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408화 (408/425)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일상이란(2)

유주 탁군 백호현.

예부터 같은 지역 다른 마을보다 눈이 많이 오는 데다 주변에 호환이 많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하지만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마저 강하게 만들었으니. 그중에서도 백호현은 이름난 호랑이 사냥꾼이 모인 사냥꾼들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차츰 시간이 지나.

백호현은 맨손으로 호랑이와 곰을 사냥하던 사냥꾼들의 마을에서 무림에서도 이름난 팽가의 마을로 유명해졌다.

팽가 장원.

평범한 건물의 두 배는 될 법한 기둥과 목재, 두꺼운 검은 기와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투박한 정원석과 녹색 풀 외에는 흔한 장식 하나 없는 무뚝뚝한 장원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웃통을 벗고 수련하는 건 팽가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귀천성과 전쟁을 마치고 복귀한 후라고 해도 말이다.

“크아아아합!”

“합! 합! 타-합!”

장원의 입구부터 사내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가득하고.

가신들과 시종들은 그 광경이 익숙한 듯 무뚝뚝한 얼굴로 제 할 일에만 집중했다.

그때.

콰---광!

팽가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대성전에서 굉음이 울렸다.

수련을 하던 사내들과 가신들, 시종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자신들의 일에 집중했다.

콰광! 쿵! 쿵!

연이어 터지는 굉음에 안 그런 척 모두의 신경이 대성전으로 향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팽가주 팽여가 가문의 중대사를 위해 그의 여섯 아들들을 모두 불러 모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소가주를 묵사발로 만들고 집을 나갔던 망나니 팽치까지도 말이다.

* * *

콰-광!

“다른 곳으로 가, 새끼야. 난 네놈 새끼가 숨 쉬는 걸 보는 것도 질색이니까.”

팽치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제 맞은편에 앉은 사내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사내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이런 망나니 새끼가! 싫으면 네가 꺼지든가!”

현재 팽가의 소가주로 있는 장남 팽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정식 소가주 인장도 받지 못한 임시일 뿐이었다.

“네가 꺼져. 약한 놈이 꺼지라고. 그게 이놈의 집구석 철칙 아닌가?”

팽치가 이를 드러내며 팽정에게 이죽거렸다.

팽치가 망나니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 십여 년 전부터였다.

그때 팽치가 팽정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집을 떠났었다.

팽정은 그때의 기억이 남아서 팽치가 그를 위협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다리를 움찔거렸다.

“흥.”

팽치는 그런 팽정을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다른 형제들은 그들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때.

탕-!

문이 열리면서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있던 팽가 형제들이 모두 일어섰다.

그들의 아버지이자 팽가주 팽여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여섯의 거대한 사내들이 팽가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를 대하는 살가움이나 반가움보다 강자를 향한 인정의 표현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늘 그러하였다.

“앉지.”

팽가주가 자리를 권하며 앉자, 형제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다.

형제들은 모두 여섯이었다.

첫째 팽정, 둘째 팽치, 셋째 팽호, 넷째 팽강, 마지막으로 팽수, 팽신 쌍둥이 형제.

따로 떨어뜨려 보면 하나같이 개성도 강하고 성격도 센 사내들이었지만,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니 팽가주까지 부정할 수 없는 한 핏줄이었다.

형태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반인들보다 훨씬 거대한 체격과 우람한 근육. 거기에 검고 두꺼운 눈썹과 쌍꺼풀이 짙은 부리부리한 눈, 미간에서부터 우뚝 솟은 코 그리고 두툼한 입술까지.

그들은 사납고 강인한 이목구비에 맹호를 상대하던 사나운 안광마저 꼭 닮아 있었다.

“귀천성도 사라졌고 중원의 질서가 재편될 것이다. 그동안 팽가가 황하의 교역로를 잡고 있었지만, 앞으로 우리의 이권을 노리는 곳들이 많이 생기겠지!”

쾅!

“감히 그런 놈들이 있단 말입니까? 제가 한 주먹에 모두 죽여 버리겠습니다!”

팽가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셋째 팽호가 흥분하며 탁자를 내리쳤다.

호전적인 팽호는 벌써부터 살기를 흘려 댔다.

그러자 첫째 팽정이 슬쩍 끼어들어 말을 보탰다.

“토벌대를 보내시죠. 소가주인 제가 팽가를 대표하여 나서겠습니다.”

