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359)화 (359/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따를 화(化) : 운명의 굴레(4)

황제의 명을 받은 사례교위가 현장을 조사했다.

죽은 이들만 해도 무려 칠백이 넘었다.

전멸한 광룡귀면대나 교성흑오대에 비하면 경미하지만, 남궁세가 무인들과 적호단에서도 기백이 넘는 무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황제는 황도 안에서 칠백 명이 죽을 만큼 큰 싸움이 있었다는 데에 큰 충격을 받았다.

황제의 분노와 숙청단의 협조 속에 사례교위 조정호와 사례군은 북망산 뒤편에서 밀수꾼들의 포구를 발견했다.

역도들이 수로를 타고 움직인 것이 확인된바, 사례교위 조정호와 사례군은 황도를 오가는 수로를 모조리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라에 신고되지 않은 작은 포구들이 몇 더 발견되긴 했지만, 밀수꾼들의 포구만 한 규모는 없었다.

그 말인즉, 역도들이 밀수꾼들의 포구를 지나기 전에 황도 수로를 지키는 관문을 지났다는 의미였다.

칠백 명이 넘는 역도들이 오가려면 중형급 배만 해도 몇 대나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관문을 지나도록 해 준 것이다.

관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연이어 사례군에 잡혀 들어가고, 그들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실로 의외였다.

황제가 차디찬 눈으로 바닥에 무릎 꿇은 이를 내려다보았다.

“원미인, 더 할 말이 있는가?”

“…….”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 원미인의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일이 틀어졌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아비의 입으로 듣는 말은 또 달랐으니.

원미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보통 내명부의 일은 황후궁의 소관이었다.

지난번 폐서인 허씨의 일 때에도 황제의 결정이 있긴 했지만 결국 그 일을 처리한 곳은 황후궁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염녕전 궁인들은 감찰궁이나 황후궁이 아니라 국문장에서 병사들에게 고문을 받았고, 원미인도 궁에 갇히거나 냉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국문장에 마련된 임시 감옥인 냉방에 갇혔다.

바로 역모와 관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원미인은 아버지 원평선의 말에 상황을 파악했다.

“내 일평생과 네 오라비의 일평생, 상수원씨의 북위군 수만이 목숨을 바친 이 나라를 네 손으로 역도들에게 넘길 뻔하였다! 일평생 이 제국을 위해 죽고 산 상수원씨 가문이 다른 것도 아니고 역모죄로 멸문지화를 당할 뻔했단 말이다!”

“…….”

“이 일은 다시 내명부로 갈 것이다. 다행히 폐하께서 그간의 공을 생각하여 상수원씨의 멸문지화만큼은 막아 주신다니, 너는 집안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거라.”

“아버지……!”

원평선의 말에 원미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번 일은 못 막는다. 이황자가 쓰러져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이 일로 하남조씨가 우릴 잡아먹으려 들고 있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연통 하나 받지 못했단 말이다! 폐하께서 따로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역모죄로 멸문을 당할 뻔했어!”

“하, 하오나 열양공주가 곧 서장 왕비에 오를 것입니다! 그 아이가 서장 왕비에 오르고 나면, 누구도 내 아들이 황태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없어요. 설령 폐하라 하더라도요!”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자신은 약속을 지켰고, 이제 그들이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열양공주의 약혼자가 서장왕이 된다면, 상수원가와 서장 세력까지 제국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직 그 생각만이 원미인을 사로잡았다.

원평선이 그런 원미인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았다.

“그 욕심이 화근이었구나.”

“아버님께서 욕심을 가지라 하셨잖아요!”

원미인이 반항적인 눈으로 원평선에게 반문했다.

그 모습에 원평선이 혀를 찼다.

“헛된 욕심과 욕망을 구분하라고도 하였지.”

“삼황자도 폐하의 자식이에요!”

“이황자는 황후 소생의 유일한 적통 황자다!”

“…….”

원미인이 분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네가 후궁이 되겠다 했을 때부터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황후 소생의 황자가 하나라도 난다면 너는 뒷전이 될 것이라고. 너는 그래도 좋다고, 은애하는 사람을 곁에서 지키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폐하도 초심도 모두 잃고, 그저 권력욕만 들어찼구나.”

