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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58)화 (358/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따를 화(化) : 운명의 굴레(3)

남궁경이 진화를 한곳에 눕히고 검을 들었다.

영원히 아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아직 적들이 남았다.

“전부, 전부 죽여라--!”

속에서 울분이 터졌다.

당장 진화를 데리고 의원을, 아니 황궁으로 쫓아 들어가 태의를 내놓으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왕무적단주로서 수하들을, 남궁세가 무인들을 남기고 갈 순 없었다.

그건 남궁세가 무인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진화도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었다.

쉐에에엑-!

“씨발! 죽어! 어서 죽으라고!”

남궁경은 보았다.

마지막, 진화가 광마제의 일격을 향해 정면으로 부딪치기 직전, 남궁세가 무인들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게 너무도 뻔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운 내 자식이, 그 어린 녀석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심을 했는지 알 것 같아서, 남궁경은 가슴이 미어졌다.

그럴수록 더 거칠게 검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챙! 챙-!

“숙부님!”

뒤늦게 적호단이 도착하고.

남궁진혜가 급하게 남궁경을 부르며 눈으로는 진화를 찾았다.

“숙부님, 우리 진화는……!”

“죽여! 다 죽여! 어서 죽여!”

남궁진혜는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검강을 남발하는 남궁경의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다른 남궁세가 무인들이나 숙청단원들의 얼굴도 남궁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길한 느낌.

남궁진혜가 급하게 진화를 찾았다.

그리고 한쪽 바닥에 곱게 누워 있는 진화를 발견했다.

“지, 진화야! 우리 진화! 우리 진화가 왜! 숙부님! 숙부님-!”

놀란 남궁진혜가 헐레벌떡 진화에게 뛰어갔다.

진화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죽은 듯이.

“지, 진화야…… 이…… 이…….”

남궁진혜의 선택도 남궁경과 다르지 않았다.

“젠장! 빨리 죽어, 이 개새끼들아-!”

상황 판단이 빨랐던 적호단주 덕에 적호단은 도착하자마자 남궁세가 무인들과 숙청단에 합류하여 싸우고 있었다.

진화와 광마제의 싸움으로 인해 전투가 멈췄다 이어졌다 반복하면서 힘을 비축한 남궁세가 무인들과 숙청단은, 광마제를 잃은 광룡귀면대를 상대로 일방적인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적호단의 합류는 광룡귀면대의 전멸을 앞당겼다.

“뒤처리는 우리가 합니다. 그러니 어서……!”

적호단주가 진화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움직였다.

* * *

“저, 저건 뭐지?”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황궁 문으로 돌진하는 무언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순식간에 황궁 문에 도착했다.

“머, 멈춰……!”

“비켜----어!”

군사들이 그들을 막기도 전에 분명 사람의 형체를 한 이들이 지나갔다.

다급해진 군사들이 침입을 알리는 경종을 울리려는데, 그 전에 남궁구가 먼저 도착했다.

“양주대부님과 이황자전 사람들입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이대로 통과시켜 준 것으로 해도 차후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건희전 소속을 알리는 패를 확인한 군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방금 무방비로 황궁 문이 뚫렸던 터라, 이대로라면 그들의 자리는 물론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그리고…….”

남궁구가 또 뭔가 말을 꺼내자, 궁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호의적인 눈빛으로 남궁구를 보았다.

남궁구가 어떤 말을 하든 다 들어줄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곧, 남궁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군사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궁문을 향해 달려오는 수백 명의 사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 저들도 좀 부탁드립니다. 하하하하.”

남궁구가 민망한 듯 웃었다.

턱도 없는 부탁이었다.

“비-상! 비상! 종 울려! 젠장!”

“문 막-아!”

궁문 경비 군사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성문에 소란이 있을 때.

성문의 소란은 소란도 아니라는 듯 건희전이 뒤집어졌다.

“흐어어어어엉---! 태의! 태의---!”

“허어어어엉! 우리 진화 흐어어어엉!”

웬 커다란 울음소리에 놀란 건희전 궁인들이 뛰어나왔다.

울음소리에 놀란 궁인들은, 사회적 위치고 체면이고 전부 내던진 채 눈물, 콧물로 뒤범벅을 한 남궁경과 남궁진혜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고.

