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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귀환자-105화 (102/360)

< Chapter 16. 나는 내 영혼의 표류자 - 5 >

“······.”

“대체 누구죠? 자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압도적인 기세를 풍기는데.”

“날개를 봐, 날개. 하늘의 군단이잖아.”

“우리를 찾지 못하고, 우리를 버린 그들.”

“솔직히 좋아할 수는 없는데.”

“다들 닥쳐봐.”

“넵.”

유일한의 머리 위에 앉아 다니면서도 자신의 기척을 철저히 감추는 에르타와 달리,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그녀는 대놓고 기척을 줄줄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엘프들도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유일한은 너무 어이가 없었던 나머지 흐느적거리며 다가가 잘 자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두 번 세 번 확인하기까지 했다.

“······맞네.”

기억 속에 있던 것보다 조금 더 예뻐지긴 했지만, 그녀는 분명 유일한의 또 다른 파트너 천사인 리타가 맞았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서브 클래스, 천사의 파트너로서의 능력이 그녀가 확실한 자신의 파트너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녀석은 리타다.

아니, 전장에 나간다면서 사람 걱정은 있는 대로 시켜놓고 정작 본인은 이렇게 쿨쿨 잠이나 자고 있다니! 역시 당초 결심한 대로 엉덩이를······.

“에휴.”

차마 때릴 수는 없었기에, 유일한은 자고 있는 리타를 볼 때면 늘 그랬듯이 그녀의 크게 뻗은 날개 끝을 톡톡 두드려 견갑골 안으로 들어가게 한 후(예전엔 날개가 한 쌍뿐이었지만) 그녀의 몸을 돌려 침대에 제대로 눕혀주고는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 주었다.

“······폐하께서 저렇게 상냥한 눈빛을 보이시는 건 처음인데.”

“혹시 폐하의 연인인가? 상위 존재를 유혹하다니 과연 우리의 영원한 폐하셔.”

“지를, 폐하는 독신이셔. 그래야 해. 그러니 닥쳐.”

편한 자세가 되자 살짝 찌푸려져 있던 리타의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이런 모습만 보면 정말이지 상위 존재는커녕 옆집 누나 같다는 생각에 유일한의 표정마저 스르륵 풀려버렸다.

어쨌든 리타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유일한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엘프 넷이 있었다.

“뭐.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살짝 똥 씹은 표정을 한 엘프 네 명이 일제히 부정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콧방귀를 뀌고는 방을 나와 문을 닫으며 엘프들에게 설명했다.

“별로 큰 비밀은 아니다만, 난 천사들과 모종의 계약을 맺어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잦아. 다레우 대륙에서 용종을 몰아내는 데에도 천사들의 도움이 있었으니, 적어도 나와 함께 하는 천사들에 대한 반감은 거두었으면 좋겠다.”

“폐하의 명이시라면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

“사귀시는 거 아니죠? 네?”

“사람 상처 그렇게 후벼 파는 거 아니다.”

유일한은 엘프들에게 우선 아파트의 물건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물론 그들은 현대 문물의 구조를 알아먹지 못했지만, 자세한 원리는 생략한 채 아티팩트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 하고 설명하니 만사가 해결되었다.

“여자 두 명이 이 방을 쓰고, 남자 두 명이 이 방을 쓰면 돼. 침대는 없지만 지금 바로 주문을 넣었으니 곧 올 테고. 물론 중간에 니들끼리 눈 맞아서 새 살림을 차리겠다고 하면 기꺼이 방 하나를 더 내어줄 용의가 있다. 이상, 질문 있나?”

궁수 파테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촉촉한 금발의 웨이브가 멋진 하얀 피부의 미청년이었다.

“전 언제나 폐하 일직선입니다!”

“그 말을 남자한테 듣고 싶지는 않았어. 다음.”

