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귀환자-16화 (13/360)

< Chapter 4. 내가 만든다 - 2 >

“어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변명을 내놓아 보거라.”

유일한은 에르타를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분노를 억누르려 애쓰며 말했다. 에르타는 찔리는 구석이 있기는 했는지 유일한의 시선을 맞받아치지 못하고 시선을 살짝 돌리며 조금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가장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는 해결책이었으니까······ 아마도요······.]

“에너지가?”

[이세계와의 연결은 이미 한 번 했었던 것이고, 끊어졌던 통로를 되살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퀘스트와 보상 구조를 위해 세세한 설정을 손보는 것뿐이죠. 이제 지구인들이 이세계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수준의 퀘스트를 받아 경험치와 기록을 쌓으면 지구의 몬스터들에게 대항할 힘을 빠르게 기를 수 있을 겁니다.]

“과연,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이거지?”

[그렇습니다.]

유일한의 긍정적인 태도에 조금 자신을 되찾은 에르타가 그를 마주보며 대꾸했다.

이때를 노린 유일한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그럼 나는?”

[······.]

에르타가 말을 잃었다.

“다른 애들 다 이세계 들락날락 하고 그러면 응? 나는?”

[어차피 원래 외톨이였으니까 변하는 건 그다지 없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엉!? 그렇긴 하지만!”

천 년을 넘도록 살아오면서 이 정도로 격렬한 분노를 느낀 적은 없었다!

전체적인 상황도 열이 받았지만, 에르타의 말이 그리 틀리지 않다는 점이 제일 분통 터졌다!

“엄마가 넌 왜 이세계 안 가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라고!”

[거기서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걸 무엇 하나 배울 수 없다고 대답하세요!]

“내가 학교 가기 싫다고 뻗대는 중딩이냐!”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건 제가 정한 일이 아니니 저에게 뭐라고 하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죄책감이 리미트를 브레이크한 에르타는 결국 안면몰수하고 비겁하게 정론을 꺼내들었다.

반박할 기운마저 잃은 유일한은 잠시 넋을 놓고 있었지만, 곧 에휴,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 네게 투정부려도 어쩔 수 없지. 결국 난 이세계로는 못 건너가는구나.”

[상위 존재가 되면 또 모르지요.]

“어느 세월에?”

[여태까지 당신이 살아온 세월보다는 적게 걸릴 겁니다.]

“그것 참 퍽이나 위안이 된다, 야!”

일어나 주방으로 나가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심각한 얼굴로 이것저것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켜져 있는 TV에선 전 인류에게 공지된 알림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굉장히 충격적인 얘기도 함께 들려왔다.

“비상계엄령?”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뉴스에 뜨악하여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유일한의 존재를 눈치 채고는 말했다.

“아들도 알지? 지금 밖은 위험하잖니. 학교고 기업이고 전부 스탑이야. 그 사이 군에서 대대적인 몬스터 토벌에 나선다는구나. 적어도 몬스터가 사람 사는 거리에는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는데.”

정부 역시 비로소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일상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어쩌면 이세계 퀘스트 알림이 그들의 결정을 촉구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나라의 정부 어디에서든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뒤바뀐 세계에서의 일상을 향유하기 위해 먼저 세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고, 대다수 국가의 협의 하에 잠시 세계는 역사의 흐름을 멈추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 세계의 구성원들은 다른 세계로부터 실질적인 힘을 얻어온다. 나흘 전 그들이 귀환했을 때 물거품처럼 사라진 힘이 아닌, 실제로 앞으로의 자신에게 남는 힘을.

그 순간 유일한은 희망을 느꼈다. 위엣 것들은 카드 빚 돌려막기 하듯이 임시조치를 취하고 있을 뿐이지만, 지구인들은 자신들이 맞이해야 할 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움직이고 있다.

인류는 끝내 레벨 업 한 지구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것도 나만 놔두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엄마, 아빠. 다녀오세요.”

“하지만 애비는 10년 동안 그곳에 있었을 때에도 결국 2차 전직도 못 했는데.”

“군이 몬스터를 정리한다고 해서 앞으로 거리에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이세계에서도 안전하지 않은데 말이다.”

