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8. 오버플로 - 3 >
그것은 마치 피의 폭풍과 같았다.
[꾸웩!]
“다음!”
작열하는 태양빛조차 빨아들이는 어둠을 품은 창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허공에 피가 튀며 몬스터의 목이 날아올랐다.
[저 인간은 너무 강하다!]
[뭉쳐······꾸웩!]
전투가 시작되기 전과 전투가 끝난 후 유일한의 모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바로 지금, 유일한은 그 누구보다도 눈에 띄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피가 튀고 있었기 때문이다.
[꾸아악!]
[경험치 431,729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44가 되었습니다. 힘 2, 민첩 1, 체력 1, 마력 1이 올랐습니다.]
“끝도 없이 튀어나오네.”
유일한은 창을 가볍게 털어 플레임 리자드의 시체를 떨구는 것과 동시에 허리를 튕겨 크로스백에 정확히 시체를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멋들어진 갑옷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크로스백이었으나 뭐든 다 집어넣어 버리는 힘만은 대단했다.
[한 마리씩 없애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유일한. 오버플로의 기본은 우두머리를 먼저 꺾고, 잔당을 소탕하는 것. 환경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일으키는 개체가 있을 거예요. 놈을 죽이지 않으면 계속해서 몬스터가 생겨날 겁니다.]
“이런 환경에서 잘도 한 마리 놓치지 않고 소탕하겠다.”
유일한은 한숨을 쉬면서도 에르타의 말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플레임 리자드는 개체별로 힘의 차이가 심하게 나지 않는 놈들이었으므로, 우두머리가 있다면 분명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터였다.
문제는.
[꾸엑! 이곳에 놈이 있다!]
[놈을 먼저 죽여야 한다!]
[기록, 강한 자의 기록!]
유일한의 몹 유도 전략이 이제야 빛을 발하여 플레임 리자드 놈들이 몰려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에이잇, 귀찮은 놈들!”
유일한은 창을 한손으로 쥐고 크게 휘둘러 그에게 다가오는 놈들을 한꺼번에 걷어내고는, 그에게 계속해서 날아드는 불덩이 따위는 무시하고 바닥을 박찼다. 아니, 아예 그 불덩이를 창으로 받아내어 함께 내질렀다!
“꺼지라고 하잖아!”
[크리티컬 히트!]
[컥!]
[키힉!]
사나운 일갈과 함께 내지른 창격이 치명타가 되어 단번에 두 마리의 목을 쳐날렸다. 똑같은 순간, 바로 근처에서 다른 능력자들이 파티를 맺고 힘겹게 플레임 리자드를 상대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광경이다.
“전부 저리 비켯!”
[킥!]
그 호쾌한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존재만으로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며 적군의 선봉을 꺾는 용자!
아마 유일한이 마나를 다루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든 이가 경악할 것이다.
“후. 흐읍!”
주위의 몬스터가 전부 목숨을 잃고 쓰러진 그 순간, 유일한이 제자리에서 바닥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순수한 각력만으로, 그것도 많은 무게의 내용물이 담긴 크로스백을 메고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이!
“와우.”
“멋진 스킬이지만 뒷감당이 가능할까?”
불꽃과 마법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유일하게 혼자 수십 미터 상공으로 점프를 하는 기이한 남자! 대번에 인간들과 플레임 리자드 전원의 시선이 꽂히고 말았다. 고개를 들어 그에게 불꽃을 날려대는 플레임 리자드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한은 상공에 체류하는 그 짧은 순간, 지상에서 전투를 벌이는 인간들과 플레임 리자드 모두를 훑었다.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몬스터들을 무시하고, 멀쩡한 도시를 바위투성이 언덕으로 바꾸고 있는 주범을 찾았다!
“찾았다.”
유일한이 작게 속삭이며 미소를 지은 다음 순간, 중력의 힘에 의해 그의 몸이 다시 떨어져 내렸다.
지금 그는 크로스백까지 합치면 족히 수 톤을 넘어가는 상태! 그러나 그는 몸의 균형을 잡고 창에 힘을 주어 낙하의 각도를 조절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바로 코앞에까지 다가온 지상의 플레임 리자드에게 그대로 창을 내지르며 지상에 착지했다.
[경험치 411,118을 얻었습니다.]
중력의 힘까지 고스란히 실어낸 덕분에 그의 창은 마치 두부를 가르듯 놈을 반으로 토막 냈다. 섬뜩함마저 느낄 만큼 파괴적인 일격에 주위의 몬스터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리 아프지 않나요?]
