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409화 (409/425)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일상이란(3)

“오늘 온다고 했나?”

“예. 제왕무적단이 대기 중입니다.”

“좋아. 일단 절대 들켜서는 안 되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전을 수행해야 하네.”

“물론입니다!”

남궁가주와 남궁경 형제가 의천문 성벽 위에서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오, 옵니다!”

청평원까지 나가 있던 제왕무적단원의 보고가 있고.

“준비하지!”

“충!”

남궁가주의 명에 제왕무적단이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잠시 후.

“진—화야---!”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남궁진혜가 의천문까지 내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청평원 사람들은 이제 남궁진혜의 폭주를 그러려니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제왕무적단원들이 정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비켜, 비켜! 진화는? 진화는 어딨는데!”

남궁진혜가 의천문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묻고, 성벽 위에 있던 제왕무적단원이 비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아, 안에. 당연히 천화정에 계십니다!”

“……일단 문 열어!”

제왕무적단원의 말을 들은 남궁진혜가 슬쩍 그를 째려본 뒤 문 앞에 있는 무인들에게 소리쳤다.

남궁진혜는 활짝 열린 의천문으로 들어와 곧바로 창천원을 향했다.

그녀의 뒤로 제왕무적단원들 몇이 따라왔다.

“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필요 없어!”

“영애님 오신 걸 보, 보고도 해야 해서…….”

“그래? 근데 왜 자꾸 말을 더듬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궁진혜의 눈초리에 제왕무적단원이 황급하게 소리쳤다.

그에 남궁진혜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려 그를 째려보았다.

“……꿀꺽.”

“귀 아파, 새끼야. 소리 안 질러도 다 들려. 쫄-긴. 큭큭. 우리 진화는 어때? 많이 아파? 얼마나 아프면 아버지가 전서까지 보냈대?”

“그, 글쎄요.”

남궁진혜는 잔뜩 얼어붙은 제왕무적단원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대부분의 신입 무인들이 그녀를 보면 이렇게 얼어붙었으니, 특별하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근데, 왜 본가 경계를 제왕무적단이 보고 있어? 창궁무애단은 뭐 하고?”

“……그, 글쎄요.”

창천원까지 달리며 남궁진혜의 물음이 계속될수록 따라가는 제왕무적단원들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서 모기만큼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겨우였다.

한편, 성벽 위에선.

“안 들켜서 다행이라고 할지…….”

“망할 년. 아버지, 작은아버지한테 인사도 없이 진화부터 찾아?”

남궁경과 남궁가주가 숨기고 있던 모습을 드러내며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옆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제왕무적단원이 무척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전 거짓말했다고 나중에 죽지 싶습니다.”

“괜찮아. 진화가 천화정에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당장 쫓아오시지나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남궁경이 위로를 시도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자 곁에 있던 남궁가주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걱정 말게. 지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을 테니.”

“형님, 내 제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왕무적단 정도는 뚫고 나올 겁니다.”

남궁가주의 호언장담에 남궁경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게 제왕무적단주로서 할 말이냐?”

“내 제자지만 걘 요괴요.”

남궁가주가 남궁경을 흘겨보면서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천화정 안에 요괴도 꼼짝 못할 요괴왕후가 있거든.”

“요괴왕후? 혀, 형수님? 진짜로요?”

“음.”

“…….”

남궁경과 남궁가주가 서로 말없이 정면만을 보았다.

‘만나기만 하면 머리카락을 죄 뜯어 주겠다!’고 벼르던 하후민을 떠올리며 형제는 입을 꾹 닫았다.

말하지 않아도 제왕무적단보다 믿음직스러운 수문장이었다.

“팽가도 올 때가 되었나요?”

“진혜랑 겹칠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팽가에서 이렇게 서두를 줄은 몰랐구나.”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남궁진혜의 마중도 아니면서 밖에 나와 있는 이유였다.

유주에서 출발하고도 양청현에서 달려오는 남궁진혜와 같은 날 도착한다니, 팽가에서 얼마나 서둘렀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꼴사납게 이러고 숨어 있잖아요! 그래 봤자 진혜밖에 데려갈 사람도 없는데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한 건지…….”

“일찍 데려가 준다면 고맙지.”

“그게 딸 가진 아버지가 할 말이오?”

“너는?”

“…….”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남궁경과 남궁가주는 서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어? 저기!”

“팽가가 벌써 왔어?”

“아니, 저건 진휘 마차 아닙니까?”

“……자식새끼들이 하나같이…… 으득.”

그렇게 오라고 해도 오지 않던 남궁진휘가 유인책에 속아서 급하게 오고 있었으니.

심지어 본인이 아니라 남궁진혜를 위한 유인책이었다.

그러니 황급하게 달려오는 남궁진휘의 마차를 보는 남궁가주의 눈에서 검강 같은 안광이 쏘아져 나가는 것도 이해할 법했다.

서늘해진 분위기.

마침 망을 보던 제왕무적단원 하나가 급하게 소리쳤다.

“패, 팽가가 옵니다!”

