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7. 나도 던전 들어간다 - 3 >
[경험치 548,701을 얻었습니다.]
[Lv 74 빅 메탈 하트의 기록을 얻었습니다.]
“가뿐하네.”
단 한 방으로 빅 메탈 하트를 완전히 부숴버린 유일한이 파일 벙커를 지고는 유유히 바닥에 착지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직후 동굴 바닥에 완전히 쳐박힌 뼈 탄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거인의 고무줄의 압도적인 탄성을 고스란히 전달받아 탄환이 힘차게 튀어나간 것은 좋지만, 기세를 이기지 못해 대지에 머리가 간신히 보일 만큼 깊숙이 박혔을 뿐더러 탄환 전체에 커다란 금까지 달리고 있었다. 섀도우 레오파드의 뼈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고 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단 한 가지.
“탄환이 일회용이야······!”
[그 정도 대가도 없으면 전 납득하지 못했을 거예요.]
자이언트 레오파드를 잡았을 때와도, 섀도우 레오파드를 잡았을 때와도 상황이 다르다. 그땐 그래도 조력해주는 이들이 있었고, 특히 강력한 마법의 힘을 다루는 여제의 도움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뭐란 말인가. 아무리 그의 육신과 기술이 범상치 않다지만 레벨 차이가 두 배는 되는 몬스터를 단번에 끝장내지 않았는가!
“어떻게 하면 탄환을 회수할 수 있을까. 아니, 이렇게 된 이상 회수를 못 하는 걸 가정하고 이것도 산탄을 만들어볼까?”
[놈의 심장이나 수거해요.]
누가 대장장이 아니랄까봐 그새 또 다른 무기를 구상중인 유일한을 에르타가 재촉했다. 그는 메탈 하트와 달리 더더욱 크고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빅 메탈 하트의 심장을 수거해 그 자리에서 짤막하게 강도를 시험해보았다.
어마어마하게 단단했다.
“메탈 하트보다도 훨씬 더 단단하잖아. 미친 거 아냐?”
[메탈 하트 계열의 최종 진화형인 킹 메탈 하트는 지구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세상에서도 최고의 강도를 자랑하는 금속입니다. 4차 클래스의 몬스터인 만큼 설마 이 던전에는 나타나지 않겠지만요.]
“넌 빅 메탈 하트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놀랐잖아.”
[크흠! 어디까지나 우연입니다. 기존에 지구에 머무르던 몬스터들이 이상 진화를 일으킨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이 몬스터들은 어디까지나 지구에 새로이 생겨나는 몬스터들! 이곳에 있던 빅 메탈 하트가 돌연변이라구요. 앞으로는 이놈과 조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유일한은 제 2의 뼈 탄환을 파일 벙커에 장전하며 생각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말하면 꼭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다음날 동굴의 보다 깊은 곳에서 두 마리 째의 빅 메탈 하트와 조우하고 말았다.
[후······ 이놈의 지구. 제 예상이 들어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던전이 얼마 남았는지 빨리 얘기해봐.”
[기다려 봐요.]
유일한은 파일 벙커를 꺼내들지 말지 고민하며 에르타를 재촉했다. 원래 던전의 정보를 발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알게 모르게 유일한을 도와왔던 에르타는 솔직히 정보를 털어놓았다. 퀘스트 보상의 일부라고 우기면 통하지 않을 것도 없었다.
[이제 겨우 절반 왔네요.]
“그래, 일단 파일 벙커는 봉인하자.”
파일 벙커만 쓰면 빅 메탈 하트 정도는 한큐에 보낼 자신이 있는 유일한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뼈 탄환이 마음에 걸린다. 소설에서도 흔히 마지막 보스를 앞두고 마나가 다 떨어지거나, 탄환이 떨어지거나, 포션이 떨어지거나 해서 맥없이 당하는 일이 있지 않은가.
에르타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빡빡 우겨대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던전의 끝에는 저 빅 메탈 하트보다 강한 놈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부터 뼈 탄환을 펑펑 날려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옛 어른들은 이런 말도 했다. 아끼면 똥 된다고 말이다. 괜히 무기를 아끼다가 끔살 당하는 패턴 또한 소설에서는 부지기수다.
이때 무기를 써야 할까? 이때 포션을 마셔둬야 할까?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무수히 많은 분기와 만나고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을 어떻게 하건, 이때 살아남으면 주인공이고 죽으면 조연이다. 가끔 이때 주인공이 덜컥 죽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 소설의 인기도 죽으니 예외로 쳤다.
그러나 유일한은 주인공도 조연도 아닌 낙오자였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것은 파일 벙커도, 맨몸 돌파도 아니었다.
