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일상이란(1)
아침.
습관적으로 햇빛이 얼굴에 닿자마자 눈을 떴다.
“…….”
익숙한 천장과 침구에서 느껴지는 그리운 냄새.
진화는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그대로 그것들을 만끽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침 수련을 하러 나갔을 것이었다.
‘이젠 그럴 필요 없지…….’
귀천성이 없었다.
진화가 무공을 익힌 것은 온전히 귀천성 때문이었다.
이전 생에선 운명과 광마제에게서 도망치려 무공을 익혔고, 이번 생엔 운명과 광마제에게 복수하려 무공을 익혔다.
물론 이번 생에 진화는 무공을 익히면서 운명에서 벗어났고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귀천성이 아니었다면 과연 제가 무공을 익히려 했을까?
뼈를 깎는 수련은 성취감과 함께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했다.
과연 귀천성이 없는데도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감내했을까?
이제 광마제도 죽었고 역천마제도 죽었다.
검마제 또한 옥허신검의 손에 죽었다고 전해졌다.
‘귀천성이 없는 세상이라니…….’
진화의 입가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으면서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세상이라,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진화는 침구에 몸을 푹 파묻었다.
* * *
진화가 처음으로 게으른 아침을 보내려는 때.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기침하셨습니까?”
진화의 담당 시조인 호신이었다.
어릴 적 부지런히 진화의 보양 개미를 흐트러뜨려 버리던 사람 중 일인인지라, 진화는 조금 심술을 부리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호신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말을 이었다.
“심통 부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작은마님께서 공자님께서 마르셨다고 아침부터 만찬을 차리셨습니다. 어서 가셔야지요?”
‘어머니!’
호신은 진화를 일으키는 만능 단어를 알고 있었고, 진화는 알면서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 호신과 시녀들이 세숫물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
“푹 주무신 얼굴이시군요. 눈곱만 떼면 아침부터 광채가 날 듯합니다. 흐흐흐.”
진화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보았지만, 호신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저 웃음만 흘렸다.
시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성껏 데운 따끈한 세숫물을 들고 그저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서 있었다.
“후우.”
진화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심술을 부려 봤자 여기는 천화정이었다.
팽연화와 남궁경 다음으로 저를 귀애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 진화는 저도 모르게 폐부 깊은 곳에 있던 작은 숨마저 토해 낼 수 있었다.
남궁강이 오전에 일어나는 게 불가능한 늦잠쟁이라 남궁세가의 정식 만찬은 언제나 점심 식사 때였다.
분명 그러했는데…….
“큰아버지, 큰어머니?”
진화가 의아한 눈으로 천화정 식탁에 떠억 앉아 있는 남궁가주와 하후민을 보았다.
“호호호, 우리 진화 잘 잤니? 네 큰아버지가 네 얼굴이 빨리 보고 싶다고 새벽부터 극성이잖니.”
“허허, 네 큰어머니가 너 먹일 거라고 새벽장에 들러 금거북을 사 왔더구나. 이제까지 기운을 많이 썼는데 보양을 해야지.”
현경에 들고 나서 진화의 육체는 숨만 쉬어도 저절로 균형과 조화를 찾아갔다. 거기에 진화는 혼돈지체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력이 배는 빨랐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보양식은 과중한 업무로 인해 눈 밑에 그림자가 내려온 남궁가주에게 더 필요할 것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오랜 경험상 그런 말로는 제 아침 그릇에 오를 용봉탕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잘 알았다.
“우리 진화 많이 먹어라.”
“…….”
이후로도 식사 시간 내내 팽연화와 남궁경, 남궁가주와 하후민은 진화의 그릇에 음식을 올려 주기 바빴고, 진화는 그들의 성의를 한 번도 거절하지 못했다.
다행히 어릴 적과 마찬가지로 덕순 할매가 고기만 가득한 진화의 그릇에 채소를 올려 주고, 너무 양이 많다 싶으면 적절하게 그릇을 바꿔 주면서 무사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아침 식사 이후, 진화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청림이었다.