지구의 시간이 멈춰 있던 동안, 이세계에 있던 인류는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사라지지 않는 힘을 얻어올 수 있게 된 대가로 인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래도 지금 지구에 있는 것보다는 덜 위험할걸요.”

“······그건 그렇지.”

“아버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두세요. 목숨을 걸면 안 되겠지만, 변화된 지구에서는 조금은 위험을 감수해야 살아갈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해둔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다. 그것이야말로 유일한의 근본을 이루는 관념 중 하나다.

그의 진심이 담긴 말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움직인 것일까, 두 분은 곧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럼 다녀오마. 아들도 마나 못 다룬다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봐라.”

그렇게 말씀하시곤 아버지가 먼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이세계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유일한을 보며 말했다.

“아들, 엄마는 아빠랑 조금 생각이 달라. 노력은 중요하지만, 너무 무리해도 안 돼.”

“내가 무슨 무리를 해.”

“가면 쓰고 몬스터 사냥한 거 아들이잖아.”

“······.”

설마 들키다니!? 정말로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유일한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이 전파를 탈 가능성은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했는데도······!

“설마 엄마가 아들도 못 알아볼 줄 알았니? 가면을 써도 옷을 바꿔 입어도 한눈에 들어와. 우리 아들을 어떻게 몰라.”

피의 힘은 실로 위대하구나. 유일한은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어머니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을 속이고 신마저 속이는 은신으로도 어머니를 완벽히 속일 수가 없다니.

“아들이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는지 엄마도 모르겠다. 뿌듯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그러네. 그래도 아들, 몬스터가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는 알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마음에 여유를 두고 움직여야 하는 거야.”

“알겠어요.”

어머니의 잔소리도 오랜만에 들으니 정겹기만 했다. 유일한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그제야 안도한 듯 웃었다. 그리고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와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사람이란다. 몬스터보다 강하고, 악랄한 놈들이 앞으로 많아질 테니까.”

“응.”

“그래, 알면 됐다. 기특한 아들. 엄마 야으민 다녀올게.”

“응. 너무 위험한 건 하지 말고.”

“오냐.”

곧 어머니마저 이세계로 떠났다. 아마 많은 가정에서 이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겠지.

그러나 창을 통해 내다본 세상은 지극히 고요했고, 아주 가끔씩 거리를 지나가는 군용차량이 보일 뿐이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덕분인지 제법 마음이 가라앉은 유일한은 뺨을 짝! 소리 나게 두들기고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나도 할 일 해야지.”

[저는 잠시 하늘에 다녀오겠습니다. 어제 있었던 대행자 퀘스트의 결과 당신이 받게 될 보상을 가져와야겠군요.]

“올때 누가바.”

다이어 울프와 갈색 곰이 내놓은 결과물에 흠뻑 빠져 있었던 나머지 퀘스트의 존재 자체를 잊어먹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도 없지.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에르타를 떠나보냈다. 어째선지 먹고 싶어진 누가바를 사오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진짜 혼자다.

“어째 낙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데.”

나지막이 투덜거리며 그는 집을 나섰다. 그의 목적지는 어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잽싸게 현찰박치기로 구매한 인근의 창고 시설이다.

저녁 늦게, 당장 다음 날부터 사용할 수 있는 창고 건물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다 필요 없었다. 현금만 있으면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 대한민국은 돈이 많은 사람들에겐 아주 살기 좋은 나라였던 것이다. 여태까지는 돈이 없어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유일한은 창고, 이제부터 그의 공방이 될 장소에 도착했다. 화덕이나 모루와 같은 기본적인 장비들을 급하게 마련했을 뿐 아직 많은 것이 미흡한 장소였지만, 어차피 당분간은 제대로 된 작업을 할 일도 없으니 괜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에게 있는 소재라고는 가죽과 뼈, 즉 제련을 할 필요가 없는 것들뿐이다. 금속을 두드리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데 상황이 영 따라주지를 않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가죽은 그대로 놔두면 썩어버리고, 이것저것 불순물이 달라붙고 기름이 가득한 뼈 역시 마찬가지! 오늘 그가 공방에 온 것은 늦기 전에 소재들을 손질하고 가공해두기 위해서였다.

