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변하지 않을 진(眞) 꽃 화(花) : 멈추지 않는 운명(2)
낙양 황도와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은 중원에서 가장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 중 하나였다.
황도 중앙군과 정의맹 정예 무인들이 지키는 곳이었으니. 큰 상단은 물론이고 호위 무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보부상들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낙양 포구와 양청현 포구는 물길로 고작 반나절 거리였다.
그래서 바쁘게 두 곳을 움직이는 상인들이 급할 때 이용하는 곳이 뱃길이었다.
그런데 그 뱃길이 며칠 전부터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몰라? 이 사람, 소식이 늦구먼! 며칠 전에 포구에 있던 병사들 싹 다 끌려갔잖아. 황도에 역도들이 침투했었대!”
“여, 역도들? 역도들이 어떻게?”
“그러니까! 정신 빠진 놈들이 통과시켜 준 거지. 그 바람에 황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포구에 있던 병사들은 다 끌려가거나 물갈이 됐잖아!”
“그, 그랬어? 어쩐지 태반이 모르는 얼굴들이더라니…….”
양청현으로 가던 상인들이 포구에 있는 병사들을 보며 수군거렸다.
그러자 앞에 있던 병사들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어이! 거기 누가 떠드는 것이냐!”
이전에 있던 병사들은 전부 어찌 되었는지, 포구 관문에 있는 병사들의 기세가 무척 사나웠다.
“오늘은 저기 스무 명까지만 통과시킬 것이다! 나머지는 내일 진시까지 다시 와라!”
“아니, 그러는 게 어디 있소!”
“아, 나는 내일까지 양청현 안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오! 먼저 좀 지나가게 해 주시오!”
“나도! 나도 급하오!”
“전부 다 닥쳐라-! 저기 스무 명까지! 나머지는 내일 진시다!”
병사들은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는 듯 험악한 말투로 사람들의 반발을 물리쳤다.
“자, 자, 흩어져라! 나머지 놈들은 다 흩어져! 남아 있는 놈들은 군문의 명을 어기는 것으로 여기고 전부 잡아가겠다!”
“저, 저…….”
“이런, 쓰불. 내가 더러워서 진짜…… 지금은 어디 가서 잘 데도 없구먼.”
“아이고! 아이고, 나는 망했네!”
병사들이 창까지 들고 위협하자, 결국 말 많던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상간으로 큰 손해를 입는 사람들은 주저앉아 넋두리를 하거나 거세게 항의를 했지만, 병사들은 처음의 경고가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 그들을 끌고 가 버렸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아름다운 낭자들 셋과 건장한 귀공자들 일곱 그리고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거대한 덩치 넷에 스님이 하나라, 평범하지 않은 일련의 젊은 남녀들이었다.
몇몇 이들의 허리에 검이 있는 것이 무림인들이 분명했다.
“당, 당신들은 뭐야? 지금 명을 거역하는 것인가!”
병사 몇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젊은 남녀를 위협하며 다가갔다.
하지만 막상 젊은 남녀를 가까이에서 대면하자.
“……!”
거대한 덩치고, 값비싸 보이는 검이고, 뭐고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귀공자의 외모에 넋을 빼앗긴 병사들의 태도가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저, 저기, 뭐 하는 작자들……이십니까?”
“자, 자, 잠시 검문 좀…… 헉!”
아름다운 귀공자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 손을 댄 병사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툭.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것이 귀공자의 품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허억!”
땅에 떨어진 번쩍이는 황룡금패.
제국의 천자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황룡이 새겨진 금패를 본 병사들이 일제히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화, 황룡금주를 뵈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일행에게 다가온 병사들뿐 아니라 관문에 있던 전 병사가 바닥에 부복하고, 눈치껏 백성들까지 병사들처럼 바닥에 몸을 숙였다.
“황룡금주를 뵈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뒤늦게 달려온 장군 하나가 진화 앞에 부복하고 우렁차게 외치자, 때아닌 천세창이 포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우와…….”
현오가 부처님 대신 황금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검문검색은 포구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양청현 안으로 들어가기 전 성문에서도 한참 검문검색을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몇 시진 안에 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줄은 보던 진화 일행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역시, 그거지?”
