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가득 채운 삶(2)
“띠러! 오늘은 오라삐랑 잘 꾸야!”
연화 황녀가 앙증맞은 손을 등허리에 포개고 가슴을 내밀며 외쳤다.
물론 가슴보다 배가 더 앞으로 나왔다.
“대체 저런 건 언제 보았을까요?”
“호호호. 아이들은 참 신기하지. 그새 어른들을 모방하니까.”
진화의 물음에 황후가 동문서답을 하며 웃었다.
누구를 보고, 언제 보고 배웠는지는 굳이 답하지 않아도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다.
“어허! 제국의 어느 황녀가 황태자의 잠자리를 방해한단 말이냐!”
“나야!”
황제가 똑같이 뒷짐을 지고 황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늘하게 내려다보는 황제의 눈빛에 고작 마흔 달 넘어가는 황녀가 지지 않고 마주 싸우고 있었다.
용쟁호투, 아니 용쟁추투(龍爭雛鬪)라고 해야 할까.
제국의 용을 마주한 봉황도 되지 못한 기운 센 병아리의 위세가 자못 당당했다.
하늘로 상승한 짙은 눈썹과 크고 매서운 눈, 정확하게 팔자를 그린 고집스러운 입 모양까지.
그야말로 황제를 그대로 앙증맞게 축소해 놓은 듯한 한연화인지라, 황제와 황녀가 똑같은 얼굴과 자세를 하고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을 보며 황후와 진화는 물론 궁인들마저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발칙한지고! 네 아직 어미의 품에 있는 것도 황녀로서 부끄러운 일이거늘, 장성한 황태자의 수면까지 방해한단 말이더냐.”
“응! 해! 안 부끄러!”
“무엄하다! 존대를 정확히 하라!”
“으으……요! 흥!”
절대자는 무치(無恥)라 했던가.
제국의 황제에 대적하는 한연화는 굴욕적으로 존대를 하면서 콧김을 씩씩거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 거기에 저를 쏙 빼다 박은 어린 딸에겐 제아무리 황제라 해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 작은 것 때문에 아름다운 황후와 가뭄에 콩 나듯 밤을 보내는 것부터 애지중지 아끼는 황태자가 아직 정식 혼인식도 올리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귀여운 자식이라도 속에서 고약한 심보가 솟기 마련이었다.
황녀를 보는 황제의 입꼬리가 슬쩍 비틀렸다.
“못생긴 게.”
“으…… 끄아아아아앙! 나 몬땡겨써-! 아아아앙!”
어지간해서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황녀를 울리는 법은 아주 간단했다.
어릴 적 거울에서 제 모습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황녀의 약점은 아주 명확했기 때문이다.
한연화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 한연화가 진화의 품으로 가서 안겼다.
“아, 아니다. 우리 연화가 어디 못생겼다고. 우리 연화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거짓말이야! 나눈 몬땡겨써! 뿌항 닮아써--! 뿌항 몬땡겨써! 으아아아앙!”
진화가 당황하여 어르고 달래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비겁하게 어린 딸의 약점을 찌르고 승리한 황제도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크흑!”
“…….”
“소, 송구합니다.”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장 내관은 황제의 눈초리에 사색이 되었다.
“연화는 제가 데려가 재우겠습니다.”
한연화가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궁인들은 막을 수 없는지라, 진화가 한연화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결국 한연화가 원하는 것을 쟁취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원하는 것을 얻고 울음을 그친 한연화가 진화의 품에 안겨 나가면서, 황제를 향해 의기양양 웃어 보인 것이 사달이었다.
“저, 저! 고얀……!”
황제의 용심을 자극해 버린 한연화는 다음 날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일황자가 나가면서 비어 있는 동궁으로 황태자의 궁을 옮기고, 황녀 한연화의 처소를 건희전으로 옮기라는 명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앙! 뿌항은 몬때써!”
옆에 있던 궁인들의 심장이 떨어질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외치며 황후의 창신궁에서 나오게 된 한연화의 울음이 한동안 이어졌다.
* * *
황제가 황녀 한연화를 건희전에 보내면서 달라진 것은 진화가 동궁으로 옮겨 간 것만이 아니었다.
건희전과 달리 동궁은 황궁에서 장추궁, 창신궁만큼이나 큰 궁이라 그곳에서 황태자를 모시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궁인들도 수백이었다.
