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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404)화 (404/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결말(4)

무려 수십 년.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이어 온 전쟁이었다.

그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형제, 친우를 잃었다.

따지자면 단 한 사람의 욕망 때문이었다.

역천마제 파륜.

정사의 수많은 고수들이 있었지만 역천마제 하나를 막지 못했고, 순리를 거스르고 수많은 사람의 피를 필요로 하는 그의 욕망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불행이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모두가 치열하게 싸웠다.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 중원의 반쪽이나마 지켜 냈고,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드디어 이 전쟁에서 승리할 방법도 찾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무림의 그 누구도 군사부의 공이 특별하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전체 판이 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전쟁의 승패는 결국 역천마제와 귀천성 세력, 둘을 없애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역천마제에 대한 답이 나올 때까지 귀천성의 손발을 끊어 놓을 겁니다.”

제갈가주는 천수현인마저 쓰러진 정의맹을 수습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 꾸준히 중원 전역에 퍼진 귀천성 소속 문파들의 소재를 파악해 왔던 것이다.

“이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네. 놈의 출신, 배경, 신체 조건부터 놈의 행적을 통해 성격과 선택을 유추하고, 놈의 무공을 분석해서 약점을 찾아내는 데에 골몰했지.”

천수현인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도 끈질기게 역천마제를 연구했다.

홍랑대부와 남궁진휘는 그런 제갈가주와 천수현인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했다.

“일단 마제들부터 처리하시죠. 마제들이라도 다 친한 건 아닐 겁니다. 따로따로 고립시킨다면 죽일 방도가 없진 않습니다. 마제들이야말로 역천마제의 힘이자 귀천성 세력을 움직이는 핵심이니까요. 마제들이 사라진다면 역천마제 혼자서는 그 많은 문파들을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역천대법과 같은 사특한 술법 대부분이 천문과 비지, 그리고 제물이 핵심입니다. 현학문과 월하회의 기록 중에서도 술법사들이 고를 만한 천문과 비지를 추릴 수 있을 듯합니다.”

희망이 기적을 부른 듯.

십이좌회의 빈자리를 채울 남궁진화와 같은 현경의 고수가 나타났고, 마제들을 하나씩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전쟁,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전쟁을 끝낼 때를 맞이했다.

“놈의 신체 좌우 균형은 완벽하지만 습관적으로 오른쪽을 먼저 움직인다. 이전에 제왕검에게 왼쪽 옆구리를 베였던 경험 때문일 거라 추측하지만.”

“왼쪽 옆구리를 노리는 척하거나 움직임을 유도할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군요.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천수현인의 말에 남궁진휘가 이리저리 전투에서 쓸 수 있는 전략을 생각했다.

“그동안은 역천마제의 역천멸신공이 주변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킴으로써 뭔가를 알아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등극식에서는 범위가 범위이다 보니 작은 흔적이 남았더군요. 신 제국 황성을 조사하던 개방과 백매단이 황성 벽에 탄 흔적과 모래에 잿가루가 섞인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 덕에 그동안 흔적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다시 조사해 보니 역시 많은 양의 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확신하기엔 증거가 빈약하긴 하지만, 아마도 역천멸신공은 진짜로 뭔가를 소멸시킨다기보다 엄청난 열기로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워 버린다는 것이 옳을 듯싶습니다.”

제갈가주의 말에 홍랑대부가 눈을 번쩍 떴다.

“이전 기록에 마교의 천마신공이 천화(天火)와 열겁(熱劫), 염세(炎世)와 같은 지옥의 화염을 썼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자가 혼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모든 무공의 원류라는 것이 있었을 겁니다!”

홍랑대부가 흥분하며 말했다.

정파나 사파를 통틀어 어떤 무공과도 근본이 다르다면, 마교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홍랑대부의 말처럼 무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홍랑대부의 말에 모두가 눈을 반짝였다.

“열기(熱氣)라…… 최종 역천비지 후보 중에 석양호가 있었지 않나?”

천수현인이 탁자에 있던 수많은 문서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풍경 좋은 그림이 그려진 보고서 한 장.

“호수라면 확실히…… 열기는 수기 속에서 약할 수밖에 없지요.”

“반면 수기와 뇌전은 서로를 극대화시킬 겁니다.”

“놈들이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다른 후보지들을 제외시키도록 해야겠군요!”

이제 척하면 착이었다.

역천마제를 죽일 수 있다면 지옥불이라도 구해 올 판에, 고작 귀천성을 속이는 정도라면 망설일 것도 없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이지. 역천마제를 조금 급하게 만들 필요도 있겠어.”

천수현인이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한 눈빛을 뿜었다.

* * *

쉐에에에엑---!

콰광. 쾅!

신 제국 대륜궁을 지탱하던 기둥 하나가 두부 잘리듯 잘려 나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이라더군.”

옥허신검이 검을 거두어들이며 검마제를 향해 말했다.

