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425화 (425/425)

나아갈 진(進) 이야기 화(話) : 가득 채운 삶(4)

낙양 황도에서 양주 잠삼현까지 가장 빠른 경로는 배를 타는 것이었다.

청해상단에서 가장 큰 배가 제국의 황태자인 진화를 위해 마련되었다.

“와아아아-! 전하! 전하!”

“황태자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얼마 전 서장의 이민족까지 물리치고 온 이후 진화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과 환호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황족이 진짜 용혈을 타고났다 믿는 이들이 왕왕 있는 때라, 진화와 역천마제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석양호는 용이 승천한 곳이라 하여 백성들이 하늘에 치성을 드리는 장소가 되었을 정도였다.

“아버지, 저기요, 저기-!”

“적벽이구나.”

“나 귀비 마마가 저기를 타고 넘은 적이 있다 했어요!”

“……?”

나 귀비라는 말에 한태명이 귀를 쫑긋했다.

“모두 무림에 있을 때의 일이지.”

진화가 조금은 그리운 눈으로 적벽을 보며 말했다.

아련한 분위기를 읽었을까.

꼬옥.

한태화와 한태명이 진화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작고 따뜻한 손에서 제법 힘이 느껴졌다.

진화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태화와 한태명을 보았다.

오래전, 진화는 남궁진혜의 혼인이 있고 황궁으로 돌아가면서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제가 황궁에서 나와 자유롭고 당연하게 남궁세가로 돌아가는 상상.

하지만 그 상상 속에 이 작은 존재들은 없었다.

제 식구들을 데리고 남궁세가의 배를 타고 잠삼현으로 가는 모습도 없었다.

‘참…… 행복하구나.’

진화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환하게 미소가 맺혔다.

걱정스러운 듯 조용히 진화를 보고 있던 한태화와 한태명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지만, 이내 진화를 따라 까르르 웃어 보였다.

“헤헤, 소자도 쩌음 양주 가서 좋습니다.”

“너무 조아요.”

“응, 그렇구나.”

제가 입 밖으로 하지 않은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채는 아이들.

진화는 그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귀비가 된 나하연과 함께 배에서 내려 잠삼현으로 들어갔다.

잠삼현.

변함없이 활기차고 따뜻한 사람들이 진화와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특히 오랜만에 본가로 오는 진화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하지만 황태자 천세를 외치기 위해 나왔던 황도의 백성들과는 달랐다.

“아이고, 우리 도련님 오셨네!”

“아니야! 황태자 전하라고 해야 한다니까!”

“왜? 이제 우리 공자님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닌데…….”

“이런 씨부랄! 그러면 무슨 문제야!”

감히 제국의 황태자를 향해 ‘전하’라 부르며 오체투지는 하지 못할망정, 어디 여염집 사내를 칭하듯 ‘도련님, 공자님’ 하며 손을 흔들다니.

그래도 괜찮았다.

천하에 오직 잠삼현, 남궁세가의 사람들만은 그리해도 되었으니까.

“진화 공자님---! 소공자님--!”

“저, 저, 발칙한……!”

사복을 입고 따라나선 동 태감이 진화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향해 혀를 찼다.

하지만 진화가 마차의 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자 사방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졌다.

“와아아아아아---!”

“공자님, 많이 먹고 가세요! 밀떡은 저희가 했어요!”

“공주 드세요! 공주! 우리 소공자님도 한잔 걸칠 때가 되었잖아요! 소인이 바치는 겁니다!”

사람들의 친근한 한마디 한마디 진심이 느껴졌다.

이곳의 사람들이 진화를 진심으로 가족처럼 아끼고 애정한다는 것을 깨달은 동 태감은 슬쩍 찡-하게 달아오른 코끝을 훌쩍거렸다.

진화의 마차가 소천로를 지나 의천문 안으로 들어가고.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던 이들이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꽃마차를 또 바꿨나?”

“금색이 번쩍번쩍하지?”

“아이고, 이 답답이들아. 그러니까 그게 황실 마차라니까!”

“오! 공자님이 멀리 계시니까 이번에는 꽃마차도 황금 마차로 했나 보군.”

“황금이 아니라 황실!”

“아, 거참! 황금이나 황실이나 뭐가 중한데! 우리 공자님이 타시면 그게 꽃마차지!”