“권력의 맛이 좋긴 좋더군.”
“가시지요, 단주님!”
현오와 남궁구가 눈을 마주치고 웃고 강무련이 고개를 끄덕이자, 거대한 덩치의 산적 둘이 두목님을 모시듯 진화를 앞세웠다.
그리고 줄 제일 뒤에 섰다.
어차피 앞에서 줄이 끊기면 버텼다가 들어갈 속셈이었다.
“이럴 거면 새치기를 하던가.”
“우리는 정파인이다.”
툴툴대는 초서비에게 남궁교명이 단호하게 답했다.
어차피 오늘 내로 지나가는 성문, 초서비는 제일 처음으로 성문을 통과하는 것과 제일 마지막으로 성문을 통과하는 것에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답답한 정파 놈들.’
결국 그들의 예상대로 앞쪽에서 끊기는 줄.
사람들이 흩어지고, 숙청단원들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싫다는 진화를 밀고 앞으로 갔다.
오랫동안 양청현 성문에서 일한 병사들이라면 진화 일행을 알아볼 만도 했지만, 새로 바뀐 병사들은 ‘웬 미친놈들인가?’ 하는 눈빛으로 숙청단을 보았다.
“후우. 저기, 조용히 하게.”
한숨을 쉰 진화가 우물쭈물 황룡금패를 보이고.
“뭐요? 뇌물 같은 걸 줬다간…… 헉!”
금패를 본 병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황룡금주를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바닥에 부복한 병사들의 목소리가 온 성문에 울렸다.
진화가 슬쩍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아무리 진화라도 백만 대군을 움직인다는 황룡금패가 이렇게 사용될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 듯했다.
* * *
정사연합 회의.
광마제와 광룡귀면대의 죽음이 전해진 후 처음 열리는 회의였다.
광마제는 귀천성을 무너뜨리는 데에 넘어야 할 세 개의 큰 산 중 하나로 손에 꼽혀 왔다.
실제로 이전 전쟁에서도 제왕검을 비롯한 십이좌회에 있는 고수 넷이 맞붙고도 죽이지 못했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 매화성검 구선용이 광마의 손에 죽었고, 선승 각오대사 또한 역천마제와 광마제에게 당한 부상으로 오랫동안 칩거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광마제가, 약관도 넘지 못한 어린 청년의 손에 죽었다 한다!
광마제의 죽음은 무림이 기다리던 희소식인 동시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남궁진화라…….”
낮게 진화의 이름을 곱씹는 목소리에 소란스럽던 회의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어색하게 맴도는 침묵.
말을 한 곤륜파 장문 진풍진인은 물론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슬쩍슬쩍 누군가의 눈치를 보았다.
상석에 앉은 제왕검 남궁강을 비롯한 십이자회 출신들, 옥허신검 청연과 선승 각오, 천수현인 제갈길현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광마제를 죽인 남궁진화가 정파 제일 고수는 아닐까 하는 말이 나올 때에 가장 눈치가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옥허신검 청연이 혀를 차며 자신들이 눈치를 살피는 후배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쯧쯧, 내 팔이 고작 약관도 넘지 못한 검마제에게 잘렸어. 그걸 잊은 겐가? 우리가 역천마제와 광마제 놈에게 당했던 건 놈들이 불세출의 천재였기 때문이지.”
귀천성 역천마제와 검마제, 광마제를 인정한다는 듯한 말투에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으로 동요했다.
하지만 십이좌회 고수들은 정파의 정신적 지주이자 실질적인 정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그들의 말에 대놓고 반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제왕검 남궁강을 비롯한 십이좌회 고수들은 그런 지휘부의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았다.
“이 사람들아! 뭘 그렇게 눈치를 봐! 우리가 밀린 건 놈들보다 약했기 때문이야! 중원 반쪽을 빼앗기고 아직까지 찾지 못했지. 우리와 자네들은 똑같이 밀린 세대가 아닌가!”
“구, 군사님……!”
