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결말(5)
콰광! 쾅광광-!
역천마제와 부딪힐 때마다 살갗이 벗겨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근육과 뼈를 통해 전해지는 우릿한 진동과는 다른 느낌.
‘이게 군사부에서 말한 역천마제의 근원이라는 열기인가.’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을 견디며 제왕검이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사패천주와 제왕검이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주먹세례에 역천마제의 기운이 흔들리고 깨지더니 종종 빈틈을 드러냈다.
그 빈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패천주와 제왕검은 수백 번의 주먹을 내질렀다.
“크읏!”
역천마제가 흔들리자마자 강무련이 기다렸다는 듯 역천마제의 허리를 잡았다.
꽈드득-!
뼈를 부술 듯한 압박이 역천마제의 신형을 짓누르고.
“어림없다!”
역천마제는 사패천주와 제왕검의 주먹을 막아 내는 동시에 세 사람을 태워 버릴 듯 온몸으로 검은 기운, 역천멸신공을 뿜었다.
그때, 진화의 검이 움직였다.
파지지지지짓---!
역천마제를 감옥처럼 가두고 있던 물줄기가 채찍처럼 날아들어 역천마제의 기운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그리고.
촤와아아아아--!
뇌전에 휩싸인 물줄기가 순식간에 역천마제의 목을 감고 조이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직---!
번뜩이는 뇌룡이 목덜미를 물어뜯는 듯 역천마제의 검은 기운을 흐트러뜨렸다.
“말도 안 돼-!”
역천멸신공이 흐트러지자 역천마제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역천마제가 당황한 사이.
“크아아아아-!”
강무련이 이를 악물고 열기를 견디며 역천마제의 허리를 잡고 석양호 바닥에 내리꽂았다.
촤-----악! 쿵!
두 사람의 거대한 기운에 석양호 물이 사방으로 넘치고, 진화는 넘치면서 튀어 오른 물에 뇌전을 담았다.
그저 튕겨 나왔을 뿐인 물줄기가 진화의 의천검과 함께 수십 개의 뇌전검이 되어 진화와 함께 물속으로 내리꽂혔다.
파파파파파팟---!
뇌전으로 인해 석양호의 물이 시끄럽게 파닥거렸다.
“진화야!”
“끝인가……?”
누군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진화를 부르고, 누군가는 기대를 담아 말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때.
파----앗!
촤아아아아아아아-!
사람의 인영과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역천마제의 검은 도포였다.
“아……아아!”
누군가 아쉬운 탄성을 뱉었다가 곧 고함을 질렀다.
역천마제의 모습이 보이고, 곧바로 그에게 딸려 올라온 듯한 물줄기 속에서 진화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파지지지지짓-!
진화와 함께 거대한 물줄기가 역천마제를 다시 아래로 끌어당겼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모두의 시선이 석양호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 * *
역천마제와 진화가 석양호 밖으로 솟구치기 전.
“끄르르륵…….”
석양호 물이 내려앉은 동굴 바닥에 역천마제를 내리꽂으며 강무련도 함께 처박혔다.
거기서도 강무련은 역천마제의 허리를 놓지 않고 버텼다.
안간힘을 쓰는 강무련이 뱉어 내는 공기 방울 옆으로 하얗게 물이 증발하고 있었다.
치이이이이--!
뜨거운 열기가 강무련의 몸을 태우면서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끄르르르르-!”
몸부림을 치던 역천마제가 조금 자유로워진 손가락에 암흑경을 걸었다.
그리고 살기 가득한 눈으로 강무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쉐에에엑-!
“……!”
검과 같은 무언가가 역천마제의 손을 꿰뚫을 듯 스쳐 지났다.
‘됐다!’
물을 뚫고 들어오는 진화와 수십 개의 뇌전을 보며 그때서야 강무련이 역천마제를 잡은 손을 놓고 거리를 벌렸다.
진화가 의천검을 번뜩이며 수십 개의 뇌전과 함께 역천마제를 향해 떨어졌다.
‘젠장, 이제 더는 못 버티겠군.’
진화와 역천마제가 부딪히는 것까지 지켜본 강무련이 힘을 다한 듯 물 밖으로 나갔다.
버어-엉! 펑! 버엉!
역천마제가 팔을 휘두르며 진화의 검과 뇌전검들을 막아 냈다.
물의 부력과 저항이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게 했지만, 진화에겐 그걸 상쇄할 만큼 뇌전의 힘이 강해졌다.
형태를 담은 뇌전은 강했다.
뇌전으로 뭉친 물은 어떤 쇠보다 강했고 거기 담긴 천뢰기는 음양의 기운을 쪼개며 역천마제의 열기를 흐트러뜨렸다.
무엇보다 역천마제를 물속으로 몰아넣기까지 네 사람의 손발이 잘 맞아떨어졌다.
‘허! 연계가 제법이구나. 하지만, 여기까지다!’
진화의 검과 뇌전을 막던 역천마제가 분노를 토하듯 이전보다 거대한 열기를 뿜었다.
