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결말(1)
안으로 들어간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제일 먼저 찾은 건 현오였다.
“이런, 아해야! 어쩌자고!”
제갈길현이 낭패한 얼굴로 제단을 향해 날아갔다.
“감히!”
역천마제가 천수현인 제갈길현을 향해 강기를 날렸다.
하지만 제왕검이 재빨리 그 강기를 검으로 베었다.
“네놈이야말로!”
쉐에에엑--!
퍼-----엉!
가볍게 나눈 일수만으로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그사이, 사패천주의 패천아랑도가 역천마제의 뒤를 노렸다.
콰광-!
챙! 챙챙챙!
기운이 부딪히고 깨지는 여파가 동굴 전체를 뒤흔들고.
송마문주가 만년독수에서 현오를 꺼내고 있는 현학문주 운송선생과 천수현인 제갈길현을 보며 사색이 되었다.
“안 돼! 막아라!”
쉐에에에엑-!
송마문주의 외침보다 빨리 푸른 검기가 송마문주의 앞을 갈랐다.
“누구? 너, 넌, 남궁진휘!”
쉐에에엑-! 쉐엑-!
“윽!”
“크어억!”
펑! 펑!
“으아아악!”
송마문주가 남궁진휘를 알아보고 경악했지만, 그사이 남궁진휘는 역천대법을 위해 서 있던 송마문 학사들을 빠르게 죽여 나갔다.
“이놈---!”
“내 새끼한테 놈놈 하지 마! 이 미친놈아!”
콰과광---! 콰앙!
남궁진휘를 향해 손을 뻗는 역천마제의 앞을 제왕검이 막아섰다.
제왕검이 가른 검은 기운이 동굴 양쪽으로 튕겨 나가며 다시금 동굴 전체를 흔들었다.
스스스슷. 스스스…….
위태로운 천장의 흔들림에 모두가 멈춰 섰다.
“…….”
“…….”
역천마제가 동굴 한가운데서 제왕검을 노려보았다.
제왕검 또한 등 뒤에 남궁진휘를 두고 역천마제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반대쪽에는 천수현인 제갈길현과 현학문주 운송선생이 만년독수에서 현오를 건져 내고 그를 보살피고 있었다.
폐에 들어찬 독수를 토해 내게 하고 독기가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막은 뒤, 소림대환단을 녹여 현오의 입에 흘려 넣었다.
소림이 현오를 위해 대환단을 내준 것도 놀라웠지만, 필요하다면 제갈세가의 연소단과 연학문의 현해단, 의선문에서 받아 온 소생단까지 아낌없이 사용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현오의 안에 가득 찬 독기로 인해 어떤 영약도 몸속에 퍼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아해야. 조금만, 조금만 참을 것을. 조금만 견딜 것을…… 미안하다. 미안하다.”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돌덩어리처럼 굳은 현오의 몸을 추궁과혈하며 조금이라도 기운을 움직여 보려 애를 썼지만, 현오의 몸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럴수록 천수현인의 마음만 급해졌다.
곁에서 운송선생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 * *
타, 타, 타, 타, 탓-.
역천마제가 움직이고, 제왕검과 사패천주가 동굴 벽을 타고 역천마제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파팟-!
퍼-----엉!
콰광! 쾅!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십 번의 공방들이 오가더니 동굴 안에 있던 석주가 부서졌다.
그사이, 천수현인과 현학문주가 현오를 데리고 동굴을 나갔다.
“안 돼! 저자들을 막아라!”
“멈춰라!”
송마문주의 명에 송마문 학사들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남궁진휘가 사나운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엑-! 쉐에에엑!
“크-앗!”
“헉!”
창궁무애검법 산개호행(散開蝴行)이 가장 앞에 나선 송마문 학사를 베고 그 뒤에 있던 자의 목을 스쳤다.
놀란 학사들이 주춤한 사이, 남궁진휘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파팟-!
창궁대연검법 파해일몰이 동굴 바닥을 헤집으며 천수현인과 현학문주를 쫓으려는 학사들의 앞을 가로막고.
쉐에에에엑---!
푸른 빛줄기가 쏘아진 듯 빠르게, 창궁무애검법 솔개비풍이 송마문주의 목을 노렸다.
파팟-! 콰앙!
송마문주가 부채를 휘둘러 남궁진휘의 검기를 막았다.
하지만 그건 송마문주를 물러나게 하기 위한 위협이었을 뿐, 남궁진휘가 진짜 노린 쪽은 파해일몰에 우왕좌왕하는 송마문 학사들이었다.
쉑! 쉑! 쉑! 쉐에엑!