“…….”

“그땐 적통 황자도 없었고, 황후는 몸이 약했지. 혹여 그때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이제라도 제대로 판단했어야지. 지금도 나와 눈이 마주칠까 봐 기둥 뒤에 숨어서 제 어미도 찾아오지 못하는 그 못난 놈은 황제감이 아니라는 게다!”

원평선의 호통에 원미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삼황자가…….’

원미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삼황자에 대해 말을 하는 원평선의 얼굴에 한심함이 가득한 것을 보면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저런 못난 놈에겐 나조차도 제국을 맡기지 못한다! 쯧쯧쯧, 불쌍한 것. 네가 헛꿈을 꾸다 큰 죄를 지은 게야!”

원평선은 딸의 처지가 안타까웠지만 그녀를 구명하러 나설 수도 없었기에, 그저 답답한 마음에 혀만 차다가 밖으로 나갔다.

원평선이 나가고, 오라비인 북위대장군 원수경이 조용히 원미인에게 그들이 이곳에 온 본론을 말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듯 집안의 구명은 바라지 마라. 상수원씨의 공로는 네 일을 내명부로 옮기는 것으로 끝이니. 또한…… 그 한심한 놈과 집안의 인연도 끝이라 전하거라!”

원수경은 원평선보다 훨씬 단호했다.

집안의 실권자이자 차기 가주의 말이었으니, 앞으로 삼황자는 상수원씨와 대장군부의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 확실했다.

“삼황자.”

“예, 예, 폐하.”

황제가 나지막하게 삼황자를 부르자, 삼황자가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황제의 무심한 눈길이 제게 닿자, 삼황자는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이고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너는 이 일과 연관이 있느냐?”

황제의 물음에 삼황자가 대뜸 바닥에 엎드렸다.

“아, 아니옵니다, 폐하! 소, 소자는 이 일에 대해 저, 전혀 몰랐습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폐하!”

삼황자가 바닥에 엎드려 소리쳤다.

차라리 어미를 살려 달라 빌었다면 좋았을 것을…….

한껏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납작 조아린 채 제 안위만 챙기는 삼황자의 비굴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황제와 중신들이 모두 보았다.

원미인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눈을 감았다.

‘너는 네 깜냥을 잘 알고 있었구나. 그래, 버려라. 황자로 살아남고자 한다면 어미를 버려야 할 것이다.’

모두 끝이 났다.

원미인은 삼황자의 말에 동의하며 모든 일은 혼자 한 것이라 죄를 시인했다.

원미인이 죄를 인정하자 황제가 잠시 원미인을 보았다.

“……이 일은 위장군에게 말한 대로 내명부의 법도대로 처리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원미인은 황제의 마지막 시선에 담담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가고, 창백한 얼굴에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한 황후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 * *

포근하고 그리운 냄새였다.

“아가, 그거 아니? 네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는구나. 어제도 네 안부를 물었는데, 본인은 그렇게 무리를 하시고…… 정말 속상하구나. 우리 아가는 아버지 저런 모습은 닮지 말렴.”

낯설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

계속 듣고 싶었다.

“하하하하! 인석! 성질머리 보게? 이 아비가 늦게 왔다 이거냐? 하하하하!”

힘차고 젊은 목소리.

거칠 것 없는 목소리에 애정이 어려 있어, 그 목소리도 듣기 좋다.

“으하하하하! 내 새끼! 예쁜 내 새끼!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힘쓰는 건 아빠가 다 해 주마! 평생 아빠랑 살자!”

“어머, 이이가. 우리 아들도 나중에 가정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야죠. 아들, 엄마는 우리 아들이 행복하다면 네가 어디에 있든 좋단다.”

“아, 아니, 그래도 나는 아들이랑…….”

“쉿! 진화 가는 곳에 우리가 가면 되죠.”

“아! 그건 그러네. 하하하하!”

아버지…….

어머니…….

나는 죽은 걸까.

“진화야--! 내 동생! 어여쁜 내 동생! 네가 가긴 어딜 가? 이 누님 옆에 평생 있어야지!”