임시 거처로 있던 오두막을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부숴 놓은 후로 남궁호명은 청림의 거처를 제대로 된 전각으로 지었다.
“왔느냐.”
“예. 이것을 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진화가 의천검을 내놓았다.
하지만 남궁호명은 의천검은 보지도 않고 진화를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요 싸가지없는 녀석. 본가에 왔으면 스승부터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고 해야지. 잘 거 다 자고 이제 와서 검을 돌려주려고 와?”
“어제는 스승님께서 자리를 비우셨지 않습니까.”
진화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제왕검이 함께 왔다는 소식에 없던 임무도 만들어 자리를 피한 사람은 분명 남궁호명이었기 때문이다.
“주, 중한 일이 있었지.”
불리해진 남궁호명이 말을 돌렸다.
그에 진화도 피식 웃으며 ‘그 중한 일’이 무엇인지 파고들지 않았다.
“젠장. 악몽이 좀 없어지나 했더니, 영감탱이들이 그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남궁호명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에 진화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피해 다니시는 것보다 장로직을 맡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사실 스승님의 연세가 은퇴하기에 이르시기도 했고…….”
“넌 대체 누구 편이냐?”
진화의 말에 남궁호명이 진심으로 서운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
“스승님 편요. 흐흐.”
“흥, 웃기는.”
개구진 아이처럼 이를 보이며 웃는 진화의 모습에 남궁호명이 입술을 삐죽이며 물러섰다.
‘이제 좀 편안해졌는데 다시 고생길에 들 수 없다.’는 남궁호명의 마음도 이해는 되는 터라 진화도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의천검은 도움이 좀 되었느냐?”
“예. 꼭 제 손에 맞춰 만든 검처럼 뇌전을 온전히 견디더라고요. 덕분에 위력을 손상시키지 않고 힘을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진화가 애틋한 눈으로 의천검을 보았다.
의천검이야말로 진화가 이전 생에선 얻지 못했던 가장 큰 조력자였으니.
의천검을 보는 진화의 눈엔 고마움이 가득했다.
“무림에 새로운 의천검주가 다시 중원을 구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특히 검수들은 의천검주를 우상처럼 칭송한다지?”
남궁호명이 자랑스럽다는 표정 반, 놀리고 싶다는 표정 반으로 진화에게 말했다.
하지만 진화는 진지한 얼굴로 남궁호명과 눈을 마주쳤다.
“‘다시’ 구했다는 건 이전에도 의천검주가 중원을 구했었다는 의미지요. 무림인들 모두가 여전히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
진화의 말에 남궁호명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진화가 그런 남궁호명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스승님께선 전쟁을 악몽으로 기억하며 오랫동안 힘드셨지만, 스승님 덕분에 많은 무림인들이 진짜 악몽에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법, 말이 늘었구나.”
남궁호명의 악몽엔 언제나 죽은 동료들,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이 등장했다.
다른 말로 남궁호명은 그들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며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매번 비통하게 잠에서 깬다는 건 남궁호명에게도 힘든 일이었지만, 남궁호명은 자신이 그렇게라도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남궁호명은 자신과 죽은 이들이 구한 수많은 사람들을 잊고 있었다.
‘비통하긴 하지만 의미 없는 죽음들이 아니었는데…… 내가 너희들의 반쪽만 떠올리고 있었구나.’
남궁호명이 죽은 수하들을 떠올리며 여전히 슬픈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흘렀다.
휘이이이잉---!
나무들 사이로 조용히 바람이 불었다.
청림도 정비의 시간을 가지면서 천주산에서 흐르는 상쾌한 바람이 그대로 통과하고 있었다.
진화와 남궁호명은 서로 아무 말 없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잠시 이 상쾌함을 즐겼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오에게 ‘단지 죽이는 거’로는 모자란다고 했다고?”
