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412화 (412/425)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인생의 전환점(1)

귀천성이 무너지고 역천마제가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신 제국도 자연히 멸망을 당했다.

한 제국 황성에는 국문장이 마련되었다.

“스스로 칭제를 하는 망극한 역천을 벌인 왕광과 파륜이 죽었으나, 네놈들은 잘못된 칭제의 무리를 따르며 신하의 본분을 잃고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게다가 네놈들은 폐하를 배신하여 한 제국에 전쟁의 위기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네놈들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병사들을 희생시키며 제 살길만을 도모하는 추태를 부렸으니. 감히 살아날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문장에는 도망치다 잡혀 온 신 제국 호족들이 모조리 무릎 꿇려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죄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하여 그들을 고신하고 심문하는 것은 불필요한 절차였다.

하지만 한 제국 황제는 물론 신하들마저도 그 불필요한 절차를 감행할 만큼 그들에 대한 원한이 깊었으니.

승상을 위시한 한 제국 신하들은 몇 날 며칠 국문장의 불을 밝히고 잡아 온 죄인들을 고신했다.

물을 말은 없었다.

단지 몇 날 며칠 이어진 고통과 공포심마저도 한 제국이 그들에게 내리는 벌이었을 뿐이다.

“살아날 욕심? 이미 한 제국의 손에 붙잡혔을 때 버렸던 욕심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에게 욕심을 부린다는 건, 우리를 고문하기 위한 네놈들의 핑곗거리일 뿐임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것이다! 퉤엣! 솔직해져라! 그저 우리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이 위선자들아-!”

만신창이가 된 복건주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단상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저, 저……!”

과연 허수아비 같은 두 황제를 앞에 내세우고 신 제국과 호족들을 움직인 냉심(冷心), 복건주다운 날카로운 말이었다.

속내를 꿰뚫린 한 제국 신료들은 화가 나면서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신 제국에 복건주가 있다면, 한 제국에는 그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전 황제를 끌어내리고 현 황제를 등극시켜 제국의 실정을 바로잡는 데 성공한 명신(名臣) 조위례가 있었으니.

조위례는 단상에서 냉정하다 못해 무심한 눈으로 복건주를 내려다보았다.

“저자의 입을 쳐라!”

“예!”

조위례의 말에 서슬 퍼렇게 복건주를 노려보고 있던 군사가 가차 없이 몽둥이를 휘둘러 복건주의 입을 때렸다.

퍼-억!

“크아아악!”

생니가 부러지고 입과 코에서 피가 줄줄 쏟아졌다.

그런 복건주의 머리 위로 조위례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역적들이 착각을 하고 있구나. 네놈들의 신나라는 역사서 어디에도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놈들은 배신에 성공하여 나라를 세우고 끝내 보복당하는 적이 아니라, 한 제국을 배신하려다가 실패한 역신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의 고신은 네놈들에게 어떤 죄를 더하거나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고신은 형벌이다! 감히 제국에 분란을 일으켜 제국의 근간을 흔들고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희생시켰으며 그들의 삶을 힘들게 만든, 네놈들에 대한 벌!”

조위례의 말에 한 제국 신료들의 눈빛이 단단하게 굳었고, 반면 복건주와 신 제국 호족들의 눈빛은 거칠게 흔들렸다.

“그, 그래 봐야 신 제국은 존재했었다. 네놈들이 아무리 발악을 해 봐야 네놈들이 패배했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복건주가 발악을 하듯 외쳤다.

하지만 그마저도 조위례는 코웃음을 치며 냉소를 지었다.

“우리가 신 제국을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그런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이겼고, 역사는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승자의 기록일 뿐이니까.”

가볍게 복건주를 비웃은 조위례가 더 들을 말도, 할 말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형벌 패를 골랐다.

“지엄한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역적들에 대한 구형을 전한다. 역적들의 목을 베어 황궁 밖에 효수한 후, 놈들의 사지를 나눠 중원 전역에 조리돌림 할 것이다. 또한 역적의 삼대는 교형에 처하며, 나머지 구족에 해당하는 무리는 모조리 노예로 삼아 국경에서 대대손손 노역을 시킬 것이다! 신료들은 폐하의 명을 실행하라!”

“예, 명을 받드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건장한 장수들이 황제가 있는 대전을 향해 배를 올리고 고신으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죄인들을 모두 끌고 나갔다.

“아, 안 돼! 안 돼-!”

“내 자식들은 안 돼! 자식들만은 제발--!”

“…….”

누군가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고, 누군가는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을 빌고, 복건주를 포함한 나머지는 끝이 다가왔음을 아프지만 조용하게 받아들였다.

황권에 대항한 패자의 말로가 어떨지 그들 모두 한 번씩 그려 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명이나 되는 역적들의 잘린 목이 장대에 걸려 이름과 죄목이 적혀 황성밖에 전시되었다.

징그럽고 무서운 광경이었지만, 낙양의 백성들은 누구 하나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목을 향해 욕을 하다 못해 돌이나 쓰레기를 던져 그곳을 지키던 군사들이 막아야 할 정도였다.

