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다 귀환자-208화 (205/360)

< Chapter 30. 네가 날 본다면 - 8 >

그 작은 마석 안에 어떻게 들어가 있었는지 모를 만큼 방대한 마나가 삽시간에 퍼져 나와 공방 전체에 출렁거렸다.

그것은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기도 했으나, 까딱 잘못했다간 마나 크래프트의 시전자인 유일한을 덮쳐 그를 브레이커로 만들거나, 그도 아니면 일순간에 폭발하여 공방과 함께 그들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광경이기도 했다.

“후우우······ 후우······.”

마나가 공방으로부터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미리 공간을 폐쇄한 상황. 유일한은 심호흡을 하며 공방 안에 가득 찬 마나를 침착하게 이끌었다. 푸른 물결을 이루던 마나가 그에게 저항하며 벗어나려 들었지만 유일한은 5차 클래스 마석을 날려먹을 수는 없다는 일념만으로 그것을 컨트롤했다.

넘쳐흐르는 마나와, 모든 힘을 다해 그것을 갑옷으로 이끄는 유일한. 그 모습이 흡사 파도를 조종하는 해신처럼도 보였다.

[주인님은 왜 물건 하나 만들 때도 저렇게 요란해?]

[그래서 좋은 거잖아, 바보야.]

이미 진즉부터 마나와 공명하고 있던 갑옷은 마나가 흘러와 접촉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유일한의 대장장이로서의 경험과 지식이 마나라는 매개를 통해 금속의 형태는 물론이고 성질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갑옷 안에 채워 넣었던 소재가 증발하고 있어!]

[단순히 증발하는 게 아니라 일한이가 조종하는 마나와 반응해서 안쪽에서부터 갑옷의 내부를 성형하고 있는걸. ······그래도 구역질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틀의 역할을 해주었던 철갑화룡 갑옷 또한 쇳물의 온도와 위아래로 덮쳐오는 마나의 압력에 못 이겨 녹아내리고 있었다. 새로운 갑옷의 틀을 만든다는 목적은 완수했지만, 여태까지 그의 전투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던 소중한 전우가 허무하게 가버린 것이다.

“흐읍.”

물론 유일한은 갑옷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화속성 저항력을 비롯해 버릴 수 없는 능력이 담겨 있는 갑옷이었으니까!

갑옷이 녹아내리는 순간, 유일한은 마나의 파도를 이끌어 갑옷의 소멸 순간 빠져나와 허공중으로 흩어지려던 마나를 붙잡아 집어삼켰다. 푸른 바다에 붉은 물감이 떨어진 것처럼 순식간에 마나의 빛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자 리에라 또한 감을 잡았다.

[그냥 녹인 게 아니라 추출을 한 거구나! 설마 그렇게 효과를 높일 줄은 몰랐어······!]

“아냐, 단지 갑옷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던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뿐이야.”

실로 요란뻑적지근한 과정을 통해 갑옷의 틀을 잡았다. 그러나 작업은 이제 겨우 스타트를 끊었을 뿐!

철갑화룡 갑옷이 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새로 자리한 새하얗고 얇은 금속의 갑옷 위로 5차 마석을 이루고 있던 강도 높은 마나가 쏟아져 내리자, 갑옷의 모양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채 완전히 굳지 않은 하얀 금속이 쾅, 쾅 소리를 내며 실시간으로 가공되기 시작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와아. 원래 무구를 만든다는 건 다 이래?]

[그럴 리가 없잖아.]

마나의 일부가 곧 모루가 되어 갑옷을 받치고, 또 다른 일부가 곧 망치가 되어 갑옷을 두드리고 있었다. 대체 이것을 블랙스미스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블랙스미스가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하고자 해도 적합한 표현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리에라는 그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와아······.]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마나의 격류가 점차로 그 세기를 줄여갔다. 갑옷을 두드려 성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갑옷에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갑옷은 거의 완벽하게 굳어 더 이상 성형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흡.”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유일한의 집중력이 극도로 높아졌다. 그나마 여태까지는 실수를 해도 갑옷의 모양이 이상해지고 끝날 뿐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무엇 하나 삐끗하는 순간 작업 전체가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는 밀도가 줄어든 마나를 한군데로 모아 그 안에서 가느다랗고 붉은 실을 뽑아냈다. 그것만 휘둘러도 어지간한 몬스터 정도는 쉬이 격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터무니없는 밀도의 마나!

[그대로 마나 크래프트를 하는 것 아니었어?]