황도 물을 먹고 세상 소문에 밝은 친구가 더 잘난 척을 하기 전에 남은 이들이 킬킬거리면서 흩어졌다.

* * *

“허허허, 왔구나!”

“황태자 전하! ……음?”

“진화야! 허어, 어떻게……!”

진화를 마중 나왔던 남궁강과 남궁가주, 가모 하후민이 진화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진화보다 좀 더 아래.

다른 때였다면 당장 달려와서 진화를 끌어안고 쓰다듬었을 텐데, 지금 그들의 눈은 진화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린 앙증맞은 두 존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특히 황세손 한태화.

만약 그 옛날 그때의 진화가 건강했더라면 딱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울컥 차오르는 감정으로 하후민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혔다.

“인사부터 해야지?”

“음. 양주 쯩조부님, 백쪼부님, 백쪼모님, 쩌음 뵙게뜹니다. 소손 남궁때화입니다!”

“또녀는 남궁태명요!”

진화가 다정하게 등을 떠밀자, 한태화와 한태명이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헉! 남궁!”

“지, 진짜 그리해도 된다시더냐?”

“예. 폐하께서 잠삼현 안에서는 윤허하신다 하셨습니다.”

“허허, 허허허허! 황은이 망극하구나.”

자신들을 ‘남궁’이라 소개하는 한태화와 한태명의 모습에 남궁강을 비롯한 남궁세가 사람들 모두가 감격스러워했다.

그때.

“태화야! 태명아-!”

“진화야!”

뭘 하고 있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남궁경과 팽연화가 양팔에 경단 다발을 한 아름 안고 달려왔다.

“할부지--!”

“할모니-!”

한태화와 한태명이 활짝 웃으며 힘차게 달려가 남궁경과 팽연화의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을 남궁강과 남궁가주, 가모 하후민의 아쉬워하며 보았다.

그에 진화가 먼저 남궁강과 남궁가주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정말 오랜만이에요.”

“진화야!”

“아이고, 우리 새끼!”

남궁강과 남궁가주, 가모 하후민은 실로 진화를 보는 것이 오랜만인지라. 한태화를 보고 어릴 적 죽어 가던 진화의 모습을 떠올린 뒤 더 감정이 복받쳐 올라 진화를 감싸 안았다.

뒤늦게 귀비가 된 나하연을 소개할 때는 남궁가주와 가모가 몰래 눈물을 훔치고 민망한 듯 웃었다.

* * *

당금 무림의 절대자가 누구냐 묻는다면, 과연 누구라 답할 수 있을까.

많은 이름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오랫동안 무림의 하늘 위에 군림한 십이좌회 고수들.

정의맹 일선에서 무림을 이끌어 온 운현대사와 각 문파의 대표 고수들.

그리고 귀천성과의 전쟁에 새롭게 떠오른 많은 신성들.

하지만 당금 무림에 최고의 문파는 어디냐 묻는다면, 그 답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십이좌회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제왕검 남궁강.

오랫동안 남궁세가를 거대하게 번창시킨 남궁가주와 남궁제일검 남궁경.

그리고 귀천성과의 전투에서 역천마제를 물리친 창천화룡 남궁진화와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 손꼽히는 창천신룡 남궁휘까지.

그들 모두가 한집안에 있었으니까.

창천화룡 남궁진화가 한 제국의 황태자가 되었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남궁세가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그런 남궁세가에서 모처럼 벌어지는 가장 큰 잔치였다.

“귀천성이 무너지고 이런 큰 잔치는 처음이지?”

“아, 천하제일 고수 제왕검의 칠순이 아닌가. 남궁세가만의 잔치가 아니지.”

“그래서인가. 정파, 사파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오는구먼.”

잠삼현으로 밀려드는 손님들을 보며 남궁세가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귀천성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주역이었다는 자부심이 정사를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며 다시금 샘솟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제는 하북팽가, 모용세가, 곤륜, 공동, 종남파가 오더니, 어제는 소림, 무당, 화산, 점창파에 제갈세가가 오고. 오늘은 사천무림 사람들인가?”

“사천당가와 형산파가 함께 움직이고 아미파와 청성파가 따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사천이 복잡하게 돌아간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야.”

