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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411화 (411/425)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일상이란(5)

어쨌든 팽치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 청림에서 풀려났다.

진화의 심술에 고개를 저은 남궁호명이 팽치가 본격적으로 청림 깊숙이 들어오기 전에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어머, 우리 사위, 어제 과음했는가?”

“아닙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아침부터 하후민이 반갑게 팽치를 맞이하자 팽치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진짜로 과음을 했다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팽치는 하후민처럼 저를 놀리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연회에서 술을 마실 겨를도 없었다.

‘뒤늦게 멀미를 했나?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 새끼한테 머리를 맞았나?’

팽치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남궁진혜를 보았다.

“호호호, 아침부터 눈을 못 떼네? 우리 딸이 그렇게 예쁜가?”

하후민이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며 팽치의 옆구리를 툭 때렸다.

식탁에 앉은 다른 사람들도 흐뭇한 얼굴로 팽치를 보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팽치가 다급하게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퍼-억!

“윽!”

“얼른 앉아요!”

남궁진혜가 얼굴을 붉히며 팽치의 옆구리를 치는 터라, 억지로 변명을 하는 것도 꼴이 우습게 되었다.

결국 팽치는 억울함을 꾹 누르고 자리에 앉았다.

“하하하하! 혼례를 앞둔 젊은 사람들이 참 보기가 좋군요.”

“그렇습니다.”

남궁가주와 팽가주가 흐뭇하게 웃었다.

남궁가주는 팽가주와 팽치를 비롯한 팽가 형제들을 창천원으로 초대했다.

귀한 손님들이니 최고로 귀하게 대접하겠다는 의도였다.

더불어 앞으로 한 가족이 될 관계이니 혼례식이 있기 전까지 가깝게 정을 나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하후민의 적극적인 의견도 있었다.

그 결과가 이렇게 탱탱 부은 얼굴로 마주하는 아침 식사 자리였다.

“우리 진화, 아프진 않다지만 얼굴이 홀쭉하네. 많이 먹어.”

“진화야, 이것도 먹어 보렴.”

남궁세가의 아침 식사는 팽가 사람들이 왔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남궁진휘와 남궁진혜가 경쟁하듯 진화의 밥그릇에 고기 요리를 쌓았고.

거기에 팽연화와 남궁경이 한 젓가락씩 보태면서 보다 못한 덕순할매가 진화의 그릇을 바꿔 주는.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팽가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진화의 그릇을 쳐다보고, 평소보다 더 민망했던 진화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아, 왜, 애 밥 먹는데 부담스럽게 쳐다봐요? 자요, 단주님도 밥 먹어요.”

진화를 보는 팽치의 시선을 발견한 남궁진혜가 무심한 척 그의 밥그릇에도 반찬 하나를 투척했다.

“…….”

팽치가 의외라는 눈으로 남궁진혜를 보았다.

그때 그 이상한 고백 이후로 두 사람은 창피함과 민망함에 서로를 피해 다니느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래도 싫은 건 아닌가 보군.’

팽치는 돌아가는 상황과 지금 남궁진혜의 행동을 보면서 남궁진혜가 나름 그의 고백을 거절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팽치도 모르게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

세상에 가장 숨기기 힘든 것이 사랑이라 했던가.

팽치가 얼굴을 붉히며 입꼬리를 실룩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툭.

“드세요.”

진화가 새파란 채소 하나를 팽치의 접시 위에 올렸다.

“어? 어, 고맙다.”

팽치는 얼떨떨한 얼굴로 진화의 친절을 받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평소였다면 진화의 친절을 의심부터 했을 팽치가 무심코 진화가 준 채소를 입에 넣고 말았다.

“읍!”

팽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열매가 익기 전 한여름 뙤약볕에 독이 오를 대로 오른 화초가 진화를 대신에서 팽치의 혀를 때렸다.

다행히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에서 그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진화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살피고 있던 남궁진휘뿐이었다.

-진혜가 시집가는 것이 아쉬운 것이냐?

남궁진휘가 진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처음에 움찔하던 진화는 아쉬운 눈빛으로 슬쩍 남궁진혜를 보았다.

-팽가는 많이 거칠다는데, 게다가 적호단주님은 성정도 불같고…… 누님이 걱정됩니다. 형님은 괜찮으십니까?

진화가 전음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남궁진휘가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

-이 형은 누구라도 저걸 데려가 주는 것만으로도 좋구나.

남궁진휘가 후련한 얼굴로 팽치의 접시 위에 화초 하나를 더 올려 주었다.

그렇다고 팽치가 좋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젓가락으로 화초를 든 팽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팽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칠 주야가 지나고.

드디어 혼례식 날이 되었다.

혼례식은 성대하게 치르겠다던 남궁가주의 호언장담처럼, 잠삼현 전체가 혼례식을 치르기 위해 움직였다.