남궁경의 품에 안긴 진화의 모습에 세 번째로 놀랐다.

“대부님! 영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헉! 화, 황자님!”

동 태감이 헛숨을 들이켰다.

“아, 안으로! 고 내관, 어서 태의, 태의를---!”

동 태감이 전에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동 태감의 명에 고 내관이 태의를 찾아 뛰어가고, 염 내관과 정 나인이 장추궁과 창신궁을 향해 달려갔다.

동 태감은 남궁경과 남궁진혜를 데리고 들어가 진화를 침소에 눕혔다.

잠시 후.

태의가 도착하고 연이어 황제와 황후가 도착했다.

“화, 황자가! 아아!”

“아이고, 마마!”

쓰러지는 황후의 모습에 정 상궁과 나인들이 그녀를 부축했다.

황제 또한 망연자실한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이, 이게 대체…… 왜 황자가…….”

“흐어어엉! 형님 폐하, 우리 진화 좀 살려 주세요!”

감히 무엄하게도 황제의 옷자락을 잡는 남궁경을 보고 황제는 깜짝 놀랐다.

나이 든 성인 남성이 이렇게 체면도 뭐도 없이 눈물 콧물 범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게다가 남궁경이 이렇게 울 만한 일이라니, 설마…….

황제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살려 달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크허헝! 형님, 황궁 보고에 그 뭐냐, 영약 좀 내줘요! 애가 기력이 달려서 저렇게 잔다고. 허어어엉! 기력을 보충하는 데 영약이 필요하대요. 남궁세가에 연통을 보냈긴 한데, 킁, 그래도 황궁도 털어 줘요! 흐어엉!”

“…….”

기력이 달려서 잔다라…….

황제가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황제의 시선이 태의에게 향했다.

“양주대부의 말이 사실인가?”

“예, 예, 폐하. 황자 저하께서는 일시에 온몸의 기력을 다해 심신허혈지경에 실신을 하신 경우로, 허혈을 다스리고 기력을 채우고 나면 깨어나실 것입니다.”

“그래…….”

태의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크게 한숨을 토했다.

“태의는 황궁 보고에 있는 어떤 것도 상관없으니 황자를 치료하는 데에 쓰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양주대부는 잠시 나와 어찌 된 일인지 말해 주겠나?”

“예, 킁! 예, 황제 형님.”

황제의 권유에 내내 진화의 곁에 붙어 있던 남궁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의는 떨리는 눈으로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황제가 무엄하게도 제 옷자락을 잡은 양주대부를 벌하지 않는 것은 물론, 명령이 아닌 권유를 하다니.

이황자를 새 황태자 위에 올릴 정도로 총애가 대단하다더니, 이제 보니 그 소문이 소문만은 아닌 듯싶었다.

* * *

건희전에서 장추궁으로 돌아오자마자, 황제가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다.

“폐, 폐하!”

“물을…… 아니, 승상을 들라 하라. 사례교위도. 아니, 중서령과 무위중랑장도 들라 하라.”

“예, 폐하.”

황제의 명을 받은 엄 태감이 내관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물을 받아 황제의 앞에 내려놓았다.

황제는 엄 태감이 물 잔을 놓기 무섭게 단번에 물을 들이켰다.

탕-!

황제가 소리가 나도록 물 잔을 놓았다.

물 잔을 쥔 황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또다시, 눈앞에서 자식을 잃을 뻔하였다.

진화를,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들을.

발밑부터 무너져 내리는 무력감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폐하, 승상 조위례, 중서령 사마윤, 사례교위 조정호, 무위중랑장 이조인 들었사옵니다.”

“들라 하라!”

황제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잠시 후.

황제가 신료들을 향해 분노를 뿜었다.

“황도에 역도들이 들었다. 감히, 짐이 있는 이 황도에 무림인들과 전쟁을 치를 만큼 많은 역도들이 들었단 말이다!”

“죄를 청하옵니다, 폐하!”

“죄를 청하옵니다, 폐하!”

황제의 말에 사례교위 조정호와 무위중랑장 이조인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어진 황제의 말엔, 죄를 청한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황자가 다쳤다.”

“……!”

승상 조위례와 사례교위 조정호는 물론 중서령과 무위중랑장이 눈을 크게 떴다.

