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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81)화 (381/425)

남궁마제

놀랄 진(唇) 불 화(火) : 넘어지는 순간(1)

팔봉산을 경계로 신 제국군과 한 제국군이 마주했다.

서로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군사들을 몰고 온 터라, 지휘부가 바로 코앞에서 마주 보았다.

“허어, 이거 참.”

위장군 원수경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신 제국군 진영을 보았다.

“팔봉산이라니…….”

“저쪽도 움직일 기미가 없고, 국경은 이대로 확정될 듯합니다. 정말 다행이지 않습니까?”

부장 이선명이 잔뜩 들뜬 얼굴로 말했지만, 위장군은 지금의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이대로 장안을 찾기도 전에 진국의 혼란이 정리되어 버렸으니, 조정에는 대체 무어라 해야 한단 말인가.

상황의 조기 종결로 신 제국군을 오래 붙잡고 있지 못하게 되었으니, 임무 실패로 죄를 청해야 할까.

아니면 예상을 뛰어넘은 활약으로 진국을 정복했으니, 조정에 공로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군에 대한 상과 치하를 요청해야 할까.

하지만 위장군의 복잡한 심경을 생각도 못 한 부장과 비장들은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국경을 지키는 동안 남해군이 남은 영토를 정복하면, 그야말로 진국의 삼분지 이를 삼키는 것입니다! 하하하, 완전 대승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사실 진국도 따지고 보면 신 제국의 영토가 아니었습니까. 별다른 희생도 없이 신 제국의 영토를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신제국 놈들 꽤 배가 아플 것입니다. 하하하하!”

부장과 비장들이 기뻐하는 소리를 들으며 위장군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장군이 진화를 보자, 부장과 비장들도 자연스럽게 진화에게 눈을 돌렸다.

“와. 이황자님이 무림 고수라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대단한 고수일 줄은 몰랐습니다.”

“들으셨습니까? 저 산봉우리도, 우리 황자님이 하신 거랍니다.”

“천하대장군이셨던 황제 폐하를 쏙 닮으셨습니다. 역시 폐하의 적통 황자…… 흡!”

눈치 없는 어떤 비장의 입을 급하게 막으며, 부장과 비장들의 시선이 위장군에게 향했다. 얼음처럼 굳어서 위장군을 눈치를 살피느라 그들의 대화도 뚝 끊겼다.

위장군은 이제야 마음 편하게 진화와 무림인들이 짐을 꾸리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판단은 조정에 맡겨야지. 공과 과는 모두 조정에서 판단하시겠지.’

따지고 보면 모든 공도 진화의 덕이었지만 모든 과도 결국 진화 때문이었다.

위장군 원수경은 조정의 녹을 먹는 관리답게, 책임을 윗선에 떠넘기기로 했다.

* * *

“설마설마했는데…….”

청룡단주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보았다.

“저 미친, 징글징글한 새끼들.”

적호단주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

강무련과 흑살대, 청룡단과 적호단 그리고 한 제국군 군사들까지,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마차’를 보았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이 꽃마차도.”

남궁구가 오랜만에 더 화려해져 나타난 꽃마차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비싼 패각으로 전면에 금모란을 새긴 화려한 마차가 완성된 옻칠을 자랑하듯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치 굴러다니는 패물함같이 화려하고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게 그 유명한 남궁세가의 금지옥엽 전용 마차입니까?”

당혜평이 꽃마차를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황실이 아니라 남궁진혜 부단주 거였나?”

“당혜군의 뒷조사를 하면서 알아낸 바로는 애당초 목적은 부단주를 가둬 두는 용도였던 듯합니다.”

“가둬 둔다고?”

“뒷조사 당시 당혜군의 말에 따르면, 쪽팔려서 마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할 목적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

당혜평이 전하는 정보에 청수검 무현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누이를 뒷조사하다니, 사천당가도 여러 사정이 많아 보였다.

“하하, 어쨌든 남궁세가가 하나밖에 없는 영애를 무척 아끼는군.”

청수검 무현이 어떻게든 상황을 잘 모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에이, 무현 도장도 참. 누가 봐도, 척 봐도, 저건 우리 도련님 전용이죠.”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은 우리 공자님이십니다.”

“…….”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단호한 대답에 청수검 무현은 진짜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현은 더 이상 속세 세가들의 복잡한 사정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졌다.

위장군과 군부도 남궁세가가 보내온 꽃마차를 보고는 진화의 이동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그렇게 진화와 무림인들이 떠날 준비를 마쳤다.

비단으로 두껍게 깐 안락한 꽃마차에는 진화와 남궁진휘 외에는 누구도 타려 하지 않았다.

남궁진혜조차 답답하다는 이유로 마차에 타지 않았다.

“둘이 오붓하게 가겠구나.”