급하게 치러지는 혼사였지만 남궁가주와 팽가주는 빙서와 예서, 혼서를 모두 나누었고, 대례 물품과 수량을 기록하는 혼서는 그 길이만도 석 자가 넘었다.

제국의 난다긴다하는 집안들은 모두 육례를 철저하게 지키며 혼례 절차를 진행하였는데,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와 혼례식을 치르는 친영(親迎)이었다.

친영을 위해 의천문 앞 동평원과 서평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천로엔 붉은 등과 폭죽, 붉은 꽃잎이 가득 대기 중이었고, 꾹 닫혀 있던 남궁세가 본가도 모든 손님들을 위해 개방되었다.

그늘막이 처진 천장에 붉은 꽃들이 가득해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신랑을 맞이할 문틀 위를 가로 대는 나무는 무려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해가 조금씩 떨어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었을 때.

“오, 온다-!”

“와아아아--!”

화려한 작변을 머리에 쓴 팽치가 말을 타고 등장하자 잠삼현의 남궁세가 사람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검은 말은 작변을 쓰고 검고 붉은 면복을 입은 팽치를 든든하게 받칠 정도로 거대했으니. 남궁세가에 속한 이들 중 적호단주 팽치의 명성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으나 오늘따라 더 늠름한 신랑의 모습에 모두가 탄성을 보냈다.

“와, 와아아아아---!”

탄성 소리는 팽치가 지나가고 더 커졌다.

팽가에서 붉게 장식한 수레 다섯 대에 귀하다는 호피부터 금은보화를 가득 실어 왔기 때문이다.

잠시 후, 금으로 번쩍이는 나무 아래로 남궁진혜가 나왔다.

“와아…….”

매응의 검은 깃털로만 만든 각선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머리칼 한 올 어긋나지 않게 쪽 진 머리에 비녀와 장신구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양주의 현청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은 남궁진혜의 모습은 그 자태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었다.

“아가씨, 아름답습니다!”

“아가씨, 힘내세요! 이제 가는 겁니다!”

“와하하하하하!”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남궁의 식구라,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남궁진혜를 축복했다.

물론 짓궂게 응원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남궁진혜마저 웃음을 터뜨렸을 정도로 모두가 행복한 날이었다.

마침내 말에서 내려 다가온 신랑에게 신부가 얼굴을 가리던 각선을 건네며 절을 하고, 신랑 또한 공손하게 각선을 받아 들고 신부를 향해 절을 했다.

그렇게 둘은 부부로서 첫인사를 주고받은 것이다.

“크흠, 어휴, 나도 주책이야. 이렇게 좋은 날에 눈물이 나네.”

“너무 행복한 날이지만 진혜를 보낼 생각에 아쉬워서 그렇죠. 저도 눈물이 나는데 형님은 오죽하실까요.”

본격적인 식을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신랑 신부를 보며 하후민이 눈물을 흘리자, 팽연화 역시 눈물을 닦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하지만 수십 년을 함께하고도 팽연화가 적응하기 힘든 것이 있었으니.

하후민의 강인함이 언제나 팽연화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동서, 내가 저년 키우느라 고생한 게 생각나서 그래. 저 기집애가 뽑아 놓은 기둥 정도는 팽가에서 보낸 예물로 퉁- 치면 되겠더라고. 그래서 서운한 건 좀 덜해.”

“혀, 형님도, 참. 호호호…….”

하후민의 말에 팽연화는 웃음으로 대충 놀라움을 얼버무렸다.

남궁가주도 혼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킁!”

“하하하하. ……좋은 날에 콧물 뿌리지 말고 저리로 가 있거라.”

“씨-잉! 킁!”

사부인 남궁경이 콧물까지 흘리며 서운해하고 있자, 남궁가주가 그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남궁가주는 오늘 이 예식을 방해할 만한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비장했다.

예법에 따라 팽치와 남궁진혜가 함께 손을 씻고, 음식을 나눠 먹고 난 뒤 입을 헹구었다.

그리고 혼례식의 거의 마지막 절차나 다름없는 합근, 함께 술을 나눠 마셨다.

“……!”

술향을 느낀 팽치와 남궁진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합혼주로 나온 술이 제왕검 남궁강이 애지중지하던 고정공주였기 때문이다.

술 중에 모란이라 불리며 일 년에 열 병도 만들지 못하는 귀한 술이라, 팽치와 남궁진혜가 동시에 술병에 남은 술을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신랑 신부의 모습이 또다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아가씨, 그거 전부 다 마시는 거 아닙니다!”

“부창부수로군. 하하하하!”

“누가 저 술병 좀 치워. 혼례식이 끝나지 않겠어!”

“그냥 한 잔씩들 더 드려!”

결국 팽치와 남궁진혜는 남은 술을 탈탈 털어 한 잔씩 더 마시고 몹시 만족한 얼굴을 했다.

남궁가주와 하후민의 눈에서 검강 같은 안광이 나왔지만, 오늘로써 남궁진혜는 팽가로 갈 것이었다.