‘읏!’
처음 느껴 본, 무서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진화가 움찔하고 말았다.
그사이 역천마제가 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안 돼!”
진화가 다급하게 그 뒤를 쫓았다.
한편.
강무련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숙청단 단원들이 내려앉은 석양호까지 달려왔다.
“무련!”
“소천주님, 괜찮으십니까?”
“크읏. 안 괜찮은 게 보이지 않나?”
“괜찮네! 다행이다!”
강무련은 물속에서, 그것도 기운으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역천마제를 안았던 팔과 가슴, 복부에 진물이 날 정도로 큰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숙청단원들에게는 강무련이 대답을 할 정도로 온전하게 살아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감상적으로 들리진 않았지만, 어쨌든 마음만 통했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도련님은?”
“역천마제는 어떻게 되었어?”
“……너희들, 내가 괜찮아서 다행인 거 맞지?”
호기심이 강무련의 의심을 사긴 했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남궁구와 제갈상의 물음에 대한 답은 곧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파팟-!
촤아아아아악---!
역천마제와 함께 진화가 물 위로 튀어 오르고, 진화가 다시 역천마제를 물어뜯듯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안 죽었네. ……쩝.”
“일단, 가자.”
“일단? 너희들, 진화를 걱정한 게 아니었나? 아니, 날 데려가는 게 왜 ‘일단’인 건데!”
숙청단원들이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석양호를 보았다.
“다친 부위 겹치지 않게 아래, 위로 나눠 들자.”
“알겠어, 형님.”
“뭐야? 나눠 들지 않으면 어떻게 든다는 건데? 그보다 들것 없나? 아파! 정말 아프다고!”
“가자.”
강무련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어쨌든 숙청단은 무사히 강무련을 구해 천수현인의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괜찮아. 죽을 만큼 아프겠지만 물집 잡히고 살갗 좀 벗겨지다가 나을 거니까.”
“전혀 괜찮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곪지 않게 이거나 처먹게!”
천수현인이 시끄러운 강무련의 입을 막듯 그의 입에 약을 넣었다.
무려 소림의 소환단이었다.
* * *
다시 석양호의 물속.
‘이놈---!’
역천마제는 기어이 저를 이 진탕으로 끌어내린 진화를 향해 분노를 뿜었다.
‘죽어 없어진 놈의 제물 따위가 감히 날 방해해!’
쏴아아아아---!
역천멸신공 멸형(滅形)-!
물속에서 검은 염화가 피어올랐다.
거대한 검은 용이 하얗게 물을 태우며 진화를 집어삼킬 듯 나아갔다.
입을 벌리고 날아드는 검은 용을 보며 진화의 눈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검은 우주, 검은 번개가 가득했다.
‘당신들의 노욕이 날 제물로 만든 것을! 그걸 운명으로 믿었다니 기도 차지 않지!’
쏴아아아아---!
검은 용이 마치 진화를 집어삼킨 듯했을 때, 진화의 우주가 움직였다.
몸속에 있던 천뢰기가 검은 용을 둘러쌌다.
파파파파파파팟-!
마치 뇌전에 고통스럽게 타들어 가는 듯 검은 용이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진화의 천뢰기가 역천마제의 기운을 부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지옥 같은 열기도 결국은 세상의 음과 양의 조화와 순리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 음의 기운과 부딪히며 크게 타오르는 양의 기운이 진화의 눈엔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진화는 당장이라도 끓어오를 듯 뜨거워진 물을 견디고 역천마제의 기운을 깨뜨렸다.
팟! 팟!
역천마제가 물 위로 솟구치고 진화도 그를 따라 함께 솟구쳐 올랐다.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네까짓 게 어떻게 천화를……!”
“천화가 아니라 지옥 불이겠지! 당신 따위가 하늘을 입에 담는 것조차 웃기니까!”
“닥치거라! 넌 아무것도 모른다. 잘못된 세상을 어찌 바로잡아야 하는지! 세상을 본래 그러한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얼마나 강한 힘이 필요한지!”
“그러니까-!”
처음이었다.
진화가 역천마제를 향해 사자후를 터뜨리듯 소리를 질렀다.
진화는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운명도, 하늘의 뜻이라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제 존재도.
결국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에 잘못된 건 당신 하나뿐이야!”
쉐에에에에엑---!
제왕무적검 일휘천낙!
거대한 물줄기에 뇌전이 번뜩이고, 그건 이 석양호가 만들어 낸 철퇴처럼 역천마제를 내리쳤다.
“어리석구나!”
역천마제가 진화의 일휘천낙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촤아아아아악---!
거대한 암흑경이 진화가 내리친 철퇴를 그대로 삼켜 버렸다.
그리고 진화마저 삼켜 버릴 듯 빠르게 다가왔다.
진화는 그것을 베어 버릴 생각으로 눈을 빛냈다.
그때.
“내 새끼한테 헛소리하지 마-!”
퍼------억!
일휘천낙이었다.
