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5. 너, 나, 남남 - 16 >
레벨 220을 넘기는 수십 마리의 드래곤과, 레벨 200에 근접하는 무지막지한 물리력의 용종 수천 마리가 그들의 몸집에 비하면 한없이 작기만 한 무인도에 모여 있었다.
드래곤들이 다 같이 모여 홈 파티라도 하는 것일까? 놈들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겠지만, 파티의 호스트인 유일한이 보기에 그것은 지상 최대의 호화로운 파티였다.
주로 유일한의 성장 측면에서 말이다.
인간의 레벨이 130대에 이르게 되면 한 번 레벨 업을 하기 위해 동레벨의 몬스터를 족히 1만 마리 이상은 잡아야 하는, 말 그대로 흉악한 고행을 겪어야 한다.
잡기 힘든 건 둘째 치고 그만한 숫자의 몬스터가 언제나 대기를 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말이지 그들의 고생은 눈물 없이는 말할 수가 없다. 그나마 격이 높아질수록 젊음과 함께 수명도 늘어나기에 세월을 믿고 개겨보는 수밖에 없는 것.
그렇기에 3차 대격변까지 거친 세상에서도 4차 클래스를 흔히 찾아볼 수 없다.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처절하게 전투를 벌이는 전사들이 그 끝에 살아남아서만 간신히 레벨 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유일한이 벌레 잡듯 쉽게 끝장냈던 4차 클래스 마도사 역시 그가 속한 제국에서는 수십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였다. 그 천재가 4차 클래스에 도달하기까지 227년이 걸렸다.
대부분의 나라가 비밀리에 4차 클래스 전투원을 한두 명씩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4차 클래스는 그렇게나 희귀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 모두 지금의 유일한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경험치 2,422,175,401을 얻었습니다.]
[Lv 225 플레임 드래곤의 기록을 얻었습니다.]
“캬, 경험치 24억 살살 녹는다!”
그러나 레벨 225의 드래곤은 레벨 130대의 몬스터에 비하면 경험치가 200배를 넘겼기 때문에, 유일한이 레벨 업을 하기 위해선 이런 드래곤 50마리만 잡으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때요, 참 쉽죠?”
[퍽이나 쉽겠어요!]
[빌어먹을 자시이이익!]
유일한이 파일 벙커의 발사 반동을 이용하여 허공을 날았다. 3차 전직을 거쳐 폭업을 마친 유일한은, 솔직히 수십 마리의 드래곤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음에도 전혀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지구였다면 모르되 천사의 조력을 받고 있는 지금 그의 힘은 4차 클래스에도 한 번 칼을 문대볼 만한 수준이었다. 높은 수준의 무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맨몸으로도 해볼 만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그에게는 흑골거창을 필두로 한 온갖 용잡이 무구는 물론이요 드래곤들의 방심을 끌어낼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은신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드래곤들 입장에서는 재앙이 따로 없는 수준이었다.
[유일한, 번개 날아들어요! 저건 막아야 돼요!]
“워메!”
물론 유일한도 사람이다. 공격 수단을 확실히 갖추고 있으니 놈들의 목을 따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도, 놈들의 공격이 아픈 것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화염 마법은 블레이징 리퍼로의 전직을 마치며 더욱 늘어난 화속성 저항으로 어찌 버틴다 쳐도, 구속 마법, 바람 마법, 얼음 마법, 번개 마법 등등의 마법들은 한 대만 맞아도 아프고 두 대 맞으면 크리티컬이다.
[캬아아아아! 뒈져라!]
“아이언 포트리스!”
[그 이름 아직도 포기 안 했단 말이에요!?]
제대로 맞으면 눈물이 찔끔 나는 수준이 아니라 즉석에서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져나가니, 유일한이 미리 준비해둔 아이언도 아니고 포트리스도 아닌 삼천 개의 방패들만 죽도록 뺑이를 쳐야 했다.