무엇보다 동궁전에는 따로 후궁전이 있었으니.
그랬다.
황제의 심술로 시작된 진화의 동궁 독립으로 미뤄졌던 혼사마저 진행되었고, 일 년이 지나지 않아서 미인 나하연과 사마령이 용손을 잉태했다.
“음하하하하! 이게 다 타고난 신체 건강함의 발로가 아니겠소.”
“제발 부끄러움 좀, 좀!”
의기양양하게 부른 배를 앞세운 나하연의 모습에 부끄러움은 하후선과 곽진진의 몫이 되었다.
원영농은 나하연의 배에 찬 바람이 닿을세라 모포를 대어 주기 바빴다.
혼인 초기에 꽤 오랫동안 어려움을 함께했기 때문일까.
동궁의 다섯 후궁들의 돈독함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손님들이 오늘쯤 도착한다죠?”
“다른 분들은 혼인 때나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태자 전하의 탄신일에 종종 뵙기라도 했지만, 팽가 소가주님 내외는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나 미인은 어떤 분들인지 알고 있나요?”
“본인이 적호단에 있을 적, 적호단주님과 부단주님이셨다.”
“아, 친분이 있으시군요!”
다른 후궁들의 물음에 나하연도 오랜만에 팽치와 남궁진혜를 떠올렸다.
남궁경과 팽연화는 매해 석 달에서 넉 달은 황궁에서 지냈고, 제왕검이나 남궁가주도 두어 번은 본 적 있었다.
하지만 남궁진혜는 매번 사정이 생겨서 시집을 간 이후 몇 년째 보지 못했었다.
“어떤 분들이에요? 뭐 따로 좋아하시는 것이나 그런 것이 있을까요?”
“전하를 몹시 아끼는 분들이다. 다들 남궁세가분들을 보지 않았나?”
“아! 흠, 그렇지만 우리 전하를 아끼는 분들이 한둘이어야지요.”
“그건 그래요.”
“음, 팽가의 소부인께선 그런 우리 전하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 오신 분이지.”
“지켜 와요?”
하후선이 새로운 이야기에 눈빛을 반짝거렸다.
황궁의 사람들은 궁인부터 대소 신료들, 남은 황족들 할 것 없이 진화를 아꼈다.
명석한 두뇌와 강인한 성품, 엄청난 무위, 흔들리는 제국을 굳건하게 만든 공적은 물론, 혈통까지 완벽한 적통 출신의 황태자였으니.
황제부터 따로 황태자의 집무실을 황제의 집무실로 옮길 정도로 총애가 대단하였다.
하지만 남궁세가 사람들은 궁인들과 또 달랐다.
황궁의 사람들이 진화를 황태자로서 아끼고 우러른다면, 남궁세가 사람들은 황태자인 진화를 세 살 황녀보다 더 아이처럼 보듬고 어른다고 해야 할까.
식사 시간에 황태자의 그릇에 함부로 고기를 쌓아 놓는 것은 물론 무엄하게도 황태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만지기까지, 그때만큼은 황제와 황후마저도 황태자를 아이처럼 대했다.
궁 안에는 황제와 황후가 잃어버린 황태자의 어린 시절을 채울 욕심으로 일부러 남궁세가 사람들을 찾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후궁들은 그런 황실의 모습을 퍽 재밌어하는 편이었다.
“팽가 소부인, 내게는 부단주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하군. 팽가는 무림에서도 타고난 천력이 좋기로 유명한데, 아마 하후가에 버금가는 정도일 거다. 그런데 남궁세가도 그 못지않아서 그 천력을 남궁진혜 부단주님이 이어받으셨지. 맨손으로 절벽을 파 넘거나 강철 사슬을 끊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은 물론, 연합 무인들조차 태자 전하께는 손 하나 까딱 못 하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나 미인도 저번에 강철로 된 솥을 부러뜨리지 않았어요?”
“나 미인, 맨손으로 절벽을 판 적 있어요?”
“……모두 태자 전하의 명을 충실하게 이행했을 뿐이다.”
“아! 일 년 전에 동궁전 기둥에 손자국이 남았다고 했는데, 그거 혹시……?”
“나 미인!”
“…….”
확신에 가까운 눈으로 저를 보는 후궁들과 사마령의 잔소리를 피해 나하연이 찻잔, 아니 차를 따른 숙우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 * *
늘 먼지구름을 몰고 달려오는 마차.