진화의 날카롭고 번쩍이는 일휘천낙과 다른, 진짜 무겁고 또 무거운 일휘천낙이었다.
진화가 놀란 눈으로 돌아보자, 익숙한 푸른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남궁진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검강을 뿜어내며 남궁경이 뛰어올랐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쉐에에에엑-!
챙! 챙! 챙-!
역천마제의 기운과 부딪힐 때마다, 역천마제의 기운이 이전처럼 남궁경의 기운을 태웠다.
하지만 제왕검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검강은 상처 입을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딪힐 때마다 더 크고 환한 빛을 내며 역천마제의 기운을 두드렸다.
“허어, 저 무식한 게 통할 때가 있군.”
“할아버님!”
진화는 제 곁으로 다가온 제왕검을 맞으며 그의 몸을 살폈다.
다행히 곳곳에 천풍무의가 타고 살갗의 상처가 드러났지만 큰 부상은 없는 듯싶었다.
사패천주는 벌겋게 타 버린 옆구리를 쥐고 강무련의 곁에 널브러져 있었다.
“네 아비가 때맞춰 와서 다행이구나.”
역천마제와 부딪히고 있는 남궁경을 보는 제왕검의 눈빛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진화는 그 애틋함이 왠지 남궁경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 것 같았다.
세월(歲月).
제왕검 남궁강이 애틋하게 보고 있는 건, 적과 싸우며 미래를 꿈꾸고 자식을 키워 낸 세월이었다.
“날 방해하지 마라---!”
파아아아아아앗-!
검은 불을 뿜은 역천멸신공이 남궁경을 검째 날려 버렸다.
퍼어어억!
풍-덩!
“파앗! 젠장!”
남궁경이 물속으로 빠졌다가 금세 올라왔다.
그리고 커다란 덩치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물 위로 올라섰다.
물론 욕지거리와 함께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사이, 진화와 제왕검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역천마제에게는 달려들었다.
채-앵!
팟-! 팟! 팟!팟!
“힘이 없으니 뭉쳐 다니는 거다! 뭉쳐 다니는 약한 것들이 부당한 권력을 탐하니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거다!”
역천마제 또한 처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붉어진 눈으로 진화와 제왕검을 상대했다.
하지만 그의 논리도, 공격도 제왕검과 진화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미친놈! 네놈이 권력을 탐한 것이 제일 부당하다! 네놈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는데 그딴 개소리야!”
퍼어어억! 퍽!
남궁경 이전에 남궁 제일 기재이자 정파 제일 고수는 남궁강 자신이었음을 증명하듯, 검을 손에 쥐지 않은 남궁강은 본래 권을 쓰는 사람처럼 양손에 새파란 강기를 두르고 역천마제의 급소를 타격했다.
물론 실제 그의 권이 타격한 건 역천마제가 전신에 둘러싼 역천멸신공이었지만, 간혹 빈틈이 벌어졌다.
파파파파파팟-!
진화의 천뢰기가 역천멸신공의 열기를 깨뜨렸을 때 말이다.
파파파팟! 챙! 챙! 파파파팟!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가 역천마제를 몰아붙였다.
섬전십삼검뢰 붕격우산이 산을 깨뜨리는 빗물처럼 끊임없이 역천멸신공을 베고 또 베었다.
팟! 파팟! 파-앗!
눈앞에서 불꽃이 튀고 물이 출렁거렸으며 사방으로 퍼진 기파가 뇌전으로 둘러싼 벽에 부딪혀 깨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역천마제가 통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렇게 깨뜨려야 한다! 적을 부수는 것부터 세상을 부수는 것까지,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부숴야 한다! 나는 군림하기 위해 부순 것뿐이다! 가장 강한 자가 군림하는 것이 가장 이치에 맞지 않느냐! 약한 자들의 논리, 약한 자들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부수는 것뿐이다-!
“그래, 당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금수들의 세상이었군.”
“절대적인 진리를 폄훼하지 마라-!”
진화의 말에 역천마제가 분노를 토했다.
하지만 진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덤덤한 얼굴로 역천마제와 마주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단 하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것!”
진화가 단호하게 소리쳤다.
제왕검과 남궁경, 진화로 이어지는 남궁세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진화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연결일 것이라 확신했다.
시간을 거슬러 온 자신조차 피하지 못한 연결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역천마제와 싸우고 있는 건 제왕검과 남궁경, 진화였지만, 이 석양호의 함정을 만드는 데에 천수현인부터 남궁진휘까지 이어진 군사부의 역량이 들어갔고 그 이전에 전 무림이 죽을힘을 다해 움직였다.
석양호 주변을 둘러싼 정사연합의 무인들 역시 과거의 희생을 품고 미래를 위해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전 무림의 시간, 세월, 역사가 함께하고 있었다.
‘역천마제의 기운이 거칠어졌다. 드디어 저자도 지쳤으니, 이제 끝을 볼 시간이구나!’
진화는 그 모든 것과 함께 최후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