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다스릴 화(話) : 제국의 분노(1)
정사연합 본부.
본래 정의맹 소속 무단들의 숙소와 연무장이 있었던 정무원(正武院)에는 현재 적호단과 청룡단, 주작단 그리고 흑살대가 있었다.
그들은 장안에서 돌아온 후 아무런 임무가 주어지지 않아서 모처럼 개인 수련을 하며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군사부에서 조용히 단주들을 찾았다.
“드디어 올 게 오는군.”
주작단주 구화검 구격용이 반갑게 일어섰다.
그 모습에 적호단주가 슬쩍 주작단주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 알고 있나?”
“알긴. 그냥 본부 경비도 안 맡기고 조용하기에 뭔가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자네들이야 장안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주작단은 지난 임무에서 돌아온 지 꽤 되었거든. 중요한 임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대기시킬 리 없잖아?”
“아, 그렇군.”
주작단주의 말에 적호단주와 청룡단주, 흑살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부의 명을 전하러 온 군사의 뒤를 따라 총군사의 집무실을 찾은 네 사람은, 그들의 예상대로 중요한 임무를 전달받았다.
* * *
총군사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바로 보이는 건 산처럼 많은 문서와 죽간이었다. 그리고 그 문서의 산을 넘고 나면 비로소 그 속에 파묻혀 있는 군사들이 보였다.
“윽!”
네 단주들의 표정이 대번에 질렸다.
피로가 쌓이다 못해 누렇게 뜬 얼굴과 눈 밑의 검은 그림자가 홍랑대부 초산하의 분칠마저 뚫고 나올 정도라, 뭐가 되었든 군사들의 얼굴을 보고서는 쉽게 그들이 주는 임무를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제까지는 그러했었다.
“송마문이라니…….”
“그럼 현오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신 제국 황궁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에 대한 구출 계획은 없는 겁니까?”
청룡단주가 뭐라 말을 하기 전에 적호단주가 끼어들어 따지듯 물었다.
덩치와 달리 눈치가 빠른 적호단주는 따로 현오에 대한 구출 계획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대번에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현오는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는 겁니까? 소림도요? 현오가 누군지 잊으셨습니까? 역천마제의 최종 제물입니다. 이렇게 느긋하다가 수오의 몸을 혼현마제가 빼앗은 것처럼 현오도 그렇게 될 수 있단 말입니다!”
적호단주가 성을 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숙청단으로 분리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현오를 포함하여 모두 적호단원이었다.
지금도 숙청단원들은 적호단과 함께 숙소를 쓰고 있었고, 적호단주에게도 그들은 심정적으로 여전히 ‘내 새끼들’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적호단주는 현오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신 제국 황궁을 터는 임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나설 기세였다.
“허어…….”
적호단주의 모습에 천수현인과 제갈가주가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고 홍랑대부와 남궁진휘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음? 뭔가…….’
기대했던 반응과 다른 군사들의 모습에 적호단주가 눈동자를 굴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허어,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내버려 두면 신 제국 황궁까지 쳐들어갈 기세구먼.”
“후후후, 그게 적호단주의 매력이 아니겠습니까.”
천수현인이 혀를 끌끌 차며 적호단주를 노려보자 홍랑대부가 웃으며 적호단주의 편을 들었다.
“매력은 무슨. 저러니까 여태 장가를 못 갔지. 망나니 같은 놈!”
“아니, 지금 무슨 말을…….”
“닥쳐, 이놈아! 네놈도 생각하는 걸 우리가 모르겠어?”
천수현인의 적나라한 앞담화에 적호단주가 반발하려 했지만, 성질머리라면 천수현인이 한 수 위였다.
“미친 멧돼지 같은 놈이 가만 놔두면 새끼 멧돼지 죄다 이끌고 갈 꼬라지구먼. 왜? 아예 신 제국 황궁으로 쳐들어간다고 하지?”
“못 갈 건 또 뭐 있습니까?”
“이 또라이야-! 거기 누가 있는지 몰라?”
“끄……음.”
괜한 반항심에 말대꾸를 했다가 욕지거리를 얻어먹은 적호단주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붉어지도록 흥분한 천수현인은 콧김을 뿜으며 적호단주를 노려보았다.