유일한은 천 년에 걸쳐 쌓아온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신이 아는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가죽과 뼈의 손질에 들어갔다.

피나 살점, 소중한 재료를 오염시킬 수 있는 것들을 완벽히 제거하고 가죽은 추가적으로 무두질 작업을 거친다. 이미 필요한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는 정부에 팔아버렸기 때문에 하루 종일 작업만 하게 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그 많은 가죽들을 모두 손질하고 덥혀 가공하는 데도 유일한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애초에 기본 체력이 남다르고, 24레벨까지 성장하면서 체력이 더욱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업이 모두 끝났다. 뼈는 지금 당장이라도 가공할 수 있겠지만 가죽이 역시 문제. 무두질을 마치는 데에만도 며칠은 더 걸리고, 그 다음 경화 작업까지 거쳐야 할 것을 생각하면 당분간 몸을 완벽히 감싸는 방어구를 입고 다니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방어구 완성될 때쯤엔 내 레벨이 더 높아져서 아무 의미도 없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되면 다시 더 강한 몬스터를 잡아 가죽을 얻고, 그것을 가공해 갑옷이 완성될 때쯤엔 또다시 레벨이······ 뻘짓도 이런 뻘짓이 없다.

[마법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아, 돌아왔어? 그래도 난 어차피 마법을 못······.”

유일한은 돌아서서 에르타의 모습을 확인하다 말고 말을 잃었다. 그녀가 누가바를 사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에르타는 유일한과 비슷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그것이 에르타인지 의심한 후, 비록 덩치는 커졌어도 그 살짝 재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 에르타의 그것이 맞다는 사실을 확신한 후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곧 깨달음을 얻었다.

“거대화 마법이구나!”

[오히려 이전의 제 모습이 축소 마법을 쓰고 있는 상태였지요. 대체 절 뭐라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에르타가 한숨을 쉬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으세요. 지금부터 보상을 전달합니다.]

손바닥 사이즈였을 때와는 달리 어딘가 신성이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압도된 유일한은 순순히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마주잡았다.

극도로 차갑고 아주 조금 부드러운, 소름끼치도록 섬세한 촉감이 느껴진 다음 순간. 그의 망막 위로 몇 줄의 문자열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하늘 퀘스트 001. 대행자 임무 수행 완료!]

[모든 스테이터스가 1 상승합니다.]

[퀘스트 지원자 중 가장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특별한 보상이 추가됩니다.]

[이터널 플레임을 얻었습니다.]

“이터널 플레임?”

계속 붙잡고 있으면 기분이 조금 이상해질 것 같아 황급히 에르타로부터 손을 떼어내며, 유일한은 ‘나 이런 거 받은 기억 없는데?’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르타는 작게 웃으며 다른 손을 들었다.

[보시죠.]

“아.”

그가 공방에 구비해놓은 화덕. 아직 연료를 넣지도 않았는데 그 안에서 새빨간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절대 꺼지지 않는, 계속해서 성장하는 살아있는 불꽃. 매우 귀중한 하늘의 불꽃입니다. 대격변 초기가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퀘스트로 이 보상을 얻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 그 가치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와우.”

에르타의 설명만으로 이미 그 가치를 깨닫고도 남았다. 화덕 속에서 타오르는 이터널 플레임은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양을 바꾸어 타오르며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말이 실로 과언이 아닌 셈이다.

“정말 내게 딱 맞는 보상이야······.”

[그럴 줄 알았습니다. 리타가 강력하게 주장했으니까.]

“리타가······.”

유일한은 이미 에르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절대 꺼지지 않는데다 살아있는 불꽃이라니, 여러 가지 상상이 부풀어 올랐다. 앞으로 많은 금속을 가공해야 하는 그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어 주리라!

[그리고······ 기뻐하세요, 이세계에 가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하늘에서 준비한 두 번째 퀘스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르타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이해하기까지, 그는 제법 시간을 많이 소모해야 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지구에 설치할 던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 Chapter 4. 내가 만든다 - 2 > 끝

ⓒ 토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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