바로 미리 챙겨온 다른 무기였다.
“격렬한 사우전드 밤 해머어어어!”
[격렬한 사우전드 밤 해머]
[등급 - 유니크]
[공격력 – 1,974]
[장탄 – 3/3]
[옵션 – 산탄의 확산력 30% 증가]
[내구력 – 1,120/1,120]
유일한이 크로스백으로부터 아까 꺼내었던 묵중한 배틀 크러셔와는 다른, 한쪽에만 거대한 쇠뭉치가 달려 있는 망치를 꺼내들며 외쳤다. 물론 은신 상태였기 때문에 빅 메탈 하트에게는 들키지 않았다.
[왜 갑자기 그런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거죠?]
유일한은 에르타의 의문을 무시하고 무기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이 무기야말로 거인의 고무줄의 힘을 이용해 만든 소규모 병기의 걸작이었다.
해머의 머리 부분에 자이언트 레오파드와 섀도우 레오파드의 날카롭고 단단한 뼛조각이 가득 담긴 카트리지를 설치, 그 뒤에 거인의 고무줄을 설치해 있는 힘껏 팽팽하게 담겨놓는 것으로 장전한다.
그 후 적을 가격하면 그 충격으로 고무줄이 튕겨져 나오며 카트리지를 힘껏 폭파, 수많은 숫자의 뼛조각이 거센 폭발의 위력으로 인해 그대로 적의 몸통으로 파고드는 악랄한 무기!
산탄총과 근접무기를 합쳐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무기로, 물론 그 위력은 현대의 산탄총의 그것을 아득히 상회했다.
이것이 파일 벙커보다 훌륭한 점은, 고무줄이 튕겨 나오는 반동으로 해머의 뒷부분에 밀려 있던 카트리지가 자동으로 장전된다는 점이다. 더욱 훌륭한 점은, 유일한에게는 이 해머를 위한 카트리지가 아직 50개 정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당신처럼 해맑게 싸우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한 방에는 무리겠지. 놈이 분산되어 날 공격하기 전 최대한 빠르게 다음 타격을 넣어야 해.”
유일한은 놈을 향해 튀어 오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 했다. 움직이는 적을 대상으로 하게 되면 시뮬레이션이 훨씬 복잡해지지만, 적어도 첫타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때려 박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한결 수월했다.
“흣.”
굉장히 이상하지만 듣다 보면 어느새 적응이 되어버리고 마는 기합 소리와 함께 유일한이 바닥을 박찼다. 어제 빅 메탈 하트를 상대했던 그때처럼 세 번 바닥을 디디고 그대로 점프!
이어서 놈의 몸통 중앙에 있는 힘껏 해머를 내리찍자, 뻥튀기를 튀기는 소리와 함께 카트리지가 폭발했다!
[KKKKkkkkrrrrrrkkkkrkkkrkkr!]
무기는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단단한 쇳덩어리 속으로 단단하고 날카로운 수천 개의 뼛조각이 침투해 뚫어내고 부수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대한 타격을 인지한 직후, 빅 메탈 하트가 소리 없이 몸체를 늘려 유일한을 덮쳤다!
[KKkkrrRkkkkrrrkKKkkrKkk!]
바닥에 착지하기도 전 쇳조각들의 파도에 집어 삼켜질 뻔한 유일한이었으나, 그를 덮치기 직전 쇳덩어리의 파도가 비틀리고 꼬이더니 끝내 서로 충돌을 일으켜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놈의 몸체 곳곳으로 파고든 무수한 숫자의 뼛조각들이 놈의 움직임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망치를 가볍게 휘둘러 빅 메탈 하트의 몸통에 재차 뼛조각 산탄을 박아 넣으며 유일한은 유유히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다시금 공격할 준비를 하며 놈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그것은 헛수고였다.
“와우.”
빅 메탈 하트는 몸을 구성하는 쇳덩어리들을 최대한 잘게 나누어 움직이고 있었으나, 놈의 몸통 구석구석으로 파고든 뼛조각들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놈의 움직임을 방해하며 마치 놈을 속박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었다. 꼭 배춧잎 위를 기어 다니던 달팽이에게 소금을 뿌린 것만 같았다.
그것은 그저 산탄이니 저 단단한 놈도 부술 수 있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유일한의 상상을 완전히 뒤엎는 효과였다. 그러나 그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외쳤다.
“물론 이 유일한은 처음부터 모든 걸 다 계산하고 있었지!”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 치지 말아요.]
“너도 많이 늘었구나······.”
[당신을 상대하다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겁니다.]
