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413화 (413/425)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인생의 전환점(2)

진화의 등극식에 진화의 모든 친인들이 황궁으로 초대되었다.

황태자의 등극식을 이렇게 성대하게 하는 법은 없었으나, 이제까지 하나의 제국을 멸망시키고 황태자 위에 오르는 후계도 없었다.

황제는 예법에 따라 등극식은 조촐하게 치르는 대신 전쟁 승리를 기념하고 진화의 황태자 등극을 축하하는 연회를 크게 열기로 하며 무림에 있는 진화의 인연들까지 모두 초대했다.

남궁세가는 물론 정사연합에 있는 제왕검과 성승, 옥허신검 그리고 천수현인과 제갈가주, 그리고 사패천주와 홍랑대부, 마침 황도에 있던 하오문주가 황성으로 초대되었다.

진화의 친우라 할 수 있는 숙청단원들도 빠지지 않았다.

“우앗! 뚱뚱땡중, 이제 몸은 괜찮은 거야?”

남궁구가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남궁교명은 놀란 눈을 떴다가 차갑게 식었다.

“……넌 저걸 보고도 묻냐.”

남궁교명의 말에 남궁구는 물론 진화도 웃음을 흘렸다.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현오가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석양호에서 보았던 현오가 아니라 그 이전에 승복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었던 현오와 말이다.

“푸하하하!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빨리 원상 복귀가 되는 거냐? 아니, 살이 좀 더 찐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소림에서 그렇게 살이 찌는 거냐?”

“아미타불, 자네들은 내 인고의 수행을 모르네. 얼마나 힘들었는데!”

“인고는, 개뿔!”

“식탐지옥이냐? 식탐지옥?”

현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계속해서 현오를 놀렸다.

그렇게 장난을 치며 그의 턱살이며 뱃살을 찌르는 척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현오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흉터가…… 남았네.”

진화가 옷깃 사이로 보이는 붉은 거미줄 같은 흉터를 발견하고 안타까운 눈을 했다.

그러자 현오가 냅다 달려와서 진화의 멱살을 잡았다.

“저, 저……!”

동 태감과 내관들이 경악했다.

“그래! 자네 덕분에 내 몸이 온통 거미줄투성이야! 사숙조랑 사부님이 자꾸 내 등판 위에서 장기를 두려고 한다고!”

“정말 괜찮은 건가?”

“안 괜찮다니까!”

“……다행이네.”

“자네,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현오가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진화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야무지게 멱살의 쥔 손가락 움직임과 힘을 주는 방식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독기로 상했을 거라 생각한 내부도 일정한 호흡과 회복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화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진화의 모습에 현오도 멱살을 쥔 손을 풀고 웃어 보였다.

“오, 부처님, 부디 이 중생의 귓구멍을 열어 주소서.”

“하하하하!”

“자, 자, 그만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안으로 들어가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자고!”

천연덕스러운 현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황자궁을 제집처럼 안내하는 남궁구를 따라 모두 건희전으로 들어갔다.

* * *

숙청단은 모두 열다섯 명이었지만, 사패천 출신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사패천의 출신들은 나중에 사패천주와 함께 등극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래서일까.

건희전에서 진화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현오, 남궁구, 남궁교명과 팽가 형제 그리고 당혜군, 나하연, 제갈상, 관서겸의 모습이 정의무학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고작 몇 년이었지만 함께 먹고 자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던 기억이 그들의 인생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감회에 젖어 정의무학관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충격이었지. 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나 했다니까.”

“그거 아나? 입관시험에서 소림 나한들이 도련님을 보고 제대로 힘을 못 썼지. 도련님이 그들에게 준 건 짜릿한 뇌전이었지만.”

“시험관이 준 독을 안 먹었을 때는 어떻고. 그거 먹고 우린 다 죽는 줄 알았는데, 설마 그걸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거 안 먹은 거였어? 와! 난 남궁세가 소공자가 그걸 어떻게 해독했나 싶어서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데!”

“그때부터 콧대 높은 도련님이었네.”

대부분 정의무학관에서의 첫 기억으로 진화를 떠올렸다.

모두에게 충격적인 미모였고, 충격적인 행보였기 때문이다.

“와하하하! 황당했지. 이 콧대 높은 도련님이 “이 만두를 먹고 싶다면, 오성반점에 줄 서러 가겠나?”라는 한마디에 덥석 손을 잡을 줄 몰랐거든. 그때 본가에서 ‘도련님한테 먹을 거 사 준다고 접근하는 놈은 없는지 살피라’는 지침이 내려오고 난리도 아니었지.”

남궁구의 말에 갑 조 출신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본가에서 지침까지 내려왔다는 걸 처음 들은 진화만은 편하게 웃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도련님을 오성반점에 꼬셔 간 놈이 스님인 게 더 문제지 않나?”

“흐흐흐, 현오는…… 현오잖아.”

“언젠가 파계당하고 숭산 밑에서 장사할 거라니까.”

“내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날 두고 내기까지 했단 말인가?”

“아직 유효하다.”