이번엔 도적 피리아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조금 체구가 작지만 짧게 쳐낸 흑발과 차갑고 시린 푸른 눈매가 압도적인 매력을 자아내는 미녀였다.

“폐하와 대련하고 싶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음.”

“이상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새로운 세상에 왔는데 궁금한 점이 하나도 없다니? 처음 만났던 시절의 엘프 종족에게 제법 지적인 면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던 유일한은, 엘프들의 관심사가 유일한과 전투밖에는 없다는 사실에 자신의 육성이 실패했다며 절망했지만 이미 때는 한참 늦어 있었다.

그래, 저들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지구까지 데려왔으니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좋겠지, 막연히 그리 생각하며 유일한은 먼저 씻기로 했다.

그런데 옷을 벗어 던지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쟤네 옷도 없네.’

아니, 신경 써야 할 점은 비단 그것만이 아닐 터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들의 외모 문제다. 언제나 유일한과 함께 다닐 수도 없으니 그들도 결국은 단독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올 터인데, 저들이 엘프인 이상 두드러지는 저 귀, 귀를 어떻게 가릴 것인지도 문제였다.

“에르타한테 귀를 감춰주는 아티팩트도 부탁할 걸 그랬다.”

[당신이 그런 걸 바랄 줄 알고 번역 기능과 부위 변화 기능이 함께 달린 아티팩트를 구해왔지요. 하위 존재라면 누구도 깨닫지 못할 거예요.]

유일한은 팬티를 벗던 자세 그대로 뒤를 돌았다. 역시나 그곳에 있는 것은 에르타의 모습.

[봤지요?]

“봤지. 너도 봤냐?”

[봤지요.]

선문답을 주고받은 그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유일한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그대로 몸을 담갔고, 에르타는 손바닥 사이즈로 변해 욕조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전쟁은 일단 끝났어요. 언제 다시 혼돈의 벽이 열릴지 모르지만, 한시름 놓았다고는 하더군요.]

“그러니 리타가 왔겠지.”

[이젠 리타가 아니라 리에라예요. 그녀는 승급했으니까.]

천사는 승급하면 이름까지 바뀌는구나. 유일한이 묘한 감회를 느끼고 있으려니 에르타가 욕조의 물로 물장구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활약이 대단했다더군요. 초반부터 몰아치기는 했지만, 언젠가 갑자기 사라지는가 싶더니 혼돈의 벽 내부에서부터 파멸마군의 일부를 아예 송두리째 뜯어내버리며 전쟁의 대미를 장식했다고. 그녀의 승급에 관여했던 대천사 스피에라마저 경악했다고 하네요.]

“무시무시한 활약이구만.”

그 활약상에 천사보다는 괴물의 모습을 떠올리고 만 유일한에게 잘못은 없으리라.

[타이밍이 공교롭기는 합니다만 혼돈의 벽에서의 전쟁이 끝난 지 불과 다섯 시간밖에는 지나지 않았어요. 리에라는 혼돈의 벽이 닫히자마자 다른 누구에게 보고를 올리지도 않고 곧장 이곳으로 내려온 거죠. 제아무리 당신이라도, 그녀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모르지는 않겠죠?]

“모르면 안 되지.”

유일한은 씁쓸하게 웃더니 대꾸했다.

“많이 지친 거겠지. 리타, 아니 리에라도 내 침대가 휴식 마스터의 철저한 사전조사와 계산 하에 주문 제작된 최고급 침대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에르타는 지구에서 상위 존재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만큼 원통했던 일이 없었다. 한 대만 제대로 때릴 수 있었다면!

하지만 그녀가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도 없으니 결국.

[······그래요. 그러니까, 그녀를 잘 챙겨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수밖엔 없었다.

유일한은 오랜만의 느긋하고 개운한 목욕을 마치고 나와 말끔하게 새 옷을 갈아입은 후, 기껏 방을 배정해줬음에도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는 엘프 네 명을 남녀로 분리해 욕실에 던져 넣었다.