귀천성과의 전쟁에서 이렇다 할 공을 세우지 못한 팽정은 어떻게든 가주의 눈에 띌 수 있는 사건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눈치는 없었던 듯.

“둘 다 닥쳐라. 경거망동하지 마.”

팽가주가 팽정과 팽호를 향해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마치 맹수가 새끼들에게 으르렁거리는 듯 묵직하지만 위협적이진 않았다.

“팽정, 임시 소가주직을 거둔다.”

“가주님!”

팽가주의 통보에 팽정이 격하게 소리치며 자리를 일어나고.

콰-광!

팽가주가 탁자를 내리치며 팽정을 노려보았다.

“닥치라고 했잖아.”

“…….”

팽가주가 무시무시한 안광과 압도적인 기운을 뿜으며 노려보자, 팽정은 입이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은편에서 팽치가 팽정을 향해 코웃음을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팽가주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한 팽정이 팽치를 향해 입술을 떨었다.

“닥치고 가문의 일에 집중해라.”

팽가주가 여섯 형제 모두에게 경고했다.

“팽가는 가장 강한 놈이 가주 자리에 앉는다. 동시에 다음 가주에 앉을 사람은 가장 강한 후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

예상했던 말 뒤에 이어진 전혀 예상치 못한 말.

팽치는 물론 형제들이 의아한 얼굴로 팽가주를 보았다.

“나는 문가, 무가, 이민족까지 각기 다른 여인들에게서 자식을 보았다. 그게 네놈들이지.”

팽가주의 말에 여섯 형제들이 서로를 보았다.

서로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지내는 차에 각자 어미가 다른 이부형제인 것이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팽정은 스스로 본부인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으나, 팽가 내부에서 그걸 대단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섯 아들들 모두 모계의 피는 온데간데없이 팽가주만 닮아 타고난 천력에 용담호혈을 가진 무골들이라, 그중에서 가장 강한 자가 가주 자리에 오르는 것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들은 결국 나와 닮았거나 나보다 못한 놈들이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는 무한경쟁의 시대다. 가문의 미래를 위해선 나보다 뛰어난 후계가 필요하단 말이다!”

“뭐야, 결국 장가 잘 가라는 소리나 하려고 불렀단 말이야?”

팽치가 당장 들고일어날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른 형제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팽가주를 보았다.

하지만 팽가주는 여전히 진지하기만 했다.

“네놈들 전부 가라는 말이 아니다! 나를 뛰어넘는 무인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팽가만큼 강한 집안의 여인을 맞아야겠지!”

“팽가보다 강한 집안이라면……?”

“남궁세가다! 제왕검과 남궁제일검을 잇는 무재에 벌써 경지를 넘어선 검수! 남궁진혜에게 청혼서를 넣었다!”

팽가주의 말에 팽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쾅!

“아버지, 미쳤어?”

적호단주인 팽치와 부단주인 남궁진혜의 사이를 두고 말이 많았던 터라, 형제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팽치를 향했다.

“나는 이 망할 집구석의 가주가 될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을 말해!”

팽치가 팽가주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팽가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누가 네놈이라고 했나? 너희들 중 가장 강한 놈이 이 혼담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 팽가 가주가 되겠지!”

팽가주의 선언에 여섯 형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쓰불, 이딴 혼담을 남궁세가에서 받아들인 거야? 남궁이랑 이야기는 된 거냐고!”

팽치가 흥분해서 소리치자 기회를 잡은 듯 팽정이 벌떡 일어섰다.

“그게 네놈하고 무슨 상관이냐! 가주가 될 생각도 없다면서!”

“넌 좀 닥쳐, 새끼야! 찌그러져 있으라고!”

팽치가 중요한 순간 가주의 앞에서까지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하자, 결국 참다못한 팽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이런 망나니 새끼! 잘됐다! 일전의 복수를 해 주마!”

팽정이 팽치를 향해 도를 겨누었다.

그걸 본 팽치 눈빛이 한없이 싸늘해졌다.

“날붙이를 겨눈 이상 각오는 한 거지?”

나지막이 묻는 목소리에 살기가 가득했다.

“허, 미친 새끼. 그때 내가 안 죽인 게 아니라 못 죽인 거라는 걸 알면서 나한테 날붙이를 겨눠? 나야말로 잘됐네. 이참에 네놈 모가지를 경이 제사상에 올려 주마!”

팽치의 주먹이 붉게 물들었다.