“폐부를 찔리는 기분이지만 어쩌겠나, 인정해야지. 우린 그 세 놈 때문에 밀렸고, 세 놈에게 진 것이야. 그런데 남궁진화가 그중에 한 놈을 죽였어. 약관도 되지 못한 정파의 고수가! 기뻐할 일은 제대로 기뻐하세. 다음 세대의 불세출의 천재가 우리 정파에 나타난 거니까!”
천수현인 제갈길현의 일갈에 정사연합 회의에 참석한 지휘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색하지만 썩 나쁘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허허허, 이 사람 눈치라면 볼 것 없네. 그놈이 내 손자인데, 내 눈치를 볼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게다가 내가 그놈보다 젊지는 않지만 아직 그놈보다 약하다곤 하지 않았네.”
남궁강이 허허 웃는 동시에 눈빛으로 호승심을 번뜩였다.
역천마제에게 졌을 때부터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그 굴욕적이고 무거웠던 패배에서 와신상담 절치부심하길 수십 년이었다.
제왕검 남궁강이 농담처럼 호승심과 자신감을 보이자, 그제야 분위가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아! 하하, 그렇지요, 하하하.”
“천하제일 고수를 두고 손자분과 경쟁이라니. 이거 정말 부럽습니다! 하하하하!”
아직 어색한 웃음이 흘렀지만, 어쨌든 남궁진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불편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정의맹 무단주들을 비롯해서 마흔도 되기 전에 경지를 넘어선 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무림의 홍복입니다. 아미타불.”
전 정의맹 맹주이자 소림 장문인 운현대사가 자애롭게 불경을 외었다.
그러자 그의 스승이자 선승 각오대사가 코웃음을 치며 어깃장을 놓았다.
“홍복은 지랄. 피가 강물이 되어 흐를 정도로 쏟았는데 발전도 있어야지!”
“스승님.”
운현대사가 곤란하다는 듯 선승을 불렀다.
하지만 천수현인 제갈길현마저 선승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간 쌓인 전쟁 경험과 발전된 무공. 그리고 돈으로 산 영약의 힘이지.”
천수현인 제갈길현의 말에 몇몇 이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문파에서 지금의 인재들을 키워 내는 데에 문파의 사활을 걸었고, 어린 제자들에게 영약을 양보한 현 지도부, 골짜기 세대의 희생도 무시할 순 없었다.
지금 군웅할거처럼 튀어나오는 인재들은 사실 하늘의 안배나 무림의 홍복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이 태어나자마자 무재를 판별한 뒤 문파 최고 고수에게 벌모세수를 받았고, 영양의 효과를 제대로 취할 수 있는 어린 나이부터 최고의 영약과 뛰어난 무사부들의 지도 아래 문파와 가문의 총력으로 길러진 이들이었다.
“우리가, 자네들이 만들어 낸 새 시대일세. 각자 자부심을 가지고, 이번에야말로 귀천성을 몰아내 보세.”
제왕검 남궁강의 말에 대부분의 이들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하나 지휘부들의 눈이 또렷하게 빛났다.
“이제 단 두 발자국 남았네. 역천마제와 검마제. 다들 알겠지만 놈들만 죽일 수 있다면, 귀천성을 몰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일세.”
제왕검 남궁강이 결연한 분위기를 뿜으며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그 분위기를 총군사인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이어받았다.
“역천마제 놈이 역천비록의 운명을 완성하려 하고 있네. 우리는 그걸 도울 것이네.”
“그, 그게 무슨……!”
천수현인 제갈길현의 말에 겨우 잡힌 분위기가 다시 술렁거렸다.
그때, 제갈가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신년 경오월 갑자일 술시. 검은 원숭이가 청쥐와 흰 말을 탄다…… 역천비록에 나온 검마제의 운명이 지난번 환마제를 죽일 때에 이뤄졌습니다. 갑자년 임신월 신사일 술시. 청쥐가 흰 뱀을 위해 검은 원숭이를 죽인다는 해석입니다. 독부 은요가 혼현마제를 위해 검마제를 죽인다는 뜻인데, 우리는 이 역천비록에 나온 독마제의 운명이 그대로 이뤄지게 할 것입니다.”
“아아!”
제갈가주의 설명에 사람들이 그제야 이해가 된 듯 탄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남궁진휘와 홍랑대부는 고소를 삼키는 장면이었다.
