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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45)화 (345/425)

남궁마제

진압할 진(鎭) 시끄러울 화(譁) : 욕망의 힘(4)

영수전.

폐서인 허양은 죽었지만, 그 소생들은 여전히 영수전에 머물고 있었다.

영수전은 엄연히 황제의 후궁에게 내려지는 궁이었기에 조정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이에 관해서는 특별히 황제의 윤허가 있었다.

그동안 남매가 당한 고통을 안타까워한 황제의 결정이라 알려졌지만, 사실 안타까워한 것은 황후였고 황제는 그저 새로운 궁을 준비할 시간과 예산을 아낀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사황자였다.

연회를 마치고 돌아온 사황자는 영수전에 들자마자 육황자를 꾸짖었다.

“너는 대체! 그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난처했는지 아느냐?”

사황자의 호통에 육황자가 움찔했다.

하지만 겁을 먹고 움츠러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형님…….”

“내 누누이 이르지 않았더냐. 황궁에서 살아남으려거든, 속으로 품은 생각은 밖으로 드러내선 안 되고, 밖으로 드러내선 안 되는 생각이라면 속으로 품지도 말라고!”

육황자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사황자가 말을 끊고 목소리를 키웠다.

매섭게 다그치는 말투 속에는 동생에 대한 걱정이 반이었으니. 유감스럽게도 그런 꾸중이 먹혀들 리 없었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드러내지 말라고! 입으로든, 눈빛으로든 뭐든!”

“……하지만 소제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걱정이라는 것은 알지만, 제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은 것을.

육황자는 제 마음도 몰라주고 자꾸 저를 다그치는 사황자가 불만스러웠다.

“인아!”

동생의 반항 아닌 반항에 사황자가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사황자의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육황자의 반항심도 높아졌다.

“아까 전에도 그렇습니다! 그런 예의 없는 태도라니! 아무리 우리가 그분께 은혜를 입었다지만, 인사를 하는데 대꾸조차 않는 것은 우리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연회 주최자로서 한 번도 우리 자리에 들르지 않는 것도 그렇고요!”

“인아!”

“예, 저도 압니다. 제가 그분께 목숨을 빚졌지요. 그런데 그건 그거고, 아무리 보아도 그분은 황태자 감이……!”

짜-악!

육황자의 고개가 매섭게 돌아갔다.

사황자가 손을 내리친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스스로도 놀랐던지 눈을 크게 뜨고 육황자를 보았다.

육황자 역시 많이 놀란 듯 얼굴이 돌아간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인…….”

육황자가 서서히 고개를 돌려 사황자를 보고.

육황자와 눈이 마주친 사황자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화들짝 놀란 사황자가 급하게 손을 내렸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육황자를 보았다.

“네 방자함이 문밖으로 나갈까 무서울 정도구나.”

“형님…….”

“내 누누이 언감생심 못 오를 자리는 꿈도 꾸지 말라 했다. 또한 좁디좁은 네 식견으로 사람을, 특히 윗전을 평하지 말라 일렀다. 그런데도 너는 조심성이라곤 없구나!”

사황자가 엄한 목소리로 육황자를 꾸짖었다

“네가 부쩍 신료들의 자제들과 어울리는 것을 안다. 무슨 생각인지도 뻔하지만, 그저 그동안 말동무 하나 없이 지내 그런 것이라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런데, 나도 아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모를 것 같더냐? 너와 나를 무시한 태도라고? 차라리 무시해 주어서 다행이구나. 그분이 마음을 먹었다면 오늘 이 한마디로 너와 나는 물론 누이와 궁인들 모두가 죽었을 거다! 누누이 일렀지만, 또 말하마. 자중해라. 폐서인의 자식으로서 분수를 알고, 매사 언행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

사황자의 말에 담긴 진심과 무서운 현실이 느껴져서일까.

육황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많이 생각해 보았던 그였다.

이제 와서 겁을 먹고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 그것과 황좌는 다른 문제라 생각합니다.”

“이 녀석이 그래도!”

“어머니가 지은 죄와 우리는 상관이 없다, 황제 폐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죄로 형님께서 물러나실 이유는 없습니다. 황좌는 누구보다 강하면서도 동시에 자애로운 사람이 앉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형님이야말로 그 자리에 어울리는 분입니다. 현명하고, 강인하고, 자애로운…….”

육황자가 주먹을 불끈 쥐고 사황자를 보았다.

신중하고 단호하게 저를 다그치면서도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육황자는 ‘역시 형님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굳혔다.