권사까지 피워 올리며 팽정을 노려보는 눈길이 흡사 원수를 보는 듯했다.

그때.

쿵!

“둘만 뭐 하는 짓이야? 가주 결정전이라면 나도 자격이 있다고!”

“가주 자리엔 관심이 없지만, 가장 강한 자를 가리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셋째 팽호와 넷째 팽강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드르르르르륵.

팽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흥분한 듯 팽호와 팽강을 노려보았다.

“형님, 이거 싸워도 된다는 소리지?”

“저놈들을 죽도록 때려도 되는 거라면, 잘됐군.”

팽수 또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어릴 적 팽가 정문 앞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는 포악한 셋째와 넷째의 장남감과 같았으니. 그간 쌓인 원한이라면 그들도 적지 않았다.

“쓰불! 그래, 이 개새끼들아! 전부 해보자!”

콰광-! 쾅!

팽치가 탁자를 그대로 내리치며 팽정에게 달려들고, 팽수와 팽신이 옆에 있던 팽호와 팽강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 * *

파파파파파팟-!

팽수가 팽신의 팔을 잡고 휘두르고, 팽신은 철혈백사십팔퇴(鐵血百四十八腿) 천석철퇴(天石剟頹)로 팽호의 도를 날리고 가슴을 밟았다.

퍼—억!

“큭! 이런 개새끼들!”

팽호가 피와 함께 욕지거리를 뱉으며 쌍둥이 형제를 노려보았다.

그사이.

원심력 그대로 이번에는 팽신이 팽수를 앞으로 던지고, 날아가듯 나간 팽수가 팽강과 주먹을 부딪쳤다.

퍼----엉!

두 사람의 기운이 부딪히며 기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무식할 정도로 정직한 정면 승부에 두 사람의 승패가 한눈에 확연하게 드러났다.

팽신의 기운과 원심력까지 받은 팽수의 혼원벽력장에 팽강이 뒤로 밀려난 것이다.

“죽어라!”

팽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갑추를 날렸다.

퍽퍽퍽퍽퍽-! 퍼-억!

“크읏! 너……!”

예상을 넘어서는 힘에 당황한 팽강이 팽수를 보았다.

놀라운 건 팽수의 힘만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급소만을 노리는 섬세함과 냉철하게 그의 반응을 관찰하는 눈을 보며 팽강은 팽수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간담이 서늘하게 식었다.

‘분명 정의맹으로 가기 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팽강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팽수는 그런 팽강의 얼굴 위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크-악!”

쿠웅.

팽강이 뒤로 날아가며 대성전 기둥에 처박혔다.

“방심하지 마라.”

팽수가 덤덤하게 경고했다.

이제 와서 코피와 함께 이빨 두 개를 떨어뜨리며 날아간 팽강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방심 안- 해!”

퍼어어어억-!

팽신이 철혈백사십팔퇴 우각우천(牛角于天)을 펼치며 팽호를 하늘 위로 차올렸다.

그리고.

“개새끼야, 아직 안 끝났어!”

“우아악!”

파파파파파팟-!

팽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팽신의 파갑추가 팽호의 온몸을 두들겼다.

팽수, 팽신 형제가 어릴 적 팽호, 팽강에게 가장 많이 당했던 무공이 파갑추였다.

“후련하군.”

“흐흐, 진화를 쫓아다니며 고생한 보람이 있네, 형님.”

어릴 적 복수에 성공한 팽수, 팽신 형제가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팽정과 팽치의 싸움은 서로 격렬하게 살기를 뿜어낸 것과 달리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퍼억! 퍽! 퍽!

“크억! 억! 자, 잠깐……!”

“닥쳐! 네놈이 아직 살아 있는 게 내가 이 집구석을 떠났기 때문이라곤 생각 안 해 봤지? 지금부터 해 봐, 늦지 않게!”

퍼—억!

팽치는 처음부터 붉은 권강을 선보이며 팽정의 도를 산산조각 내었다.

그리고 놀란 팽정을 향해 그때처럼 사정없이 주먹을 날렸다.

“어어억!”

또다시 코가 뭉개지고 앞니가 부러진 팽정이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섰다.

그것을 본 팽치는 더욱더 분노를 뿜어내며 권기를 날렸다.

파아아아아앗--!

붉은 호랑이가 포효하듯 팽치의 건곤신장이 팽정을 향해 날아갔다.

퍼-----엉!

“……무슨 짓이야?”

