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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85)화 (385/425)

남궁마제

놀랄 진(唇) 불 화(火) : 넘어지는 순간(5)

옥허신검 청연이 검마제 백천흠을 처음 만난 건 이십오 년 전이었다.

역천마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태극혜검대 삼백을 이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잃었다.

역천마제를 찾아 헤매는 사이, 그때까지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젊은 검수에게 모두 당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

하늘은 어디 있고 도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째서 이 비참함은 끝이 없단 말인가.

옥허신검 청연이 제자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짐승처럼 울었다.

도를 잃고 슬픔과 증오에 사무쳐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그때 묵빛 검에 무당검수들의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백천흠이 나타났다.

“네놈이…….”

옥허신검이 피눈물을 흘리며 백천흠을 노려보았다.

그는 온통 검은색이었다.

검은 머리칼, 검은 눈, 묵빛의 검.

어둡고 삭막한 눈빛과 온몸으로 뿜어내는 사악한 기운.

마치 세상의 어둠이 뭉쳐서 생겨난 인간 같았다.

그의 어둠이 옥허신검마저 집어삼킬 것 같았다.

실제로 옥허신검 청연은 제자들의 복수에 눈이 멀어 태극혜검을 펼쳤고 그 대가로 백천흠의 묵빛 검에 왼팔을 잃었다.

“청연-!”

뒤늦게 달려온 제왕검의 목소리에 다음 일격을 준비하던 백천흠이 덤덤한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았다.

잘려 나간 팔에서 피를 흘리며 저를 노려보는 옥허신검을 보던 백천흠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마치 지금 당장 옥허신검을 죽이지 않아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다는 태도.

그 잔인한 구명이 한동안 옥허신검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그로부터 이십오 년 후.

쉐에에에엑---!

아주 오래도록 기다린 순간이었다.

복수와…… 잃어버렸던 길을 과연 제대로 찾았는가 하는 확인.

옥허신검 청현의 검이 태극을 그렸다.

팔을 크게 휘돌아 태극의 반쪽을 그리자, 나머지 반쪽이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양의현강?’

검마제의 눈이 커졌다.

양의현강은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도가 내공심법의 최고 경지로서, 인간이 본디 타고난 음양의 조화를 깨달아 현문선천지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지라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확실히 알려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검마제는 옥허신검 청연의 검을 보며 자연스럽게 양의현강을 떠올렸다.

‘그동안 그냥 조용히 물러서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군.’

파-팟!

태극에서 솟아난 수십 개의 검기가 검마제에게 쏟아졌다.

검마제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독무신검 주작비상-!

끼아아아아-!

검명과 함께 묵빛 검기가 거대하게 피어올라 불길로 된 날개처럼 옥허신검의 검기를 향해 날아들었다.

퍼—엉!

파파파파팟! 파팟! 펑!

태극에서 쏘아진 수십 개의 새하얀 검기가 주작의 날개를 찢고, 검은 불길은 태극의 검기를 태우듯 덮어 버렸다.

막상막하.

누구도 상대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것을 안 옥허신검과 검마제가 동시에 움직였다.

탁. 탁. 탁. 탁.

벽을 타고 마주 보며 달리던 그들은 상대를 향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쉑쉑쉑쉑쉑-!

펑펑펑펑펑!

태극혜검 제팔초 구십이변, 선유음도(先由音道)-!

독무신검 백호침강!

감히 범인은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검기가 끊임없이 부딪혔다.

성벽이 부서져 나가고 뿌연 돌가루 연기가 피어오르고서야 사람들은 옥허신검과 검마제가 어디에서 부딪히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묵빛 검기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빠른 일섬이 옥허심검의 목을 노리고, 검이 움직이는 소리보다 먼저 닿은 검기가 검마제의 발을 떨어뜨렸다.

툭.

성벽을 타고 달리던 검마제가 옥허신검의 검기를 피해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또다시 섬광이 검마제의 등을 노렸다.

채—앵!

검마제가 뒤로 검을 휘두르고.

마침내 묵빛 검마제의 검과 새하얀 옥허신검의 검신이 맞닿았다.

이십오 년 만에 옥허신검과 검마제도 아주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검술이 더 발전했구나.”

“당신도. 한쪽 팔만 남은 것치곤 그때보다 낫군.”

채---앵!

팟! 팟!

서로 거리를 벌린 옥허신검과 검마제가 망설임 없이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앵!

“하지만 검술뿐이로구나. 왜 기(氣)에 대한 깨달음이 더딘 것이냐? 내가 아는 너는, 검술뿐 아니라 세상 모든 무를 통달할 만한 천하제일의 천재였다.”

“나는 지금도 천하제일이다!”

챙! 챙! 챙!

인간의 육체가 그릴 수 있는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어, 검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그런데 왜 진짜 천하제일인이 되지 못했느냐? 역천마제 때문인가?”

“닥쳐라!”

카----앙!

옥허신검의 어떤 말이 검마제의 폐부를 찔렀는지.