“휴우, 제발 넌 시집갈 생각 좀 해라. 네가 출가외인이 되는 게 이 오라비의 소원이다!”

“제발 멀리 가라고 해 주겠니?”

“아니, 부인, 그래도 너무 멀리는…….”

“보내긴 보내겠다는 말이네요?”

“아, 정말 다들 너무하네!”

“그나저나, 우리 진화가 있으니까 화병에 꽃이 필요 없구나. 호호호!”

누님, 형님, 큰아버지, 큰어머니까지.

팽가에서는 데릴사위로 보낼 생각이던데 괜찮으실까.

“헤에? 도련님 인기 많은데?”

“인기 따위 있어 봐야 무얼 하나. 공수래공수거지.”

“그래서 스님은 만두를 그렇게 탐욕스럽게 움켜쥐었나?”

“뚠뚠돼지!”

“뚠뚠스님이라 불러라. 저자의 정체성이니. 그리고 그대의 정체성은, 꽃인가? 아니면 별?”

“단주님.”

“단주!”

남궁구와 현오, 남궁교명을 비롯한 숙청단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숙청단뿐 아니라 적호단과 정의맹, 정의무학관에서 스친 인연들도 진화에게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보통 사람이 죽기 전에 일생의 기억이 스쳐 간다 했던가.

진화는 이것이 제 주마등이라 생각했다.

‘인정해야겠군. 광마제를 죽이고, 나도 죽었나…….’

그때였다.

번---쩍.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불빛에 눈이 부셨다.

‘눈이…… 부시다고?’

순간, 진화가 눈을 번쩍 떴다.

정말로 눈이 부셨다.

“이, 일어났습니다!”

“뭐?”

“정말로?”

눈부신 햇빛 사이로, 진화가 주마등 속에 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보였다.

황제와 황후, 남궁경과 남궁진혜, 남궁구와 남궁교명, 현오 그리고 다른 숙청단원들까지.

“이게 무슨…….”

진화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문을 여는데, 그 사이로 목소리가 겹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진짜 효과가 있다고?”

“말도 안 돼! 진짜 만두 냄새에 깰 줄이야!”

“대체 만두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흠, 만두라고…….”

만두라니.

어리둥절한 진화가 눈을 굴리자, 그제야 현오가 들고 있는 만두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그 포근하고 그리운 냄새가…… 만, 두?’

진화조차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만두를 보았다.

그러자 현오가 모두의 앞에 나서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만두를 한입 물었다.

“하하하, 소승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세상에 가족의 목소리, 우정, 간절한 기도 따위로 환자가 깨어난다고 믿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환자를 깨우는 건 황금! 황금으로 산 의원, 황금으로 산 비싼 영약! 황금으로 산 숙수가 만든 완벽한 만두! 아시겠습니까?”

“……그렇게 속물적인 말을 할 거라면 앞에 소승이라고 하질 말던가.”

당혜군이 구시렁거렸지만 차마 현오가 틀렸다곤 하지 못했다.

실제로 진화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태의의 궁중보양침과 영약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숙수들이 숨만 쉬어도 넘길 수 있도록 곱게 간 영양죽으로 혈기를 회복했으며, 결정적으로 진화를 깨운 만두가 현오의 손에 있었던 것이다.

진화도 목소리 때문에 깬 것이라 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어 찜찜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다시 눈을 떠서 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말이다.

“진화야, 아들, 이제 괜찮은 것이냐?”

“내 동생, 기력은 좀 돌아왔어?”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호들갑을 떨며 몸을 일으키는 진화의 등을 받쳤다.

“진화야…….”

황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진화를 보았다.

황제 또한 무뚝뚝한 얼굴로 눈빛을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화의 눈도 같이 일렁였다.

“눈을 뜨고 여기가 극락인가 했습니다.”

진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화의 환한 미소와 예상치 못한 말에 황제와 황후, 남궁경, 남궁진혜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남궁경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아들, 그랬어?”

“이 누님 얼굴이 선녀를 닮았나?”

“하하하, 우리 조카, 못생겼어도 양심은 있어야지. 황후 마마 옆에서 얼굴 치워라.”

“……쳇.”

남궁경과 남궁진혜의 티격태격에 황제와 황후는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 * *

신 제국 대륜궁.