그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완벽히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유일한의 피해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저 블러드링크와 브레스를 열심히 빨면서 초월재생으로 버틸 뿐!
[크리티컬 히트!]
[캬아아아악! 인간!]
“똑똑한 녀석, 내가 바로 인간이다!”
그가 레벨이 210대에 이른 드래곤들을 잡을 때만 해도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아니, 대개의 경우 지상에서 철저히 판을 짠 후 놈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놓고 시작했으니 상황도 다르긴 한데, 유일한의 레벨이 올라 방어력과 각종 저항력이 오르는 것 이상으로 드래곤들의 마법 수준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화염 마법으로 일관하던 드래곤들이 수준 높은 여타의 속성 마법을 쓰게 된 것이 뼈아팠다. 유일한이 보기엔 고작 레벨 10 차이지만, 놈들에게는 수십, 수백 년의 세월의 증명인 것이다. 다양한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죽어라!]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유일한이 잘 버티며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오롯이 그의 힘만은 아니었다.
[지금 갑니다! 블로잉 배리어!]
[크으윽, 빌어먹을 년! 인간의 편에 서다니!]
그렇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용종이 이 무인도로 모여들고 있었으니 그 안에는 당연히 석양의 화원 소속의 용종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유일한과 파티로 묶여 있는 그 용종들이!
[유일한 님, 지금 놈을 묶겠습니다!]
“네 뒤나 조심하시지!”
[레시드나 님, 저희도 지금 갑니다!]
솔직히 유일한은 그들의 조력을 기대하지 않았으나, 유일한이 혼자서 드래곤 50마리와 3차 클래스 용종 1천 마리 가량을 정리하고 슬슬 한계를 느낄 때쯤 다른 드래곤 무리에 섞여서 나타난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 본색을 드러내어 그들을 믿고 있는 드래곤의 목을 물었다.
진정한 대난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파티원들의 철저한 서포트 아래 유일한은 더더욱 활개를 칠 수 있게 되었다.
[몰아붙여! 빌어먹을 파멸마군의 흔적을 대륙에서 지워내자!]
[크롸아아아아아아아!]
[키흑! 레벨도 낮은 것들이!]
같은 파티로 맺어져 피아의 구별이 쉬운 석양의 화원과 달리 드래곤들은 파티를 맺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은 계속해서 증폭되어 갔다. 더구나 드래곤 두 패거리가 섞여 난전을 벌이고 있으니 유일한이 은신을 하고 놈들을 급습하기에도 딱 좋은 조건이 완성되기도 했다.
그래, 딱 지금처럼!
[경험치 1,725,607,882를 얻었습니다.]
[레벨 137이 되었습니다. 힘 1, 민첩 1, 체력 1, 마력 2가 올랐습니다.]
“어, 이번 건 나눠먹었네.”
파티원 드래곤이 제법 피해를 입혀 놓은 놈이었던 것인지 경험치의 3할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마침 유일한의 레벨이 올랐다. 3차 전직 이후 세 번째 맞이하는 레벨 업. 전부 하루 만에 올랐다는 것이 지금 이 전장의 성질을 아주 잘 말해주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이 무인도에서 얼마나 되는 숫자의 드래곤을 참살한 걸까? 석양의 화원 소속의 드래곤이 죽였거나 다른 드래곤들의 보조를 받아 죽인 드래곤들까지 포함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160마리 가량은 죽었을 것이다.
지금 현장에 남은 4차 클래스 드래곤의 숫자는 적아를 합쳐 60이 채 안 되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많이 죽였네요. 석양의 화원 소속의 드래곤들 쪽이 압도적인 소수라서 금방 전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직까지도 반수 이상 살아남았어요. 특히 저 드래곤, 제법 실력이 뛰어나요.]
“실력도 실력인데 내 보조를 맞춰주려고 작정한 것 같아. 지금도 봐.”