갑 조 일행은 현오의 파계를 두고 내기를 했었다.

잊고 있었긴 하지만 팽가 형제의 말처럼 내기는 여전히 유효했다.

“그나저나 생각을 달리해야 하나? 소림은 대체 널 얼마나 아끼는 거냐?”

남궁구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현오의 뱃살을 찔렀다.

순식간에 손가락 두 마디가 살에 파묻히는 것을 보며 찌른 사람이 더 놀랐다.

“소림에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진심 어린 남궁구의 물음에 모두 현오를 보았다.

현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별것 아닐세. 만년독수의 독기는 태워 버리는 게 그걸 없앨 유일한 방법인 걸 알자마자, 성승께서 불마공으로 매일 독기를 태워 주셨지. 뇌전과 달리 매일 내공으로 열기를 일으키는 것은 성승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나는 나대로 어찌나 아픈지…… 나는 고통을 못 이겨 발버둥 치고 사형제들이 내 팔다리를 붙잡느라 고생하셨지.”

현오가 씁쓸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씹듯이 삼켰다.

미간을 구기는 모습이 그때를 회상하며 감회에 젖은 듯 보였지만, 일행은 모두 그가 국화차가 써서 그랬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살은 대체 어떻게 찐 거냐고?”

본론을 요구하는 남궁교명의 말에 현오가 몹시 서운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허어, 자네들은 내 고통과 인고의 시간에 대해선 관심이 없나?”

“그렇게 아픈데 살이 쪘으니까 더 궁금한 거지.”

“어떻게 찌긴! 정의무학관에 계시던 숙수님이 복귀하셔서, 치료 때마다 고기만두를 찌고 튀기고. 소림에서 고기가 보이거나 냄새가 나면 안 된다고 만두만 계-속.”

“아아. 그 고기만두 때문에 치료를 참으셨구먼?”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그게 제일 중요하지! 어쩐지 골고루 잘 쪘더라.”

남궁구가 계속해서 현오를 놀리고, 진화를 비롯한 일행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치료를 할 때마다 고기만두를 먹었다면, 저렇게 살이 찔 정도로 많은 시간 동안 현오에게 치료가 필요했다는 사실이었으니. 진화와 친우들에겐 현오가 그 많은 치료를 견디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잠시 숙연해진 분위기.

제갈상이 분위기를 전환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무학관 입관 때의 충격은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없을걸.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미인을 만났는데 모지리 같은 막내아가씨가 괜한 시비를 걸어서 그 손에 죽을 뻔하질 않나.”

“큭큭큭, 그때, 네 얼굴이 웃겼는데.”

“네 말은 더 웃겼을걸. ‘우리 공주님은 미친년’이라고 했던가.”

“…….”

같은 기억을 반대 입장에서 기억하는 남궁구가 킬킬거리며 웃자, 제갈상이 차가운 눈으로 남궁구의 언행을 곱씹어 주었다.

진화가 무심하게 남궁구를 쳐다보는 것으로 그의 웃음이 뚝 멎었다.

“우여곡절과 갖은 비리 끝에 겨우겨우 병 조에 들어갔는데, 어디서 바퀴벌레 같은 인간이…….”

제갈상의 눈이 관서겸을 노려보았다.

“아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우리같이 가난한 문파에서 한 달 가까이 되는 여정을 감당하려면 속옷 한 장이라도 아껴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한 달에 속옷 두 장은 심하지 않나?”

“잠깐!”

제갈상과 관서겸의 티격태격 속에 당혜군이 끼어들었다.

“우린 옷 버리는 수련도 많았는데 두 개 다 빨았을 땐 어떻게 했어?”

“하하하하하.”

당혜군의 당연한 의문에 관서겸이 대답 없이 웃었다.

“다행이지. 이번에 귀천성이 몰락하면서 본래 우리 문파가 가지고 있던 옥로주 유통권을 다시 가져오게 되었거든. 숙청단 소속이었다는 소문 때문에 제자들도 많이 들어오고, 재원도 늘고……. 하하, 덕분에 이제는 속옷은 아끼지 않아도 된다네.”

관서겸이 웃으며 하는 말로 진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당금 무림에 십이좌회 외에 창천화룡의 명성만큼 큰 것이 없었으니, 숙청단 소속이었다는 사실이 어떤 공과보다 큰 명성과 부를 안겨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야. 당혜평이랑 본격적인 후계 시험에 들어가 있어. 당혜평이랑 동등하게 시험받는 것도 다 숙청단 덕분이야. 게다가 지금은 내가 조금 더 유리한 것도 같아. 당혜평이랑 혼인하기로 한 백룡문가 여식이 도망갔거든. 후후후후.”

당혜군이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에 남궁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당혜군을 흉내 내며 말했다.

“후후후후, 네가 유리해서 다행이야. 그런데 혼인할 사람에게 차인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후후후후.”

“아우, 씨! 아니야! 난 내년에 결혼한다고!”

“뭐? 누구랑?”

“누구긴 누구야, 진 공자지!”

“오오! 진 공자가 큰 결심하셨군.”