검마제의 눈빛에 살기가 맺히고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허어, 너도 아는구나.”

카앙! 캉!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꽃이 커졌다.

옥허신검과 검마제 두 사람 다 일 검, 일 검에 내공을 불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뒤는 생각하지 않고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독무신검 현무강하-!

태극혜검 제구초 백변 운무태동(運無泰動)-!

퍼---엉!

“우아아악-!”

거대한 기의 폭발에 휘말린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거나 중심을 잃고 휘청이다 쓰러졌다.

카-앙! 캉! 캉!

검마제가 삼 장가량 일어난 거대한 묵빛 검강을 휘둘렀다.

마치 사형수를 앞둔 망나니처럼 혹은 죽음을 부르는 악귀처럼. 거칠고 살기 가득한 검이 아슬아슬하게 옥허신검의 목을 노렸다.

그에 맞선 옥허신검은 구름 사이를 나는 매처럼 빠르고 자유롭게, 발톱을 내고 하강하는 매처럼 강력하게 몸과 검을 움직이며 검마제와 부딪혔다.

그사이.

“무당검수들은 들으라! 구궁검진(九宮劍陳)을 펼친다!”

“충!”

무당제일검 청수검 무현의 명에 따라 태극혜검대가 빠르게 움직였다.

구궁팔도를 그리며 휘두르는 검이 쏟아지는 화살 비를 굳건하게 막아 냈다.

그리고 마침내 청수검 무현이 두 번째 성문을 향해 검을 휘두를 기회를 잡아냈다.

쉐에에엑-!

태극혜검 제육초 칠십이변 구혼탈백(勾魂奪魄)--!

태극혜검은 전반 육초로 천하를 오시하고 후반 삼초가 전반 육초의 빛을 잃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수한 검술인 동시에 후반 삼초의 위력이 더 많이 알려진 검법이었다.

하지만 무당의 모든 묘리가 후반 삼초 삼십육변에 담겼다 한들, 전반 육초의 파괴력을 절하할 순 없었다.

그중에서도 제육초 칠십이변은 도가에서 가장 파괴의 힘이 큰 검법이었다.

퍼어어어어엉---!

청수검 무현의 한 수에 성문이 여덟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무당검수들은 성벽 위의 적들을 섬멸하라-!”

청수검 무현의 말에 무당검수들이 삼 인 일 조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사람의 검을 밟는 식으로 순식간에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물론 청수검 무현이 제일 먼저 성벽에 올라 다른 검수들이 올라올 수 있도록 자리를 정리했다.

쉐에에엑---!

“우아아아악”

“사, 살려 줘!”

곧 성벽에 오른 무당검수들이 매섭게 병사들을 죽여 나갔다.

* * *

쉐에에엑-!

펑! 펑! 펑!

“저건……!”

청수검 무현의 검에서 빛나는 새하얀 검강을 확인한 수신방주 장배경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검강! 창천화룡 남궁진화 외에도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경지를 밟았구나!’

수신방주와 눈이 마주친 송마문주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송마문주는 수신방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뿐 아니라, 그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대가 달라진 거네. 우리가 팔마제의 자리를 노릴 만큼 성장했듯, 정파 놈들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 만만찮은 전쟁이 될 것이네. 이번에 우리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지.”

송마문주의 말에 수신방주가 이전보다 훨씬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퍼벙! 쾅! 쾅!

검마제와 옥허신검의 싸움.

상대에게 닿지 못한 검기가 사방의 벽을 때리고, 다른 성벽의 세 배 정도는 단단한 장안성 성벽이 크게 흔들리고 부서졌다.

‘옥허신검 청연, 한쪽 팔밖에 없는 늙은이가 꽤나 끈질기군. 그래, 그렇게 싸움을 키워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어모으는 거다!’

송마문주의 바람처럼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세 번째 문이 열린 그곳으로 향했다.

좌수를 잃은 옥허신검 청연의 무공이 송마문주의 예상을 웃돌았지만, 검마제가 질 거라곤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검마제 님께서 최대한 소란을 키워 주신다 하셨으니까.’

송마문주는 지금의 이 소란도 검마제가 일부러 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용히 이곳에서 대기한다.”

“충.”

송마문주와 수신방주는 검마제와 옥허신검의 싸움에 사람들의 정신이 팔린 사이, 빠르게 세 번째 벽에 있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벽, 일곱 개의 문 중에서 아직 열리지 않은 두 번째 문 앞에 송마문과 수신방의 무사들을 대기시켰다.

“우리도 준비하지.”

“그러지.”

송마문주와 수신방주가 두 번째 문 옆으로 조용히 몸을 숨겼다.

펑! 펑! 퍼-----엉!

기다렸다는 듯 굉음과 함께 문이 부서지고 소림 나한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송마문주와 수신방주가 곧바로 움직였다.

* * *

장안성 앞.

십만의 군사들이 한 제국기와 적호기를 펄럭이며 도열해 있었다.