“역천마제의 손에 떼죽음을 당하는 것만큼 개죽음이 없다. 무의미한 죽음이야! 백명회와 매화성검, 취선, 풍선, 검왕에 독제까지…… 시체조차 찾지 못한 절대고수들이다. 직접 죽인 놈들은 다를지라도 전부 역천마제 그놈 손에 내장이 끊어지고 기혈이 뒤틀린 채 싸우다 그리 죽었어. 저 위층에 똥 멋 부리고 앉아 있는 제왕검 놈도 두들겨 맞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고!”
“…….”
역천마제의 강함이야 모르는 이가 있던가.
그런데 왜, 지금, 이제 와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적호단주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났다.
“설마…… 함정입니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적호단주의 물음에 주작단주와 청룡단주, 흑살대주의 눈이 커졌다.
그들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눈치를 챈 것이다.
적호단주는 물론 세 명의 단주들도 답을 원하는 듯 천수현인을 보았다.
네 쌍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천수현인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이번 임무를 맡기면서 이야기를 해 주려고 했던 일이었다.
“개죽음은 피해야지. 놈을 확실하게 죽일 방법을 찾는 것이다.”
“현오 그놈도요?”
“……수천, 수만의 목숨 아니, 어쩌면 전 무림을 위한 대의였다.”
“…….”
끝까지 현오를 위한 방법이라곤 하지 못했다.
결국 현오의 희생을 각오한 것이다.
천수현인의 말에 네 명의 단주가 할 말을 잃었다.
적호단주와 주작단주, 흑살대주는 눈시울과 코끝을 붉혔다.
그나마 청룡단주만이 냉정함을 유지했다.
“최악의 상황은 대비를 한 것입니까? 구출이 늦어져서 현오가 역천마제에게 몸을 빼앗기게 되는 상황에는 어찌 되는 겁니까?”
“그때야말로 최악의 상황이겠지. 그런 상황이 되어도 역천마제가 현오의 몸을 가지는 일은 없을 걸세.”
천수현인의 단호한 대답에 청룡단주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까지 각오하고…… 크헙!”
“킁, 그 뚱뚱하고 순해 터진 놈이…….”
주작단주와 적호단주가 잔뜩 붉어진 눈으로 콧물까지 훌쩍이자 천수현인이 못 볼 걸 봤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뚱뚱한 건 상관없잖아. 그리고 그놈이 뭐가 순한가, 천살성인데?”
“그래도 고귀한 희생정신이지 않습니까!”
천수현인의 딴지에 주작단주가 울컥 소리를 높였다.
적호단주는 이전보다 더 사나운 얼굴로 천수현인을 노려보았다.
“킁. 적호단, 청룡단, 주작단, 흑살대는 물론 숙청단 녀석들까지 나서는 임무라면서요. ‘그놈’이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특히 네놈은…… 괜찮나?”
적호단주가 남궁진휘를 콕 집어 물었다.
남궁진휘가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남궁세가에 이런 말이 있죠. 허락을 받는 것보다 용서를 받는 것이 쉽다.”
적호단주가 말하는 ‘그놈’이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창천화룡 남궁진화의 무용이 당금 무림의 최대 화제인 것도 그렇지만, 진화에 대해 알려지면서 정의무학관에서부터 이어 온 진화와 현오의 우정 또한 제법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게 네놈의 말처럼 그렇게 쉬울지 모르겠군.”
적호단주가 입술을 이죽이며 말했다.
오랜만에 정말로 곤란해 보이는 남궁진휘를 놀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대의든 뭐든 이해는 합니다. 우리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놈’은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미 많은 것을 빼앗긴 터라, 귀천성에 뭔가 빼앗기는 것에 발작하듯 나설 겁니다. 제 사람이라면 특히요. 송마문이든 뭐든 다 죽이고 볼 겁니다.”
적호단주가 모두를 둘러보다가 천수현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경고를 하듯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수현인이 당당하게 눈빛을 마주했다.
“그러라고 주는 임무일세. 함정이든 유인이든 뭐든, 그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게. 그렇게 놈들의 숨통을 조여 들어갈 것이네.”
천수현인의 말에 적호단주는 물론 세 단주들이 눈을 크게 떴다.
“자네들이 일을 크게 벌이는 동안 우리는 따로 역천비지를 찾을 거네. 현오, 그 애송이 땡중을 위해서라도 어디 한번 제대로 판을 벌여 보자고.”
천수현인이 두 눈을 번뜩이며 무단주들의 투기를 독려했다.