그들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반대급부로, 한 제국과 황제, 진화에 대한 칭송은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이황자님이 돌아오셨다지?”

“이제 황태자가 되시겠네!”

“다른 황자들도 다 나쁘진 않지만 적통 황자께서 황태자에 오르셔야지!”

“암. 친히 친정을 나가 역도들을 죄다 섬멸하고, 요괴 같은 신 제국 황제를 직접 추살하셨는데! 천장이라 불리던 황제 폐하를 쏙 빼닮으신 게 분명해!”

진화가 황성에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기대감이 올랐다.

얼마 뒤.

“……이제 짐은 적통 황자 한진화를 황태자 위에 올려 종묘와 사직을 공고히 할 것이다! 대소 신료들은 그리 알고 황태자의 즉위식을 거행하라!”

“명을 받드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한 제국 조정은 진화의 황태자 등극을 완전히 결정하였다.

그동안 황제와 황후가 꾸준히 용심을 표현하고 조정 중신들이 움직였음에도, 정작 본인이 전쟁터로 가서 소식이 없으니 ‘기다, 아니다’ 말들이 많았다.

다음 간택전을 노리며 열을 올리던 신료들도 슬슬 눈치를 보며 뜸해지기 시작하던 차였다.

그런데 역적들을 모두 죽이고, 심지어 천하제일 무인이라 부르던 신 제국 황제마저 진화가 직접 죽이고 나자 그런 의구심들이 쏘옥 들어갔다.

낙양 외곽에 있지만 유자들 사이에선 꽤 유명했던 석양호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을 모르는 신료들이 없었다.

아름다운 용모에 천장이라 불리는 황제를 꼭 닮은 용맹함이라, 한 제국 조정 안팎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제국에 꼭 맞는 황태자를 찾았다며 기대가 높았다.

* * *

진화의 황태자 즉위를 결정짓고 잠시 짬을 낸 황제가 황후궁을 찾았다.

“폐하.”

“오오, 인사는 됐소. 일어나지 마시오.”

황제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손짓으로 자신을 맞는 황후의 인사조차 만류한 채 그녀를 침상으로 이끌었다.

“오늘 일은 모두 잘 처결하셨나요?”

확정적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걱정이 남아 있었던 황후가 황제의 팔을 잡아끌며 물었다.

황제는 그런 황후의 손등 위에 살포시 손을 포개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것 아무것도 없다 하지 않았소. 황후는 괜한 걱정을 하여 짐을 심려케 하는구려.”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갑자기 일이 이리되어…….”

“어허. 진화를 위한 그대의 마음도 알지만 그대 배 속의 아이도 우리의 아이요.”

황후가 공교롭다는 듯 상심한 표정을 짓자마자 황제가 엄한 얼굴을 하며 황후의 배에 남은 손을 살포시 올렸다.

자손을 생산하기에 불가능한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나이. 가뜩이나 진화를 찾기 전까지는 심병으로 몸이 약해져서 운신도 힘들어하던 황후가 아니던가.

황제는 몸도 약하고 나이도 적지 않은 황후에게 찾아온 기적을 지키기 위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는 중이었다.

“진화를 배려하기 위해 공포하지는 않았으나, 황태자 등극식을 마치는 대로 대소 신료들에게 아이의 존재를 공포할 것이오.”

“하지만…….”

“어허! 그대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태의의 말대로 침상에서 꼼짝도 하지 말고 용종을 지키는 일에만 신경 쓰시오. 남은 것은 모두 짐이 알아서 할 것이오.”

“네, 폐하.”

어느 집안이나 늦둥이는 귀엽다고 하지 않나.

황제와 황후라고 뒤늦게 찾아온 자식이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뒤늦은 직계 황손이 생겼다는 사실이 진화의 위치를 흔들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황제와 황후는 진화의 황태자 등극식을 마치고 뒤늦게 황손의 잉태 사실을 알림으로써 진화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황후의 건강과 배 속의 황손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진화에게는 말해 준 것이오?”

“후후후, 안 그래도 양주대부님과 동생, 진화가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했어요. 양주대부님과 동생은 남궁세가에 도움이 될 만한 귀한 약재나 무림에 유명한 의선문에 보약을 의뢰하겠다며 나가고, 우리 진화는…… 푸훗!”

남궁경과 팽연화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점 거짓 없이 진심으로 황제와 황후 부부를 위했다.

예는 다소 부족할지 모르나 단순한 충의를 넘어 자식을 나눠 가진 진심만큼은 넘쳐 나니. 황제와 황후 또한 남궁경과 팽연화를 혈육처럼 아끼게 되었다.

황제는 황후의 회임 소식을 듣고 남궁경과 팽연화가 얼마나 기뻐했을지 눈에 선했다.

다만, 진화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황후의 모습은 조금 의외였다.

“진화가 뭘 어찌했기에, 황후가 그리 웃으시오?”