팽치가 잔뜩 화가 난 듯 팽가주를 노려보았다.

팽가주가 팽치의 건곤신장을 막고 팽정을 보호한 것이다.

“죽이는 건 안 된다.”

팽가주의 말에 팽치의 표정이 뒤틀렸다.

“그때, 저 개새끼가 경이를 죽일 땐 가만히 있더니, 이제 와서 죽이는 건 안 된다고? 왜? 이제라도 다 똑같은 자식새끼가 아니라 죽어도 되는 자식이랑 안 되는 자식이 따로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게?”

팽치가 팽가주에게 이죽거리며 독설을 날렸다.

이번만큼은 팽치의 말이 팽가주에게 타격을 입힌 것인지, 팽가주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이어서 팽가주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내 판단이 안일했다. 하지만 팽정도 팽경을 죽일 의도는 아니었고, 나도 그걸 방관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그건 사고였을 뿐이다.”

“고작 열두 살 먹은 놈에게 시종 하나 붙여 놓고 산을 오르게 해 놓고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해?”

팽가주의 변명이 오히려 팽치를 분노하게 했다.

그때, 쓰러져 있던 팽정이 소리를 질렀다.

“뜨벌! 누가 진짜 호랑이가 나올 둘 알았냐고-!”

핏물 때문에 발음이 뭉그러져서일까.

억울하다기보다는 울음으로 가득한 외침이었다.

실제로 눈물과 핏물을 흘리는 팽정을 보며 팽치도 살기를 누그러뜨렸다.

다만 팽정을 노려보는 눈길은 여전히 싸늘했다.

“이 개새끼야! 호랑이가 나오는 산에 애를 꼬득여 보내 놓고 진짜 호랑이가 나올 줄 몰랐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잘몬한 거 알아…… 네가 띠랄하지 않아도 내 탓인 거 나도 안다고! 띠-발!”

팽정이 결국 제 속을 뒤집어 보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격하게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씨발…….”

팽치가 욕지거리를 가며 돌아섰다.

저 한심한 꼴을 보자니 죽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 것이다.

팽치가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때.

“가주님, 우린 가주 안 한다.”

“아직 팽치보다 약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발칙한 막내들이 돌아서 나가는 팽치의 뒤통수를 때렸다.

놀란 팽치가 돌아보자, 팽수와 팽신이 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럼 남궁세가와의 혼담은 팽치가 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이제부터 저놈이 팽가의 소가주다.”

“자, 잠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팽치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지만 팽가주는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생각이 없었다.

쌍둥이는 적호단에서 함께 생활을 하면서 형제애는 몰라도 동지애는 쌓은 팽치를 응원하며 그의 등과 어깨를 두드렸다.

“이참에 부단주님께 용기 있게 다가서십시오.”

“사내답게, 힘내십시오.”

팽정과 팽호, 팽강이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고.

팽가주는 이미 인장을 찍어 놓은 혼담서에 팽치의 이름을 적었다.

제아무리 망나니라 소문난 팽치라지만 가문의 인장이 찍힌 결정을 되돌릴 순 없었던 것이다.

“미친! 진짜, 남궁세가에서 이걸 받아들인대요?”

“내일 남궁세가로 출발할 거다. 가 보면 알겠지.”

팽치의 물음에 팽가주는 일방적인 통보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팽치가 머릿속이 복잡한지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젠장, 그놈이 싫다고 난리를 칠 텐데…….”

결국 저는 남궁진혜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을 저들만 인정하지 못하니, 팽가주는 당황한 팽치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소를 머금었다.

‘바보 같은 녀석.’

처음부터 팽치였다.

자식들 중 가장 강하고 현명하며 정의로운 후계는.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팽치의 등을 떠미는 동시에 팽치를 집안에 잡아 둘 수 있게 되었으니.

팽가주는 혼담서를 소중하게 접어 품 안 깊숙이 넣었다.

‘사실 나도 남궁세가가 받아들일지는 몰랐는데. 이렇게 된 이상 두 사람 다 반드시 눌러앉힌다!’

팽가주가 굳게 각오를 다진 눈빛으로 대성전을 나섰다.

다음 날.

팽가주는 전날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듯 남궁세가로 가기 위한 행렬을 꾸렸다.

혼례품으로 마련한 약재와 가죽, 금은보화를 실은 수레부터 가신들과 팽정을 비롯한 형제들까지 모두 나섰다.

팽치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착실하게 남궁세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