사납게 이를 드러낸 적호기를 보는 순간부터 적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는 적호군, 한 제국 최강의 군대였다.

그들은 명성답게 대장군 하후충의 부재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거기에는 대장군 하후충은 물론 병사들 모두가 신뢰하는 부장군단의 존재 때문도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장군의 무위와 병력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하후충의 부장군단, 그중에서도 세 사람은 특별했다.

호아맹부(虎牙猛斧) 하후필.

하후충의 장남으로, 범의 송곳니라 불릴 만큼 하후가의 용력과 체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용맹한 장수이자 공격부대를 이끎에 있어서는 아버지 하후충의 운용 능력을 넘어섰다 평가받는 지휘관이었다.

호조맹창(虎爪猛槍) 하후선.

하후충의 차남으로, 범의 발톱이라 불리며 하후가 사내들 중에서도 그 용력과 체격이 으뜸이라 힘과 무위에 있어서는 아버지 하후충에 필적한다고 평가받는 장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후충의 부장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신궁신병(神弓神兵) 표충선.

대장군 하후충과 지금의 적호군을 만들어 낸 군사 운용의 천재이자, 한 제국에서 실력만 보자면 벌써 대장군에 올랐어야 했다고 평가받는 지휘관이었다.

대장군 하후충의 조금 부족한 전술과 운용 능력을 완벽하게 보완하며 적호군의 명성을 완성시킨, 지금까지도 그의 오른팔로서 실질적으로 적호군을 운용하고 있는 장수였다.

대장군 하후충의 깃발을 표충선이 들고 있는 한, 적호군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가면 되겠습니까?”

포충선의 물음에 남궁진휘가 짐짓 놀란 듯 되물었다.

“지금 제게 물으신 겁니까?”

“허허허, 이번 전투는 군사의 전략에 따른 것이니 끝까지 따라야지 않겠습니까.”

표충선의 너스레에 남궁진휘가 빙그레 웃었다.

은근히 느껴지는 투기를 보니, 하후대장군과 성승, 옥허신검을 자극하기 위해 했던 말을 마음에 담아 둔 게 분명했다.

주인을 위해 화를 내는 충신은 남궁진휘도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원한을 사도 상관없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잘 구분하는 것일지도.

“하후대장군과 장군이시라면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지언정 장안성을 뚫었을 겁니다. 저는 다만 우리 무림인들과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법을 알려 드렸을 뿐이지요. 이제부터는 장군과 적호군의 시간입니다.”

“허허허, 군사께서 그렇다 하시니 그럼 이 사람의 판단으로 나서 보겠습니다.”

남궁진휘의 겸손한 말에 표충선이 허허롭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기세가 돌변했다.

“전군! 두 번째 문이 깨지는 순간 돌진한다! 신 제국군 놈들을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충! 충! 충! 충!”

표충선의 외침에 적호군 전체가 응답했다.

절도 있는 외침이 전군을 울리다 못해 지축을 흔들며 장안성까지 기세를 넓혀 갔다.

‘이게…… 제국 최강의 군대인가!’

무림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장엄한 기세에 남궁진휘의 눈 끝이 가늘게 떨렸다.

기다란 뿔이 달린 투구를 쓴 하후필, 하후선 형제가 말을 몰고 가장 앞으로 나섰다.

퍼------엉!

기다렸던 폭발음과 함께 일곱 문 중 절반이 부서졌다.

아직 문이 부서지지 않는 곳도, 성벽 위에 적호단과 청룡단, 흑살대 무인들에게 병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이제 성벽 위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 가자아----!”

뿌우---!

뿔나팔 소리와 하후필의 사나운 외침과 함께.

“우아아아아아아-----!”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과 진동을 시작으로 적호군이 장안성 벽을 향해 달려갔다.

혼란하고 위태로운 장안성의 상황과 흙먼지를 구름처럼 피워 올리며 용맹하게 돌진하는 적호군의 모습을 지켜보며.

남궁진휘가 뭔가 걸리는 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일이 너무 쉬워. 이렇게 전개될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들의 방어가 너무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야. 그렇게 단순한 자들이 아니었는데…….”

남궁진휘는 진국에서 팔봉산을 포위하려는 그의 생각을 좇아오던 신제국군을 떠올렸다.

독마제의 독성을 보고 혼현마제가 팔봉산에 있다는 걸 스스로 추리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쫓아오지 못했을 전략이었다.

즉, 어느 정도 머리를 쓸 줄 아는 군사가 있다는 건데…….

“이번에는…… 왜지?”

남궁진휘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장안성의 광경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변수가 느껴진 곳은 검마제와 옥허신검이 있는 곳이었다.

쿠----웅!

검마제의 거대한 묵빛 강기에 옥허신검의 신형이 밀려나다 못해 성벽에 부딪힌 것이다.

순식간에 검마제의 신형이 옥허신검의 앞에 당도했다.

남궁진휘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눈을 크게 떴다.

그때.

새파란 번개가 검마제의 검에 떨어졌다.

“진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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