멈추지도 않은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
이제 황궁 경비를 담당하는 사례군에게 남궁세가 손님들은 익숙했다.
그런데 오늘은 남궁세가의 마차가 좀 이상했다.
무림에 있을 때 황태자 전하의 전용이었다는 꽃마차의 앞으로 검갈색의 거대한 마차가 경주를 하듯 역전해 오는 것이 아닌가.
“음?”
사례군들 중 황궁 정문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급하기는 해도 언제나 절묘할 정도로 황궁 법도를 맞추던 남궁세가였는데, 어째 오늘은 마차가 정문 앞에서도 멈출 기세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퍼-엉!
마차 문이 뜯겨 나가듯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이 뛰어나왔다.
“뭐, 뭡니까-!”
“비켜! 비-켜!”
마차에서 뛰어내린 거대한 그림자 둘이 대담하게 황궁 성벽을 뛰어넘었다.
놀란 사례군이 창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양주대부의 마차와 함께 온 남궁세가의 손님일진대, 그렇다고 감히 황궁 벽을 넘은 무도한 자들을 잡지 않을 수도 없고.
당황한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 양주대부 남궁경이 사례군의 곁으로 뛰어 올라왔다.
“미안하네. 내가 황제 폐하께 따로 말하지. 급해서 그래.”
“남궁세가 일행은 맞는 겁니까?”
“보증하지. 자네들도 일전에 봤을 거야. 나랑 같이 잘 오던 남궁진혜와 남편 그리고 자식‘들’일세.”
“아!”
다행히 사례군 병사는 남궁진혜를 기억하고 있었다.
“허허허, 몇 년 만에 동생네에 오는데, 그것도 처음 만나는 조카 새끼들이 숙부의 궁에 아무 데나 똥을 싸지를 순 없잖나. 급한 용무 때문에 뛰어간 것이니 이해 좀 해 주게.”
“아…….”
남궁경이 말을 하면서 손가락 넷을 폈다.
사례군 병사는 그들이 보았던 짧은 날개를 가진 거대한 그림자가, 사실은 어린아이들을 양쪽 팔뚝에 끼고 달려야 했던 부모의 그림자임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신분을 확인할 겁니다.”
“알겠네.”
사례군 병사의 엄격한 말에 남궁경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성벽 아래에선 남궁경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뭐 한다고 저 같은 놈을 넷씩이나 낳아서는.”
“어머? 그래도 둘은 팽 소가주를 닮지 않았나요?”
“아니야! 팽치는 그래도 우리 진혜에 비하면 점잖지. 대책 없이 사고부터 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진혜야. 쉿! 비밀이야. 형님께서 말해 봐야 우리만 불리해지니까 입 닫자고 하더라고.”
“쉿, 알았어요. 호호호호!”
팽연화의 웃음소리가 제법 크게 울려 퍼졌다.
* * *
“양주대부님과 대부부인 마님을 뵙습니다.”
“아이고, 우리 미인들! 몸도 무거울 터인데 인사는 천천히 해요!”
동궁 앞에 미리 마중을 나온 후궁들의 인사에, 남궁경이 호들갑을 떨며 그들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이제 봉긋하게 배가 솟은 나하연과 사마령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게 사실이었지만, 팽연화는 세 명의 재인들이 서운할까 봐 그들부터 챙겼다.
“진화의 탄신일마다 고생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모처럼 있는 동궁의 손님맞이라 모두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양청현에서 숙수도 데려왔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어쩜, 말도 이리 예쁘게 할까.”
팽연화가 기분 좋은 얼굴로 재인들의 손을 하나하나 쓰다듬었다.
그때, 안에서 급하게 진화가 뛰어나왔다.
“저, 전하, 제발 체통을, 즈은하-!”
점점 멀어지는 진화를 붙잡는 동 태감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진화가 한걸음에 남궁경과 팽연화에게 다가섰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 황태자 전하!”
“진화야! 우리 아드님, 건강하셨습니까?”
남궁경과 팽연화는 사적으로는 예전처럼 진화를 대할 수 있도록 황제의 허락을 받았지만, 천천히 말투에 존대를 섞어 썼다.
진화는 부담스러워했지만 남궁경과 팽연화에게 그건 대수롭지 않은 변화였다.
그들에게 진화는 어떤 말투를 쓰든 늘 애틋하고 귀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님도 함께 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게…….”
