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9. 나는 창조한다. - 6 >
지상전은 사실상 전장의 영역에 있어 한계가 많은 전투다. 아무리 넓은 평원에서 많은 적을 상대로 싸운다고 한들, 산에 막혀, 바다에 막혀, 절벽에 막혀 넘어오지 못하는 많은 몬스터들이 있지 않은가.
더욱이 지하를 뚫고 올라오는 몬스터도 얼마 없으니 결국 지표면 위에 발을 붙이고 있는 놈들만 상대하는 셈. 헌드레드 아이즈가 제대로 활약을 할 기회도 없다.
반면 공중은 다르다. 애초에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몬스터부터가 비행 가능한 몬스터로 제한되기는 하지만, 날개가 달려 있고 천공성이 뿜어내는 마나의 파장을 느끼는 몬스터라면 어떤 놈이든 거침없이 달려와 참전한다. 더욱이 위도 아래도 양옆도 뻥 뚫려 있으니 전장이 족히 몇 배 이상으로 확대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방이 몬스터로 가득했다. 어쩌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행 몬스터가 이곳으로 집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천공성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들고 있었다.
[보통 그러면 좌절할 텐······ 꺄아아아아악!]
“지금부터 더 빠르게 갈 거야!”
본래 이만한 크기의 아티팩트를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많은 마나를 소모해야 할 것이다. 유일한이 천공성을 띄우고 움직이는 엔진의 제작에 그렇게 큰 공을 들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네 번째 옵션으로 급발진과 급상승, 급하강이란 능력이 추가되어 엔진에 그리 부담을 주지 않게 되었는데, 이 능력에서 더욱 대단한 점은 바로 옵션의 힘이기 때문에 마나를 그다지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발진!”
한창 기세를 탄 유일한이 의념을 발휘하자, 천공성 전체를 감싸는 결계가 다시 한 번 가동하며 진동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거대한 총알이나 다름없도록 만든 상태에서 몬스터들이 가득 모여드는 전방을 향해 돌진하는 천공성!
포X몬에게 몸통박치기 명령을 내리듯 가볍게 선언하는 유일한이나 그의 명을 충실히 따라 앞으로 돌진하는 천공성이나 보고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만큼 기묘했다.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잖아!]
“가라!”
[키힉!]
[키이이이이이!]
[무언가가, 온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어마어마한 무게에, 어마어마한 진동의 힘을 품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진하니 제아무리 비행이 가능한 공중 몬스터라고 해도 피해낼 재간이 없었다.
더구나 그것이 단순한 돌진이라면 모르겠는데 천공성은 자체적으로 뿜어내는 마나의 파동과 물리적인 진동을 합쳐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품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티컬 히트!]
[크리티컬 히트!]
천공성과 몬스터 무리의 일단이 충돌하는 순간 유일한의 망막 위로 무수한 크리티컬 히트가 새겨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전부 무시하며 한 차례 더 급발진을 시행했고, 끊임없이 요새로 몰려들던 몬스터들의 대다수가 연달은 급발진에 당해 볼링 핀처럼 튕겨나가 깨부수어졌다.
[······지금 얼마나 죽어나간 거야?]
그 광경을 보고 창백해져 묻는 리에라에게 유일한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급발진 두 번에 한 3만 마리 정도 죽인 것 같네.”
[3만 마리······.]
물리공격에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마력으로 주위를 감싸 한꺼번에 일대를 불태워버리는 마법과는 달리 그 범위가 한정되어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포X몬들이 열심히 몸통박치기를 해도 한꺼번에 몇 마리의 포X몬을 공격할 수는 없지 않던가.
그러나 유일한은 물리공격을 하는 대상의 몸집을 상상을 초월하도록 키워내 그 한계를 극복하고야 말았다. 특급 대포알 천공성의 압도적인 면적이 지금 이 순간, 가장 훌륭한 무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유일한이 처음부터 육탄돌격 목적으로 천공성을 건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느끼며 리에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구의 몬스터들이 전멸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급발진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은 돌진 공격으로 떨거지들을 대부분 떨쳐낸 후, 유일한은 그런 공격에는 쉽게 죽어주지 않는 4차 클래스 몬스터들을 물리치기 위해 헌드레드 아이즈를 발동했다.
“헌드레드 아이즈 가동!”
[혹시 쩌렁쩌렁하게 외치면 능력이 증폭되는 마법이라도 걸려 있어?]
“아니, 하지만 내 기분이 좋아져.”
[어쩜 이렇게 자기 욕망에 솔직할까!]
지상에서 한 차례 활약한 이후 얌전히 쉬며 마나를 보충하고 있던 헌드레드 아이즈가 유일한의 의사를 전달받고 다시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움직이는 방향이 기묘했다. 보다 거대했고, 간격 또한 컸다.