천뢰제왕검법 낙엽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뇌전은 전혀 담기지 않았지만 남궁진휘는 천뢰제왕검법의 초식을 본인의 기운에 맞춰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윽!”
“커헉!”
송마문 학사들이 다리와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단 일 초로, 남궁진휘는 송마문 학사들에게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사방으로 분수처럼 뿜어 대는 핏줄기 앞에서 남궁진휘가 천천히 송마문주를 보았다.
“…….”
송마문주가 넋을 잃은 듯 남궁진휘를 보았다.
순식간이었다.
그저 단 한 번 부채를 휘둘렀을 뿐인 시간에 모든 수하들은 잃은 것이다.
송마문주가 저도 모르게 남궁진휘에게서 주춤 물러섰다.
거슬리는 애송이로만 생각했던 이에게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짓을 하면서 제 목숨은 아까운 건가?”
남궁진휘가 송마문주를 추궁하듯 물었다.
그는 주춤주춤 물러서는 송마문주를 향해 경멸과 혐오가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송마문주가 발끈했다.
“대업을 위해서다! 대업을 위해 무수히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저들도 그런……!”
“개소리!”
“…….”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던 송마문주가 남궁진휘의 일갈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궁진휘가 그런 송마문주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네 스스로도 개소리라고 생각하는 걸 내뱉으니 그리 앞뒤가 맞지 않지. 대업을 위한 희생을 할 거였다면 스스로 저 독수 속에 빠져 죽지 그랬느냐. 애꿎은 생명을 제멋대로 취하면서, 네가 대업이라 부르는 작자는 고작 저런 작자다!”
“…….”
남궁진휘의 손가락을 따라 송마문주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제왕검과 사패천주를 상대로 여유롭게 싸우고 있는 역천마제가 있었다.
“하하하하하!”
정사 최고 고수들을 상대로 역천마제는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싸우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제물을 지키려다 제 수하들이 모두 죽어 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역천마제의 무위라면 송마문주와 학사들을 모두 지키고도 남았다.
하지만 저 머릿속에는 누군가를 지켜 준다는 생각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하나 지키는 게 있다면 이 역천비지인가?’
역천마제는 절묘할 정도로 제왕검과 사패천주의 공격을 소멸시키며 동굴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것들은 전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크아아아악--!”
밖에서 들리는 비명에 송마문주의 눈이 커졌다.
송마문주는 그 비명이 서장마군의 것이라 확신했다.
‘서장마군까지 당했다면 밖에도 이미…….’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찔한 상황에 송마문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하하하하핫!”
역천마제의 웃음소리가 아플 정도로 귀를 울렸다.
“괴물을 믿었구나. 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저를 따르던 충신도, 수천, 수만 명의 목숨도 다 아무렇지 않은 괴물, 살인마! 네놈들은 저런 괴물을 따른 거다!”
남궁진휘의 말에 송마문주의 가슴에 아프게 박혀 들었다.
“아, 아니야!”
쉐에에엑---! 챙!
남궁진휘의 말을 부정하며 그의 검을 막아 낸 송마문주가, 증오로 가득한 남궁진휘와 눈을 마주하며 흔들렸다.
“욕심이지. 제 주제와 능력으로는 감히 꿈꾸지 못할 남의 것을 탐하려, 저런 괴물의 손을 빌리려 한 한심한 작자!”
“닥쳐라! 네놈이 뭘 안다고!”
챙! 챙! 챙!
남궁진휘의 제왕검형 불위가 하늘에 이는 돌풍처럼 마구잡이로 송마문주를 몰아붙였다.
송마문주가 송마선경으로 부채를 움직여 저항해 보았지만, 푸른 돌풍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비처럼 미약한 발악일 뿐이었다.
이미 마음이 꺾여 버린 그에겐 남궁진휘의 분노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저 구덩이에 쏟아부은 독수에, 백일도 넘기지 못한 아이들과 천 명의 동남동녀, 수천 명의 생목숨이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 네놈들이 죽여 없앤 목숨들이다! 고작 저 늙은 살인마 때문에 부모 형제에게서 떼어 놓고 짐승처럼 학대한 인생들은 다 어찌할 것이냐! 우리 진화가, 현오가 왜 네놈들같이 하찮은 것들에게 인생을 농락당해야 했단 말이냐-! 감히--! 네까짓 것들이 감히--!”
쉐에에엑! 챙! 챙!
퍼—억!
“내가 한 것이…… 크앗!”
검이 아니라 온몸이 돌풍이 된 듯 회전해서 들어온 남궁진휘의 왼 주먹이 송마문주의 복부에 박혔다.