진화의 물음에 남궁경이 곤란한 듯 말을 늘어뜨렸다.
그 순간.
“진화야, 내 동생--!”
꿈에서 들릴 만큼 익숙하고 그리운 남궁진혜의 목소리가 있고.
곧 진화는 단단하게 저를 끌어안는 힘을 느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누님!”
“내 동생!”
남궁진혜가 진화를 세게 껴안자 나하연을 제외한 후궁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근육이 쩍쩍 갈라진 우람한 팔에 혈관까지 솟아오르면서 남궁진혜의 힘에 진화가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팔소매가 없는 경박한 옷은 문제 삼기도 사소한 것이었다.
“아부지, 엄마가 바람나써.”
“엄마 동생이다.”
팽치의 손을 잡고, 팽치와 꼭 닮은 사내아이가 남궁진혜와 진화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팽치와 남궁진혜의 첫째인 팽화로, 진화처럼 꽃[花] 같은 아이로 태어나길 바랐으나 실제로는 불[火] 같은 팽가의 성미를 빼닮았다.
건장한 체격이 여섯 살은 족히 넘어 보였지만 결혼한 때를 생각하면 많아도 이제 겨우 네 살이었다.
그 옆에는 네 살은 되었을 법한 여아와 남아가 있었는데, 팽치와 남궁진혜를 골고루 빼닮은 쌍둥이 팽진과 팽휘였다.
“그러기엔 너무 예뿐데?”
“너무 예뿐데?”
“사촌 동생이다.”
여아라는 말에 진화의 진(珍)을 써서 조금이라도 닮길 바랐던 팽진은 남궁진혜를 쏙 빼닮았고, 안되면 남궁진휘라도 닮았으면 했던 팽휘는 조금 순한 팽치였다.
쓸데없이 예리한 쌍둥이의 질문에 팽치가 당황하지 않고 답을 정정해 주었다.
“…….”
팽치의 품에는 팽가 역대 최고의 우량아라 불리는 막내 팽강이 진화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진화가 손님들을 안으로 안내하고.
“숙뿌, 진짜 우리 외숙뿌야?”
“왜 예뻐?”
“예뻐!”
“따아!”
“하하하하하!”
진화가 네 명이나 되는 조카들과의 첫 대면에 즐거워하는 사이.
“오라버니! 양주대부! 대모님! ……뭐, 뭐야!”
황녀 한연화가 진화와 남궁경, 팽연화 부부를 찾아왔다가 네 명의 아이에게 둘러싸인 진화를 발견했다.
“너희눈 무어시냐!”
연화 황녀가 허리에 척 손을 올리고 따져 물었다.
가뜩이나 매섭게 생긴 눈까지 부라렸지만, 상대는 강적이었다.
“우리는 외숙뿌야.”
“아니지. 외숙뿌 질녀야.”
“녀? 우리 여자야?”
보통 연화 황녀가 이러면 누구든 그녀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건만, 네 명의 불청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성질이 난 황녀가 직접 움직였다.
“우씨, 누가 그거 물어봐써? 비-켜! 내 오라버니야! ……허?”
“따-아!”
같은 또래. 아니, 또래도 아닌 좀 큰 아기에게 힘으로 밀린 연화 황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진화의 품에 있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였는데, 잘 보니 저보다 조금 작을 뿐이었다.
어쨌든 저보다 작은 건 확실한데…….
“어, 어떻게……!”
인생에서 힘으로 첫 패배를 한 연화 황녀가 충격에 빠진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사이.
“이야, 너도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남궁진혜와 나하연이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어쩐지 나하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호랑이 같은 시누이의 앞에선 곰 같은 올케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사마령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나하연과 사마령의 시선이 조심스레 한곳을 향했다.
한연화와 남궁진혜의 네 아이들.
눈치 빠른 남궁진혜는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쉽지 않아. 치성이라도 드려 봐.”
“효과가 있습니까?”
“내가 막내 낳고 팽가 뒷산에 있는 불상 대가리를 날렸지.”
“…….”
남궁진혜가 아련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나하연과 사마령, 특히 나하연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힘이 센’ 다섯 아이들.
나하연은 배를 감싸고 있는 제 손을 얼른 치웠다.
다음 날.
동궁 안에 모셔 놓은 작은 불탑에는 불상 옆으로 진화의 초상화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