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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98)화 (398/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용루가 떨어지는 날(3)

어두운 밤.

달빛 아래 거대한 마차와 수레, 일련의 사람들이 신 제국 황도를 빠져나갔다.

검은 마차에 장식된 황금이 달빛에 번쩍이고.

마차에 있는 황금룡을 알아본 복건주가 대전 앞에서 그들이 빠져나가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복건주는 결국 그 마차를 세우지도 못했다.

“승상, 이제 어찌합니까?”

복건주의 뒤에 선 신료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황제가 황궁과 신료들을 버리고 떠나는데, 복건주라고 해서 달리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 황제가 결국 우릴 버렸군.”

“승상!”

복건주의 말에 신료들의 눈이 커졌다.

복건주가 모두의 앞에서 버림받았음을 인정했다.

“황제가 황궁과 신료를 버린 것은 곧 이 제국과 백성을 모두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

나지막한 목소리.

황궁을 빠져나가는 마차에서 마침내 돌아선 복건주의 눈빛은 상처받은 짐승처럼 독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는 실망스러워서 힘이 빠진 것이 아니라 악을 품고 간신히 분노를 억누른 것이었다.

“문을 열게.”

“예?”

“황궁만이 아닐세. 국경의 모든 관문을 열라 전하게.”

“스, 승상, 어, 어찌하려 그러십니까!”

복건주의 말에 신료들이 경악했다.

그들을 향해 복건주는 오히려 여유를 찾은 사람처럼 웃어 보였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네. 우리 사천과 교주 호족들이 언제부터 황제 따위에 의지했다고. 황제가 우릴 버렸다면, 우리 또한 황제를 버리면 되는 것이네.”

복건주의 말에 신료들이 눈이 커졌다.

하지만 곧 그들 또한 복건주처럼 눈빛에 독기를 품고 단호해졌다.

전대 황제가 죽었을 때부터 신료들의 중심은 무림인인 황제가 아닌 복건주였다.

아니, 신 제국의 근본부터가 한 황실을 버린 사천과 교주의 호족들이었다.

복건주이 말처럼 처음으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신료들이 단단해진 얼굴을 하고 물었다.

“쓸 만한 줄 알았던 사냥개가 목줄을 끊고 나갔으니, 그건 그것대로 맹수를 유인하도록 써먹어야지. 국경을 전부 열어서 한 제국 이황자와 무림 놈들이 역천마제와 귀천성을 쫓도록 한다. 그사이 우리는 익주현으로 가지.”

복건주의 말에 신료들의 눈이 번뜩였다.

익주현이라면 그들이 처음 한 제국에 반기를 들며 숨어들었던 익주성이 있는 곳이었다.

첩첩산중에 입구를 막으면 사방에 통하는 길이 없고 대군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더더욱 없는 천혜의 요새라, 한 제국군을 피해 호족들을 지켜 줄 수 있을 것이었다.

“황성도 비울 것입니까?”

“역천마제가 너무 금방 잡혀서도 안 되니까. 우리가 준비할 시간은 끌어 줘야지. 이황자가 황성에 와서 역천마제의 부재를 확인하는 시간 정도면 될 것이네.”

“그……렇군요.”

“빠짐없이 차비하게.”

“예.”

복건주의 말에 신료들의 눈이 탐욕스럽게 빛났다.

성도에 쌓아 놓은 재물은 물론 황성에 있는 것들까지 모조리 가져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신료들이 전부 바쁘게 흩어지고, 혼자 남은 복건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기와에 한 제국의 황궁만큼이나 화려한 대전을 지나 역천마제가 도망치며 활짝 열어 놓은 황궁의 문까지…….

‘내 말하지 않았나, 제국이 있어서 황제가 있는 것이라고. 제국이 무너져야 한다면, 황제 또한 그 운명을 함께해야지!’

복건주가 싸늘한 눈빛으로 돌아섰다.

* * *

밀려 내려오는 한 제국의 대군에 신 제국 전체가 동요했다.

북쪽의 하후대장군과 적호군은 등장만으로 신 제국군을 압도했다.

“무, 문을 열어라!”

“예?”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비장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하지만 비장의 말은 바뀌지 않았다.

“열라고! 중앙에서 내려온 지시다!”

“예, 예!”

비장의 고함에 병사들이 움직였다.

병사들이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급히 성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병사들이 달라붙어 성문을 열 즈음엔, 그들의 머릿속에 단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싸, 싸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싸울 의지를 잃고 기세에서부터 진 싸움이었다.

대등한 전력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하후대장군과 적호군이라니.

병사들은 성문을 열면서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포로나 노예가 될 테지만, 일단 살았으니 말이다.

“기, 깃발은 어떻게 할까요?”

성벽에 남아 있던 병사가 비장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미 성벽이 열리고 있으니, 병사의 얼굴은 초조했다.

그건 비장도 마찬가지였다.

‘성문을 열라곤 했지만 항복하라곤 하지 않았는데……. 에이, 그 말이 그 말이지! 싸우지도 않고 성문을 열었는데 그게 항복이 아니고 뭐겠어? 우리도 살아야지!’