* * *
낙양 인근의 관저현.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은 현지에서 합류했다.
남궁경이 따라오려고 하고 팽연화와 황후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기색을 펄펄 풍겼지만, 황궁에서 탈출할 기회를 진화가 놓칠 리 없었다.
순한 눈망울을 꿈벅이며 겨우 관저현에 도착한 터였다.
“현오는 어찌하는 것입니까?”
관저현에 도착하자마자 현오의 일부터 묻는 진화의 모습에 적호단주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남궁진혜나 다른 숙청단원들에겐 ‘기밀’이라는 이유를 들어 대답을 피해 왔지만, 같은 단주인 진화에게는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진화만 조용히 불러 군사부에서 들었던 계획에 대해 말해 주었다.
“현오도 알고 동의한 일이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대책도 마련되어 있는 모양인데, 그게 현오에게 좋을 것 같진 않더군. 결국 남은 방법은 이 계획을 잘 수행해서 역천마제를 죽이는 게 최선이다.”
“…….”
적호단주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진화는 굳은 얼굴로 한참 말이 없었다.
아니, 적호단주가 진화에게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진화가 뭔가 말을 꺼내기 전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일단 이번 임무를 해결하고 이야기하지. 송마문은 분타가 중원 곳곳에 퍼져 있는데, 관저현이 그중 한 곳이라는군. 다른 곳에는 청룡단과 주작단, 흑살대가 갔다. 우리 계획은 분타든 함정이든 뭐든, 놈들의 씨를 말리는 거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기색이 강했지만, 일단 진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적호단주는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그렇게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가자, 곳곳에서 호기심 혹은 의혹 어린 시선들이 그들에게 꽂혀 들었다.
적호단주는 그런 시선을 모르는 척 대뜸 소리를 질렀다.
“최대한 크게 일을 벌인다! 인정사정없이 싹 쓸어버리는 거다!”
“오오오-!”
“추—웅!”
적호단주의 말에 적호단과 숙청단 단원들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방금 적호단주를 왜 쳐다보았는지 잊은 듯했다.
‘단순한 놈들.’
적호단주가 고개를 돌려 고소를 삼켰다.
관저현 외곽에 있는 마을에서도 외곽.
사람들에게 이상한 소문이 난 곳이었다.
“무덤의 시체를 파 가거나 사람들에게 돈을 죽고 죽은 사람을 산다더군.”
“시신을요?”
“처음에는 시독(屍毒)을 만드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백매단이 조사차 잠입했을 때엔 산 사람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있었다더군.”
“으윽!”
적호단주의 말에서 전해지는 잔인함에 남궁진혜가 얼굴을 와락 찡그렸을 때, 진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년독수를 만들고 있었나 보군요.”
어릴 적부터 줄기차게 보았던 장면이었다.
검고 진득한 늪과 같은 독수가 있는 구덩이에 사람들을 밀어 넣고, 그러면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사람을 밟고서 몇 날 며칠을 발버둥 쳤다.
애원하는 소리와 비명, 짐승 같은 울음소리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걸 원망하는 소리들.
제물 양육실에 있던 아이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었다.
영악한 현오와 진화는 어느 순간 자신들은 구덩이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 전까지 구덩이는 제물 양육실 아이들의 악몽 같은 존재였다.
‘현오…….’
진화는 구덩이를 떠올리며 당연한 듯 현오를 떠올렸다.
“원수를 죽인 느낌은 어떤가?”
자연스럽게 현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네는 광마제의 제물, 나는 역천마제의 제물. 따지자면 광마제야말로 자네의 진짜 원수라 할 수 있지 않나. 자네를 제물로 만든 장본인이니까.”
진화가 그러했듯 현오 또한 역천마제의 제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진화는 그런 현오를 이해했다.
현오도 오직 진화만이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우리가 비정상적인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상하다는 건가?”
“……그냥 사람은 전부 제각기 다른 거라고.”
“하긴 부처님께서 보시기에 우린 다 똑같이 손바닥에 올려놓을 정도로 작고 이상한 것들이겠지? 흐흐흐.”
현오가 ‘우리’라고 부르는 사람은 진화밖에 없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소림과 사형제들조차 현오는 ‘나와 내 사형제들’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내 사형제들’이라고 한 것이 중요했다.
