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386)화 (386/425)

남궁마제

놀랄 진(唇) 불 화(火) : 넘어지는 순간(6)

누구나 한 번쯤 크게 넘어지는 순간이 있다.

넘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지만, 결국은 누구나 넘어질 수밖에 없다.

넘어진다는 것은 ‘어어!’ 하며 알아차려도 이미 중심을 잃어버린 후이거나 너무 빨리 달리느라 한계를 넘어 버렸다는 의미라, 결국은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살갗이 조금 까지는 정도로 툭툭 털고 일어날 것이고, 누군가는 크게 다쳐서 오래도록 힘이 들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난 이후다.

훌훌 털고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갈 수도.

왜 넘어졌는지 알고 다신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쓸 수도.

어느새 요령을 터득하고 달려갈 수도.

혹은 그대로 누운 채 엉엉 울 수도 있다.

사람마다 선택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일어서야 한다.

어쩌면 일찍 걸음마를 배우며 수도 없이 넘어지는 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넘어진 다음은 일어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처럼 각인시켜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실수라는 것도 그렇다.

‘아차!’ 싶은 순간 실수라는 걸 깨달을 수도 있고, 치명적인 결과가 벌어질 때까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원히 실패하지 않고 단지 ‘실수’로 그치기 위해선, 많은 선택지 중에서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었다.

무엇보다 무림에서 실수와 실패는 생과 사만큼이나 아득하게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적세방주 화강군 원길이 창천화룡 남궁진화를 얕본 건 분명 실수였다.

하지만 분명 기회는 있었다.

그는 푸른 뇌전이 장안성 외벽을 모두 가르는 걸 보았을 때 도망쳤어야 했다.

아니, 진화의 뇌전이 두 번째 벽의 문을 날려 버리는 걸 봤을 때도 늦진 않았었다.

그러나 적세방주 화강군 원길은 실수로 족했을 여러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고,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으니.

그 대가는 참혹했다.

쉐에에에에엑--!

“아아아아악!”

화강군 원길이 비명을 질렀다.

투툭.

바닥에 화강군 원길의 양팔이 떨어졌다.

진화의 검이 거대한 기운을 뿜어 대던 화강군 원길의 양팔을 베어 버린 것이다.

“아아아악! 내 팔! 내 팔! 아아…… 컥! 컥…….”

사방에 피를 뿌리는 원길을 보며, 진화는 가차 없이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새파란 검강을 품은 의천검이 소리도 없이 그의 목을 지나고, 원길은 비명을 지르다 말고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렀다.

그의 목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제 죽음을 믿지 못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 * *

챙! 챙!

세 번째 문이 열리고 무당검수들이 성벽의 병사들을 죽여 나가는 때에도.

검마제와 옥허신검 청연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영원히 이승과 멀어질 참이었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채--앵!

“…….”

“…….”

말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소리에조차 낭비할 기운이 없었다.

‘무서운 영감. 좌수를 잘랐더니 양의현강을 가져와? 어떻게 그때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지?’

검마제는 젊은 시절 오만했던 자신의 처사를 후회했다.

그때 옥허신검을 죽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지금이라도……!’

검마제가 기운을 끌어 올렸다.

중원 도문 중 최고라는 무당의 검법과 자타공인 천하제일 검수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검법.

둘 중 어느 것이 우위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다.

무당의 오랜 역사만큼 광대한 무공의 범위나 깊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옥허신검이 펼치는 태극혜검과 검마제의 독무신검을 비교하자면 그러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검마제는 기에 대한 깨달음이 양의현강의 경지에 이른 옥허신검보다 자신이 앞설 수 있는 건 역시 힘과 기세뿐임을 알았다.

채-앵!

“큿!”

옥허신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팽팽한 힘의 대치가 깨어지면서 검마제가 옥허신검을 튕겨 내듯 밀어낸 것이다.

옥허신검이 아무리 양의현강의 경지에 올라 절대적인 내공의 차이를 절묘한 운용으로 메운다고 해도, 검마제보다 늙고 왜소한 신체적 열세에 좌수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기회를 포착한 검마제는 늑대가 사냥감에 송곳니를 박아 넣듯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에엑---!