“그건 이상일 뿐이다. 황좌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아니요. 이상은 어렵지만, 어렵다고 피할 것은 아닙니다. 형님이야말로…… 어머니와 소제 때문에 이렇게 물러서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황자는 계속 설득하려 했지만, 육황자는 듣고 싶지 않았다.

전부 사황자가 후계 싸움에서 물러서기 위해 내뱉는 핑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육황자는 단단히 마음먹은 대로 말을 던지고 그대로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인아!”

생각지도 못한 마지막 말 때문에 잠시 멈칫했다.

그래서 뒤늦게 사황자가 다급하게 육황자를 불렀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육황자가 방을 나가고.

“하아.”

사황자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영수전을 담당하는 장 내관이 조용히 다가와 차를 내밀었다.

사황자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를 들이켰다.

“후우, 철이 없는 건지, 본래 그런 건지. 머릿속이 꽃밭이야! 저러다가 정말 큰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군.”

“이해하십시오. 아주 어릴 적에 잠이 드신 뒤로 일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사옵니다. 영특하신 덕에 지식은 금방 따라갈 수 있지만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시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걱정하는 사황자의 곁에서 장 내관이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사황자는 쉽게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문제일세. 저 녀석이 천지도 모르고 날뛰다가, 험하게 세상을 배우게 될까 봐.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그 말을 이렇게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군.”

사황자는 제발 범이 강아지를 물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사황자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을 거란 사실이다.

가령 강아지가 제 발로 범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다음 날.

밤새 고민한 육황자는 결심을 굳혔다.

‘나 때문이다. 내가 목숨을 구명받는 바람에 형님이 이황자님께 마음의 빚을 느끼는 것이 분명해! 내 빚은 내가 갚아야지, 그걸로 형님의 발목을 잡는 건 옳지 않아!’

육황자가 다부지게 주먹을 쥐고 건희전을 찾았다.

* * *

건희전.

진화의 눈이 문서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사신들의 추적은?”

“뭔가 눈치를 챈 건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당혜군과 초서비, 소천주가 각각 따라붙기는 했는데, 영 거시기 하죠.”

남궁구의 말에 진화가 남궁구를 빤히 보았다.

“……왜요? 아, 소천주?”

“미행을, 소천주가 갔다고?”

“저와 군조를 제외하면 소천주의 은신술이 교명이나 제갈상보다 낫습니다.”

“대체 사패천 소천주가 은신술은 왜 배운 건지…….”

남궁교명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런 남궁교명의 반응을 보자면 확실히 강무련의 은신술이 뛰어나긴 한가 보다,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와 군조는?”

“조금 있다가 약조를 잡아 놨습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월하회주님과 이제 겨우 약조를 잡아서요. 군조도 하오문으로 간다고 하니, 같이 가려고요.”

“……괜찮겠나?”

진화의 물음에 남궁구가 씨익 웃음을 보였다.

“흐흐, 걱정되십니까?”

“남궁의 무서운 고래가…….”

“으아아악! 제발요! 뭘 아시든 아는 척만 마시라니까요!”

슬쩍 백경에 대해 흘리는 진화의 말에 남궁구가 질색을 하며 펄쩍 뛰었다.

진화도 더 이상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매번 여기까지 장난을 친다는 걸 알면서도 펄쩍 날뛰는 남궁구의 모습이 재밌었다.

그리고 동시에 안타까웠다.

“그냥. 고래 귀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되지 않나 해서.”

“그냥! 월하회에만 갔다가 올 겁니다.”

진화의 말에 담긴 배려를 정말로 못 알아챈 사람처럼, 남궁구가 진화의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

“월하회와 하오문에서 원래 하던 일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서장의 문제는 이미 매응을 정의맹으로 보냈다. 그래도 월하회의 처리가 빠를 것 같아 알리는 것뿐이니까, 여력이 남을 것 같으면 나서라 전해.”

“예. 예.”

진화의 명에 군조와 남궁구가 답했다.

사실 숙청단의 일은 황궁에 한정되어 있어서 크게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패천 출신 고수들은 벌써부터 답답해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황궁에서의 활동은 진화가 있는 숙청단이 아니면 어떤 곳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사패천 출신들의 답답함도 해소할 겸 월하회와 하오문의 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겸, 겸사겸사 사신들의 일을 숙청단에서 계속 맡아 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진화의 명을 받은 남궁구와 군조가 밖으로 나가려는 때.

“저하, 육황자 저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육황자가?”

진화가 의아한 듯 눈썹을 꿈틀거리고, 밖으로 나가려던 남궁구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진화의 뒤로 섰다. 머뭇거리던 군조도 남궁구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군조가 가려는 자리에는 이미 남궁교명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진화가 남궁구를 향해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나가서 일 봐.”

