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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귀환자-192화 (189/360)

< Chapter 28. 내가 걷는 길 - 8 >

유일한이 세상 속 홀로서기 제 2탄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을 무렵, 하늘의 군단 주둔지에서는 에르타가 다른 천사들로부터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고 있었다.

[제가······ 잘못 들었습니까?]

[아니, 제대로 들었다.]

6차 클래스의 대천사 티베라가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의 군단은 광휘의 군단, 파멸마군, 석양의 화원과 합의를 거쳐 지구를 방치하기로 결정했다. 지구의 3차 대격변을 둘러싸고 일어난 인간의 추방 건 또한 그들과 함께 진행한 것이다.]

[어째서!]

[지구인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그대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상위 세계로 발전한 세계에서 기존의 인류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말이야. 그런 면에서 지구는 운이 좋았다. 그들 ‘대다수’가 다른 세계에 몸을 의탁할 수 있었으니까.]

너무나 단호한 대꾸에 에르타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야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하늘의 군단의 사명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전부 다른 세상으로 쫓는 일을 돕다니?

아니, 그 이전에 무슨 명목으로든 광휘의 군단과 손을 잡다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일이란 말인가! 그들이 타천사가 된 이유를, 그 누구보다도 천사들이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아이들은······ 대격변 이후로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에르타는 유미르를 떠올리며 물었다. 티베라가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것이 바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희생이다. ······그래, 아마 그 아이들은 죽게 되겠지.]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스스로 선악의 구분조차 할 수 없는 가여운 어린 양들을······ 그렇게 희생시키겠다는 얘기입니까. 지구인들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이유로······?]

[지구가 상위 세계로 진입하여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까지 모두 다 죽는 것보다는 훨씬 양호하지. 그렇지 않은가?]

그 말을 듣는 에르타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몇 살 되지 않아 항상 아빠 유일한만 찾는 유미르의 모습이 그녀의 눈가에 아른거렸다.

언제나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 녀석은 에르타에게 그 누구보다도, 어쩌면 유일한만큼이나 특별한 존재였다. 버려진 세계에 낙오된 2년 9개월, 그녀가 얼마나 유미르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가. 그런데 지금 그 아이를 죽게 놔두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차피 그들의 혼은 모두 새로운 생명이 되어 탄생할 터.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이치이다.]

[이치······.]

그래, 혼은 순환한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이치이며 모든 천사가 믿고 따르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 살아 숨 쉬는 찬란한 생명들을 제멋대로 희생할 명분은 되지 않는 것이다.

삶이란 피어 있기에 찬란하고 때에 맞춰 저물기에 아름다운 것. 에르타는 도저히 이 따위 방식의 희생을 납득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녀가 믿고 따르는 신의 방식이 아니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일부 의견이 갈릴 수도 있겠지.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일을 다른 하급 천사들이 모르게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제 6차 클래스로 승급하는 너이기에, 그리고 그 인간 유일한의 수호천사이기에 미리 말해주는 것이다.]

맹렬히 분노하는 에르타를 보며 티베라가 말을 보충했다. 그것은 마치 너에겐 이만큼 특혜를 주었으니 이쯤에서 대충 납득하고 넘어가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에르타를 더욱 더 분노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6차 클래스라는 말에 신이 나 아무 생각 없이 퍼덕거리며 날아오지 않았을 것을! 리에라처럼 하늘이 무슨 지시를 내리든 무시하고 유일한의 곁에 꼭 붙어있을 것을! 유미르를, 그 아이를 챙겼어야 하는 것을!

[리에라는? 그녀는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녀는 인간에게 너무 물들었어. 군단의 일원으로서의 업무보다도 단 한 명의 인간을 중시하고 있으니······ 이 이야기를 해주어봤자 그녀가 어찌 반응할 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었지.]

에르타 역시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그녀였다면 하늘을 전부 뒤엎으려 들었겠지. 또다시 지구를, 유일한을 그 지경에 처하게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타는 차라리 그녀의 그 패기가 부러웠다.

하고 싶은 일을 아무런 거침없이 하는 그녀는, 역시 유일한을 무척 많이 닮았다.

지금도 보라. 에르타는 6차 클래스를 바로 얻는 것이 유일한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하늘로 올라오는 바람에 그와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였지만, 리에라는 일의 선후 판단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도 모두 제쳐두고 오직 유일한과 있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지상에 남아 어쨌든 그와 함께할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그래, 둘은 무척 잘 어울려. 무슨 일을 하든 합리를 따지느라,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하느라 끝내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실패만 하는 나와는 다르게······.’

에르타는 자괴감을 느꼈다. 자신이 한심했고, 비참했고,

유일한이 보고 싶었다.

[우리라고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승인시켰던 것은 아니다. 다만 지구의 성장이 너무나 빨라, 이대로는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거기에······ 그분의 의사는 들어가 있었습니까?]

천사들이 그분이라고 칭하는 이라고 해봤자 단 하나 뿐. 에르타의 질문에 티베라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을 위해 직접 다른 단체의 수장에게 의사를 전달하기까지 하셨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에르타는 말의 뒷부분을 끝내 내뱉지 못했다. 역시 그녀는 아직 납득할 수 없었다. 지구인들이 많이 죽어나갈 것이 뻔하다는 이유로 멋대로 그들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버리다니, 이것이야말로 폭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애초에 처음 인간들을 멋대로 10년간 다른 세계로 보낸 시점에서부터 하늘의 군단은 폭거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바뀐 것은 하늘의 군단이 아니라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티베라의 옆에 선 천사에게 향했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스피에라. 업무가 많다며 돌아오는가 싶더니 그녀를 끌고 티베라에게 온 장본인이었다. 아마도 그녀 딴에는 에르타를 제법 신경 써준 모양이었지만, 에르타는 그것부터가 신경질이 났다.