그 후 근처 가게에서 속옷과 옷도 새로 한 무더기 사오고, 에르타로부터 귀걸이 형태로 된 아티팩트도 수령하여 목욕을 마치고 뽀송뽀송해진 그들에게 배분해주었다.

“오, 이 옷 편하고 좋은데.”

“속옷이 너무 작습니다, 폐하. 가슴도 골반도 끼어서······.”

“네가 나중에 가게에 직접 가서 사라.”

지구의 옷을 입고 아티팩트를 착용한 그들은 인세에 다시없을 만큼 외모가 빼어나다는 점만 빼면 지구인들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위화감이 너무 커서 웃음이 나올 정도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이걸 문제 삼아 경찰이나 군인이 붙잡지는 않을 터! 모델 업계의 스카우트나 아이돌 사무소의 프로듀서라면 몰라도!

좋아, 이만하면 급한 불은 모두 껐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유일한은 다시금 빡세게 활동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었다.

“자, 그럼 너희도 일단 쉬고 있어라.”

“폐하는?”

“난 잘 거야.”

“저희도 폐하와!”

“너희끼리 자려무나.”

단호히 그렇게 선언한 후, 유일한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이젠 얌전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는 리에라 옆으로 기어들어갔다. 이전 리에라가 혼돈의 벽으로 끌려가기 전에 나란히 누워 잤던 때가 떠올랐다.

[옆에서 자려구요?]

“깨울 수도 없잖아. 접때 보니까 리에라도 신경 안 쓰던데 뭐.”

그녀가 신경 쓰지 않으니까 자신은 괜찮다! 리에라 본인이 듣는다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상당히 미묘한 코멘트와 함께 유일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것을 보며 에르타는 어이가 없어 대꾸했다.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그녀에게는 최고의 보상이 되겠네요.]

“쿠울.”

일부러 유일한이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한 에르타였으나 유일한은 휴식 스킬의 마스터답게 1.5초 만에 잠에 빠졌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우씨.]

순간적으로 혹시 유일한이 그녀들의 감정을 다 알면서 일부러 이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든 에르타였으나 인간과 상위 천사가 나란히 꿀잠을 자는 것을 보니 괜히 그녀까지 졸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 또한 유일한의 머리맡에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제일 먼저 눈을 뜬 것은 에르타였다. 그야 셋 중 가장 피로가 덜했으니까 그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레우에서는 천사의 조력 스킬 때문에 유일한에게 계속 에너지를 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결국 최종수단까지는 쓰지도 않았지. 쓸 상황이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지만.’

다른 드래곤들은 굳이 천사의 조력을 액티브로 폭발시킬 필요도 없이 꺾었고, 테라카는 무슨 수단을 썼어도 이기지 못할 상대였으니까. 유일한이 겪는 일은 뭐가 됐든 중간이 없었다, 중간이.

에르타는 드래곤 테라카와 조우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정말이지 놈이 상위 존재였다는 것이, 놈의 허물을 레시드나가 대신 받아냈다는 것이 천운이었다.

‘아이는 잘 키워주도록 하죠.’

드래곤은 적으로 조우하게 되면 정말 끔찍하고 짜증나지만, 간혹 인류의 편에서 활동하는 드래곤들은 그 몇 배는 든든하다. 지금도 유일한의 크로스백에 들어 있을 알을 떠올리며 에르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보면 보상 전달이 아직이었구나.’

아마 유일한이 보상을 받으면 놀랄 것이다. 에르타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괜히 혼자서 쿡쿡 웃다 말고, 침대 옆에 길고 가느다란 창이 하나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응?]

굉장히 날카롭게 갈린 창날, 정체 모를 금속으로 이루어진 창대까지 분명 고위의 아티팩트. 하지만 유일한의 것은 아니다. 그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살짝 정교한 맛이 부족했다.