“이번엔 진짜야?”

“이젠 더 올 자식도 없다!”

남궁가주가 제 눈치를 보는 남궁경에게 버럭 하며 의천문으로 손님을 맞으러 나갔다.

* * *

팽가주와 팽가 사람들은 양주를 들어섰을 때부터 잠삼현으로 오기까지, 남궁세가의 위세가에 크게 놀랐다.

근래에 남궁세가가 천하제일 세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긴 하지만, 팽가를 비롯한 다른 오대세가 사람들은 그것이 제왕검부터 남궁제일검, 창천신룡, 청명화 그리고 창천화룡까지 대를 잇는 고수들의 활약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양주 땅에 들어선 후 느껴지는 남궁세가의 위세는 가히 양주 땅에 일국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제일 먼저, 팽가가 양주에서 첫발을 디딘 남궁세가가 소유한 장강의 포구는 중원에서 가장 큰 규모로 하루에도 수백 척의 배가 오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청해상단의 선단이 실어 나르는 교역량도 어마어마했지만, 그곳을 오가는 모든 배들이 청해상단에 통행료를 지불하고 교역품을 신고하는 모습은 팽가주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놀라움은 잠삼현을 보기 전 맛보기에 불과했으니.

“마을 전체가 남궁세가로군요.”

그들이 있는 백호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백호현에서 팽가 장원이 가장 크고 가신들과 수하들까지 합한다면 백호현의 절반 정도는 팽가의 것이라 해도 되지만, 잠삼현은…… 그 전체가 남궁세가였다.

양주 사람들 전부가 남궁세가에 소속감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양쪽으로 나뉜 동평원과 서평원은 남궁세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고, 저잣거리에 서는 시장과 상점 들은 모두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남궁세가의 사람들이었다.

“남궁가주가 남궁세가만의 제국을 만들었군.”

팽가주가 이제는 질투도 나지 않는다는 듯 탄성을 뱉었다.

팽치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였지만 결론적으로 남궁세가와 혼약을 맺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저게 뭐야?”

“팽가네. 우리 남편이 쉬쉬하며 말해 주던데, 진혜 아가씨가 저기로 시집가실 건가 보더라고.”

“우리 진혜 아가씨를 데려간다고?”

“그래! 그러니까 어서 길 막지 말고 보내 드려.”

주변에 있는 아낙들의 말이 팽가주의 귀에도 들어왔다.

‘남궁세가도 우리와의 혼담에 호의적인 듯하군. 다행이야.’

팽가주가 흡족한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팽가의 사람들도 먼지 하나 없이 길을 비켜 주는 남궁세가 사람들의 호의에 들뜬 얼굴로 길을 지났다.

잠삼현에서도 남궁세가 본가는 또 달랐다.

남궁세가의 본가는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여 하나의 요새와 같았고, 그곳을 지키는 무사들은 병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해 보였다.

성벽 정문에는 정의맹의 영웅문에 버금갈 정도로 크고 화려한 의천문이 있었다.

“허허, 어서 오시오, 팽가주.”

“오랜만에 뵙습니다, 남궁가주님.”

“반갑습니다.”

“제왕무적단주도 오랜만이군.”

의천문에 마중 나와 있던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팽가주와 팽가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다.

다만 남궁가주는 팽가주가 이끌고 온 사람들에 한해서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건 다 무엇입니까? 팽가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올 줄은 몰랐군요.”

“아. 온 김에 혼담을 확정하고 혼례도 치렀으면 해서 말입니다.”

“호, 혼례까지요? 아니, 혼례를 그렇게 급하게…….”

혼례식이라니.

혼담도 이제 겨우 확정하는 마당에 세상 어디서 혼례를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단 말인가.

남궁가주는 팽가주의 말이 금시초문인 듯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콰—광! 쾅--!

의천문에까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누구 하나 놀란 얼굴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남궁가주는 올 것이 왔다는 듯 눈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남궁경은 이 굉음을 예상했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게, 격한 훈련이 있는 날이라 말입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남궁경의 어설픈 거짓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팽가주를 비롯해서 팽가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태연했다는 것이다.

“괜찮소. 우리도 매번 있는 일이라.”

“하하하하. ……네? 매번?”

남궁경이 이상함을 알아차리기 전, 팽가주가 남궁가주를 재촉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시지요.”

“아, 그, 그럽시다. 안으로 드시지요. 나머지 분들은 총관이 접객당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찔리는 구석이 있던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팽가주의 기세에 밀리면서 쫓기듯 남궁세가 안으로 들어갔다.

* * *

팽가에서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

제왕무적단원들은 남궁진혜를 무사히 천화정에 들여보내는 데에 성공했다.

덜컹! 덜컹!

언제나 열려 있던 천화정 문이 급하게 닫혔다.

“헉. 헉. 헉.”

분명 걸쇠는 안에 있었건만 제왕무적단원들은 어디서 구해 온 건지 단단한 나무 기둥을 천화정 문 앞에 쌓았다.

“지금부터 여기서 대기한다. 절대 담이 뚫려선 안 된다!”