“에이, 그래도 사천당가가 패권을 쥐겠지. 당가는 사천만 떠났을 뿐 낙양 황도에서 가세를 더 불리고 때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그러니까 가까이 있는 아미파와 청성파가 경계를 하는 거겠지. 어쨌든 지금은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남궁세가의 잔치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생겼으니. 잘하면 위세나 드러내다 갈 것이고 잘못하면 한바탕하겠군.”

“글쎄…… 사천당가가 모은 재력과 사람으로 따지자면, 고작 아미파나 청성파로 성이 찰까? 비교를 하려면 남궁세가와 하려 하겠지.”

한창 세가나 문파의 일로 바쁜 곳이나 멀리 있는 곳들도 빠짐없이 잔치에 참석했다.

이런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다는 건, 무림의 주역 자리에서 빠진다는 것이라.

위세를 회복해 가는 문파들은 남궁세가의 잔치 자리를 이용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보일 생각으로 면면히 화려하게 등장했다.

게다가.

“사, 사패천의 깃발!”

“행렬이 웅장하구먼. 과연 사패천이야.”

“정파는 잃어버린 땅덩어리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는데, 사파는 오히려 사패천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으니까.”

“……이제 귀천성도 없는데, 정사연합도 끝장 아닌가? 사패천의 위세를 어느 곳에서 막을지 모르겠군.”

“사람 참, 왜 벌써 그런 걸 걱정하나?”

“아니. 사파 놈들 욕심이야 뻔하지 않나. 그래서 그런 거지.”

사패천의 검은 깃발 속 피처럼 붉은 호랑이는 마치 승리의 기쁨에 젖어 있는 정파를 향해 포효하는 듯 용맹해 보였다.

이번 전쟁에서 정의맹 소속 몇몇 세가나 문파를 제외하면 그 어떤 곳보다 사패천의 활약이 도드라졌던 것도 사실이라. 사파의 호랑이가 어떻게 움직일지 긴장감 속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다시 천하를 차지한 정파의 균열.

사패천의 야심과 정파의 경계심.

남궁강의 칠순이라는 거대한 잔치판엔 축하와 기쁨 외에도 많은 것이 혼재된 듯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잔치 기간 내내 모든 손님들을 향해 당당하게 의천문을 열어 두었다.

마치 그들의 야심이나 도전, 모든 것을 다 품어 주겠다는 듯 말이다.

* * *

잔치가 한창 무르익었다.

본 연회가 있고 난 뒤 칠 주야 동안 이어지는 술판에, 십이좌회들은 그들대로, 가주나 문파의 대표들은 그들대로 전쟁 이후 풀지 못한 회포를 풀었다.

물론 그 과정에 소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쾅-!

“뭐야? 말 다 했어? 쓰불, 사파 나부랭이가 언제부터 잘난 듯이 말이야.”

“이런 술을 개한테 퍼부어도 덜 아까울 새끼가! 너야말로 말 다 했어?”

얼큰하게 취해서 혈기 왕성한 이들끼리 시비가 붙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기하고 있던 남궁세가 무인들이 손님들을 처소로 안내했다.

“아이고, 손님, 비싼 술인데 그렇게 처먹으면 되겠어?”

“자, 자! 댁 같은 손님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술 한 모금 못 하고 대기 타고 있잖아요, 이 손님 새끼야.”

남궁세가 무인들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면서 내내 흥겨운 잔치를 이어 가기엔 무리가 없는 듯 보였다.

물론 남궁세가 무인들이 결코 정리하지 못할 상황도 있었다.

“욕심 버려, 인간아.”

“쓰불, 욕심이 없으면 그게 인간인가?”

“아,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네놈이 그 욕심 때문에 다 늙어서 젊은 년한테 장가든다 어쩐다 지랄을 해서 그 사달까지 났잖아!”

“아,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감히 누구도 사패천주의 앞에서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였지만, 악우나 다름없는 십이좌회 고수들에게 사패천주의 금기가 통할 리 없었다.

“욕심! 그 나이 되도록 추잡스럽게 여색이나 탐하더니, 핏줄도 모르는 어린 녀석이 귀천성이랑 엮여서 개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 수림이는 내 자식이라니까!”

“어쨌든! 버려! 중원 정복 어쩌고 이상한 꿈도 버리고!”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경고했다.

그러나 사패천주는 그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도발했다.

“흥, 정파 놈들은 늘 그렇게 뒤로 빼기 바쁘지. 왜, 자신이 없어?”