황제의 서슬 퍼런 시선이 그들 하나하나를 향했다.

“그러니 그 입에 닳아빠진 소리는 집어치우고, 진짜 죄인들을 잡아 오라. 그 진인지 뭔지 사신 나부랭이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그 역적들의 출입은 물론 이황자의 부상과 관련된 건 모조리 알아 오라!”

분노한 용의 포효가 신료들을 움직였다.

심상치 않은 지존의 분노에 제국 황실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들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은 듯 조용한 건희전과 더불어 침울한 황궁.

그리고 분노한 황제로 인해 황궁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했다.

숨소리 하나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 황궁 군사들이 한곳을 향해 달려갔다.

척. 척. 척. 척.

“꺄악!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비켜라! 죄인을 잡으러 왔다!”

“아악!”

군사들이 염녕전 궁인들을 헤치고 거칠게 염녕전 안까지 들이닥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감히 미인 마마의 안전에서…… 윽!”

앞에 나와 소리치는 기 상궁 또한 군사들의 손에 붙들렸다.

그리고 군사들을 이끌고 온 부장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죄인 원씨는 순순히 나와 오라를 받으라!”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죄인이라니! 폐하께서 아시는 일이오?”

“폐하의 명이다! 죄인 원씨는 순순히 나와 오라를 받으라! 순순히 나오지 않는다면 강제로 끌어낼 것이다!”

“마, 마마!”

부장의 외침에도 원미인의 침소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기 상궁과 염녕전 궁인들이 황망한 얼굴로 원미인의 침소를 보았다.

잠시 기다리던 부장이 군사들에게 고갯짓을 하고, 군사들이 강제로 문을 열 기세로 다가갔다.

그때.

타-앙!

“내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이더냐! 비록 미인으로 강등되긴 했으나, 품계가 있는 단 하나뿐인 폐하의 후궁이자 황자를 셋이나 낳은 몸이다! 감히 뉘를 강제한단 말인가!”

원미인이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며 문을 열고 나왔다.

당당한 원미인의 모습에 오히려 황궁 군사들이 기세에 밀린 모습이었다.

“죄, 죄인 원씨는 오라를 받으라.”

“내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따져 본 후에 오라를 받든 말든 할 것이다! 내 발로 순순히 따라나설 것이니 앞장서거라!”

“그, 그럼…….”

원미인의 기세에 완전히 밀린 부장은 결국 원미인을 묶지 않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다만 군사들이 염녕전 궁인들만큼은 밧줄로 포박하여 끌고 갔으니,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한시진도 지나지 않아 황궁 안에 원미인이 끌려갔음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

* * *

살얼음판 같던 황궁에 결국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연일 염녕전 궁인들을 고문하는 소리가 궁 안에 가득 퍼졌다.

처절한 비명과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매질 소리까지.

그 모든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곳에 원미인이 있었다.

새까만 돌벽에 양 손바닥만 한 작은 창 하나가 전부인 냉방.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아니었다면 저 창마저 막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원미인이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냉방의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었다.

손님과 함께 촛불도 들었다.

“아버님…….”

원미인은 훤해진 냉방에 들어온 손님들을 알아보았다.

백수 백염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기골이 장대한 전 대장군이자 그녀의 아버지, 상수원씨 가문의 가주인 원평선 그리고 오라버니이자 현 북위대장군 원수경이었다.

“……고생하는구나.”

원평선이 참담한 눈빛으로 원미인을 보며 겨우 한마디 뱉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원미인이 원평선에게 애원했다.

“아버지, 저 고문을 멈춰 주세요. 저 애들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원미인의 말에 위장군 원수경이 눈살을 찌푸리고, 원평선의 얼굴마저 싸늘하게 굳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모른다고? 그게 참말이냐?”

원평선이 원미인의 말을 끊고 되물었다.

그러자 원미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무려 역도의 수만 수백이었다. 그 진국의 군주라는 놈도 수백을 끌고 들어왔었다는군. 그런데 그놈이 끌어들인 신 제국 놈들도 수백이었다. 그게 전부! 전부 황도에 들어왔어! 네가 감히, 폐하께서 계신 이 황도에 역도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몰라!”

결국 원평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원평선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원미인, 아니 원승혜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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