“말했잖아. 이건 블랙스미스도 아니고, 마나 크래프트도 아냐. 지금부터는 조용히.”

유일한은 리에라에게 경고를 주고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곤 이제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식은 갑옷의 표면을 더듬어 조금 전까지 갑옷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새겨둔 음각을 확인했다.

음각은 완벽하다. 이젠 이것을 깔끔하게 채울 차례! 그렇다. 순수하게 실체화된 마나만을 이용한 상감 작업이 바로 이 갑옷 제작의 클라이막스였던 것이다.

마나를 이용한 상감이라니. 하위 존재라면 물질과 비물질도 구분하지 못하냐며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것이고, 상위 존재라면 어째서 마나를 좁은 틀에 가두어야 하느냐며 그의 좁은 식견을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유일한은 누가 뭐라던 신경 쓰지 않는다. 외톨이이니까 애초에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대로 묵묵히 실행할 뿐이다.

[주인님 정말 3차 클래스 맞아?]

[쉿.]

유일한은 밀도와 굵기를 정확히 계산해 뽑아낸 붉은 마나의 실을 천천히 갑옷 위까지 끌어와 그것을 차례대로 음각에 채워나갔다. 마나는 음각 위로 내려앉는 순간 마치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것처럼 빛나며 그 위로 흡수되었고, 그 순간 갑옷이 갖는 격이 파격적으로 증폭되었다.

아니, 그 표현은 걸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모양을 냈을 뿐인 갑옷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붉은 마나의 상감을 통해 비로소 살아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파괴자의 천공성이 유일한의 모든 것을 최대한의 규모로 펼쳐낸 걸작이라고 한다면, 지금 이 갑옷의 제작은 그 반대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장 작은 단위로 압축시키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거대함도 웅장함도 없었으나 그 신비와 아름다움은 결코 천공성에 뒤지지 않았다.

“흐읍. 후우······.”

[아우, 멋져라······.]

[나보고 조용히 하랄 땐 언제고.]

[쉿.]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나는 갑옷의 곳곳으로 점차로 붉은 선이 새겨져나갔다. 보기도 두려운 밀도의 마나 덩어리의 크기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갑옷 위를 내달리는 선의 밝기 또한 더해졌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갑옷이 뿜어내는 빛이 더해졌지만 유일한은 이미 눈을 감은 상태이기에 그것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작업이 시작되고 얼마나 흘렀을까. 자신의 손이 갑옷의 헬멧 정수리 부분을 매만지고 있음을 깨달은 유일한이 문득 눈을 뜨고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어느덧 그렇게나 무시무시했던 마나 덩어리가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 모두가 갑옷에 가득 채워진 것이다. 헬멧부터 부츠까지, 새하얗게 빛나는 단단한 플레이트 아머 위로 마치 인간의 혈관을 그리듯 빽빽하게 그려진 붉은 선이 섬뜩하면서도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특히 갑옷의 심장부에는 유일한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마법 각인이 있었는데, 붉은 선이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끔 현란하게 그려져 있어 대체 이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끝난 거니?]

리에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일한은 조금 망설이는 것 같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유일한이 작업의 종료를 선언하는 바로 그 순간 갑옷이 재차 환한 빛을 뿜어냈다. 그 빛 속에서 유일한의 망막 위로 글귀가 새겨졌다.

[화룡신이 완성되었습니다.]

[화룡신]

[등급 – 데미갓]

[방어력 – 15,000]

[내구도 – 2,000,000/2,000,000]

[착용제한 – 화속성 저항력 100% 이상]

[옵션 -

1. 화속성 저항력과 공격력이 100% 상승

2. 갑옷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것이 가능하며, 갑옷을 이용해 공격할 경우 방어력 수치의 70%를 공격력으로 가져온다.

3. 모든 체술 계열 스킬 위력을 30% 증폭시킨다.

4. 모든 회복 계열 스킬 위력을 50% 증폭시킨다.

5. 무기와 방어구를 흡수하여 재해석하고 방출한다.

6. 화속성의 마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어 축적한다. 축적된 마나는 공격 목적으로 방출이 가능하며, 불과 관련된 능력을 사용할 경우 위력이 크게 증폭된다.]

[신화를 창조해가는 대장장이가 만들어낸 기적의 하나. 불을 다루는 모든 이가 영혼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어 할 걸작이다. 그 자체로도 터무니없지만, 갑옷에는 아직 해석되지 않은 각인이 많이 새겨져 있다.]