일부러 마음을 동요하게 하거나 긴장하게 한 후에 신뢰가 가는 설명을 한다면 상대를 설득하기 쉽다. ……제갈가주가 늘 사용하던 방법이었는데, 그게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허허허, 아버지는 말로, 아들은 눈빛으로 일단 사람들을 흔들고 시작하는군.’
‘자식 교육 실패의 고리가 보였군요.’
남궁진휘와 홍랑대부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런데 말일세…….”
잠자코 있던 옥허신검 청연이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검마제는 역천마제의 가장 충직한 수하이며 그가 가장 신뢰하는 수하일세. 그게 아니더라도 역천마제의 가장 강력한 방패막이지. 그런 검마제를 역천마제가 죽게 내버려 둘까?”
옥허신검 청연의 말에 다시 좌중이 조용해졌다.
청연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이, 광마제야 처음부터 왜 역천마제와 함께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던 자라 역천마제가 일부러 사지로 밀었대도 고개를 끄덕일 인물이었지만, 검마제는 달랐다.
그는 자타공인 역천마제의 오른팔이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역천마제가 검마제를 사지로 몰 이유가 없었다.
군사부 계획의 허점이 꽤 합리적으로 지적된 터라, 모두의 시선이 천수현인 제갈길현을 향했다.
그런데 천수현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흐흐흐, 그게 상관있나?”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낮게 웃음을 흘리며 음흉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역천마제가 용이 될 욕심이라면 검마제를 죽일 것이고, 충직한 수하와의 의리를 택한다면 검마제를 살리겠지. 우리는 그냥 그놈들의 앞에 혼현마제와 독마제를 데려다 놓으면 그만일세. 이번 일로 우리가 진짜 노리는 건, 소리마제와 살각이니까.”
“……!”
“혼현마제를 죽여서 분노한 독마제가 검마제에게 한을 품어도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혼현마제와 역천마제가 다시 합칠 가능성은 전혀 없지. 역천마제는 이미 배신자들의 징벌을 천명했고, 그사이에 우린 놈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이후 벌어질 전쟁을 준비할 것이네.”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눈빛을 번뜩였다.
‘이후 벌어질 전쟁을 준비한다’는 말에는 귀천성 세력을 일망타진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 일환으로 제일 먼저, 혼현마제가 죽은 뒤 역천마제에게 붙을 수 있는 놈들부터 먼저 제거할 것이네.”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 회의장엔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놈들의 땅에 침투해서 혼현마제 일당의 은신처를 알아낼 소수 정예를 보낼 것이네. 위험한 임무이니만큼 정사를 가리지 않고 실력자로만 선별하겠네. 실질적인 전투를 수행할 지원대로는 적호단과 청룡단…… 흑살대를 보내지.”
천수현인 제갈길현의 말에 사패천주가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 * *
한 제국의 황실.
조용히 국경의 경계를 강화하는 듯했지만, 사실 조정은 대대적인 전쟁 준비로 바빴다.
완벽한 전쟁을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지만, 황제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북위군은 준비가 끝났나?”
“예, 폐하.”
“진화 녀석은?”
“어제 관문 세 곳을 지나 정의맹에 드셨다 하옵니다.”
“그래? ……음?”
집무실에서 문서에 파묻혀 있던 황제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관문 세 곳이라니? 어찌 그리 자세히 아는 게냐?”
가뜩이나 황실의 정보력을 가다듬는 중이라, 군의 정보 전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황제였다.
아무리 황자의 일이라지만 절대로 이렇게 빨리, 자세히 전달될 리 없었다.
설마 진화에게 따로 사람을 붙인 걸까.
황제가 엄한 눈으로 묻자, 엄 태감이 감히 황제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관문마다 황룡금패를 사용하셨다 하옵니다.”
황룡금패는 추상같은 황제의 명을 대신하는 것이라, 천금보다 귀한 황제의 명이기에 정말로 백만 대군의 지휘권을 가져올 때같이 귀중한 때만 꺼내는 권위일진데…….
“……뭐라?”
“송구하옵니다, 폐하.”
뭔가 잘못 들은 듯 되묻는 황제에게 엄 태감이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것은 아뢰기도 민망해서였던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