“커-헉! 컥!”
송마문주가 장이 끊어질 듯한 고통에 억지로 숨을 뱉는 동안, 남궁진휘는 휘청이면서 멀어진 송마문주를 보며 서슬 퍼런 살기를 번뜩였다.
“네놈들의 짓이다. 저 괴물을 위해 움직인 순간부터, 저자의 모든 악행에 네놈들의 죄도 함께 묻은 것이다.”
푸---욱!
“커……헉! 컥! 컥!”
몸이 검에 꿰뚫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송마문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몸을 보았으나, 정말로 그의 몸엔 남궁진휘의 검이 꽂혀 있었다.
“커헉! 나는…….”
송마문주가 남궁진휘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그 손은 남궁진휘에게 닿지도 못했다.
퍼-억!
남궁진휘는 송마문주에게서 검을 뽑고, 싸늘한 눈길로 쓰러지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 순간.
퍼-------엉!
눈앞에서 폭발한 거대한 기운에 남궁진휘가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하지만 곧 자신의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걸 깨닫자,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제왕검이 푸른 검강을 세운 검으로 역천마제의 기운을 막아 내고 있었다.
“할아버님!”
“휘야, 일단 나가거라.”
“하지만……!”
“어서!”
-나가서…… 천수현인에게 여길 무너뜨릴 거라 전하거라.
“……!”
제왕검의 전음에 남궁진휘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상황은 남궁진휘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거대한 검은 기운이 점점 제왕검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패천주가 역천마제를 향해 패천아랑도를 휘둘렀으나, 역천마제는 제왕검을 밀어내는 동시에 한 손만으로 그를 막아 내고 있었다.
남궁진휘가 굳은 얼굴로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럼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오냐. 그래야, 내, 손자지! 크읏!”
씨익 웃으며 남궁진휘를 칭찬하는 제왕검은 곧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남궁진휘는 제왕검이 걱정스러웠지만, 저 때문에 제왕검이 마음껏 싸우지 못하다면 그게 더 폐가 된다는 걸 알았기에 입술을 깨물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쉐에에에에엑---!
밖으로 나가던 남궁진휘가 기어코 역천마제를 향해 검기를 날리고 나갔다.
퍼-엉! 펑!
역천마제가 남궁진휘의 검기를 막아 내는 사이, 제왕검이 역천마제의 기운을 떨쳐 냈다.
“흐흐, 역시 내 손자지.”
제왕검이 남궁진휘의 일격에 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상황이 결코 그와 사패천주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그때.
“역시 둘로는 안 되지?”
“고전하고 있구먼.”
“니미쓰불! 고작 그사이에 내 새끼를 저렇게 만들어? 이 악귀 같은 새끼! 지옥 천불에 떨어질 놈!”
천수현인 제갈길현과 현학문주, 그리고 곡해를 죽이고 곧바로 배를 타고 쫓아온 성승이었다.
잔뜩 화가 나 역천마제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모습이 동굴 밖에서 현오를 보고 온 게 확실했다.
“오호, 살아 있는 놈은 다 모인 겐가.”
오른쪽과 왼쪽에 제왕검과 사패천주, 그리고 정면에 천수현인과 현학문주, 성승을 두고도 역천마제의 얼굴은 여유롭기만 했다.
* * *
챙! 챙! 챙! 챙!
사패천주가 왼손에는 우각살호권을, 오른손으로는 만살개천도를 펼치며 역천마제에게 달려들었다.
미친 호랑이가 칼을 들고 날뛰는 형국이라 어디서 어떤 공격이 진행될지 변칙적인 공격이 이어졌지만, 역천마제는 그의 공격을 훤히 내다보듯 한 손만으로 그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크아아아아! 젠장!”
답답함, 모멸감, 혹은 보다 더 원초적인 짜증과 분노가 사패천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성질머리하고는. 그래서 저놈이 죽겠어? 빌어먹을 놈! 단매에 때려죽일 놈-!”
팟팟팟팟팟-!
과연 누가 누구의 성질머리를 논하는 건지.
성승 또한 만만치 않은 얼굴로 염주 알을 폭사했다.
퍼---엉!
마치 사패천주나 다른 사람이 맞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마구잡이로 날아간 염주 알이 역천마제의 손짓 한 번에 모두 폭발하듯 부서졌다.
하지만 그 정도는 막힐 것을 예상한 듯.
희뿌연 염주 가루가 역천마제의 앞을 가리는 동안, 성승의 신형이 옆으로 길게 퍼져 나갔다.
“허어, 저런 미친놈! 어떤 중놈이 염주 안에 독을 넣어!”
