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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77)화 (377/425)

남궁마제

이길 진(進) 바뀔 화(譁) : 비틀린 운명(2)

“쳐라! 오늘 내로 성문을 열어야 한다!”

붉은 수술이 달린 부채가 앞을 향하자, 그것을 보고 있던 장수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충차를 내라! 돌진한다!”

“대고를 울려라!”

장수들의 재촉 속에서 신 제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운제를 놓고 성벽을 올랐고, 다른 병사들은 방패를 들고 끝도 없이 돌진했다.

방패수들이 성문 앞에서 충차를 미는 군사들을 에워쌌다.

퍽퍽퍽퍽.

방패 위로 끊임없이 화살 비가 쏟아졌다.

“크아아악!”

너덜너덜해진 방해를 뚫고 화살받이가 된 병사들이 쓰러지고, 다른 병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사이 충차를 미는 건장한 병사들이 성문을 때렸다.

쿵! 쿵! 쿵!

“때려라! 더! 더!”

건장한 사내 서넛을 묶은 것보다 거대한 통나무에 철심까지 달아 놓은 충차는 그것을 밀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장수의 재촉과 채찍질 속에 그것을 힘껏 밀어 성문으로 돌진해서 부딪히고, 물러나서 또 부딪히고를 반복했다.

“크아아아악---!”

가슴과 팔의 껍질이 벗겨지며 피투성이가 되고서야 드디어 충차가 성문을 꿰뚫었다.

“성문이 뚫렸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그것을 보고 있던 장수가 다시 부채를 들고 가마에 앉은 중년인을 보았다.

붉은 수술이 달린 부채가 하늘을 찔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들의 뒤에서 검은 무복을 입고 검을 든 이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병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경공술을 펼친 이들은, 순식간에 방패를 들고 운제를 타고 오르는 동시에 틈이 벌어진 성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쉐에에엑-!

챙! 챙!

“으아아악!”

“크악!”

귀천성 무인들이 공간을 만들자, 그곳으로 더 많은 이들이 뛰어들었다.

“쏴, 쏴라! 창을 던져라!”

성문 안에 남아 있던 장수 중 하나가 명을 내리자, 물러서던 이들이 남은 화살과 창을 던졌다.

휙휙휙휙-!

성문을 활짝 열고 있는 귀천성 무인들을 향해 수십 개의 창이 날아들었다.

그때, 활짝 열린 성문 사이로 붉은 기운이 날아들었다.

쉐에에에에엑-!

챙! 챙! 쿵.

붉은 기운은 귀천성 무인들을 향해 날아가던 창 수십 개의 머리를 단숨에 잘라 냈다.

그리고 붉은 권기를 쏘아 보낸 수신방주 신귀 장배경이 성에 남아 있던 장수를 보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눈에 보이는 놈들은 모두 죽여라. 쥐새끼 하나 살려 두지 마라!”

“충!”

명을 내린 수신방주는 자신이 왜 신귀라 불리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 장수 앞에 나타나며 증명해 보였다.

쉐에에엑!

“크헉!”

수신방주의 손에 맺힌 붉은색 수기가 검보다 날카롭게 장수의 목을 베어 버렸다.

툭. 툭.

사방으로 피를 뿌리며 몸을 잃은 머리가 눈도 감지 못한 채 땅에 떨어졌다.

마치 오늘 이 성안 모든 사람들의 운명 같았다.

성이 함락되고, 폐허가 된 성안으로 천천히 신 제국 파별대장군 조유찬이 걸어 들어왔다.

파별대장군은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와 부채를 든 중년인을 극진히 모시고 있었다.

“이곳 외산성이 효현의 앞에 있는 마지막 성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선생.”

파별대장군은 부채를 든 중년인, 송마문주 일유신에게 ‘선생’이라 부르며 존대했다.

“송마문주.”

“예, 검마제 님.”

파별대장군에게 꼿꼿하던 송마문주가 검마제에게는 허리까지 숙이며 부름에 답했다.

파별대장군 또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귀천성이 신 제국의 집어삼킨 후 그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완전히 확립된 듯했다.

“한 제국 또한 가까인 온 것으로 아는데, 우리가 그보다 늦겠는가?”

“한 제국이 곧 영봉군을 함락시킬 듯합니다. 그보다 늦지 않도록 내일 밤 효현을 공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혼현마제가 그곳에 고립되는 것인가?”

“절벽을 뛰어내려 강에 빠지지 않는 이상은 그럴 것입니다. 혹시 몰라 수신방주가 배를 띄워 절벽 아래를 감시 중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산에서 도망치려면 효현과 영봉 쪽으로 산을 내려오거나 절벽을 뛰어내리는 세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남궁세가의 청해상단 또한 주강 하류로 배를 몰고 왔다고 합니다.”

