제국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한 제국에는 좋은 일인가? 젠장, 알 수가 없군. 일단 단주님께, 아니 어머니께도 전해야겠어!’
군조는 최선을 다해 벌렁거리는 심장 소리를 다스렸다.
마음은 급했지만, 사신들의 정체가 살각 출신들이라면 숨소리조차 바람결에 감추어야 할 것이었다.
군조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소리를 엿듣던 대롱을 남겼지만, 재로 만든 그것은 새벽이슬에 젖어 없어질 테니 궁인들이 흔적을 발견한다 한들 그 정체는 알지 못할 것이었다.
풀숲 사이에 있던 군조의 그림자가 스르륵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