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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406)화 (406/425)

남궁마제

보배 진(珍) 꽃 화(花) : 결말(6)

끝…….

두 번째 삶은 ‘끝’을 생각하고 시작한 생이었다.

하늘이 준 기회인지, 우연으로 일어난 기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번째 삶을 시작하며 진화는 오로지 복수만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종종 머릿속으로 끝을 그려 보았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싸울지는 막연했다.

지난 생에서 역천마제나 검마제는 만나기도 전에 죽었고, 광마제의 바닥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몰래 기습을 할까, 함정을 팔까,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누를까.

복수의 방식은 매번 상상할 때마다 달랐다.

다만 끝은 매번 같았다.

홀로 광마제와 싸우다가 죽는 것.

이전 생보다 일찍 경지를 넘어섰을 때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광마제를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능성을 재어 본 적은 있었지만, 복수가 끝난 이후에도 살아가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진화가 생각하는 ‘끝’이 달라진 건 광마제를 죽이기 직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진화는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그건 바람이고 꿈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진화는 그 꿈을 이룰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를 잡는다면 진화는 이제 ‘끝’이 아닌 ‘다음’을 꿈꿀 수 있을 것이었다.

* * *

쉐에에에에엑--!

제왕무적검 만인지상-!

진화의 의천검에서 천뢰기가 길게 뿜어져 나와 역천마제에게 적중했다.

“소용없다!”

파파파팟-! 퍼-엉!

역천마제가 주먹을 들어 진화의 검기를 때렸다.

파-------앗!

튕기듯 날아간 검기가 석양호를 때리면서 해일처럼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그 파도를 가르고 제왕검이 뛰어들었다.

“소용없는 건 네놈의 발악이지! 네놈은 과거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구나!”

쉐에에에에엑---!

제왕검형 불위-!

검은 없었다.

하지만 제왕검 남궁강은 그 어떤 검보다 빛나는 검을 자유롭게 휘둘렀다.

과거의 패배를 앙갚음하듯 그는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서 신나게 역천마제의 기운을 베고 또 베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그건 당연한 거다! 나는 모든 것을 넘어선 초월자니까!”

역천마제가 제왕검의 말을 부정하는 동시에 분노했다.

역천멸신공 멸형-!

검게 물든 용이 역천마제의 분노를 대변하듯 제왕검의 모든 검기를 물고 때리며 부쉈다.

하지만 심형으로 만들어 낸 제왕검의 검은 부서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다.

꺾이지 않는 푸른 심형이 굳건하게 검은 용과 맞섰다.

“세월은 흐르고 시간은 그 누구도 초월할 수 없지. 과거가 흐른 자리에 현재가 살아가는 법이니까!”

단호한 말과 함께 제왕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제왕검의 청명한 눈동자로 남궁경의 모습이 담겼다.

콰광광--- 콰앙!

제왕검형 천하(天下)-!

악룡을 처단하듯 남궁경의 검이 검은 용의 머리를 베었다.

카아아아아아---!

남궁경의 검기에 눌린 역천마제의 기운이 석양호와 닿으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새하얀 수증기가 폭포처럼 솟아올랐다.

“큿!”

순식간에 살을 익힐 듯한 열기가 남궁경과 남궁강을 덮쳤다.

그 속에서 역천마제가 소리쳤다.

“시간은 그저 인간의 말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해!”

역천멸신공 역신(逆神)-!

촤아아아아---!

하얀 수증기 속에 있는 남궁경과 남궁강을 향해 검은 기운이 파고들었다.

그때.

파지지지지지직----!

하얀 수증기에서 뇌전이 번뜩이며 검은 기운을 태우기 시작했다.

파팟-! 쿵! 쿵!

기운끼리 부딪치는 여파에 남궁경과 남궁강이 던져지듯 석양호 밖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있던 자리엔 어느새 진화가 의천검을 번뜩이고 있었다.

“시간은 모든 걸 바꾸지. 당신이 늙어 버린 육신을 바꾸지 못해 안달할 만큼. 모든 건 시간을 이기지 못한 당신의 발악일 뿐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초월하지 못했고, 결국은 세상을 해치려는 무모한 욕망을 품은 과거의 마두로 남을 거다!”

“갈--! 감히 마두라니! 누구도 본 좌를 마두라 부를 수 없다!”

파파파파파팟--!

콰광! 쾅!

역천마제의 검은 기운이 수십 개의 머리가 달린 용이 되어 진화를 향해 달려들고, 그때마다 진화의 뇌전과 부딪히며 수증기 기둥이 솟아올랐다.

새하얀 안개가 그들의 모습 전체를 가리고.

그 속에서 진화는 끊임없이 역천마제와 충돌했다.

“아가!”

“진화야!”

온통 새하얀 수증기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곳에서 제왕검 남궁강과 아버지 남궁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화가 지키지 못했던 남궁세가의 상징이자 지주였던 남궁강.

진화를 지키려 목숨까지 바쳤던 아버지 남궁경.