검마제의 독무신검 백호섬강이 옥허신검을 검과 함께 날려 버렸다.

퍼----엉!

“커헉!”

옥허신검의 신형이 성벽으로 처박히고.

충격을 받은 옥허신검이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것이 옥허신검을 죽이지는 못했다.

검마제는 옥허신검의 목숨을 끊어 놓기 위해 곧바로 달려들었다.

“스승님!”

청수검 무현의 목소리가 외벽에 울렸다.

그와 동시에.

파지지지지직--!

콰—앙!

하늘에서 떨어진 푸른 번개가 검마제의 검을 때리고,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검마제가 그대로 튕겨 나갔다.

탓. 탓. 탓. 탓. 탓.

검마제는 다섯 걸음을 더 물러서고서야 겨우 멈췄다.

누구의 손 속인지 알 것 같았다.

당금 무림에서 이토록 푸르고 위력적인 뇌전을 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남궁진화.”

천천히 문을 지나 들어오는 진화를 보며 검마제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검마제가 슬쩍 눈을 돌려 옥허신검을 확인했다.

“스승님! 크흑!”

피를 토하고 쓰러진 옥허신검을 청수검 무현이 끌어안고 있었다.

‘옥허신검은 더는 싸우지 못하겠군.’

검마제는 내심 안도했다.

옥허신검이 남궁진화를 도울 수 없다면 싸울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진화의 뇌전이 검마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파팟--!

퍼—엉!

천뢰제왕검법 무수전뢰가 검마제가 딛고 선 땅을 뚫고 나왔다.

검마제가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피하긴 했으나, 땅이 폭발한 여파로 몸의 중심이 흔들리는 건 피하지 못했다.

그 사이로.

쉑! 쉑! 쉑! 쉐에에에엑--!

화살처럼 사방에서 날아든 푸른 뇌전이 검마제에게 꽂히듯 쏟아졌다.

펑! 펑! 펑! 펑! 퍼-엉!

검마제가 검을 휘둘러 뇌전을 막았다.

검마제의 기운과 함께 뇌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진화는 그 틈마저 파고들었다.

퍼억-!

“큿!”

쉐에에엑! 챙! 챙!

제왕검과 옥허신검 이후 검수들이 늘어난 것처럼 무림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는데, 남궁세가도 그때그때 윗전들에 따라 무풍이 변했다.

현재 남궁세가는 효율과 실리를 중시하는 제왕검과 남궁제일검인 남궁경의 무풍을 따라 검뿐 아니라 박투까지 싸움에 모든 기술을 동원했다.

진화 또한 천뢰제왕검법에 천뢰지, 폭뢰신권을 섞어 공격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진화는 영리하게 검을 미끼처럼 활용해서 검마제의 주의를 끌어낸 다음 왼 주먹으로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퍼---억!

“큭!”

금강불괴의 몸이라 한들, 뇌전이 번뜩이는 주먹에 당한다면 내기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쉐에에엑--!

챙! 챙! 챙!

젊고 건강한 신체에 폭발적인 힘, 화려하고 강력한 검술. 그리고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한 기의 운용까지.

검마제와 대등하게 싸우던 진화는 조금씩, 조금씩 옥허신검과 싸우느라 지친 검마제를 몰아붙였다.

“옥허신검이 쓰러진 것을 보고 안심했나?”

“……!”

진화의 물음에 검마제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검마제는 그가 표정으로 속내는 전부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에 진화가 눈꼬리를 접으며 싱긋 웃었다.

“뭐야? 이제 당신도 알아차렸나?”

“…….”

검마제는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진화의 공격을 받고 옥허신검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부터 위험에 빠진 것이다. 그의 무의식은 그걸 알고 있었다. 

* * *

펑! 펑! 펑!

성승이 콧김을 뿜으며, 화를 풀어 내듯 금강붕산권을 풀어 냈다.

그러자 폭수문주 곡해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그의 공격을 흘렸다.