[스피에라, 당신은 알고 있었군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굉장히 불쾌했지. 왜냐하면 하늘의 군단과 광휘의 군단의 합작을 이끌어낸 것이 다름 아닌 배신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수긍했잖아요.]

[나 하나가 반대한다고 바뀔 일이 아니었으니까.]

스피에라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을 만큼 강한 6차 클래스의 상급 천사이나, 그녀와 비슷한 수준의 강함을 지닌 존재는 하늘의 군단에 제법 있었다. 그녀의 말이 맞다. 그녀 하나가 반대한다고 뒤집힐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일한이 빨리 천사가 되어주길 기대했다. 지구의 주민인 유일한이 천사로 거듭난다면 굳이 지구에서 전쟁을 벌일 필요 없이 곧장 그 세계를 하늘의 군단의 점령지로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유일한은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빠르게 성장해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 폭주하고 있어.]

[······하하.]

에르타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저 웃어버리고 말았다. 상위 존재가 된 후로는 별로 느껴보지 못했던 좌절감이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모두가 나름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자신 혼자만 바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유일한. 항상 당신에게 하늘의 군단을, 천사를 믿으라고 큰소리를 쳤던 나인데 이런 꼴이 되다니······.’

에르타가 유일한에 대한 죄책감에 어쩔 줄을 몰라 하던 그때, 그녀의 속도 모르는 티베라가 말을 이었다.

[에르타, 그대는 곧 6차 클래스의 상급 천사가 된다. 그러니 하위 존재와 어울리던 때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치워버리고 정진하도록 해. 지구가 상위 세계로 온전히 거듭나고 나면, 그 세상에서 다시 한 번 모든 상위 집단이 격돌하게 될 테니······.]

[······아뇨.]

잠시 침묵하던 에르타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티베라는 그녀가 무엇을 아니라고 하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지만, 스피에라만은 단박에 그녀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말았다.

[에르타, 그대······ 진심인가?]

[네.]

에르타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분노가 폭발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힘을 내어 참고는 짧게 대꾸했다.

[아직, 제 능력이······ 상급 천사에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홀로 더 수련을 쌓아 저 스스로 상급 천사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때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르타 네 마력도, 그 외의 다른 능력도 모두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론임에도······ 그러나 본인이 아직이라고 판단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예,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아무리 본인이 감추고자 애를 써도, 그녀의 분노가 워낙 지대했기에 그것을 모두 감추기란 힘든 일이었다. 티베라 역시 그녀의 감정을 얼핏 눈치 챘다.

[······혹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티베라는 그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고, 스피에라는 그 옆에서 그저 씁쓸한 미소만 머금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두 명의 상급 천사를 마주하고, 에르타는 피식 웃어버리며 긍정했다.

[예, 사실 저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에르타!?]

스피에라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에르타가 끝까지 참지 못해 삐져나온 분노의 가느다란 줄기 한 가닥이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당장이라도 두 명의 상급 천사를 물어죽일 것처럼 그 말끝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는 그분을 믿고 존경합니다만, 언제나 모든 것이 그분의 뜻대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건도 그러합니다. 이 계획은 모든 지구인이 죽고, 지구가 홀로 상위 세계로 거듭났을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갖는 계획이겠지만······.]

[얼마든지 그렇게 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뇨.]

에르타의 눈이 반짝였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지구가 항상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그 이전부터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예, 유일한입니다. 그는 언젠가 반드시 상위 존재가 될 겁니다. 그래서 지구를 그의 뜻대로 지배할 겁니다. 그 누구도 지구를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불가능해. 제아무리 놀라운 인간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상위 존재가 될 수는 없어. 지구에 갇힌 그는 상위 존재 집단 중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고, 누구도 그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기나긴 역사 속에서 셋이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가 늘어나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아니, 어쩌면 넷인가요? 우리가 모시는 그분이라고 해도 한때는 피조물이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불경하다!]

티베라가 크게 소리치고, 스피에라마저 분노하며 창을 꽉 쥐었다. 그러나 에르타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두 명의 천사를 앞에 두고도 거침없이 그 뒷말을 쏟아냈다.

[하늘의 군단도 광휘의 군단도, 파멸마군도 석양의 화원도 모두가 유일한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그 반대입니다. 유일한은 단 한 번도 우리 상위 집단에게 시선을 둔 적이 없습니다. 그가 보는 우리는 홀로 서기 두려워 무리를 지은 겁쟁이들일 뿐입니다! 그는 홀로 오롯이 상위 존재로 거듭날 겁니다!]

[······상급 천사로의 승급 건은 없었던 일로 하지. 아직 네 정신적인 수양이 한참 부족했구나. 어디서 혼자 머리를 식히고 와야겠어.]

[기꺼이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죠. 찾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르타는 마지막까지 지지 않고 따박따박 쏟아낸 후 날개를 크게 펼쳤다. 그리곤 상급 천사들이 붙잡을 새도 없이 날아올랐다.

‘바보다. 정말 나는 바보야.’

자신의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해 불경한 말을 일삼고, 상급자들을 도발이나 하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상위 존재 실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그녀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보다 더 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지.’

그녀는 유일한을 떠올렸다. 그녀는 유일한이 상위 존재로 거듭나 지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은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이나 지금 그녀는 절실했다.

‘지금부터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안 돼.’

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그녀는 다시 한 번 날개를 펄럭였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 Chapter 28. 내가 걷는 길 - 8 > 끝

ⓒ 토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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