진화가 남궁세가를 생각하는 마음 그대로 현오 또한 소림을 그렇게 생각했다는 의미니까.
같을 순 없어도 기꺼이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니까.
진화가 구덩이를 떠올리며 제물 양육실의 현오를 같이 떠올리고 있을 때, 앞서 정찰조로 나간 적호단 일 조가 신호를 보내왔다.
‘가자!’
소리 없이 적호단주가 주먹을 들었다.
진화도 곁에 있던 숙청단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앞으로 뛰어나갔다.
쉐에에엑-!
파파파파파파팟-----!
땅에 번개 모양을 새기며 앞으로 나가는 거대한 뇌전에, 적호단과 숙청단 단원들이 놀란 눈을 떴다.
적호단주마저 눈을 크게 뜨고 진화를 보았다.
파팟-! 펑! 펑!
“우아아아악!”
퍼---엉!
땅속에서 솟구친 번개에 아담한 척하고 있던 장원의 입구가 송두리째 터져 나갔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송마문 학사들은 진화의 뇌전을 맞아 번뜩이는 빛 속에서 온몸의 골격을 자랑해야 했다.
쿵. 쿵.
겨우 형체만 알아볼 법한 시커먼 잿덩어리들이 바닥에 다 떨어지기도 전에 진화가 장원 안에 들어갔다.
쉐에에에에에엑--!
번---쩍
하늘에서 진화에게 번개가, 아니 진화의 검에서 하늘을 향해 번개가 번뜩였다.
“크아아아아악!”
진화의 뇌전이 사방으로 뻗치며 스치기만 해도 지독한 화상을 남겼다.
“뭐, 뭐 하나! 숙청단주가 다 죽이기 전에, 아니, 다치기 전에 놈들을 죽여라!”
“숙청단주가 다쳐요?”
“젠장! 저놈, 눈 돌아갔잖아!”
“아, 예!”
전장에서 이성을 잃으면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도 다치기 십상이었다.
적호단주의 말이 있기 전에 이미 남궁구와 남궁교명, 나하연이 진화의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적호단주의 명을 받은 적호단은 혹시 진화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적들을 한시라도 빨리 죽이기로 했다.
“어휴, 저 애송이.”
적호단주가 진화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데, 실제로는 애송이라고 하기에 너무 강해져 버렸다.
콰과광----콰—앙!
진화의 손에 전각 하나가 무너지고, 재빠른 숙청단원들이 도망치는 송마문 학사들의 목을 베었다.
“으아아악!”
“아악!”
장원의 뒤쪽 산으로 도망치는 송마문 학사들을 본 진화가 천뢰제왕검법 낙엽을 휘둘렀다.
쉐에엑! 쉐엑! 쉐에에엑!
파파파파파팟---!
“크아아악-!”
전각과 나무를 피해 날아든 뇌전이 도망치는 이들의 등에 박혔다.
세상 어느 것보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렸다.
제물 양육실에서 진화나 현오가 내지르던 비명과 비슷했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겠지. 소림을 위해서라면!’
진화는 현오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광마제를 죽이면서 생각했지. 복수가 끝이 아니라고.”
“복수가 끝이 아니라고?”
“놈들을 다 죽이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살겠다고 생각한다.”
“그,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뭐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가!”
진화의 답을 들은 현오는 그때 크게 웃었다.
정말 부럽다는 얼굴을 하고서.
쉐에에엑-!
천뢰제왕검법 현뢰일섬--!
파파파파파파파팟-!
펑! 펑! 펑! 펑!!
두더지처럼 산 곳곳에 굴을 파 놓은 입구들이 전부 내려앉았다.
터지는 소리가 산 깊숙이에서 들려오는 것을 보면 동굴 입구가 무너지면서 그 안쪽도 무사하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쿠쿵-! 쿵! 쿠----웅!
굉음과 함께 지축이 떨리기를 한참, 견디다 못한 산 전체가 무너졌다.
한 칸 내려앉듯 산 중턱이 내려앉은 것이다.
“미, 미친!”
적호단원들은 물론 숙청단까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내려앉은 산을 보았다.
적호단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진화가 검을 거두고 돌아오며 적호단주에게 말했다.
“역시 저는 그 계획에 찬성하지 못하겠습니다! 현오를 구해야겠습니다!”
“……미, 친, 놈, 네 마음대로 해.”
적호단주가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겨우 욕지거리를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