이번 생에 진화는 그들의 아들이자 손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저 모든 사람들과 함께 그리는 내 미래에 홀로 정체된 당신이 있을 자리 따윈 없다! 사라져-!”

“너와 네 모든 것을 죽일 거다! 다시는 날 방해하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죽이고 세상 위에 군림할 것이다!”

진화와 역천마제가 서로의 분노, 증오, 심연의 의지를 뿜으며 부딪쳤다.

제왕검형 군림(君臨)-!

역천멸신공 천공(天空)-!

파파파파파파파파팟---!

촤아아아아악--!

뇌전으로 펼쳐 놓은 벽을 넘어설 정도로 석양호의 물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검은 형체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석양호 전체를 검게 물들이고, 곧 그곳에서 푸른 빛이 번뜩거렸다.

그리고.

쏴아아아아아아아--!

마치 하늘과 연결된 새하얀 기둥이 솟아나듯, 거대한 수증기 구름이 끝도 없이 피어올랐다.

“진화야---!”

남궁경이 소리쳤다.

진화가 펼친 최후의 초식은 군림이었으나, 남궁세가가 그린 군림은 그저 모든 것과 함께 존재하고 흘러가는 하늘이었다.

반대로 세상 위에 군림하려 한 역천마제가 펼친 최후의 초식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담기지 않은 천공이었으니.

마치 이번 생에 들어 삶을 가득 채운 진화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역천마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했다.

“진화야---!”

석양호를 막고 있던 뇌전의 벽이 사라지자, 수증기와 타는 듯한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읏!”

“뜨거워!”

축축한 수증기가 아니었다면 눈앞에 불을 붙인 줄 알았을 정도로 뜨거웠다.

갑작스러운 열기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사람들이 코와 입을 가렸다.

조금 옅어진 수증기 사이로 동굴 저 밑바닥에 서 있는 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진화야!”

남궁경이 급하게 진화를 부르며 뛰어 내려갔다.

살이 익을 정도로 지독한 열기를 뚫고 내려간 남궁경은 서로 마주 보고 선 진화와 역천마제를 발견했다.

파지지지직.

진화를 노려보는 역천마제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파----팟!

“……!”

역천마제의 전신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아버지.”

남궁경을 돌아보며 진화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저, 저기!”

누군가 손가락으로 호숫가를 가리켰다.

새하얀 수증기와 열기가 어느 정도 퍼지고 난 뒤,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누군가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누군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담하다고 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던 호수였다.

그런데 그 많던 물이 산처럼 깊은 구덩이만 남긴 채 모두 사라진 것이다.

해를 담아 내며 붉게 물들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석양호가 사라졌다.

“허!”

“어, 어떻게 된 거야?”

사람들이 시선으로 제왕검과 남궁경, 남궁진화를 찾았다.

역천마제가 나타나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나, 나온다!”

진화를 부축하고 남궁경과 제왕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제일 먼저 그들을 발견한 무인이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에 진화와 역천마제 단둘이 수증기 속에 가렸던 것을 본 사람들은, 곧 진화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역, 역천마제가 죽은 건가……?”

“만……세! 만세! 만-세!”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두 팔을 반쯤 들어 올렸을 때.

“만……!”

“크아아아--! 보지 마-아! 눈 깔라고!”

짐승 같은 괴성과 함께 남궁진혜가 소리쳤다.

“눈 깔아! 아니 감아! 눈 뜨는 놈들은 내가 눈깔을 뽑아 버릴 테다! 보지 마!”

사방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남궁진혜는…….

“미친놈.”

모두의 마음속에 있던 소리를 적호단주가 시원하게 내뱉었다.

“……년 아닙니까?”

“그게 중요하냐? 저거 대체 왜 저래?”

적호단주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지만 그걸 일 조 조장이라고 알 리 없었다.

아니, 알 리 있는 건가.

“……부축하는 게 아니라, 안 보여 주려고 감싸는 거였네요!”

일 조 조장 서장원이 뭔가 크게 깨달은 듯 말했다.

진화를 부축하고 나오는 줄 알았던 남궁경과 제왕검이 사실은 사람들의 눈에 진화가 보이지 않도록 감싸고 나오는 것이었다.

싸우면서 열기에 진화의 상의가 모두 날아간 듯 대리석처럼 하얗고 매끈한 상체가 드러났다.

남궁경과 제왕검의 팔 사이로 드러나는 자태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현경을 넘어선 고수의 완벽하게 단련된 근육과 균형 잡힌 신체는.

“촉촉하게 젖었네요.”

“변태 같은 놈.”

“머리카락을 말한 겁니다. 단주님이야말로 뭘 보신 겁니까?”

“…….”

흥건하게 젖은 피부와 머리칼, 열기에 익은 듯 창피함에 익은 듯 붉게 물든 혈색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용감무쌍한 여무인들의 얼굴이 진화의 피부처럼 붉게 물들었다.

남궁경과 제왕검, 남궁진혜가 열심히 가렸지만 무림인들의 안력까지 가리기엔 무리였다.