촛불 하나 켜지 않은 깜깜한 어둠 속에 서늘한 한기가 맴돌았다.

새로 황좌에 오른 황제의 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침소.

제국 황제의 침소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돌 침상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황제의 침소라기엔 초라할 정도였다.

뚜벅뚜벅.

황제의 침소로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앞을 지키는 내관도 없었고, 안의 허락도 구하지 않았다.

사내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돌 침상을 보았다.

“좌활백설옥의 빛이 꺼져 가는군요.”

사내, 검마제의 말에 좌활백설옥 위에 누워 있던 역천마제가 눈을 떴다.

녹빛 안광이 어둠을 뚫고 번뜩였다.

안광은 천천히 갈무리되었다.

“어찌 되었느냐?”

역천마제가 검마제에게 어떤 소식을 재촉했다.

검마제 또한 역천마제가 기다리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광마제는 죽고 광룡귀면대가 전멸당했습니다.”

검마제의 말에 역천마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좌활백설옥에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확인은?”

“첩자가 현학문에서 광마제의 시체를 가져가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다만 혼현마제의 시체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광마제의 시체를 가져갔다……. 흐흐, 으하하하하하하!”

광마제의 시체를 확인했다는 말을 곱씹던 역천마제가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놈이 죽었어! ……누구냐? 누구더냐?”

한참 웃던 역천마제가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그러자 검마제가 조금 머뭇거리다 답했다.

“남궁진화, 한 제국의 이황자라고 합니다.”

“남궁진화? ……그 어린놈이?”

“…….”

지난번 진화와 부딪혀 부상을 입은 적이 있던 검마제는 대답을 생략했다.

진화를 얕보면 안 된다 말을 하기엔 이미 충분히 자존심이 상했기에 입을 다물기로 한 것이다.

“과연, 어린놈의 무공이 보통은 아니었지. 하지만 광마제를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놈이 제물에 눈이 뒤집혀서 방심을 한 게지. 허허허, 결국 혼현 그놈이 광마제의 죽음을 만들었어! 허허허허!”

등극식의 그 난리를 역천마제도 보았다.

불완전하긴 했지만 광마제의 흑룡을 부수던 진화의 모습은 역천마제도 인상 깊게 보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역천마제에게 위협이 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운명이었으니까.

“허허허, 일전에 한번 네가 물었었지, 왜 혼현마제 그놈을 그냥 두냐고? 이것을 보아라! 광마제가 그 어린놈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게 바로 운명의 힘인 것이다! 허허허허! 신사월 병진월 을해일 묘시! 혼현마제의 배신이야 그놈이 내게 역천비록을 속였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흰 뱀이 피 흘리는 용으로 청돼지를 태울 때까지 기다렸을 뿐이다! 결국 황제의 씨로 광마제를 죽이지 않았더냐. 하하하하하!”

역천마제는 오랫동안 무겁게 이고 있던 짐을 털어 버린 사람처럼 홀가분하게 웃었다.

역천마제의 말에 검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때 검마제는 역천마제가 너무 운명에 얽매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언이 이렇게까지 맞아떨어진다면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피 흘리는 용이라니, 설마 그런 것까지 들어맞을 줄이야.’

보통 용은 황족을 의미하니 황제의 자식이 광마제를 죽이고, 흰 뱀인 혼현마제가 그 과정을 만들 것이란 예언이었다.

역천비록의 예언이 모든 것을 맞추고 나자, 검마제도 역천마제가 그토록 운명을 조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혼현마제의 시체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상관없다! 광마제의 죽음을 만들기 위해 놈의 배신을 용인한 것이다. 약한 놈들은 언제든 죽일 수 있으니까!”

역천마제의 눈에서 다시 시퍼런 녹광이 번뜩였다.

그와 함께.

파스스스스스스---!

역천마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앉아 있던 좌활백설옥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혼현마제마저 적호단에 당했다면, 이제 남은 놈들은 오합지졸들뿐이겠구나. 먼저 배신자들부터 친다. 모두 죽여라!”

“존명.”

역천마제의 명에 검마제가 충실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황제가 머무는 대륜궁에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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