“예. 진심이었거든요. 광마제를 죽이고 나서도 그렇게 막 속이 시원하진 않더라고요. 이전에는 그자만 없으면 뭔가 전부 끝이 날 줄 알았는데…….”
“그만큼 그자의 의미가 네 안에서 작아진 거겠지. 전부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코딱지만 해져 있었던 거야. 그만큼 네게 다른 중요한 것들이 많이 생긴 것이고.”
“…….”
남궁호명의 말에 진화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았다.
남궁호명이 그런 진화를 돌아보며 씨익 웃으며 물었다.
“귀천성이 사라지고 어떠하냐? 의외로 참, 별거 없지?”
남궁호명의 말이 진화의 속을 꿰뚫는 듯했다.
그에 진화가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속을 털어놓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많이 시원할지 혹은 허탈할지, 참 많이 상상했는데, 아직 실감이 덜 나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예. 상상은 해 봤었는데 막상…….”
“남궁세가를 지키고 귀천성에 복수할 생각만 하고 살았더니 그게 아닌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 아니냐?”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남궁호명의 말에 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남궁호명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수십 년을 그 생각만 하고 산 사람들도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아직 어린 녀석이 별생각을 다 했구나. 하하하하하!”
남궁호명의 웃음소리에 진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 딴에는 스승이라고 남궁호명에게 털어놓은 것인데, 남궁호명이 웃음을 터뜨리니 놀림을 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웃음을 그친 남궁호명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뭐라 투덜거릴 수도 없었다.
“나도 그랬다. 전쟁터에서 돌아와 청림에 처박혔을 때, 귀천성이고 뭐고 물러났으니 신경을 꺼야지 했는데, 막상 신경을 끄고 살려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구나. 이전의 내 삶은 모두 귀천성을 중심으로 돌아갔거든. 놈들이 어디 있는지 정보를 파악하고, 놈들이 무엇을 노릴지 생각을 읽고, 놈들을 이길 방법만 찾았지. 그런데…… 조금 지나 보니 그것 외에도 내가 하는 건 많더라고.”
“……?”
진화가 눈을 크게 떴다.
그에 남궁호명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일상.”
“일……상요?”
“가주의 밀검으로서 청림을 관리하고, 장작을 패고, 식사를 챙기고, 검을 닦았지. 죽은 놈들 무덤이나 위령비도 보살펴야 하니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늘어났다. 몸이 녹이 슬면 안 되니 수련도 해야지. 아침 수련은 어릴 적부터 습관처럼 해 오던 거니까.”
“제게도 그런 일상이 있었을까요? 저는 무공조차 귀천성을 없애기 위해 익힌 것이라…….”
진화는 제가 남궁세가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무가에서 태어나 밥을 먹듯 당연하게 수련을 하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은 광마제와 귀천성에 복수를 하기 위해 무공을 붙잡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남궁호명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듯 진화를 보았다.
“인석아, 네가 여기에 와 있는 게 네 일상인데 또 어디서 일상을 찾고 있느냐?”
“네?”
“네가 아침 식사 시간에 식구들에게 시달리고 청림으로 도망쳐 오는 것이 귀천성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아.”
“허허, 일상이 뭐 별거야? 그냥 사는 대로 사는 거지. 특별하게 할 일을 찾을 필요 없다. 그게 일상이니까.”
남궁호명은 멍하게 저를 보는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남궁호명은 아마도 그가 진화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로 오늘이 가장 스승답게 뭔가 가르침을 준 날일 거라 생각했다.
* * *
그 시간, 천명관.
천명관은 남궁세가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곳으로, 남궁가주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남궁가주의 집무실에는 아침의 그 팔불출들은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매서운 얼굴을 한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자리해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빨리 돌아오고 있군. 벌써부터 꼴사나운 밥그릇 싸움이 시작되었어.”
남궁가주의 말처럼 귀천성이 사라진 후 중원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일상을 회복했다.