“역시 의지의 독마녀!”

당혜군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일행이 소리 내어 감탄하자, 당혜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혼인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또 있었다.

제갈상과 관서겸이었다.

“연환대를 맡기로 하고, 가주님께서 중매를 선 단천문주의 여식과 혼인하게 되었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소가주 자리가 비어 있어서 상황이 복잡하긴 하지만.”

제갈상의 말처럼 그의 상황은 좀 복잡했다.

연환대는 제갈세가 무단 중에서도 요직이었지만, 제갈세가 내부에서 슬슬 제갈상을 소가주에 올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제갈후현이 몸을 회복했지만 지은 죄가 크고 인격적으로 여전히 부족해서 소가주가 되기에는 자격이 없다는 윗전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천문도 유일한 아들 단소천보다 누이인 단소경을 따르는 세력이 제법 있는 터라, 상황이 복잡했다.

“소경은 동생의 자리를 차지할 생각이 없어. 나도 제갈세가의 소가주를 꿈꿔 본 적도 없고. 상황은 복잡해도 우리 두 사람의 뜻이 일치하니 다행이지.”

제갈상이 애써 웃어 보이며 모두를 향해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난 어릴 적 정혼자와 혼인한다.”

“뭐? 말도 안 돼!”

“그건 무슨 뜻이지?”

“몰라서 물어?”

관서겸의 말에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순식간에 풀어졌다.

“어휴, 다들 하나둘씩 다 혼인을 할 때지. 그래서 우린 이렇게 도망 나오고, 팽가 형제는 적호단으로 도망하고.”

남궁구의 한탄에 도망자들끼리 눈을 마주쳤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피해 있었지만, 그들도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진화, 아니 황자님도 이제 혼인을 해야 하지 않나? 황실일수록 후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잖아. 황태자 위에 오르면 곧바로 간택전이 열린다고 들었는데.”

제갈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진화를 향했다.

“……간택전이라니.”

“막 삼처사첩 거느리고 그런 건가?”

장가가기는 싫다면서 거의 모든 친우들의 시선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때, 당혜군이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황궁에 온 내내 나하연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남궁 공자를 포기하기로 한 건가? 하긴 황궁에 들어서면 격차를 느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으니.’

당혜군은 어설픈 위로를 하는 대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하연을 바라보았다.

당혜군뿐 아니라 드문드문 일행의 시선이 나하연을 스쳐 갔다.

장난스럽게 접근했지만 모두 나하연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그들은 이제 모두 전환점을 맞이해 있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함께할 날도 없을 것이었다.

“황태자는 도망 못 가나?”

“황명 거역인데, 황태자 위에 오르자마자 역적이 되라는 거냐?”

“하하하! 그건 그렇네. 혼인하기 싫다고 역적이 되는 것도 웃기지. 하하하!”

순간순간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스치며 웃음소리도 공허해졌지만, 그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함께 있는 시간을 유쾌하게 보내기 위해 애썼다.

* * *

황도 낙양의 밤.

낙양의 수많은 변화가 중에서도 대화로는 깜깜한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으로 유명했다.

황도의 부유한 호족들과 조정의 고관대작들이 다니는 고급 주루들이 즐비하여 귀한 불과 초를 아낌없이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금싸라기 땅에 간판도 없이 검은 천에 점(占) 자가 쓰인 깃발 하나 덩그러니 매달린 모습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눈에 띄는 듯했다.

“이번에는 점집인가.”

한 사내가 점집 깃발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건물의 뒤로 걸어갔다.

검은 두건을 쓴 키가 큰 청년이 작은 쪽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에헤이, 아저씨, 입구는 저쪽이에요!”

청년은 껄렁한 말투로 사내를 향해 뒤로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내가 싸늘하게 코웃음을 흘렸다.

“이미 내가 온 것을 알고 있음을 안다. 열어라.”

명령 같은 서늘한 말에 청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러니까요. 대남궁세가 남궁희 장로님을 위해 앞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청년이 두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사내, 남궁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청년의 태도는 처음보다 공손해졌으나, 슬쩍 비틀린 입꼬리와 남궁희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몹시 불손했기 때문이다.

‘어찌할까…….’

남궁희가 흥미로운 듯 청년을 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손을 쓰려는 찰나, 안에서 문이 열렸다.

“털끝 하나 건드릴 생각하지 말아요. 내 아들 같은 아이니까.”

하오문주가 직접 문을 열고 나타났다.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남궁희를 맞고 있던 군조가 놀란 눈을 떴다.

남궁희가 하오문주와 군조를 번갈아 보다가 하오문주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친자식은 버려 놓고 새 자식을 주워 키운 건가? 그래도 양심은 남아서 아들이 아니라 아들 ‘같은’ 아이라고 하는 거고?”

“…….”

“…….”

날카롭게 비수를 찌르는 남궁희의 말에 하오문주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당황스러운 눈으로 군조를 보고 군조 역시 서운함을 감춘 얼굴로 걱정스럽게 하오문주를 보았다.

남궁희는 그런 하오문주를 향해 배부른 맹수처럼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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