“음, 창에 다 실어서 내보냈으니까 괜찮은데?”
[당신의 그 힘을 다루는 요령은······.]
하위 존재의 틀을 넘어섰다, 라는 말을 에르타 스스로 꾹 눌러 참았다.
안 돼, 그를 오만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에게 말을 잘못해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 제한이라도 걸게 되면 에르타는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대신 그녀는 언제나처럼 뻔한 말로 그를 칭찬해주었다.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볼만하겠네요.]
“그게 언제냐 이 말이지, 내 말은.”
[머지 않았어요. 분명히.]
“그래, 그래. 흡!”
유일한은 투덜거리며 재차 바닥을 박찼다. 이미 적의 위치는 파악한 후. 최단거리를 잡아 직선으로 달려가며 그 경로에 있던 모든 플레임 리자드를 베어 넘겼다.
사신의 검은 창은 베기에도, 찌르기에도 효율적인 창이다. 거기에 그의 섬세한 손놀림까지 더해지면, 몬스터들은 어디서 어떻게 공격이 들어오는 지도 모르고 한순간에 난자당해 목숨을 잃는 수밖에 없다.
[레벨 45가 되었습니다. 힘 1, 민첩 2, 체력 1, 마력 1이 올랐습니다.]
“야 망했다. 진짜 2차 전직 전에 마나 못 다루겠다.”
[당신이라면 레벨 100까지는 괜찮을 거예요!]
둘이서 잡담을 나누는 바로 그 순간, 그를 향해 무엇인가가 날아들었다. 불꽃? 아니, 그런 애들 장난감이 아니다. 그것은 실로 거대한 건물의 일부였다.
“거기, 피해! 적과 닿으면 폭발한다고!”
어떤 남자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적과 닿으면 폭발한다고? 유일한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 얼마 멀지 않은 거리에 플레임 리자드가 몇 마리 있는 것이 보였다.
“이리와!”
[꾸에에에엑!]
유일한은 입으로 불꽃을 뿜어내며 저항하는 플레임 리자드를 강제로 잡아다가 건물 덩어리에 집어 던졌다. 한 마리 퐁당, 두 마리 퐁당, 세 마리 쾅!
쾅! 콰광!
유일한이 플레임 리자드를 세 마리째 집어던진 그때, 건물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유일한과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쪽까지 날아드는 파편의 힘이 상당했으니, 내던져진 플레임 리자드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와, 저런 방법이 있었네에.”
“착한 애들은 따라하지 마라.”
그것을 지켜보던 인간들이 벙쪄 있는 동안, 유일한은 성대한 폭발을 보며 압도되어 중얼거렸다.
“와······. 예술은 폭발이구나.”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거대한 폭발로 인해 건물 덩어리도, 주위의 방해물도, 플레임 리자드들도 싸그리 없어진 덕분에 유일한은 깨끗하게 드러난 전방의 상황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다른 플레임 리자드와는 격이 다른 체구의 거대한 몬스터였다. 대략 3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에, 온몸을 뒤덮은 시커먼 비늘이 바깥을 향해 위협적으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
아마 그에게 건물 덩어리를 내던진 것이 바로 저놈이겠지. 이쪽을 바라보며 씩씩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퍼지는 광경이 실로 웃겼다.
놈을 호위하고 있는 몬스터들 또한 있었다. 전투 중에 얼마나 죽어나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남아있는 호위대는 다섯 마리.
전부 일반 플레임 리자드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큰 체구에다가 제각기 도끼나 대검 등 험상궂은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더구나 도마뱀 주제에 갑주까지 입고 있었다.
“저거 메탈 하트보다 좋을까?”
[몬스터 갑옷까지 뺏어 입을 생각을 하다니······.]
“미쳤냐, 내가 입을 거 아니거든. 녹여서 가공할 거거든.”
환경 변화의 중심에 몬스터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열 명이 채 안 되는 숫자의 능력자들 또한 몬스터들과 대치하며 서 있었다.
남자 목소리의 경고가 날아든 시점에서 눈치를 채고 있기는 했지만, 역시 그를 제외한 인간들 중에도 사태의 원흉을 잡아내 족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와, 저거 풀플레이트에요 하진 오빠! 풀플레이트! 짱 멋지다!”
“제발 촐싹거리지 좀 마라, 유나야.”