자신들의 땅을 찾은 이들은 복수를 하는 동시에 이전의 영향력을 찾으려 애를 썼고, 그동안 반쪽짜리 중원에서 온갖 이권을 독점해 온 이들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바동거렸다.
게다가 이번 전쟁으로 인한 논공행상도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무림 놈들이 다 그렇지. 공공의 적이 없어지면 사방이 적 아니겠어? 그래서, 형님은 이번에 빠질 거요?”
남궁경이 심드렁한 얼굴로 슬쩍 남궁가주를 떠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럴 리가. 우리도 챙길 건 다 챙겨야지.”
남궁가주는 시원하게 이를 드러내며 검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사천 무림이 자리를 잡으면 그쪽 표국이나 수상 선단을 되찾으려고 할 거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청해상단이 잡고 있던 영향력이나 이권도 줄 수밖에 없지. 여기에 당문이나 점창파, 형산파에서 자신들 구역의 독점을 주장해 오면 부딪히거나 협상을 할 수밖에 없을 테고.”
남궁세가는 차라리 귀천성이 있을 때가 나았다 할 정도로 이래저래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이 줄어든다고 해서 안달할 남궁가주가 아니었다.
“이번 전쟁에서 무인들의 이동부터 물자 보급까지 우리 남궁세가의 공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귀천성이 사라진 덕에 중원이 넓어졌어. 중원이 부유해질수록 우리 남궁세가가 만들어 내는 차나 비단 같은 사치품의 소비도 늘어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조금 나눠 주더라도 시장 자체를 넓힐 기회를 잃을 수는 없지. 게다가 이 시점에 전 중원을 대상으로 교역을 펼칠 곳은 청해상단밖에 없으니까.”
남궁가주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제왕검 남궁강과 남궁경이 마음 놓고 밖에서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남궁가주가 버티는 본가가 무너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궁가주야말로 정사엽합의 요구에 맞춰 통행로와 배, 물품을 시기적절하게 보급해 준 이 전쟁의 숨은 공로자였으니.
남궁가주는 그런 남궁세가의 희생과 공로를 절대 공짜로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직접 정의맹으로 갈 생각이오?”
“아니. 거기에 박아 놓은 녀석 있지 않느냐?”
“누구? 혹시 진휘에게 맡기게요?”
남궁경이 놀란 눈으로 남궁가주를 보았다.
소가주인 남궁진휘가 군사부에서 큰 활약을 보인 것도 사실이나, 아직 본가의 이권이 달린 중대한 일을 맡은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속 보이는 말일지 모르지만, 정의맹에서 전략을 짜는 일과 본가의 이권이 걸린 협상은 중요도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이번에 시켜 보지. 나는 이곳에서 더 중요한 걸 처리해야 해서 정의맹으로 가기 힘드니까.”
“가문의 이권보다 중요한 일이 있소?”
“…….”
남궁경의 물음에 남궁가주가 무거운 표정으로 뭔가를 내놓았다.
“팽가에서 보내온 청혼서다.”
“청혼서? 팽가에서? 대체 누굴…… 설마, 진혜?”
연달아 터지는 남궁경의 물음에 그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남궁경의 모든 물음에 남궁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궁경이 이번에는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팽치는 동의한 일이라오?”
남궁경의 물음에 남궁가주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팽가와는 거리가 멀고 가문의 사업 중에 겹치는 것이 없지. 천지 사방에서 저들끼리 혼인동맹을 맺고 싸우자고 덤비는데, 우리 것을 탐하지 않고 손을 잡기에 팽가만 한 곳도 없다. 게다가 진혜나 팽치 모두 혼기가 지났으니까.”
“그래서 진혜랑 팽치가 순순히 한다고 하느냐고!”
“……진화가 아프다고 전서를 보내 볼까? 일단 진혜가 집에 와야 감금을 하든 협박을 하든, 해 볼 테니까.”
방금 전까지 세상 누구보다 든든하던 남궁가주가 유일하게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