[어라, 궤도가 바뀌네?]
“원래 이게 진짜야. 파괴거울은 굳이 요새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거든. 아니, 정확히는 요새의 보호를 받아선 곤란해.”
원래부터 유일한이 설정한 헌드레드 아이즈의 궤도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가 요새 내부에서 저택을 중심으로 하여 작은 타원을 그리는 궤도. 지상전 전용의 궤도라고 할 수 있었다.
저택을 아주 확실히 보호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요새 바깥을 공격하는 데에는 조금 애로사항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천공성을 보호하는 결계 표면을 타고 그리는 거대한 궤적이다.
파괴거울은 저장된 마나를 쏘아내는 기능도 절륜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인 능력은 바로 적의 마나를 빨아들여 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까지고 결계 안에 있어서는 그 능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이놈들은 바깥에서 맞아가면서 커야 하는 것!
[정말 공중요새다워졌네.]
“처음부터 공중요새다웠거든.”
100개의 거대한 거울이 마치 행성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처럼 천공성 위를 일주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감상하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리에라는 하늘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근사한 광경을 보며 괜히 뿌듯해졌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부터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서도 과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놈이 저곳에 있다.]
[우리의 동포를 무자비하게 학살한 놈이다.]
돌진을 쉬이 피해내는 속력과 파동에 붙잡히지 않는 마나 저항력을 지닌 몬스터들은 돌진을 멈추고 잠잠해진 요새의 결계를 뚫고 침입하고자 했으나, 결계 표면까지 떠오른 파괴거울들이 놈들이 다가오는 곳을 향해 움직여 놈들을 막아섰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파괴거울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빠른 속도. 마나를 잔뜩 품고 진동하는 결계가 파괴거울의 움직임을 보조하고 있었다.
[키히이!]
[없애고 파괴하자.]
대체 이놈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질 만큼 격분한 몬스터들은 눈앞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놈들이 파괴거울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단지 앞에 뭐가 있건 다 깨부수고 나아가려는 의지로 충만해있었던 것뿐이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그러나 재앙은 바로 그 순간부터 발생했다. 놈들이 공격해오는 순간의 접촉으로 체력과 마나를 빨아들인 파괴거울이 그 마나를 증폭해 에너지선으로 되쏘아낸 것이다. 지상에서보다 더욱 거대한 규모로, 더욱 많은 대상을 향해서!
“가라! 다 죽여 버려!”
[우와아아······.]
파괴거울의 힘이 일순간 집중되며 튀어나온 에너지선이 허공에서부터 지상까지 쭉 뻗어나가며 그 궤도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관통했다. 그런 빛의 선이 동시에 백 개가 쏟아지니 마치 하늘에서 빛의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너무나 장엄하고, 동시에 서글픈 빛이었다.
“어때. 지상에서보다 훨씬 근사한 그림이 나오지.”
[아름다워라······ 결과는 아름답지 않겠지만.]
리에라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크리티컬 히트!]
[크리티컬 히트!]
[키힉!]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이, 눈이!]
[쿠아아악!]
유일한이 다녀온 지옥 던전의 몬스터들이라 해도 파괴거울에 당하고 멀쩡하지는 못할 텐데, 제아무리 천공성의 돌진을 피했다 한들 결국 4차 클래스 초반에 불과한 몬스터들이 그것에 당하고 무사했을 리가 없다.
고통스러울 때 비명을 지르는 것은 인간이나 몬스터나 마찬가지. 넓디넓은 하늘을 무대로 놈들의 비명이 교향곡을 연주했다.
[쿠우아아아아아!]
[히극, 흐구오오오오!]
사방에서 피와 뼈, 살점이 튀겼다. 운이 좋게 한 방에 죽은 놈들도 있었지만, 운이 없었던 놈들은 신체의 일부 혹은 대부분을 잃고 괴로움에 뒹굴어야 했다. 지상이었다면 표적의 저항이 줄어들어 잡기 더욱 쉬운 상황이 되었겠지만 상공에서 전투를 벌이는 지금은 놈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내려 곤란할 지경!
다행히도 헌드레드 아이즈는 한 번 구동하기 시작하면 적을 죽이거나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움직이기 때문에, 놈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건 역으로 솟구치건 상관없이 연달아 광선을 쏘아내며 놈들을 추적했다. 몬스터들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조금 전 공중요새가 급발진을 했을 때에 비하면 못해도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몬스터의 숫자가 줄고 있었다. 그것은 놈들이 대부분 3차 클래스 중후반대나 4차 클래스 초입에 이르러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더욱 놀라운 점이었다.
“좋아, 4차 클래스 중에서 가장 빠른 비행 몬스터들도 피하지 못하니 일단 하위 존재들을 대상으로 무리 없이 써먹을 수 있다는 결론은 나왔군.”