“흐흐흐흐, 저래야 소림 또라이지.”
“독제가 지금도 우리랑 함께하고 있군.”
“이런 노망난 놈! 중놈에게 귀신 붙었다고 말하는 게야?”
“허어! 자네는 어찌 그리 풍류가 없는가!”
성승의 움직임을 두고 천수현인과 제왕검, 현학문주가 한마디씩 던졌다.
그사이, 분신술을 쓰는 듯 나한칠십이기예의 한 동작씩 흐트러진 성승의 신형이 일제히 역천마제를 향해 쏟아지듯 달려들었다.
퍽. 퍽. 퍽. 퍽. 퍽!
수십 명의 성승이 역천마제에게 권각을 날렸지만, 역천마제의 손은 기어코 그 빈틈조차 꿰뚫고 말았다.
퍼-----엉!
역천마제의 일수를 맞은 성승이 동굴 벽으로 가서 처박혔다.
날아가는 성승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천수현인과 현학문주가 권기를 쏘았다.
파팟-!
진흙 속에 연꽃이 피어나듯 땅에서 솟은 천수현인의 연환권이 결국 역천마제를 자리에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이어진 현학문주의 현운편이 역천마제의 왼쪽 어깨를 향해 쏘아졌다.
채—앵!
끈질긴 사패천주가 오른손을 잡아 두고, 천수현인이 역천마제의 두 발을 움직인 후 현학문주가 왼손마저 쓰도록 만들었으니.
제왕검형 천하--!
쉐에에에에엑-!
퍼-------엉!
제왕검은 검강이 역천마제와 부딪히고, 거대한 기의 폭발이 다시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쩌어어억. 쩌억…… 콰광!
쏴아아아아--!
동굴 천장에 금이 가면서 곳곳에서 물이 쏟아졌다.
‘천장이……!’
천수현인이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제왕검의 신형이 밖으로 튕겨 나왔다.
퍼------억!
쿠-웅!
순식간에 날아간 제왕검이 어딘가에 부딪혀 처박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곧,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사패천주 또한 석주 여러 개를 부수며 뒤로 처박혔다.
“쿨럭! 흐흐흐, 그러게 제 놈들은 별수 있으려고.”
“그게 지금 할 소리냐, 이 땡중아?”
날아가 처박힌 제왕검과 사패천주를 보며 성승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을 천수현인이 한심한 듯 쏘아붙였다.
현학문주가 비틀거리는 성승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았다.
“괜찮은 건가?”
“아무렴!”
성승이 호기롭게 외쳤다.
“자네들은?”
현학문주의 물음이 제왕검과 사패천주에게 향했다.
어느새 그들도 다시 일어서 있었다.
다만 제왕검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입가와 앞섶에 붉은 핏자국이 선연했기 때문이다.
“괜찮은가?”
현학문주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제왕검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 내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검을 들었다.
“단전을 회복하려면 백 년은 걸리겠군.”
“허어, 이 노괴가 대체 얼마나 더 살려고?”
“최소한 저 괴물보단 오래 살아야지.”
제왕검이 역천마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역천마제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제왕검과 일행을 보고 있었다.
“허허허허, 많이 늘었군. 늙어 가는 몸으로 대단한 노력이야. 하지만……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군.”
“아니야, 우리 제대로 미쳤어. 눈깔이 다 돌았잖아. 보면 몰라?”
역천마제의 말에 제왕검이 이죽거리며 답했다.
그에 역천마제가 유쾌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유쾌한 건 여전하군. 어리석은 것도 여전하고…… 아직도 날 막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 건가?”
마치 이제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
역천마제의 눈에 피처럼 붉은 살기가 일렁거렸다.
창백한 얼굴빛으로 호기를 부리는 듯 역천마제에게 이죽거리던 제왕검도 심각하게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곧 시원하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넌 오늘 죽을 거다.”
제왕검이 자신만만하게 단정했다.
그와 동시에.
쉐에에에에엑----!
파지지지지직!
짙고 푸른 뇌전이 날아들어 역천마제의 등을 때렸다.
퍼-----엉!
찰나의 순간.
역천마제가 뇌전을 막았다.
하지만 크게 놀란 듯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너, 넌…… 네가 어떻게 온 거지?”
역천마제가 천천히 동굴로 들어오는 진화를 향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할아버님!”
역천마제의 물음을 깔끔하게 무시한 진화가 제왕검을 향해 꽃이 피듯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달려왔다.
“역시…… 네 손주야.”
“참…… 꽃 같네.”
웃으며 진화를 맞는 제왕검은 친우들의 말이 썩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