옥허신검의 검기를 피하느라 바닥을 굴렀던 검마제는, 옥허신검이 검을 거둔 사이에 몸을 일으켰다.

“자네들의 가장 큰 약점은 시간이었지.”

“…….”

옥허신검의 말이 검마제의 귓속에 박히듯 들어왔다.

무적에 가깝다 생각했던 그들이 이렇게 궁지에 몰린 이유라니, 듣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역천마제의 육신은 허물어지고 있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걸 분석이라고 한 건가? 주군이 약해지고 있다니, 천지간이 무너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검마제가 옥허신검의 말에 반발해 소리쳤다.

옥허신검은 그런 검마제를 보며 이제야 ‘허허’ 웃어 보였다.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네놈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등극식에서 살아남은 놈들이 제법 되더군. 흔적도 남았고. 이전의 놈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 그래…… 놈은 약해졌다. 그리고 네놈도!”

옥허신검의 눈에서 살기가 폭발했다.

쉐에에에에엑---!

양의현검 운후현강(運逅現强)

대륜궁 기둥 사이사이로 빠르게 퍼져 나간 빛이 한 번에 검마제에게 쏟아졌다.

검마제가 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삐이이이익---!

묵빛 검기가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날개의 형상으로 검마제를 감쌌다.

펑! 펑! 펑!

옥허신검의 검기가 주작비상에 가로막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건 검마제의 발걸음을 잡아 두기 위한 유인책에 불과했다.

펄-럭.

도포 자락이 옥허신검의 기운에 펄럭이는 것과 동시에, 어느새 그의 신형이 검마제의 코앞에 나타났다.

쉐에에엑-!

챙! 챙! 챙!

타타타타타- 채-앵!

검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조금씩 검마제가 뒤로 밀려나고, 옥허신검은 검마제가 위치를 바꿀 때마다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백 년에 하나 볼까 말까 한 재능이라 한들, 팔이 잘리는 건 상상도 해 보지 않았겠지.”

쉐에에에엑-!

챙챙!

독무신검 백호침강은 묵빛 검기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빠른 섬검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검기 하나하나를 막기보다 검막을 펼쳐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옥허신검의 눈은 냉철하게 가라앉은 채 백호침강의 검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챙챙챙챙—챙!

검기 하나하나를 베고 튕겨 내는 옥허신검의 모습에 검마제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옥허신검의 기운이 검마제를 덮쳤다.

퍼----엉!

‘어, 어떻게……!’

검마제의 머릿속이 무척 혼란했다.

분명 옥허신검은 백호침강을 베어 내느라 여유가 없어 보였는데, 대체 어떻게 저를 공격했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때 새하얀 검강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헛!

검을 잡고 난 이후 이렇게 바닥을 구르고 몸을 날려 본 적이 있었던가.

검마제가 황급히 몸을 굴려 검강을 피한 뒤 곧바로 검을 세워 옥허신검의 검을 막았다.

채-앵!

“느려졌군.”

“……!”

“완벽하게 맞춰 놓은 균형과 조화가 깨진다는 게 그런 거지. 나는 새로운 균형을 찾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다. 네놈은 그것보다는 빠르겠지. 다만 그런 시간조차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옥허신검이 이를 드러내며 살기 등등하게 웃어 보였다.

결단코 외검에 적응할 시간 따위 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훤히 드러났다.

쉐에에에에엑---!

챙! 챙!

무너진 균형은 검마제를 더 느리게 만들었다.

힘의 위력을 반감시켰고, 검로마저 흐트러뜨렸다.

언제 어느 때고 완벽하도록 맞춰진 신체가 무너진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챙! 챙! 챙!

균형이 무너진 몸은 검을 부딪칠 때마다 뒤로 밀려났다.

궁지에 몰린 검마제의 얼굴도 함께 일그러졌다.

점점 상처가 늘어가고.

옥허신검은 기어이 지금 당장 검마제를 죽이겠다는 듯 그를 몰아붙였다.

“이 비겁한……!”

“꼴리면 네놈도 날 욕해! 네놈을 죽일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상관하지 않으니까! 도와 덕은 사람에게서 찾을 것이다, 네놈 같은 금수가 아니라!”

옥허신검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검마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비겁?

검마제가 죽인 이들 중에는 겨우 걸음마나 떼었을 법한 세신각의 어린 제자들도 있었다.

엄마 대신 사부를 찾던 불쌍한 아이들이 고작 ‘여린 살결과 뼈를 베는 촉감은 어떤지 알고 싶다’는 그런 어이없는 이유로 죽었다.

비겁?

짐승은 살기 위해 가장 어리고 약한 사냥감을 노린다는데, 전쟁을 시작한 인간은 그보다 훨씬 잔인했다. 인간은 제 욕망을 위해 거리낌 없이 도와 이치를 벗어났다.

그것을 너무 아프게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라도 검을 들어 도와 이치를 찾을 것이다.