유일한이 허공에서 재도약을 하며 에르타가 말한 ‘저 드래곤’을 가리켰다. 전신을 황금의 비늘로 덮은 그 드래곤은 전신에 바람을 머금고는 전장을 질주하며 드래곤들의 기세를 흩트리고 놈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스톰 가드! 네놈들의 적은 나야!]
[크롸아아아아아아!]
황금의 드래곤의 이름은 다름 아닌 레시드나. 처음 유일한에게 동맹을 제의했던 여성 드래곤이었다. 그녀는 파티원 가운데 가장 레벨이 높은 드래곤은 아니었지만, 가장 수완이 뛰어난 드래곤이기는 했다.
그녀가 유일한 황금색의 드래곤이라는 사실이 거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바람 마법을 굉장히 잘 다뤘으며 그것을 이용해 드래곤들의 공격을 흩트리고, 막고, 피하고, 날뛰며 유일한이 기습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미리 배워둔 것도 아닐 텐데 용케도 유일한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아니, 보조를 넘어서서 살신성인 정신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유일한은 그것을 보며 역시 종교는 무섭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크아아아아아아! 비켜라, 레시드나! 난 저 개자식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겠다!]
종교가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저쪽에서 알아서 떠먹여주는데 이쪽에서도 사양할 필요는 없다. 유일한은 레시드나의 서포트를 적절히 이용해가며 적들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은신을 하는 데에 성공했다.
“주문하신 개자식입니다, 손님!”
그 후엔 간단하다. 그는 드래곤이나 용종들의 마법 포위망에 걸리지 않는 각도를 계산한 후, 허공에서 세 번의 재도약을 거쳐 방향을 디귿자로 꺾으며 날아가 드래곤의 뒤통수 깊숙이 흑골거창을 찔러 넣었다!
[캬아아아아아악!]
공격을 가한 직후 그려지지 않는 궤적의 창술로 상처를 넓히고, 3차 마석으로 만든 수류탄 두 개를 파묻어주니 실로 완벽한 기습 한 세트가 완성되었다.
[크리티컬 히트!]
[경험치 2,119,029,334를 얻었습니다.]
“좋아, 순조로워.”
유일한은 목숨을 잃고 침몰하기 시작하는 드래곤의 사체 위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날아드는 마법 공격을 막아내고는 원격 수납으로 사체를 회수했다.
그러나 상황이 순조롭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다. 여태까지 전장에 남은 드래곤들은 전부 무시무시한 놈뿐이었으니까. 더구나 여태까지 잘 버티던 석양의 화원도 슬슬 숫자가 줄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유일한이 얼마나 많은 킬 수를 올리느냐에 따라 어느 진영이 승리를 할 지 정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이가 유일한 말고도 또 있었던 모양이었다.
[키햐아아아아아아아!]
오로치의 웃음소리처럼도 들리는 기합성과 함께 뭔가가 유일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려왔다. 유일한은 그 순간 곧장 재도약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놀랍게도 그것은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유일한을 따라붙었다.
[대장끼리 놀아보자고!]
굉장히 껄렁한 목소리였지만, 적어도 무시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유일한은 놈의 기척과 함께 강렬한 마나 반응을 느낀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방패들을 꺼내어 뒤를 보호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격렬한 마나의 분출이 방패를 휩쓸어 버리고 이어서 유일한까지 덮쳐왔다.
유일한은 재도약으로 다시 그것을 피하며 허공 높이 솟구쳤다. 순식간에 수 킬로미터를 솟구쳐 오른 그의 눈에, 다른 드래곤들보다 덩치가 조금 작은 검은 비늘의 날렵한 몸체의 드래곤이 쏜살같이 치솟는 것이 보였다.
[정말 빠르구나, 빨라!]
“정말 대장처럼 보이긴 하는데.”
유일한은 놈이 일직선으로 돌진해오는 것을 보며 3차 클래스 용종 중 한 마리의 사체를 꺼내었다. 막 떨어져 내리기 직전의 사체에 한 손을 얹고 조용히, 무게 전이라고 중얼거렸다.
[키햐아아······ 카학!?]