“예, 형님.”

흐뭇하게 웃으며 하는 말과 달리 남궁진휘의 손에는 금세 군사부에서 보내온 업무용 서류들이 들렸다.

그런 남궁진휘의 모습을 보며 진화야말로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금세 업무에 집중하는 남궁진휘를 보던 진화가 슬쩍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계속 진화의 신경을 거스르며 남궁진휘를 관찰하던 시선이 있는 곳이었다.

‘송마문주라고 했던가. 건방진 시선 치워.’

진화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 번개가 번뜩였다.

진화가 송마문주에게 보낸 첫 번째 경고였다.

한 제국 진영의 바로 앞, 신 제국 진영.

송마문주는 내내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던 남궁진휘를 지켜보고 있었다.

괴상한 마차에 남궁진화와 함께 오르는 것을 확인하는 것까지 괜찮았는데,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남궁진화에게서 매서운 살기를 받고 말았다.

“허! 사나운 사냥개가 지키고 있군.”

송마문주가 웃으며 물러섰다.

정사연합 무림인들이 떠나는 것을 보니, 남은 한 제국군을 상대로 뭔가 일을 벌여 볼까 하는 옹심이 솟았다.

하지만 이젠 그들도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문주님, 차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검마 님부터 뫼셔라.”

“충.”

송마문주는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한 제국, 황제의 집무실이 있는 장추궁.

장안과 진국을 비롯한 제국 전역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조정을 여는 때가 아니더라도 황제의 집무실에 중신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장계와 보고가 그들에게 전해졌다.

“허어! 이게 정말이라고?”

황제가 기가 막힌 듯 보고를 들고 온 중서령 사마윤에게 내용을 확인했다.

하지만 중서령 사마윤도 기가 막히긴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진국이 곧 점령될 것이라는 의미인 듯한데…….”

“허어, 허허허허.”

영동군으로 내려갔던 위장군 원수경이 보낸 보고를 읽은 중서령 사마윤이 말끝을 흐리고, 대사농 정조인은 그저 웃음만 나오는 듯했다.

“진국을 모두 점령하는 데에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저…….”

황제의 물음에 중서령 사마윤이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대사마 원희가 덤덤하게 말했다.

“진국의 점령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는 것보다 신 제국군이 장안으로 올라가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심이 옳을 듯합니다.”

옳지 않은 소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못한다는 대사마 원희가 중서령이 내놓지 못한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천장(天將)이라 불릴 정도로 유능한 장군이었던 황제가 앞으로 있을 전쟁 양상에 대해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으니.

“어차피 우리와 신 제국의 국경이 정리되어 버렸습니다. 뒤쪽에 남은 지역들이야 신 제국과 고립되어 그곳들을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아마 신 제국도 그걸 알고 군을 장안으로 옮기고 있겠지요.”

눈치도 없고, 거리낌도 없는 대사마 원희의 답에 황제가 그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에 한쪽에서 웃고 있던 승상 조위례가 나섰다.

“허허허허, 어찌하겠습니까, 기대보다 뛰어난 공로를 세운 군을 치하하지 않을 수도 없고.”

“아니, 위장군은 다 알 만한 사람이 일을 이런 식으로…….”

“폐하.”

황제가 볼멘소리를 다 마치기도 전에 승상 조위례가 나지막이 그의 말을 잘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의 스승이자 장인이며 적통 황자의 외조부인 조위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장군도 그 지역 소수민족들이 이황자님을 뇌신으로 알고 섬길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싸워서 점령한 곳보다 스스로 항복해 온 곳이 더 많다고 합니다. 하필 황자님의 무공이 뇌전과 관련된 것도 어찌 보면 운명이었던 게지요.”

“후우, 황룡금패를 괜히 준 모양이오. 위장군이 군의 주도권을 내주자마자 이런 일을 벌인 것을 보면 말이오.”

조위례가 위장군을 두둔하면서 하는 말에 황제도 한숨을 쉬며 수긍했다.

“황룡금패의 쓰임을 알려 주라 했는데…….”

“허허허, 우리 생각이 틀렸던 게지요. 황자 저하께서 패의 쓰임을 잘 알고 계셨던 듯합니다. 군의 주도권을 거의…… 강탈하다시피 하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과연 폐하의 아드님이십니다. 허허허허허!”

“끄응.”

승상 조위례가 황제를 놀리는 듯 유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아들이 공을 세웠고 그 모습이 아비를 닮았다는데 그걸 아니라고 하기도 뭣한 터라, 황제는 놀림을 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저 앓는 소리만 내었다.

다른 신료들은 황제의 눈치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

“어쨌든, 공을 세운 군에는 치하를 보내고 장안의 일은 조금 더 서둘러야겠소.”