비장도 살고 싶었다.

망해 가는 제국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살아 있는 노모와 가족들이 우선이었다.

비장은 굳은 얼굴로 손수 백기를 걸어 올렸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신 제국 전역에서, 겁에 질린 신 제국의 군이 기다렸다는 듯 백기를 걸고 성문을 열어 한 제국군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낙양을 향해 가던 역천마제와 귀천성 일행이 네 번째 관문을 지날 때였다.

그들은 텅 빈 관문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왜 아무도 없지?”

활짝 열린 성문에 병사들이 한 명도 없었다.

겁에 질린 신 제국군이 장수고, 병사고 할 것 없이 관문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됐다, 신경 쓰지 말고 지체 없이 나간다!”

“예.”

송마문주는 당황하는 이들에게 길을 재촉했다.

교주와 장안에서 대패를 한 뒤 신 제국군의 사기가 크게 무너졌음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이탈이 일어날 것은 예상한 일이었다.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고 좀 놀라긴 했지만, 크게 충격을 받을 것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한 제국군이 이곳까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도망을 쳤다고? 단순히 겁을 먹은 부대의 일탈인가, 아니면…….’

송마문주는 황궁을 출발할 때부터 내내 느껴지던 불길함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병사들을 쫓거나 이유를 조사할 시간이 없었으니, 그저 앞을 향해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다시 다섯 번째 관문을 지날 때였다.

“문주님!”

송마문 학사 하나가 송마문주를 부르며 성문 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송마문주가 눈을 크게 떴다.

잘 보이지도 않는 자리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깃대와 흰색 천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백기(白旗)라니!”

부대 하나의 일탈이 아니었던 것이다.

배신이었다.

“복건주……!”

송마문주가 이를 갈며 복건주의 이름을 짓씹었다.

송마문주는 이제야 그가 황성에서부터 느꼈던 불길한 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도 중요한 건 지체 없이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송마문주가 급히 역천마제의 마차로 붙었다.

“주군, 중앙에서 항복하고 관문을 열라는 지시를 내린 듯합니다.”

“중앙에서?”

“복건주가 배신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관문을 열어 한 제국군이 주군을 쫓도록 한 듯합니다.”

“허허허허허, 그자의 꾀가 보통이 아니긴 했지.”

송마문주의 말에 마차 안에서 역천마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심각한 송마문주와 달리 역천마제는 귀찮은 장난에 걸린 듯 여유로웠다.

“곡해.”

“예, 주군.”

역천마제의 부름에 폭수문주 곡해가 마차로 다가왔다.

“후방을 맡아라. 귀찮은 떨거지가 붙으면 모두 죽여라.”

“……존명.”

역천마제의 명에 읍하며, 폭수문주 곡해가 슬쩍 송마문주를 보았다.

혹시 꼬리라도 따라붙으면 폭수문은 역천마제와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또 가장 큰 공을 송마문주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 송마문주를 보는 폭수문주의 눈빛이 곱지 못했다.

“송마문주.”

“예, 주군.”

마차 안에서 이를 알 리 없는 역천마제가 곧바로 송마문주를 찾자, 폭수문주의 눈빛엔 살기마저 스쳐 지났다.

하지만 송마문주는 폭수문주의 경계심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송마문주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한 제국군과 정사연합의 눈을 피해 준비한 여정을 완벽하게 마치는 것뿐이었다.

“남은 성도들을 적절하게 움직여 놈들의 길목을 막아라. 대업에는 결코 차질이 없어야 한다.”

“존명.”

역천마제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송마문주는 수레에 실어 온 전서구들을 신 제국 전역으로 풀었다.

그러나 송마문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건주의 의도는 완벽하게 통했다.

* * *

신 제국군은 복건주나 송마문주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관문을 열고 항복했다.

한 제국군은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빠르게 신 제국 안으로 진군했다.

그리고 정사연합 무인들의 걸음은 그보다 더 빨랐다.

정사연합 무인들은 군과 함께할 필요가 없어지자, 군의 속도에 맞추던 것을 멈추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 정사연합 군사부의 정보력과 예측력이 빛을 발하니.

정사연합 무인들의 파상공세에 귀천성 문파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쫓아라-!”

“저기 있다-!”

제왕무적단이 숲을 내달렸다.

귀천성 소속 철령모가가 이곳에 터를 내리고 숨었다는 고혼암풍단의 정보에 따라 그들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우리가 눈에 들어온 놈들 놓치는 거 봤어요?”

“이 개새끼들. 양주에서 여기까지 튀어?”

남궁경은 진화와 끝까지 함께하길 원했지만, 그렇다고 남궁세가를 대표해서 이번 임무에 뛰어든 주제에 남궁세가의 원수들을 다른 곳에 맡길 수도 없었다.

물론 그런 책임감이나 양심의 문제를 다 떠나서도 ‘복수’는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것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남궁세가는 양주를 지켜 내며 본가를 빼앗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희생이 적었던 건 아니었다.