“아아!”

제왕무적단 조장의 외침에 단원들이 비장한 기합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궁진혜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건, 천화정 안으로 발을 들이고 나서였다.

“진화야, 내 동생! 대체 어디가 아픈…… 응?”

스스슷.

천화정 식솔들이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천화정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기척들이라 남궁진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쾅. 쾅. 쾅.

천화정 입구의 문과 창문까지 모든 문이란 문이 일제히 닫혔다.

“뭐, 뭐야? ……헉!”

당황한 남궁진혜가 주변을 돌아보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크게 놀랐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진짜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뭐긴 뭐야, 니 어미다!”

“어, 어머니.”

어째서, 하후민의 얼굴을 보면 온몸의 힘이 빠지고 착실하게 쌓아 온 내공이 흩어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순식간에 다가오는 하후민을 보면서도 남궁진혜는 발이 얼어붙은 듯 도망가지 못했다.

“너, 이 기집애! 또, 또 소매 찢고 미친년처럼 달려왔지! 이년아! 진화한테 들이는 정성 반의반만 부모 생각을 해 봐라! 내 딸자식은 전쟁에 나갔는데, 금동불상은 왜 부수는 건데? 응? 응?”

철-썩. 철-썩!

중원에 천신천력을 타고났다는 장사 가문으로 유명한 곳이 세 곳 있다.

하후대장군부, 팽가, 황보가.

비록 방계지만 하후대장군부의 핏줄을 이은 하후민의 천력이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매섭게 남궁진혜의 등짝에 떨어졌다.

“아주 그냥 매번 청구서로 생존 신고를 하지? 응? 응? 양주에서 어미 가슴은 문드러지든지 말든지 그저 칼질하는 데 미쳐 가지고, 어?”

철-썩. 철-썩.

찰지게 맞아떨어지는 것보다 더 사납고 둔탁한.

마치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듯 하후민의 손길이 멈추지 않고 떨어졌다.

“내 팔자야! 내 팔자야! 사돈에 팔촌이 죄다 딸들 시집 보내고 눈물짓는다는데, 나는 응? 응? 진화만큼 예쁘지 않을 거면 하는 짓이라도 좀 예쁘든가! 그게 아니면 빨리 시집가서 손녀라도 품에 안겨 주든가, 응? 응?”

“악! 악! 엄마, 그래서 진화는 괜찮은 거야?”

“이게 아직도! 진화는 괜찮아! 네 아버지, 엄마 속이 문드러지지! 어?”

“아악! 그럼 그 전서는 뭐야?”

“뭐긴 뭐야! 너 시집 좀 보내려고 네 아버지가 널 유인한 거지! 그런 걸로 유인하는 네 아버지나, 거기에 걸리는 너나! 이런 멍청한 걸 낳고 내가 몸조리도 못 했다! 응? 응?”

“아아악! 그럼 나 속인 거야?”

“이게 아직도 뭘 잘했다고 목소리를 높여? 속인 거면! 속인 거면, 뭐!”

철---썩!

어째서, 어머니는 자식을 속이고도 이다지 당당한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왜 항변 하나 못 하고 맞고 있는 것인지.

남궁진혜는 억울한 마음을 속으로 삭이면서, 하후민의 손바닥에 얌전하게 등짝을 내주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몹시 훌륭했다.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덜컹.

갑자기 문이 열리고.

“왜 문이 닫힌 거지? 진화는? 진화가 심각한 건가?”

남궁진휘가 꼭 닫힌 문을 열고 진화를 찾았다.

생각지도 않은 남궁진휘의 등장에 하후민도 놀란 듯했으나, 곧 남궁진휘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놈의 자식새끼들이 하나같이! 너 이놈의 새끼! 너도 진화 때문에 왔다 이거지?”

하후민이 콧김을 뿜으며 남궁진휘를 향해 다가갔다.

그 기회를 틈타 남궁진혜가 천화정 밖으로 몸을 날렸다.

“야! 너, 어딜 도망가! 너! 나중에 봐! 아직 다 안 끝났어!”

뒤에서 하후민의 으름장이 귀에 쏙쏙 박혔지만, 남궁진혜는 일단 지금 당장을 모면하는 데에 집중했다.

“어? 여, 영애 나온다!”

“안 돼, 막아!”

망을 보던 제왕무적단원이 다급하게 소리치고, 다른 단원들이 입구를 막고 담벼락을 지켰다.

그때, 푸른 기둥이 담벼락을 넘어까지 번뜩이며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이 새끼들. 비켜-! 니들은 나중에 보자!”

쉐에에에엑!

콰----광! 쾅!

“우아아악!”

천화정 정문이 그 앞을 지키던 제왕무적단원들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검을, 아니 푸른 기둥을 든 남궁진혜가 순식간에 창천원을 탈출했다.

그리고.

퍼-----엉!

“뭐, 뭐야?”

마침 남궁진혜를 만나기 위해 창천원으로 향했던 팽치는 검을 들고 달려드는 남궁진혜의 모습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두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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