사패천주의 도발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에 맞춰.

탁!

제왕검이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고 사패천주를 향해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이, 한구혈이. 내가 자신이 없어 가만히 있는 걸로 보이나?”

“…….”

“너도 칠순 잔치는 해야지. 안 그런가?”

“…….”

제왕검의 도발에 사패천주가 입꼬리를 부르르 떨며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했다.

그러자 제왕검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이 처먹고 곱게 늙어 가더라도, 착각은 하지 말자. 우리끼리 천하제일인 어쩌고 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솔직하자고. 역천마제 파륜 그 새끼한테 떼거리로 덤벼서 겨우 이겼는데, 그놈이 죽었다고 우리끼리 싸우면 누가 인정이나 해 준다냐?”

“……쓰불. 더럽게 맞는 말이네.”

제왕검의 자조적인 말에 사패천주가 술잔을 거칠게 들어 술을 들이켜며 동의했다.

전쟁의 진실.

무림은 승리했고 역사는 그들의 편에서 기록될 것이나, 여전히 살아 있는 그들의 기억에 진실은 남아 있었으니.

십이좌회 고수들은 조용히 쓰디쓴 술과 함께 진실을 삼켰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전쟁은 없다.”

“동의하지.”

“좋아.”

지독하게 이어진 전쟁.

제왕검의 칠순을 기점으로 십이좌회 고수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전쟁을 끝냈다.

다음의 일은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기면서.

* * *

불편한 어른들과의 자리를 피해 후기지수들은 그들대로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

상석에는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남궁진휘와 진화가 앉아 있었고.

남궁진휘의 옆으로는 남궁진혜와 팽치 부부가, 진화의 옆으로는 나하연과 남궁구, 남궁교명이 앉았다.

진화는 숙청단원들끼리 따로 자리를 하고 싶었지만, 손님이 워낙 많고 짧은 일정 속에 소가주인 남궁진휘와 시간을 보내려면 그의 일정을 함께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진화의 마음과 달리 후기지수들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무림에서 떨어져 있었던가.’

진화는 제갈후현이 언젠가는 복귀를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다른 곳도 아닌 남궁세가의 잔치에 올 줄은 몰랐다.

제갈후현은 독 기운을 모두 털어 내다 못해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탁자의 제일 끝에 앉아 있었다.

‘기가 죽어서 말석에 앉은 거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진화는 주변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즐겁게 술을 나누는 중간중간 제갈후현이 남궁진휘를 향해 눈을 빛내는 걸 보았다.

마침 앉은 자리도 남궁진휘의 대척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라, 일부러 그 자리를 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제갈지현.’

제갈후현의 곁에는 존재감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제갈지현이 자리했다.

진화가 황태자에 등극하면서 죄 없는 많은 이들이 귀향에서 풀려났는데, 오왕부도 그중 하나였다.

제갈지현은 귀향에서 풀려나자마자 기어이 오왕부를 버리고 제갈세가로 돌아간 듯했다.

“…….”

진화와 눈을 마주친 제갈상이 괜찮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귀천성과의 전쟁 중에만 해도 제갈세가의 후계로 꼽히던 제갈상이었다.

진화가 걱정스럽게 제갈상을 보고 제갈상은 그런 진화의 눈을 피하는데, 그 사이로 남궁구가 끼어들었다.

“괜찮기는 개뿔. 저 녀석도 보기보다 사람만 좋다니까. 저 사갈 같은 남매가 방계 출신의 경쟁자를 가만히 두겠어? 벌써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더라고.”

“제갈가주나 천수현인이 그걸 보고만 있고?”

“그럴 리가. 그분들이 있으니 저 녀석이 살아서 여기까지 온 거지.”

‘역시…….’

진화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남궁구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사패천 놈들도 따로 앉은 것 보라고. 도련님만 보면 달려드는 한수림이 강무련 손에 잡혀서 꿈쩍도 못하고 있어. 도련님이랑 가까운 자리를 안내하는데 거절했다는군. 그리고 탁자 정중앙에 앉았어. 재미있지 않아?”

“재밌기는 개뿔. 이 미친놈아, 전음으로 하든지, 사방에서 다 듣겠다!”

잔뜩 신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남궁구 때문에 남궁교명이 기겁을 하며 그의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이미 아닌 척 사람들의 신경이 진화에게 모여들어 있음을, 진화가 모를 리 없었다.