“에이,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너는 나가서 재미없는 일 하라고.”

“쳇.”

진화의 깔끔한 거절에 남궁구가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를 비켰다.

남궁구가 마지못해 움직이자, 뻘쭘하게 있던 군조도 남궁구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내쫓기듯 집무실을 나간 남궁구와 군조는 육황자와 마주쳤다.

“아, 진짜 손님들이 있었소?”

육황자가 짐짓 놀란 듯 남궁구와 군조를 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훤히 보이는 표정 변화였다.

아마 손님도 없는데 저를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남궁구가 눈매를 가늘게 접었다.

“이황자 전하께서는 딸린 수하들도 있고 약속된 일정도 가득해서 늘 바쁘시지요.”

“아, 그렇소? 미리 연통을 보낼 걸 그랬군요.”

남궁구가 입으로 돌려 말하며 눈빛으로 쏘아 보낸 의미가 딱 그거였다.

무식하고 예의 없는 것은 바로 육황자라고.

다행히 영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육화자가 남궁구의 말뜻을 잘 알아듣자, 남궁구가 육황자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저희는 이만 시키신 일을 하러 나가야 할 듯합니다.”

“아, 가, 가 보시오.”

“그럼, 편하게 담소 나누십시오, 저하.”

남궁구가 떨떠름한 얼굴을 한 육황자를 지나쳐 집무실을 나왔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황궁 밖을 나갈 수는 없었다.

“안 가나?”

“갈 리가 없지. 어젯밤에 저 황자 놈이 우리 도련님을 어떻게 보는지 봤는데!”

남궁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지붕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놀란 군조가 뒤따라 지붕 위로 올랐다.

“단주님이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야?”

“필요가 왜 없나? 겁 없는 강아지가 제 발로 왔는데, 이런 좋은 구경을 놓칠 수는 없잖아?”

“뭐?”

“쉿!”

“……허어.”

싱글벙글 웃으며 조용히 하라는 남궁구의 모습에 군조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사이, 지붕에 바짝 귀를 댄 남궁구의 눈빛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진화의 시선이 슬쩍 천장을 향했다.

하지만 곧 맞은편에 있는 육황자를 보았다.

“그래, 왜 왔지?”

다짜고짜 용건부터 묻는 말.

듣기에 따라서는 불청객에게 따지는 말 같기도 했다.

다부지게 집무실에 들어왔던 육황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눈에 힘을 주고 진화를 똑바로 보았다.

“소제, 긴히 형님께, 아니 이황자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왔습니다.”

“…….”

진화가 육황자의 눈을 마주했다.

무저갱처럼 검은 눈이 제 속을 꿰뚫을 듯하자 금세 움찔대는 모습이 아직 많이 어설퍼 보였다.

‘별로 쓸모 있는 내용은 아니겠군.’

호칭까지 바꿔 부르며 제 딴에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진화는 육황자가 저를 뭐라 부르든 개의치 않았다.

그저 소문이 빠른 황궁 안에서 뭔가 보고 들은 것이 있나 잠시 기대했을 뿐. 육황자의 어설픈 모습에 그것마저 식어 버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진화가 심드렁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자 긴장하고 있던 육황자가 결심을 굳힌 듯 진지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소제,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

“제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는 죽을 때까지 소제가 갚아 갈 것입니다. 하오니 부디 제 형님께서 나아갈 길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가급적 정정당당한 경쟁 부탁드립니다.”

“…….”

진화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신 불쾌감을 드러내듯 눈썹이 꿈틀거렸다.

육황자의 말이 마치…….

“말씀이 심하시군요! 우리 공자님은 부러 다른 사람의 앞길을 막거나, 경쟁을 피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남궁교명이 심한 모욕이라도 당한 듯 육황자를 노려보았다.

무인이 뿜어내는 기세를 약관도 넘지 않은 병약한 황자가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하니. 내공을 담지 않은 눈빛만으로도 육황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 하지만…… 그렇지만…….”

육황자가 완전히 주눅이 든 듯 말을 더듬거렸다.

“하아.”

진화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저런 상대의 말에 살짝 분노할 뻔한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걸어온 시비를 받아 줄 이유는 없었다.

“내가 싫다면?”

“네?”

진화의 반문에 육황자가 당황한 듯 되물었다.

그런 육황자를 향해 진화가 싱긋이 웃어 보였다.

“네 부탁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내가 들어주기 싫, 다, 면?”

진화가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정성껏 육황자의 부탁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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