* * *

남궁진혜의 혼례식이 끝나고.

진화 또한 아쉬워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고 남궁세가를 떠나야 했다.

황제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황궁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남궁경, 팽연화 부부와 함께 간다는 사실이었다.

“처리할 일이 많아서 큰아버지 내외에는 등극식에나 오실 수 있을 것 같구나. 가문의 일 때문에 그런 것이니, 서운해도 네가 좀 이해해 주렴.”

“네.”

사실 진화보다는 남궁가주와 하후민 내외가 더욱 아쉬워했었다.

진화가 황태자에 오르게 된다면 아무래도 이전처럼 남궁세가에서 함께 사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 큰어머님이 진혜 보낼 때도 우셨는데, 이번에도 또 눈물을 보이셔서 우리 진화가 마음이 좀 그렇지?”

팽연화가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진화를 안쓰러운 듯 쓰다듬었다.

그러자 옆에서 남궁경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진혜 보낼 때는 시원해서 울었잖소. 진화 때와는 다르지.”

“가가도, 참. 설마 진심이셨겠어요?”

“…….”

그날 밤 남궁가주가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구나. 당장은 허전하지만 앞으로 쭉 행복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라고 했던 걸 아는 남궁경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팽연화가 진화를 눈짓하며 남궁경의 옆구리를 찔렀기 때문이다.

진화는 팽연화와 남궁경의 노력을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다.

“그나저나 진휘 때문에 큰일이네요.”

팽연화가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진화에게 언제나 통할 수밖에 없는 화제였다.

“진휘 형님요?”

예상대로 진화가 눈이 동그래져서 묻자, 팽연화가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혜가 먼저 혼례를 치렀으니, 진휘도 어서 혼례를 치르긴 해야 하는데. 온 중원에서 매파를 보내는 통에 네 큰아버지가 그걸 거절하느라 일이 배로 느셨다는구나. 호호, 그만큼 진휘를 탐내는 집안이 많은 거니까 좋은 일이겠지?”

“큰일이긴 하지. 진휘도 혼기가 찼는데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여인은커녕 여인의 그림자도 못 봤으니. 신붓감은 줄을 섰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배경만 보고 들이밀 수도 없고.”

남궁세가를 보고 넣은 혼담이 절반이겠지만 남궁세가의 권력이 아쉽지 않은 유력 가문에서 남궁진휘만 보고 넣은 혼담도 적지 않은지라. 부모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쁜 남궁가주, 가모를 대신해서 남매를 돌봐 온 팽연화와 남매의 스승이었던 남궁경은 벌써 남궁진혜를 시집보내고 남궁진휘의 장가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진휘가 원체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형님께서 화가 나서 진휘더러 제 손으로 신붓감을 고르라고 하셨다는데…….”

하후민의 마음과 다르지 않던 팽연화는 막상 남궁진휘의 손에 맡기고도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런 팽연화의 속도 모르고 남궁경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흐흐흐, 진휘 녀석이 질색하겠군. 도망이나 가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군요. 저기, 실제로 도망 나온 사내들이 둘씩이나 있으니.”

분위기가 서늘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남궁세가 직계는 아니지만, 직계가 귀한 남궁세가엔 직계만큼이나 유능하고 유망한 청년이 둘이나 더 있었으니.

이번 전쟁에서 명성을 떨친 남궁구와 남궁교명 또한 가문과 부모에게 밀려드는 혼담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남궁진휘의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 아니 귀찮았던 남궁가주가 가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혼담을 그들의 부모에게 미뤘고, 눈치 빠른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부모님께 시달리기 전에 도망을 나온 것이다.

진화 본인이 현경의 고수에다 제왕무적단주와 제왕무적단이 함께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화를 호위하겠다는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핑계가 너무 궁색했다.

가만히 있다가 불똥을 맞은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팽연화와 남궁경의 눈총을 피해 뒤로 처졌다.

“혼례 문제로 주변이 난리군.”

남궁교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짐승들이 궁지에 몰리면 본능적으로 자손 번식에 힘쓴다더니, 전쟁으로 죽은 무림인의 수를 이번에 다 채울 모양이야.”

남궁구가 입술을 삐죽이며 맞장구를 쳤다.

“어휴, 한동안은 황궁에 꽁꽁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말아야지.”

이어진 남궁구의 말에 남궁교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팽연화만큼이나 남궁교명과 남궁구의 도망에 분노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가뜩이나 관리해야 할 문서가 산더미인 창서각주 남궁희는 책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혼인의향서를 꾸-욱 말아 쥐었다.

“허어, 튀었단 말이지…… 잡으러 가야 하나.”

사람 좋고 점잖기로 유명해서 별호마저 양서군자인 창서각주 남궁희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며 매섭게 빛나는 눈빛을 감췄다.

“황도라…….”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한숨 소리가 섞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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