“그래.”

검마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마문과 수신방의 협력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혼현마제가 중원을 빠져나가서도 안 되지만, 놈이 그 몸에 적응하기 전에 찾아서 죽여야 한다. 정사 연합 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혼현마제에 집중해라.”

“예!”

“물론입니다.”

검마제의 명에 송마문주과 수신방주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 아래로 두 사람이 눈빛을 마주쳤다.

* * *

검마제가 오늘 묵을 숙소로 들어가고, 그를 배웅한 송마문주와 수신방주가 약속이나 한 듯 함께 자리를 옮겼다.

“한 제국이 우리와 같은 움직임을 보일 줄 몰랐군. 마치 둘이 짠 듯이 시기도 딱 맞췄어.”

수신방주가 송마문주에게 슬쩍 눈길을 주며 말했다.

송마문주가 진짜 정사연합과 내통을 했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저 습관처럼 그를 자극하고 떠본 것이다.

하지만 송마문주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라면 헛소리 말라며 코웃음을 쳤을 송마문주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했기 때문이다.

“한 제국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놈이 있다는 거지. 심지어 나보다 빨리.”

“……!”

송마문주의 말에 수신방주가 눈을 크게 떴다.

송마문주가 그런 수신방주를 돌아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혼현마제를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네. 수십 년, 어쩌면 백 년을 훌쩍 넘기는 동안 그자의 방식은 많은 부문에서 정형화되었고 많은 공통점과 약점을 보였으니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네. 운명에 따라 자리를 채운 마제들이 아니라 실력으로 역천제 님을 보필한다면, 그 옆에는 검마제 님 다음으로 자네와 내가 있을 거라고.”

심각한 송마문주의 모습에 수신방주 또한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답했다.

오래도록 경쟁하면서 서로를 지켜보았으니, 그만큼 서로의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수신방주는 송마문주가 바짝 긴장한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한 제국군 진영에 정사연합 군사부의 남궁진휘가 와 있네.”

“설마…… 자네와 같은 책략을 떠올린 자가 남궁진휘라고 생각하는 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놈이라 확신하네. 이제 고작 약관을 넘긴 애송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거야.”

“…….”

이제 약관을 넘긴 자가 수십 년 동안 혼현마제를 이기기 위해 몰두한 송마문주와 같은 반열에 있다라…… 수신방주는 송마문주가 남궁진휘를 경계하는 이유를 비소로 이해했다.

“위험한 놈일세. 더 크도록 두고 본다면 필시 우리의 앞을 막겠지. 창천화룡 남궁진화는 검마제 님의 손에 맡기고, 자네는 남궁진휘를 맡게.”

“자네가 그럴 정도인가?”

“그놈이 보인다면 지체 없이 죽이게.”

송마문주의 단호한 대답에 수신방주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쉐에에에엑---!

번---쩍!

“으아아아악!”

영봉성에 걸린 깃발 위로 번개가 떨어지면서, 영봉성이 한 제국군의 손에 떨어졌다.

남아 있던 병사들이 눈앞에서 내리치는 벼락에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와아아아아---!”

이제는 이 광경도 익숙한 듯 장수들과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를 즐겼다.

다만 부장의 손에 이끌리듯 영봉성에 입성하는 위장군의 얼굴은 완전히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래도 되나?’

장호군, 육림군에 이어 영봉군까지.

더 남쪽의 지역이야 육림군과 거래가 끊기면서, 곧 북위군사마 원자기가 이끄는 남해군에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거의 진국의 삼분지 일을 얻는 것이었다.

신 제국이 차지한 곳과 진짜 야만의 땅으로 남은 곳을 제외하면 쓸 만한 땅은 전부 얻은 셈이었다.

‘이러다가 장안보다 먼저 교주를 평정하겠군.’

위장군이 곤란한 것이 바로 그 부문이었다.

농담처럼 진화의 뇌신 효과가 너무 기대 이상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진짜 이게 문제가 될 줄이야.

지금 영봉성에 입성하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조정에 보고를…… 뭐라고 올려야 하지?’

얼마나 많은 승리를 하든, 조정의 녹을 먹는 신료의 고민이 이어졌다.

한 제국군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끝이 났으니, 이제는 무림의 차례였다.

“이제 뱀 잡을 땅꾼들이 나설 차례인가?”

적호단주가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투기를 드러냈다.

청룡단주와 흑살대주의 얼굴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무단주들을 보며 남궁진휘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죠? 조금 기다리셔야 할 듯한데.”

“뭐?”

“왜?”

“무슨 문제가 있나?”

말투는 달랐지만, 즉각적인 반응은 세 단주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제 숙부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남궁진휘는 청룡단주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도착했습니다.”

“혹시 제가 실수를 한 것입니까?”

무단주들의 모임에 진화가 빠질 수 없었으니.