[크리티컬 히트!]
거의 백만 톤에 가까운 무게를 품고 메테오를 방불케 하는 속도로 떨어져 내린 용종의 사체가 놈과 정통으로 부딪쳤다. 그 순간 발생한 굉음이 허공중에 퍼져나가며 전투를 벌이던 모든 드래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씁, 저걸 맞고 멀쩡하네.”
보통은 시체가 아까워서 잘 하지 않는 짓이지만, 놈과 정면으로 부딪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유일한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놈이 전신으로 흑색의 기운을 뿜어내 사체를 녹이는 것을 보니 역시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캬하! 빌어먹을 놈!]
겉으로 보기엔 노데미지였지만 소득은 있었다. 놈의 말에 욕설이 섞이기 시작했다는 것. 유일한은 그것을 확인하곤 빙긋 웃으며 마지막 재도약을 펼쳐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던 드래곤의 날개 위로 착지했다.
전투를 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발판을 얻어 다시금 도약을 할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더러운 인간 자식!]
졸지에 유일한의 발판이 된 드래곤이 분노하여 마법을 일으켰지만 그는 잽싸게 놈의 등을 타고 내달려 머리 위에 안착하고는 창을 들어 놈을 마구 찔렀다.
이곳저곳에서 마법이 터지고 그것을 막느라 방패들이 분주해졌지만, 유일한은 수십 개의 방패를 컨트롤하면서도 쉬지 않고 놈을 찌르고 베었다. 크리티컬 히트가 연달아 터지며 드래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이봐, 방해되니까 비켜!]
[하지만 카로우스 님······!]
[쳇.]
그 순간 유일한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그는 발판으로 삼은 드래곤을 죽이려던 것도 포기하고 다시 잽싸게 몸을 날렸고, 직후 날아든 검고 거대한 불꽃이 유일한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크하아아아아아아아!]
적군의 발판에 이어 프렌들리 파이어에 당해 흑염 드래곤 통구이가 되어가는 드래곤이 억울함에 울부짖었다!
전장에 있던 모든 용종이 두 눈을 부릅뜨는 가운데, 카로우스라 불린 검은 드래곤이 날갯짓 한 번으로 유일한과의 거리를 좁히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부 저놈에게서 멀리 떨어져! 내 손에 뒤져도 난 모른다!]
“저런 상냥한 녀석을 봤나.”
놈은 분명 유일한이 구사하는 도약의 비밀을 알아차린 것이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부하 한 명 불태우며 경고를 하다니. 적아를 불문하고 모두 얼어붙어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자, 자! 붙어 보자고! 인간!]
그 속에서 오직 놈만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타 드래곤들에 비하면 명백히 빠른 속도로 날갯짓을 하며 유일한에게 접근해오고 있다.
유일한도 더는 놈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이동속도와 공격력도 얼추 파악이 끝났으니, 이젠 놈을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유일한이 없는 사이 아군이 전멸해버리고 말 것이다.
[유일한, 쓸 건가요?]
“아니.”
에르타가 묻고 유일한이 부정한 것. 다름 아닌 용종의 보스를 상대로 쓰기로 결심하며 만든 1회용 파일 벙커와 수류탄을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죠?]
단지 중력에 몸을 맡긴 채 놈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흑골거창을 쥔 손에 힘을 가득 주는 유일한을 보며 에르타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시급을 다투는 이때 어째서 무기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유일한은 피식 웃고는, 점점 가까워져 오는 드래곤에게 들릴 새라 조심스레 에르타한테 말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저놈 죽고 나면 진짜 보스 나온다. 원래 저렇게 포스 있게 나오는 놈들이 진짜 보스였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한 번도.”
[······아, 네. 그러시겠죠.]
[크하아아아아아아아!]
검은 비늘의 드래곤이 유일한과 자신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가 존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며 포효하는 가운데, 기어이 양측의 대장은 격돌을 일으켰다!
< Chapter 15. 너, 나, 남남 - 1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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