그 무리 중에 한국인도 섞여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지만, 자신의 정체를 갑옷으로 감추고 있는 이상 굳이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도 없으니 유일한은 입을 다물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이놈들은 강해, 그 이상 다가오면 확실히 적으로 간주된다!”
“무슨 헛소리를. 이미 적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유일한은 그들 중 한 명의 경고에 시크하게 대꾸해주고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의 발밑에서 바위가 솟구쳤다. 그 끝이 날카롭게 갈린, 대번에 인간을 꼬치로 만들어버릴 만한 위력을 품은 위협적인 바위가!
[크르르르르!]
[지형변화를 공격으로 이용하다니!]
에르타가 아연해져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한을 걱정해서 내뱉은 것이 아니라, 오버플로의 영향력까지 공격으로 이용하는 몬스터의 지능에 경악해서였다.
물론 유일한이 꼬치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솟구친 바위의 첨단, 그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빅 메탈 하트의 정수를 고작 바위 따위가 꿰뚫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모비딕을 잡기 위해 파도와 맞서 싸운 내게 이 정도 균형은 우습다!”
[똥폼 그만 잡아요!]
그러나 다음 순간, 솟구쳤던 바위가 그대로 폭발을 일으키면서 유일한도 더 이상 농담을 할 수는 없게 되었다.
“저 바보가!”
“칫, 폭발 능력을 발휘할 때는 놈이 못 움직여, 죽은 자는 안타깝지만 지금 공격······을······.”
그것을 보고 제각기 한숨을 내뱉거나 탄식을 하던 인간들이, 무엇을 본 것인지 몰라도 다음 순간 말을 잃었다.
유일한이 죽은 줄 알고 리액션을 하던 사람들이 그 리액션을 멈추었으니, 그들이 무엇을 발견했을지는 자명하다.
그들은 유일한을 본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서, 그들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결과를 불러일으킨 유일한을!
“후하아아아!”
[그 기합성도 이상해욧!]
유일한은 진지해져야 할 상황에는 농담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비록 그가 진지해질 순간이 별로 없다는 게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는 귀신같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알았다.
그러니 그가 농담을 내뱉는 한, 상황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또한 그러했다. 이미 한 번 눈앞에서 건물이 폭발하는 것을 지켜본 그에게, 바로 발밑에서 치솟았던 바위가 폭발하리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폭발을 지켜본 이상 폭발의 위력, 후폭풍, 에너지의 전환 비율을 계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폭발의 순간 그 추진력을 이용해 튀어 나가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고.
그 순간 크로스백에서 ‘4단계’까지 장전된 파일 벙커를 꺼내들어 플레임 리자드의 우두머리를 조준하는 것은 기껏해야 누워서 식은 죽 먹는 수준의 난이도였다. 이건 제법 어렵다는 뜻이다.
[섬광의 미친 파일 벙커]
[등급 - 유니크]
[공격력 -
1단계 : 1,400
2단계 : 2,100
3단계 : 3,300
4단계 : 4,500]
[옵션 - 장전속도와 공격속도 20% 증가, 공격력 20% 증가]
[내구도 – 1,341/1,350]
[최고 경지에 오른 장인이 섀도우 레오파드의 뼈와 이빨, 힘줄을 가공하여 만든 무기. 마법과 화약의 힘 없이 기적에 가까운 동력 장치를 구현해낸 점은 실로 감탄할 만하나, 사용하기가 까다롭고 휴대하기 번거로운 점은 확실한 단점이다. 메탈 하트의 금속을 이용한 개조가 이루어지며 단점과 장점이 극대화되었다.]
파일 벙커의 첨단, 장전된 금속 탄두의 탄환이 플레임 리자드의 우두머리를 똑바로 조준하고 있었다. 뒤늦게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파악한 호위들이 경악하며 몸을 던졌지만 폭발의 힘까지 추진력으로 삼은 유일한을 막는 것은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
우두머리는 폭발의 힘은 지니고 있었지만 순간이동의 힘은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한의 공격을 막는 것이 불가능했다.
유일한은 놈이 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대로 탄환을 놈의 머리통에 꽂아버렸다.
[꾸헉!]
“세상에, 저거······.”
“설마 파일 벙커야?”
“미친, 어떤 이세계에 저런 무기가 있다는 거야!”
그리고 주위의 동요도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파일 벙커를 발사했다!
< Chapter 8. 오버플로 - 3 > 끝
ⓒ 토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