[5차 클래스 상대로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그건 또 몰라. 아마 그냥은 힘들고 놈을 잡아놓은 다음에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적어도 세계종말 급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 5차 클래스를 상대할 일이 그리 많지도 않을 테고, 아직 천공성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기대할 만 했다.
유일한은 헌드레드 아이즈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고는 자신 역시 루인 콜링을 펼쳐 날아올랐다.
[너도 움직이려고?]
“하늘은 지상과는 규모가 다르잖아. 모여드는 몬스터의 숫자부터 차원이 다른데. 내가 조금이라도 줄여서 마나 소모를 아껴야지.”
물론 목적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유일한이 지구를 홀로 감당하기 위해 공중요새를 만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대로 요새에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있다간 정작 그 자신이 발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가 발전할 수 없게 되면 스킬 또한 성장하지 않게 되고, 스킬이 성장하지 않게 되면 4차 클래스를 얻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기껏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학살하며 경험치를 얻고 있는데, 그것들이 반영될 기회를 잃는다면 얼마나 억울해지겠는가! 더욱 더 강한 적이 나오기 전에 조금이나마 약한 놈들을 상대로 스킬 레벨을 수련해야 했다.
“흐이야아아아!”
그가 루인 콜링을 펼쳐 천공성의 결계 위로 도약하자 헌드레드 아이즈에 농락당하고 있던 몬스터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스스로 결계 바깥을 벗어나다니! 놈들은 이것이야말로 유일한을 죽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놈들 생애 최악의 선택이었다.
[놈이다!]
[바보 같은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구나!]
[놈을 죽이자! 놈을 죽이면 우리에게 자유가 찾아올 것이다!]
고등학교 체육시간만 찾아오면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는 고등학생들보다도 빠른 속도로 놈들이 유일한을 향해 몰려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헌드레드 아이즈에 당해 많은 숫자가 중도 탈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 파괴거울조차 놈들을 전부 격추시킬 수가 없었다. 정말로 지구상의 모든 공중 몬스터가 한국의 상공으로 모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후.”
한 번 더 도약을 해 높이 상승한 유일한은 자신을 향해 솟구쳐오는 각종 몬스터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놈들의 이해할 수 없는 증오도, 지구의 기이할 만큼 빠른 변화도 지금은 그저 기껍기만 했다.
“좋아, 한꺼번에 다 덤벼! 스킬 따위 전부 후딱후딱 마스터해주지!”
[불의 여신의 축복은?]
“심란해지니까 그건 묻지 마.”
[넵.]
한마디로 리에라를 조용히 만든 유일한이 팔미룡창을 꺼내어 단단히 쥐었다. 아이기스까지도 선을 보일까 생각했지만, 저 정도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핀 판······ 아니, 아이기스까지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감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믿지 못하겠지만, 지금 지구는 어디까지나 3차 대격변 초기에 불과한 것이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변화도 얼마든지 닥쳐올 것이고, 4차 클래스도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아이기스는 그때 꺼내어도 충분하다. 지금은 유일한 자신의 몸으로 버티며 스킬을 수련할 때였다.
“그러면.”
그는 이터널 플레임을 전신에 두른 후 그 위로 블레이즈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유미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까지도 사용 가능한 드래고닉 블러드로 그것을 강화하자 저 위에서 빛나는 태양보다도 눈부신 불꽃이 그의 몸을 휘감게 되었다.
[······어라?]
유일한이 불의 여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불꽃을 더 많이 쓰려는 것인가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하던 리에라가 문득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왜 몬스터들이 갑자기 너를 못 찾니?]
“후.”
유일한이 히죽 웃었다. 4차 클래스조차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지 않고는 못 배겨낼 만큼 찬란한 불꽃으로 몸을 두른 채.
“누구보다 밝게 빛나면서도 모두의 앞에서 당당하게 은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은신 마스터의 경지라고 할 수 있지.”
[아, 응······ 그래, 그런 경지도 있었구나······?]
너무나 눈부셔 몬스터 중 누구도 그를 직시하지 못하다 보니 자동으로 은신 스킬이 발동되어 있었던 것! 진실은 언제나 허무한 법이다.
리에라는 유일한의 눈가가 유난히 반짝여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상냥한 그녀이기에 그 반짝임의 정체를 굳이 캐묻지 않기로 했다.
“간다! 다 뒈졌어!”
외톨이는 은신 상태를 유지한 채 허공에 밝은 불꽃의 궤도를 그리며 돌진했다. 몬스터 중 누구도 그의 모습을 잡아낼 수 없었고, 그것은 상공으로 모여든 모든 몬스터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지속되었다.
참으로 슬프게도 말이다.
< Chapter 29. 나는 창조한다. - 6 > 끝
ⓒ 토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