“이런 니미 미꾸라지 같은 놈-!”

“허허, 뒷짐만 지고 있던 이전의 내가 아니외다!”

누가 명망 높은 고승이고 누가 악명 높은 마두인지.

성승은 머리끝까지 달아오른 얼굴로 사나운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폭수문주 곡해는 마치 무당의 노도장 같은 고아한 풍모로 성승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폭수문주 곡해의 별호는 백골수(白骨手)였다.

폭수문주 곡해가 새하얗게 변한 손으로 집요하게 성승의 급소를 노렸다.

폭수문주 곡해의 얼굴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자신이 십이좌회 고수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이제까지 역천마제가 이상한 운명론에 휩쓸려 팔마제를 정하지 않았다면 자신 또한 십이좌회 고수들만 한 명성을 가졌을 거라 확신했다.

폭수문주 곡해가 구태여 성승과의 대결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증명(證明).

혼현마제를 비롯해 이제 귀천성에 팔마제라는 것이 유명무실해진 지금, 폭수문주 곡해는 자신을 증명하여 마땅히 올라야 할 자리, 가졌어야 할 명성을 가지고 싶었다.

“만(萬), 력(力), 필(必), 살(殺)-!”

“허어! 지, 룰, 마, 라--!”

퍼퍼퍼퍼퍽-!

펑! 펑! 펑! 퍼---엉!

새하얀, 불길한 기운이 풍기는 하얀 수십 개의 손바닥이 끊임없이 성승을 때렸다.

성승은 금강붕산권을 펼치며 새하얀 기운 하나하나에 주먹질을 해 댔다.

일견 몹시 비효율적으로 보였지만, 성승은 폭수문주의 손가락 하나까지 씹어 뱉어도 성에 차지 않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성승이 싸우는 방식에 대해선 소림 나한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대신, 각우와 금동백팔나한은 날아드는 화살로부터 성승과 현오를 보호했다.

성승이 폭수문주와 싸우고 있는 동안, 현오가 금강여력장으로 성문을 부수고 있었기 때문이다.

퍽! 퍽! 퍽! 퍼-억!

성문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성문을 이루던 나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퍽퍽퍽퍽! 퍼---엉!

현오가 두 번째 문을 부수었다.

“사부님, 부쉈습니다!”

현오가 화색을 지으며 외쳤다.

“좋아!”

현오의 말을 들은 각우도 잠깐 표정을 풀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심각한 얼굴로 소리쳤다.

“나한들은 성벽 위를 정리한다!”

“오-옴!”

각우의 명과 함께, 금동백팔나한 몇몇은 원숭이처럼 성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고, 몇몇 이들은 서로의 몸을 발판 삼아 높다란 탑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이 나한들로 만들어진 탑을 차례로 밟고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이제 저도……!”

성문을 연 현오가 저도 나한들과 같이 성벽을 오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현오는 갑자기 뒤통수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몸을 비틀었다.

퍼-억!

현오가 몸을 돌린 자리에 단검이 박혀 있었다.

놀란 현오가 고개를 돌리자,

펑! 펑! 펑! 펑!

현오를 둘러싸고 노란 부적이 터지는 동시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그 사이로 뭔가가 현오를 덮쳐 왔다.

“흣!”

당황한 현오가 손을 뻗어 저를 옭아매는 것을 치우려 했지만, 억지로 뭔가를 치우려는 순간 따끔한 고통과 함께 비릿한 혈향이 풍겨 났다.

용화대수미신공이 흩어지는 것과 함께 그의 손이 찢어진 것이다.

현오가 혼란스럽고 놀란 눈으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나지막한 목소리가 현오의 귓가에 들렸다.

“소용없을 것이오. 특별히 항불력이 걸린 황수금력부를 써서 만든 그물이니까. 얌전하게 잡히는 것이 좋을 거요.”

현오가 놀란 눈으로 저를 노린 목소리를 보았다.

동시에 현오의 눈앞이 깜깜하게 변했다.

“현오……야!”

멀리 다급한 각우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신 제국 대륜궁.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쟁과 관련한 소식이 전령과 전서구를 통해 전해졌다.