도와 이치에서 벗어난 것을 모조리 베어서라도…… 지킬 것이다!

‘기사?’

옥허신검의 비어 있는 좌수에서 환하게 빛이 피어올랐다.

그걸 본 검마제의 머릿속에 아까의 예상을 벗어난 공격이 떠오르며, 검마제는 저도 모르게 몸을 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쉐에에에--!

옥허신검의 검이 검마제의 가슴을 스쳤다.

‘아니, 이게 아니다!’

느낌이 그러했다.

검마제가 그걸 알아차렸을 때.

푸---욱!

진짜 검이 검마제의 가슴을 관통했다.

태극심형일검(太極心形一劍)-!

태극혜검 최후의 초식.

옥허신검의 텅 빈 좌수에서 그의 심형으로 만들어 낸 검이 빛나고 있었다.

“무량수불…… 다음엔 부디 금수로 태어나시게.”

옥허신검이 쓰러지는 검마제를 끝까지 냉정하게 지켜보았다.

* * *

교주 익주성.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오느라 생각보다 훨씬 멀고 고된 길이었다.

바리바리 싸 온 금은보화와 식량 때문에 더 지체가 되었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선 불평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고된 길이 나중에는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하면, 힘들수록 안도감이 들었다.

“저기, 성이 보이는군요.”

“이제 다 왔습니다.”

더운 날씨에 연신 부채질을 하던 호족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크으, 상천각에 자리를 펴 놓고 차 한잔 나누면 이런 더위도 금방 사라지겠지요.”

“차가 아니라 술이라고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요?”

“어허, 제 맘을 어찌 그리 꿰뚫어 보십니까.”

“하하하하하!”

차양막을 친 마차에서 호족들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아마 지금쯤 신 제국은 무너졌을 것이다.

백성들이 어찌 되었을지, 군은 또 어찌 되었을지.

‘살아남지 못했으려나…….’

짓밟고 통치하던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저들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주제에 마치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듯한 호족들을 보자니 입안이 꺼끌해졌다.

하지만 복건주에겐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자신 또한 제국을 버리고 도망치는 건 저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황제를 보는 눈이 부족했고, 운도 따라 주지 않았음이니.’

복건주는 이렇게 자신을 내친 하늘을 원망했다.

그렇게 호족들과 그들의 일가,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행렬이 익주성 앞에 도착했다.

착. 착. 착. 착. 착.

성벽 위에서 궁수들이 활을 겨누고, 사방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향해 창을 들었다.

“무, 무슨 일이냐!”

“승상!”

호족들이 당황한 채 복건주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긴 복건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익주성 위로 한 제국의 깃발과 북위군의 깃발이 동시에 올랐다.

“한 제국!”

“저들이 대체 언제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복건주와 호족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끼이이이----!

익주성 성문이 열리고 북위군 장수들이 말을 타고 나왔다.

그리고 성벽 위엔 북위대장군 원수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하! 한 번 황제와 제국을 배신한 자들이 두 번은 못 할까! 불리하면 익주성에 숨어드는 버릇도 여전하구나! 네놈들의 과거 행적이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있으니, 지나온 시간만큼 확실한 정보가 또 있을까!”

북위대장군 원수경이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다 곧 무섭게 정색하고 복건주와 호족들을 노려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네놈들, 배신자들을 벌할 순간만을 기다렸다! 뭐 하느냐, 저 역당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저항하는 자들은 사지를 갈가리 찢어 죽여도 좋다!”

“추-웅!”

북위대장군의 살벌한 명령을 받아 북위군이 움직였다.

창날을 사람들의 턱 끝까지 들이대며 당장이라도 찌를 듯 구는 통에 저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 끌어 내려라!”

“아이고!”

“꺄아아아---!”

붉은 차양 속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던 호족들과 그 일가가 머리채가 잡힌 채 바닥으로 끌어 내려졌다.

“저항하려면 해 주시오. 내 주군은 당신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 하시니까.”

복건주는 제 목 끝에 들어온 칼날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는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없을 듯 보였다.

* * *

역천마제는 마치 세상을 향해 외치듯 크게 소리쳤다.

“나는 예외다! 이 몸은 천지간의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다! 고작 수기 따위로 이 몸을 막을 수 있을 성싶더냐--!”

천수현인의 수작에 놀아났다는 생각에 역천마제가 분노를 뿜었다.

역천마제의 기운이 석양호의 물을 모조리 증발시킬 듯 그의 주변이 자욱한 수증기로 둘러싸였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가 매끄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파지지지지직---!

수증기에서 뇌전이 번뜩이며 역천마제를 조여들었다.

“아직도 모르는군. 당신은 아무것도 초월하지 못했다. 그저 순리를 거스르고 싶어서 발버둥 친 존재일 뿐이지.”

진화의 뇌전이 역천마제를 붙잡고.

제왕검과 사패천주, 강무련이 물 위를 달려 역천마제를 향해 권기를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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