“왜, 내가 틀린 말 하나? 나하연이 왔는데 당혜군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 듯이. 안 그래?”

남궁구가 히죽거리며 일부러 당혜군을 보자, 당혜군이 굳은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사천당문이 영향력을 넓히면서 패황권문과 부딪히고 있는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걸 누가 몰라? 다 아는데 눈치 챙기고 있잖아. 너도 좀 닥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티격태격하며 떠드는 동안, 몇몇 이들은 그들의 말을 들었는지 대번에 얼굴이 굳었다.

그때.

“흐흐흐, 만두 먹고 떠들게.”

“현오!”

현오가 금방 쪄 낸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접시를 들고, 진화와 나하연의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동 태감이 보았다면 기겁할 모습이었지만, 진화는 현오의 모습에서 겨우 무림에 돌아온 친밀감을 느꼈다.

나하연도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 주었다.

“뭐야? 이제 본격 숙수가 된 거야?”

“어휴, 말도 마. 숙수님이 손을 다치니까 세상에 먹을 것이 사라지더라고. 굶어 죽지 않으려면 어쩌겠어, 내가 주방으로 가야지. 흐흐흐, 그래도 소림 숙수가 되니까 좋은 점은 있더라고. 식자재 창고에 내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까.”

“소림의 식자재 창고는 괜찮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창고가 정해져 있네.”

“푸하하하하! 그게 무슨 마음대로야! 창고 하나 먹고 떨어지라는 거지! 하하하하!”

현오의 말에 남궁구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남궁교명과 나하연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는지, 맞은편에 있던 제갈후현이 진화와 현오가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강무련을 비롯한 사패천 출신들도 그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순간.

스으으으으으으으…….

“……!”

제갈후현과 그 일행의 낯빛이 변했다.

“큿!”

강무련과 있던 사패천 무인들의 입에서 조용히 신음이 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진화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두의 안색이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현경의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는 공기를 누르지도, 기세를 뿜어내지도 않았다.

단지 그들이 앉은 자리에 음기와 양기를 쪼개 작은 뇌전을 일으킨 것뿐이었다.

“이, 이게……!”

“그만, 그만하시오!”

불쾌한 고통이었다.

그들 모두가 앉은 자리에 뇌전이 자글거리는 건, 마치 불구덩이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느낌이었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얼굴을 스친 바람이 한곳을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한곳으로 모였다.

‘이젠 바람까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제게 모아 놓고, 진화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겨우 사정을 보아 살려 주었더니 아직 주제 파악이 덜 된 이들도 있고.”

제갈후현과 그 일행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특히 제갈지현과 황보정, 단승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벌써 날 잊어버린 이들도 있고.”

당혜군을 비롯한 이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날 버리려 하는 이들도 있군.”

사패천 무인들이 얼굴을 찌푸린 동안 강무련이 담담하게 진화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반갑네, 무림 친우 여러분. 나는 여전히 잘 있네.”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며 서늘하게 내려다보는 진화의 눈빛에, 많은 이들이 진화의 눈을 피했다.

그에 진화가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귀찮아서 인사는 한 번에 하지. 여러분도 앞으로 잘 있길 바라. 종종 들를 테니까. 그때도 이렇게 잘 피해 다니라고.”

환하게 웃는 진화의 머리 위로 황룡옥관이 꽂혀 있는 모습에, 많은 이들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가 황궁으로 간 이유가 모두의 머릿속에 박히고, 그가 남궁세가로 온 이유도 모두의 가슴속에 박혀 들었다.

꽃 같은 미소와 함께 언제든 돌아올 거란 진화의 협박이 모두의 뇌리에 심어졌다.

창천화룡 남궁진화.

실질적으로 역천마제 파륜을 죽인, 당금 천하제일 고수의 앞에서 남궁세가에 도전하려던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든든하네.”

“내 동생, 여전히 웃는 게 예쁘네.”

남궁진휘와 남궁진혜가 진화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역시 도련님의 옆이 재밌다니까. 이참에 궁으로 따라가야겠어.”

“미친놈.”

남궁구가 다 큰 성인이 되어 가출을 결심하는 것을 보며 남궁교명이 욕지거리를 뱉고 말았다.

《남궁마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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