철령모가는 양주 안에서 남궁세가를 배신하면서 전쟁 중 남궁세가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곳이었다.

양주에서 남궁세가가 승리한 뒤, 남궁세가의 눈을 피해 귀천성 깊숙이 숨어들었었다.

“모복-신! 너 잘 걸렸다, 이 배신자야-!”

남궁경이 철령모가의 가주 모복신을 발견하고 두 눈에 불을 켰다.

“빌어먹을 놈들!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난…….”

“문답무용!”

모복신의 말보다 남궁경의 인내심이 먼저 끝났다.

퍼어어어억-!

“크아아아악!”

쿵!

거대한 푸른 기둥이 검과 함께 모복신을 날려 버렸다.

모복신도 검강을 펼치며 남궁경의 검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지만, 검과 함께 날려 버리는 남궁경을 완력까지 버티진 못한 것이다.

“안 물어봤어, 새끼야.”

남궁경이 쓰러진 모복신을 보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모복신의 귀에 들리라는 듯 제왕무적단에게 소리쳤다.

“뭐 하냐! 단 한 놈도, 배신자의 씨를 남겨 두지 마라!”

“추-웅!”

제왕무적단의 우렁찬 대답 소리와 함께 비린내 나는 피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남궁경 또한 비틀거리며 일어선 모복신을 향해 살기를 폭발시키며 달려들었다.

“꺄아아아악-!”

“으아악!”

곳곳에 비명이 울렸다.

여인의 비명과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그들도 예외 없이 제왕무적단의 칼날 아래 쓰러졌다.

이후 또 귀천성과 같은 적이 생겼을 때 남궁세가의 등 뒤를 노리는 이들에게 경고가 될 수 이도록, 남궁경과 제왕무적단은 복수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남궁세가만이 아니었다.

귀천성이라는 불현듯 나타난 적에게 가족과 집, 조상 대대로 이어 온 모든 터전을 잃고 밀려난 사건은, 모든 무림 문파들에게 커다란 악몽을 남겼다.

이 싸움은 모든 정사연합 무인들에게 단지 복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가족과 세가, 문파의 명운이 걸린 싸움에 정사연합 무인들은 승리를 위해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움직였다.

남궁세가처럼 자체적인 정보처가 없는 문파들은 정사연합 군사부의 정보력을 이용했다.

귀천성의 영역인 사천과 교주는 산지에 둘러싸여 천혜의 요새로 자리했지만, 그건 다른 의미로 혼자 고립되기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사연합 군사부는 제일 먼저 산지에 동떨어진 귀천성 문파들을 각개격파하면서, 계속해서 귀천성 문파들을 상대로 수적 우위를 유지하도록 계획을 짰다.

또한 그들의 위치와 도주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예측함으로써.

“이, 이 비겁한 놈들……!”

범학문주 설범 허창현이 거설산 아래에 까맣게 자리한 사패천 무인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사패천 흑수파와 녹림의 호걸들이었다.

그들은 범학문이 산을 내려와 다른 귀천성 문파들과 힘을 합하기도 전에 거설산을 에워싸고 그들을 고립시켰다.

아니, 애초에 범학문을 도와줄 수 있는 문파도 없었다.

다른 문파들의 사정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잡아라--!”

“죽여!”

챙! 챙챙--!

“젠장! 이 지독한 계집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쉐에에엑--!

“이 악귀 같은 놈들! 지옥으로 떨어지거라!”

변화무쌍한 복호구검이 매섭게 귀천성 무인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금정신니는 귀천성 무인들을 향해 저주 섞인 악담도 서슴치 않았다.

지난 날 아미파가 본산에서 도망치며, 수많은 제자들이 귀천성 무인들의 손에 죽음까지 유린당했던 원한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숲과 꽃이 아름답다던 아미산에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하지만 아미파 제자들의 검엔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악귀의 피와 살도 아미산의 거름이 될 것이다! 적어도 살아 있는 네놈들보다는 세상에 도움이 되겠구나!”

쉐에에엑---!

파팟!

아미산을 되찾은 아미파가 귀천성 문파들을 밀고 올라갔다.

그리고.

“어딜 급하게 가지?”

“네놈들도 이제 끝이다!”

도망치는 귀천성 문도들의 앞에는 당문과 청성파를 위시한 사천 무림 문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천마제도 없고, 혼현마제처럼 그들에게 체계적으로 지시를 내려 줄 구심점도 없었던 귀천성 무인들은 혼비백산 뿔뿔이 사천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무림의 가장 큰 축 중 하나인 사천 무림이 다시 정파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사연합 군사부의 계획은 이제 시작이었다.

* * *

삐이이이이----.

매응이 남궁진휘의 팔에 내렸다.

전서를 확인한 남궁진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계획대로 신 제국이 물러섰답니다.”

“빌어먹을 놈. 기어이 쳐 오는 모양이군.”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흥분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천수현인의 눈동자 속에 오랫동안 묵은 살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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