남궁진휘의 말을 들은 진화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러자 남궁진휘의 고개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풍차처럼 돌아갔다.

“아니아니아니! 당연히 아니지. 우리 진화 덕에 우리 모두가 전열을 정비하고 휴식을 취할 시간을 얻었다는 말이란다.”

남궁진휘의 말에 진화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남궁진휘를 보는 세 무단주들의 눈빛이, 방금 남궁진휘가 무단주들을 보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 슬슬 저쪽에서도 뱀이 어디에 숨었는지 알았을 겁니다.”

남궁진휘가 아무렇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남궁진휘의 말에 적호단주와 청룡단주, 흑살대주는 물론 진화도 눈을 크게 떴다.

“뱀이 어디 숨었는지 아십니까?”

“뭐야? 혼현마제 놈이 숨은 곳을 알아? 그런데 왜 이렇게 돌아온 거지?”

“어디 있는지 알면 왜 이러고 있는 거요? 잔말 말고 바로 갑시다!”

진화의 말과 적호단주, 흑살대주의 말이 동시에 쏟아졌다.

남궁진휘는 당연하게도 진화만을 보았다.

“혼현마제가 숨을 곳을 찾는 건 간단했단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독부의 사랑이 지독하게 남았거든.”

남궁진휘가 씁쓸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검게 변한 요석산과 누렇게 죽은 숲이 이어진 산맥이 있었다.

“네가 언덕을 날려 버린 것 외에도, 독마제가 이전에 썼던 독과 마지막에 날린 독성이 모두 박죽산에서 팔봉산으로 향하는 길만은 피했더구나. 네가 언덕을 날려 버리지 않았어도 독성이 그곳으로는 가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

남궁진휘의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적이지만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사랑.

그 말이 딱 맞았다.

그에 남궁진휘가 다시 한번 씁쓸하게 웃었다.

“지독한 사랑이 진짜 독이 된 경우지.”

“그럼 지금까지 팔봉산 주변을 에워싸면서 신 제국을 기다린 것인가? 왜?”

“신 제국 영토까지 함락시키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일단은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슬쩍 우리가 쓸 전략을 보이면서 따라오게 한 거죠. 게다가…….”

잠시 뜸을 들이며, 남궁진휘가 모두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어쩐지 그 웃음이 천수현인과 제갈가주를 닮았다는 생각을 떠올렸을 찰나.

“뱀을 불러내려면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있어야지요. 검마제와 귀천성이라면, 미끼로 쓰기에 딱 좋지 않습니까? 후후후후후.”

“형님…… 제갈에서 나쁜 것을 배우신 듯합니다.”

“진화야!”

남궁진휘가 심한 욕이라도 들은 듯 몹시 서운한 목소리로 진화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화의 표정이 매우 단호했다.

“귀천성 놈들이 모레쯤이면 성급하게 움직일 겁니다. 우리는 귀천성이 흘린 피를 쫓을 겁니다.”

“준비하고 있지.”

남궁진휘의 말에 적호단주와 청룡단주, 흑살대주가 단숨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수현인 제갈길현과 비슷한 표정만큼이나, 남궁진휘의 책략에도 천수현인의 그것만큼의 신뢰가 쌓인 터였다.

* * *

유난히 안개가 짙은 밤.

휘이이이익--!

휘익! 휘-익!

바람 소리가 매섭게 지나가자, 검은 무복을 입은 귀천성 소속 무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목에 가느다란 붉은 선이 생겼다.

“컥!”

“무슨 소리…… 윽!”

휘—익! 휘익!

“헉!”

신음에 돌아본 다른 두 명의 무인들도 얼굴의 한가운데와 가슴이 미끄러지듯 갈라져 바닥에 떨어졌다.

스으으윽…….

귀천성 무인들의 조각난 시체를 중심으로 금세 흥건하게 피 웅덩이가 생겼다.

그 위로 은빛 실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은빛 실선에는 산수유 열매처럼 붉은 피가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스스스스슷……!

바닥에 고인 피가 은빛 실선을 타고 오르고, 땅은 금방 검게 메말랐다.

은빛 실선을 타고 오른 피는 뭔가가 끌어당긴 듯 나무 사이로 흘러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나무 사이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얼굴.

하지만 짙은 눈썹과 곧은 콧날이 눈에 띄는 단정한 인상, 소년과 청년 사이의 어린 사내였다.

“준비 없이 실행한 역천대법이라 혈정이 모자라는군. 아니, 그런 것치고는 회복이 빠른 건가? 확실히…… 젊고 건강한 몸이 좋구나. 후후후.”

나무 사이, 달빛 아래에서 수오가 야릇한 웃음을 보였다.

죽은 귀천성 무인들을 보는 수오의 눈이 피보다 붉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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