“데미갓이란 등급도 있었구나.”

갑옷의 정보를 살핀 유일한이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니 리에라가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래, 이미 갓 등급을 탄생시켜서 데미갓 정도는 우습지?]

“아니, 그래도 카오스보다는 높은 등급 같은데. 어차피 갓 등급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기도 했고.”

[왜?]

“이건 아직 미완성품이니까. 너도 옵션을 보고 있으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

[무기와 방어구를 흡수하여 재해석하고 방출하는 부분?]

“그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6번 옵션이야.”

아티팩트의 정보를 같이 보고 있었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리에라는 유일한에게 태클을 걸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굉장히 고심했지만 곧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 정도는 유일한과 함께하며 자신의 소중한 혈압 수치를 지키기 위한 상식이었다.

한편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유일한은 화룡신을 착용하기 전 갑옷의 완벽한 마감 작업을 위해 자신의 파트너를 호출했다.

“오로치.”

[왜 부르는가.]

요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오로치가 만사 귀찮은 투로 대꾸했다. 녀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유일한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너 이사할 때 됐다.”

[이사······? 그렇다면, 그 갑옷으로!?]

오로치가 놀라 외쳤다. 설마 유일한이 이렇게 열심히 갑옷을 만든 것이 자신의 새 집을 위한 것이었다니! 그러나 유일한은 조건을 달았다.

“지금 내 안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는 변태 마귀들의 사념이 얼마나 되지?”

[그래도 한 30만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그거 다 먹어치우면 이사 시켜줄게.”

[······.]

오로치는 짧게 침묵했으나, 이내 사내다운 씩씩한 말투로 대꾸했다.

[해보겠다.]

“언제부터?”

[지금 당장이다.]

“좋았어.”

오로치는 팔미룡창으로부터 빠져나와 유일한이 모아놓은 사념으로 득실거리는 공간으로 곧장 침입했다. 전개 상황을 지켜보던 미스틱은 불과 조금 전까지 자신도 있었던 그 공간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이상한 것들은 대체 뭐야? 쟤가 이기기는 힘들 것 같던데.]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념들도 네 등장으로 인해 크게 위축되어 있을 거야. 하위 존재 중에서 아무리 강하다 한들 상위 존재 앞에서는 뱀 앞의 개구리나 다름없으니까.”

이것이 다름 아닌 5차 클래스를 사냥한 3차 클래스가 하는 말이었다. 사냥당한 당사자 미스틱은 그 누구의 지시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님에게 살의를 느끼고 말았다. 그러든 말든 유일한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이때를 노리는 거지. 더구나 한두 마리 잡아먹다 보면 오로치도 성장할 테고.”

무엇보다도 오로치에겐 팔미룡창이라는 도피처가 있다. 놈들은 사념의 공간을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오로치만은 공간의 출입이 자유로운 것이다!

[케흑, 컥, 커헉. 한 마리 거의 다 잡아먹었었는데!]

“힘내라 오로치!”

[팝콘 먹지 마라!]

역시나, 유일한의 생각대로 오로치는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이용해가며 히트 앤 런을 반복했고, 결국 사투가 시작된 지 15초 만에 한 마리의 변태 마귀를 집어 삼키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오로치의 반격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 없었다.

[크오오오오오오오!]

[키하아아!]

자신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대하드라마를 감상하며 유일한은 화룡신을 반짝거리도록 닦고, 공방을 정리하고, 리에라나 미스틱과 수다를 떨며 친목을 도모했다. 어쩜 이렇게 얄미운 짓만 골라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워질 지경!

그렇게 영원과도 같았던 30분이 흘러 오로치가 복귀했다.

[다······ 잡아먹었다. 게흑.]

하위 존재의 사념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강화된 상태로 돌아온 오로치의 보고에, 유일한은 흡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마스터 경지에 오른 소울 인챈트 스킬로, 녀석을 화룡신에 정착시켜주었다.

[파염룡신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데미갓 등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부능력은 대폭 상승한 아티팩트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팔미룡창을 냅다 들어 갑옷에 꽂았다.

갑옷이 빛을 발하며 그것을 흡수하자 지켜보고 있던 리에라가 비명을 질렀지만 유일한은 코웃음을 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오로치, 밥 먹자!”

[이미 나는 배부르다!]

그 날, 유일한은 인벤토리를 전부 털어 파염룡신을 배불렸다.

유일한의 결전병기 중 하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 Chapter 30. 네가 날 본다면 - 8 > 끝

ⓒ 토이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