“공성 무기와 군량미를 좀 더 보내겠습니다.”

“남부군의 경계 지역을 늘리고 호북 쪽 군대를 올려 지원군을 끌어모아 보겠습니다.”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국의 중신들이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놓았다.

이 또한 신 제국 조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 * *

양청현.

전 정의맹, 현재는 정사연합 본부로 운영되는 곳으로 진화와 남궁진휘를 비롯한 무단주들이 들었다.

“독마제와 혼현마제의 시체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죽음은 확실합니다.”

“독마제는 시신마저 독화하고, 혼현마제는…… 저놈이 시체도 없이 가루로 만들었다고? 흘흘흘흘, 그거 꼴좋다! 흘흘흘흘!”

“…….”

남궁진휘의 보고는 형식적이었고, 이미 과정부터 결과까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천수현인 제갈길현은 혼현마제의 비참함 말로를 듣고 정말로 기쁜 듯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숙청단, 적호단, 청룡단, 흑살대 모두 수고했네. 며칠 휴식을 취하고 다음 임무에 나서야 할 것이네. 본인들 때문에 장안의 사정이 급해졌으니 싫다고는 안 하겠지?”

천수현인이 심술궂은 표정으로 진화와 무단주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말처럼 누구 하나 싫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렴요. 장안에 있는 새끼들한테 원수를 갚아 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흑살대주가 제일 먼저 답했다.

교역이 많고 사람들이 많은 장안에는 종남을 비롯한 정파 외에도 사파 세력 역시 함께 어우러진 곳이라, 이번이 아니라 이전 전쟁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장안 지역에 있던 사파 세력이었다.

그때 살아남은 사파 세력 대부분이 사패천에 합류했으니, 사패천 입장에서도 장안의 수복은 무척 고대하던 일이었다.

“장안과는 인연이 있죠.”

“전쟁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호전적이기로 유명한 적호단과 청룡단도 물러나 있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반면, 숙청단주인 진화는 그 옆에서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으니. 천수현인의 시선이 진화에게 향했다.

“자네는 할 말 없나?”

“……있으면 들어주십니까?”

“아니.”

진화의 되물음에 천수현인이 단호하게 답했다.

“에잉! 그래도 젊은 놈들이 빨딱빨딱 패기가 있어야지. 재미없구먼. 이게 다 네놈 때문이지?”

“하하하하! 형전제전(兄傳弟傳)이라잖아요.”

“하여튼, 지 할아비 닮아서 하나같이 재수라곤 없는 놈들! 쯧!”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남궁진휘에게 슬쩍 눈을 흘기자, 남궁진휘가 발뺌도 하지 않고 덥석 받았다.

천수현인의 괴팍한 말투에도 남궁진휘가 불편해하지 않고 웃어 보이니. 두 사람은 오랜만에 주고받는 농담이라 더 즐거운 듯 보였다.

천수현인의 괴팍한 말투와 경박한 태도에 얼어 있던 다른 무단주들도, 남궁진휘와 함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가 봐! 좀 쉬다가 전부 장안으로 날아가! 자네들 덕에 거기 가 있는 늙은이들이 고생하게 생겼으니.”

천수현인의 축객령에 진화와 무단주들이 웃으며 집무실을 나왔다.

진화가 정의맹을 나오자마자 숙청단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도련님.”

“단주!”

진화와 함께 움직였던 남궁구, 남궁교명, 강무련, 나하연을 비롯해서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팽가 형제, 당혜군, 초서비, 군조, 황청산과 이천평도 함께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여느 때처럼 당혜군이 툴툴거리고 군조의 친절함에 남궁구가 학을 떼는 모습이 오랜만에 정겹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서 더, 한 사람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현오는 어디 갔나?”

“그래, 뚱뚱땡중이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진화의 물음에 남궁구가 맞장구를 치며 현오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왜 그러지? 혹시 시주단의 고기를 훔쳐 먹다가 징벌방에라도 갇힌 건가?”

대답을 망설이는 팽수의 모습에 남궁교명이 그가 생각하기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예시를 들었다.

그런데 남궁교명의 말을 들은 팽수, 팽신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못했다.

“더 나쁘다.”

“징벌방 대신 징벌인에게 끌려갔달까.”

“징벌인?”

더 궁금하다는 듯 진화와 일행의 눈이 커졌다.

그에 당혜군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글쎄, 그 땡중이 시주단에서 만두를 훔쳐 먹다 걸려서, 성승에게 잡혀 끌려갔대요, 장안으로!”

“…….”

남궁교명은 설마 제 말이 맞았을 줄 몰라서, 다른 사람들은 너무도 현오다운 일이라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뭐, 어차피 우리도 곧 장안으로 갈 거니까.”

진화는 거기서 더 이상 현오의 일을 캐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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