“저놈은 대체 왜 간 거야? 다 큰 여자가 소매도 다 찢어 놓고. 가려도 저나 가릴 것이지 시커먼 사내놈 몸뚱어리를 대체 왜 가린다고. 쯧쯧쯧!”

“…….”

적호단주가 주변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남궁진혜를 보며 혀를 찼다.

서장원이 말없이 조용히, 지긋한 눈빛으로 적호단주를 보았다.

“뭐? 왜?”

“…….”

여기 있는 수천 명의 무인들을 잡고 물어봐도, 남궁세가 사람들이 유난스럽다고 할지언정 남궁진혜가 진화를 가리는 걸 두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터였다.

오직 적호단주만이 ‘여인’이 시커먼 사내를 가린다고 불평할 뿐이었다.

‘여기서 부단주를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단주님뿐이고, 남궁진화를 시커먼 사내놈이라고 하는 사람도 단주님뿐일 걸요……라고 말하면 때리시겠지?’

서장원은 입을 꾹 다물고 지긋이 적호단주를 바라보는 걸 택했다.

“쓰불. 눈 깔아, 새끼야.”

얼굴을 붉힌 적호단주가 괜히 욕을 하며 서장원의 시선을 피했다.

“어휴, 저 팔불출들. 유난도, 유난도.”

남궁진휘마저 진화에게 쫓아가자, 그를 지키러 왔던 호현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왕검까지 저러실 줄은 몰랐는데, 남사스러워서 원. 안 그러냐? 응? 어디 갔……!”

호현기가 동의를 구하려 남궁구, 남궁교명을 돌아보았지만, 방금까지 곁에 있던 그들도 진화를 향해 뛰어가고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호현기가 허탈한 듯 한숨을 쉬었다.

호현기는 남궁세가 직계들을 빙 둘러싼 창궁무애단과 제왕무적단,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아버지 호방련의 모습은 애써 못 본 척했다.

“글러 먹은 집구석이야. 정상은 하나도 없어.”

호현기의 불평은 곧바로 이어진 정사연합 무인들의 ‘만세’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만세! 만세---!”

석양호가 사라진 곳에 무림인들의 만세 소리만 가득했다.

그들의 무림을 되찾았다는 환호성이었다.

* * *

역천마제가 죽고 난 뒤에도 정사연합은 한동안 바쁜 여정을 이어 갔다.

귀천성 문파들을 추적하기 위해 정의맹과 사패천의 연합 역시 당분간 지속하기로 했다.

정사연합 무인들은 역천마제와 귀천성이 존재했던 과거마저 지우려는 듯 귀천성 휘하의 문파들을 쫓았다.

정의맹 소속 무단들도 이전보다 더 바쁘게 외부 임무에 나갔다.

단 숙청단원들은 모두 각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애초에 특별 임무를 위해 임시로 조직된 별동대와 같은 성격인 데다 각자 문파와 세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화는 제왕검, 남궁경과 함께 그리운 남궁세가로 돌아갔다.

“진화야!”

“어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진화가 활짝 웃으며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어이구, 우리 조카 정말 오랜만이구나. 고생 많았지?”

“아버님, 서방님도 고생들 하셨어요.”

“그래. 그나마 며느리는 좀 낫구나. 자식새끼는 키워 봐야 소용없어.”

“하하하.”

남궁가주가 실로 오랜만에 보는 진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제왕검이 노골적으로 질투를 하면서, 그의 자식들 모두가 민망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제왕검을 뒷전에 두기는, 오는 내내 진화에게 붙어 떨어질 줄 몰랐던 남궁경이나 만나서 지금껏 진화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던 팽연화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가모 하후민을 제외하면 말이다.

“호호호. 그렇죠? 망할 놈의 자식새끼들이 누굴 닮았는지 이번에 드러났네요.”

하후민의 뒤로 역천마제만큼 검은 기운이 보이는 듯했다.

이번에도 남궁진휘와 진혜 남매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자식새끼들은 이번에도 또, 안 왔네요. 서류를 못 봐서 뒈진 귀신이 붙었는지, 산천으로 떠돌다 뒈진 귀신이 붙었는지. 굿이라도 할까 봐요. 호호호호호!”

가모 하후민의 웃음소리에 제왕검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립고 정다웠던 가족들의 모습에, 진화가 오른손에 팽연화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 슬쩍 하후민의 손을 잡았다.

하후민이 깜짝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진화가 먼저 손을 잡아 오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큰어머니, 집으로 들어가요. 큰어머니의 창펀이 먹고 싶었어요.”

“호호호, 우리 진화가 그랬어? 그럴 줄 알고 내가 창펀을 엄청 해 놨지! 그래. 그놈들은 잊어버리자. 이렇게 예쁜 우리 진화가 있는데!”

어색하지만 다정한 진화의 애교 아닌 애교에 하후민이 금방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소공자님, 어서 오세요!”

“어머! 소공자님, 다녀오셨어요?”

중간중간 가솔들의 열렬한 환영 인사를 들으며, 진화가 가족들과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운 천화정 식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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