더구나 창 전체에 어린 이 짙은 분홍빛의 기운은 뭐란 말인가? 단순한 마력은 결코 아니고, 특수한 마석의 기운으로 가공된 속성력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까 이건 설마······.

텁.

에르타의 손이 창에 닿는 순간, 침대에서 뻗어 나온 매끄러운 손이 창대를 붙잡았다. 그 손의 주인인 리에라가 두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에르타를 노려보았다.

[손대지 마.]

[리에라······ 벌써 파악했어요.]

[이극.]

에르타는 뜨끔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리에라를 보며 한숨을 쉬더니, 곧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신의 사자라는 당신이 기록된 신의 축복을 받아버리면 어떻게 해요!]

[하지만 죽기 직전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발뺌을 포기한 리에라가 뻔뻔하게 외쳤다. 이전에 그녀의 눈은 푸른빛이 감도는 갈색이었으나, 신의 축복을 받은 지금은 루비처럼 광택이 나는 비현실적인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에르타가 물었다. 그녀의 얼굴도 조금 붉어져 있었다.

[안 창피해요?]

[창피할 게 뭐가 있어? 뿌듯하면 뿌듯했지.]

천사가 사랑을 하면 이렇게 무섭구나, 에르타는 그저 어이가 없어 허허 웃으며 다시금 그녀의 창에 손을 뻗어 정보를 확인했다.

[사랑의 신의 축복을 받아 파멸적으로 아름다운 강철 창]

[등급 – 에픽]

[공격력 – 7,500]

[옵션 – 사랑이 유지되는 한 모든 옵션이 적용된다.

1. 모든 능력 40% 증가

2. 크리티컬 히트 발생 시마다 마나를 소모하여 전 방위로 거대 충격파 발생

3. 창을 쥐고 있는 한 치명타에 당하지 않으며 회피율이 극도로 높아짐

4. 사랑하는 이를 수호하는 전투에서 모든 능력 30% 추가로 증가]

[착용제한 – 사랑의 신의 축복을 받은 이]

[사랑의 증표로 고이 간직해온 낡은 검이 신의 축복의 영향으로 진화하여 창이 되었다. 주인의 사랑의 힘이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진화한다.]

그렇다. 리에라는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사랑의 신의 축복을 받은 덕에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흐그아아아아아악!]

에르타는 각혈했다. 아티팩트의 능력을 읽는 것만으로 손발과 시공이 오그라든다! 아티팩트의 이름부터 설명까지 어느 것 하나 빼먹을 수 없이 훌륭한 손발 파괴 병기!

그런 에르타를 보며 리에라는 창대를 꼭 끌어안아 가슴에 파묻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일한이가 처음으로 만든 검이야. 지금은 창이 되었지만.]

[그런 걸 몰래 숨겨두고 있었다니! 정보를 읽는 것만으로 마음을 공격하다니 실로 대단한 위력입니다.]

[이 창에 그런 능력은 없는데······.]

천사들이 즐겁게 떠드는 동안, 유일한은 자다가 난데없이 망막 위로 떠오르는 눈부신 녹색 글귀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대장장이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조건 중 한 가지를 달성했습니다. 나머지 조건 하나를 달성하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뭐라고!?”

대체 뭔 짓을 했다고 갑자기 조건이 달성된 거야! 하고 잠에서 깨어난 유일한은 하늘에 둥둥 뜬 손바닥 사이즈 에르타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기세의 창을 끌어안고 있는 리에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

그녀는 고함을 지르며 깨어나는 유일한을 보며 두 눈이 동그래졌지만, 이내 벚꽃이 만개한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일한아, 나 다녀왔어.]

리에라의 말에, 유일한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 창 정보 좀 보자.”

어째선지 ‘어서 와’라고 말하는 순간 뭔가가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순순히 그녀를 반길 수 없었던 유일한의 최대한도의 저항이었다.

< Chapter 16. 나는 내 영혼의 표류자 - 5 > 끝

ⓒ 토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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