황제가 궁금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황후가 눈빛을 반짝이며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의 표정이 그렇게 다채롭게 변하는 건 처음 보았습니다. 당황스러운지 눈빛이 흔들리고, 어쩔 줄을 모르더라고요. 다행한 건, 많이 기쁜 모양이더군요.”

“기뻐하더라고?”

“제 손을 꼭 잡더니 기운을 어쩐다 저쩐다, 무림인들의 뭔가가 있나 봐요. 그걸 해 주러 매일 아침에 오겠대요. 저는 아가 덕분에 아침마다 호강하게 생겼어요. 호호호호.”

황후야말로 정말로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가장 행복해하는 얼굴이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황제도 기꺼운 마음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라니.

동생이라니…….

황후궁을 나오고도 진화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우리 진화, 많이 놀랐니?”

“아, 조금, 그랬나 봐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진화의 솔직한 말에 팽연화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남궁경은 본가와 의선문에 전서를 보내겠다며 먼저 달려가고, 오랜만에 단둘이 남은 팽연화는 따뜻한 손으로 진화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랬구나, 우리 아들. 놀랄 만도 하지. 큰일을 앞두고 잔뜩 긴장해 있다가 갑작스럽게 소식을 들었으니까.”

팽연화가 따뜻한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곧 숨이 꺼져 갈 듯 위태롭던 아이에게 저가 바란 것은 그저 숨 한번 시원하게 쉬어 주는 것뿐이었는데,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장성하여 지금은 제국의 황태자 위에 오르게 되었다.

“인생은 참 알 수가 없지. 하늘의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 분명할진대, 항상 놀랍고 예상을 벗어나는 일뿐이니까 말이야.”

“…….”

진화는 따뜻하게 제 손을 토닥여 오는 팽연화의 온기가 담긴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우리 아들을 불행하게 했던 큰 고비가 물러났으니, 앞으로는 행복할 일만 있을 거야. 하지만…… 인생이란 알 수가 없으니, 앞으로도 너를 놀라게 하거나 때때로 힘들게 하는 일이 생기겠지? 그때마다 기억하렴. 네 뒤에 든든한 폐하가 있고 힘센 아버지가 있고, 황후 마마와 나도 있으니. 물론 남궁세가도 있지. 우리는 네게 어려움이 닥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란다.”

팽연화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그녀는 황제 부부와 자신들의 진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궁세가의 절대적인 애정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황후마마는 회임을 하시고도 내내 네 걱정뿐이셨어. 너를 위해 이렇게 기쁘고 중요한 일은 알리지도 않으셨고. 그게 가족이란다. 황후마마의 회임은, 네게 그런 가족이 하나 더 생긴다는 소리고.”

“……알고 있습니다.”

알 것 같았다.

이전 생이라면 몰랐겠지만, 지금의 진화는 부모님과 형제, 가족들의 든든한 애정과 지지가 무엇인지 잘 알았다.

진화가 찬찬히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그건 설렘이었다.

“곧 있으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리에 오르고, 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 가족을 얻게 되겠지만…… 예, 어머니. 전혀 싫지 않아요. 오히려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진화가 진지하게 말했다.

진화는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팽연화는 그런 진화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사람은 일생에서 몇 번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중요한 심정적 변화로 인한 전환점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얼마 전 혼례를 치른 남궁진혜처럼 사회적으로 성장하면서 가지는 전환점도 있다.

팽연화는 진화가 그런 전환점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가족과 친지를 넘어 거대한 제국을 어깨 위에 올리고도 든든하게 웃는 진화를 보면서, 팽연화는 시원섭섭함을 넘어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진화도 그런 팽연화의 마음을 아는 듯 이전보다 더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그런 다부진 얼굴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격적인 등극식 준비가 시작되면서.

“등배! 등배 어디 있나!”

“요석과 홍옥, 청옥, 녹옥, 이 자수정 박힌 것까지 총 다섯 가지입니다!”

“뭐? 그것밖에 안 되나? 전부 옷에 차 봐야 하니, 궁녀들은 황자님을 정복으로 환복시켜 드리고 너는 장추궁으로 가서 등배를 더 가져오너라!”

“예!”

건희궁 궁인들의 난리를 들으며,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옷을 입었다 벗었다, 절을 했다 말았다, 머리를 풀었다 묶었다를 반복한 진화는 벌써 질려 버린 얼굴이었다.

진화는 제국의 무게보다 지금 제 머리 위에 꽂힌 비녀의 무게가 더 무거울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그런 진화를 보며 황후와 팽연화가 유쾌하게 웃었다.

“점환점은 또 하나의 시작이란다. 뭐든 시작이 어려운 법이지.”

믿고 있었던 두 어머니의 배신 아닌 배신에도 불구하고, 진화에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저하, 오고 계시답니다!”

“도련님, 지금 애들 다 들어왔대!”

내관과 거의 동시에 남궁구가 친우들의 도착 소식을 알려 왔다.

진화는 밝은 얼굴의 남궁구를 보며 남궁세가 참석자 중에 남궁희가 포함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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