진국의 사태가 끝이 나고, 신 제국 조정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진국은 사실상 신 제국의 영토였다가 배신자들에게 빼앗겼던 땅이다.

그랬던 곳을 한 제국과 나누는 것조차 반가운 일이 아닌데, 진국 영토를 삼분지 일밖에 가져오지 못했다.

신 제국 조정은 이것에 대해 진국 영토 삼분지 이를 한 제국에 빼앗긴 것이라 생각했다.

“파별군 대장군 조유찬을 불러들여 벌을 내리시고 적어도 영봉군까지의 영토는 되찾아와야 한다는 신료들의 상소이옵니다.”

“상소라……. 지금 장안의 전쟁으로 병력을 뺄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복건주가 전하는 상소에 역천마제가 상소는 보지도 않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역천마제가 신 제국 황궁에 나타났을 때, 아니 근래에 등극식에서 보였던 신위를 기억하는 복건주는 등 전체가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곧장 허리 숙여 사과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천마제가 복건주를 살려 둔 것은 제국의 운영에 있어 유능했기 때문인지라, 그것을 아는 복건주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해내야 함을 알았다.

“하오나 폐하, 지금 당장 장안의 일로 병력 이동이 어려운 것은 한 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다 유능한 장수로 하여금 교주 교역을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육림군까지는 얻는 것이 제국을 위해 옳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

신료들의 상소에 심기가 불편해 보이던 역천마제는 복건주의 차분한 설득에 찡그린 미간을 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역천마제는 신료들이 뭐라 지껄이든 그가 내린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흐흐, 영토를 내주는 것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예?”

역천마제의 말에 복건주가 저도 모르게 멍청한 얼굴로 되묻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 역천마제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교주? 육림군? 아니, 설사 장안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땅 따위, 한 제국을 없애고 천하를 가져온다면 구태여 귀찮은 영토전을 벌이지 않아도 내 손에 들어올 것들이다.”

“하, 하오나 폐하, 장안은…….”

“아-니!”

복건주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역천마제가 큰 소리로 그의 말을 잘랐다.

역천마제가 소리를 높이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라 복건주가 놀란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로 역천마제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장안에서 한 제국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도시! 그딴 건 상관없다. 내 힘! 내 모든 힘을 온전히 쓸 수 있다면 한 제국 황성으로 가서 황제와 모든 인간들을 죽이고 천하를 갖는 건 문제도 아니니까! ……허허허, 걱정 마라. 자질구레한 영토 따윈 금방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

역천마제의 말에 복건주가 푹 숙인 고개 아래로 인상을 구겼다.

영토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면 대체 이 수십만 목숨을 버리는 전쟁 따윈 왜 벌였단 말인가!

한 제국이 쳐들어온 전쟁이지만 물러설 수 없으니 싸워야 했다. 그런데 황제라는 작자가 도무지 죽어 가는 병사들과 그 병사를 유지하기 위해 죽어 가는 백성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복건주는 속이 뒤집어지는 듯했지만 꾸욱 참고 물었다.

“폐하, 미천한 소신에게 알려 주시옵소서. 진국도 아니고 장안마저 중요치 않다시면, 그럼에도 장안에서 싸울 이유는 무엇인지요?”

“허허허허, 천하를 가지기 위해서다. 그곳에 짐의 진짜 힘이 있으니. 그걸 가져오기 위한 전쟁이라! 그대가 모른 것처럼 정사연합 놈들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넘어지는 걸 알았을 때는 모두 늦은 것이지. 허허허허허!”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니까.

역천마제는 제 생각이 이뤄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복건주의 질문에 기분 좋게 답해 주었다.

“…….”

복건주는 역천마제의 말에 달리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그대로 대전을 나왔다.

“하아…….”

밖으로 나온 복건주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온통 이기고 가질 생각밖에 없군. 군사, 백성, 자신의 수하들과 신료들마저 안중에도 없으니. 제 일을 위해서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자로다!’

복건주는 일그러진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한숨을 쉬며 표정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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