이젠 굳이 사우전드 밤 해머를 쓸 필요도 없었다. 유일한은 공동의 절반을 채우고 흐느적거리며 몸 이곳저곳을 뻗어 어떻게든 유일한을 공격하려고 하는 빅 메탈 하트를 도끼로 사정없이 내려쳤고, 놈은 얼마 가지 않아 스르륵 제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경험치 579,192를 얻었습니다.]
[레벨 40이 되었습니다. 힘 1, 민첩 1, 체력 2, 마력 1이 올랐습니다.]
레벨 40이 되었다. 하루 만에 두 번의 레벨 업을 한 셈이었다. 그가 자신의 장비며 무기, 파멸의 덫을 만드느라 공방에 처박혀 있었던 한 달의 시간을 감안해도 그는 전 인류 레벨 랭킹의 최선두에 있을 것이었다.
인류 중에서 2차 클래스 몬스터와 3차 클래스 몬스터를 때려잡고 레벨을 올린 이들은 별로 없을 테니까.
그것을 알기에 그는 다른 귀환자들이 걱정이었다.
“다른 인간들은 레벨 업 잘 하고 있을까.”
[적어도 여제는 잘 하고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그것도 그렇지만 부모님도 걱정이야.”
[여제가 걱정되긴 하는 모양이군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에르타가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유일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네가 여제를 신경 쓰는 거야? 혹시 그 여자한테도 다른 천사들이 퀘스트를 맡겼다거나 하냐?”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에르타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유일한은 그녀의 태도가 의아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솔직히 별로 흥미롭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캐묻는 대신 쓰러진 빅 메탈 하트로부터 심장을 수거할 뿐이었다.
그 뒤로 유일한은 계속해서 던전을 탐험했으나, 그 뒤로는 빅 메탈 하트가 나올 뿐 유일한이 막연히 상상했던 그레이트 메탈 하트, 휴즈 메탈 하트, 기가 메탈 하트 같은 진화형 메탈 하트는 등장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부분만은 에르타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던전을 탐험하며 레벨이 조금씩 오르고, 새로운 무기를 사용한 전투에도 익숙해지면서 내심 3차 몬스터와의 조우를 기대했던 유일한은 결국 동굴의 최심부에서도 빅 메탈 하트밖에는 발견하지 못하자 적잖이 실망했지만, 혹시나 정말로 3차 클래스 몬스터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던 에르타는 안도했다.
[깨끗이 정리했으니 당분간은 놔두어도 될 겁니다. 나중에 금속이 필요하다면 다시 이곳에 들르도록 하지요.]
“그땐 킹 메탈 하트와 조우할 수 있으면 좋겠네.”
[······적어도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 다음에 오도록 하지요.]
최심부에 있던 빅 메탈 하트(그래도 다른 놈들보다는 레벨이 높아 80가까이 되었다. 물론 파일 벙커의 크리티컬 히트 한 방에 골로 갔다.)를 해치운 후, 에르타는 그 놈의 천사의 권능인지 뭔지를 발휘하여 던전을 이루고 있는 핵심, 파멸의 덫을 점검했다. 그 동안 유일한은 전리품과 전투에 사용했던 무구들을 점검했다.
[이 던전을 만드는데 쓰인 파멸의 덫의 연식이 제법 되었네요.]
“그러면 무슨 문제가 있어?”
[아뇨. 어차피 당신과 함께 낙오되어 있던 기존의 몬스터가 아닌, 새로이 생겨날 몬스터들을 유혹하는 함정이니 만큼 신의 힘으로만 창조된 던전이라고 해도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단지 파멸의 덫이 만들어진 것이 제 생각보다도 꽤나 오래되었기에, 그것이 조금 놀라웠을 뿐이죠.]
조금 신경이 쓰일 뿐, 아무 문제도 없다고 가벼운 말투로 에르타가 중얼거렸다. 유일한 역시 가벼운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들어 넘겼다.
에르타가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조만간 이것과 관련해서 엄청난 사고가 터지리라는 예감을 품으면서 말이다. 이건 틀림없이 복선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노골적인 복선.
[글쎄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알았어, 알았어. 이 던전에서 드래곤이 튀어나와도 괜찮을 만큼 열심히 레벨 업 할게.”
[아으으으으, 정말 믿음직한 건지 한심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던전에 들어선 지 이주일. 유일한은 200미터 밖에서 포장지만 뜯어도 치즈육포인지 불갈비맛 육포인지 알아채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능력을 획득한 채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때까지 던전 안까지 찾아온 천사들과 함께 추가로 만들어낸 파멸의 덫만 해도 8개.
그렇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곳에 파멸의 덫이 설치된 것이다.
< Chapter 7. 나도 던전 들어간다 - 3 > 끝
ⓒ 토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