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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귀환자-220화 (349/360)

< Chapter 32. 지금 만나러 갑니다 - 3 >

“으음.”

유일한은 빛나는 공방, 리에라의 두 눈과 그녀의 창, 그것과 공명하듯 빛으로 맥박 치는 드레스를 보며 신음을 토했다.

[언젠가······ 그대······.]

“상정 외의 사태다.”

이 뚝뚝 끊기는 목소리까지, 완전히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리에라, 뭔지 알겠어?”

“사랑의 신이야. 축복을 받을 때와 완전히 동일한 기운이야!”

“그래서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건데?”

“그걸 나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리에라 역시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지금 기회를 놓치면 이 아티팩트의 제작은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

[반드시······ 바로잡을······.]

기록에 불과한 신에게 무슨 의지가 있어 말을 한단 말인가? 이 마나는 또 무엇이며 어째서 지금 그들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의문은 산처럼 쌓이고 있었지만 지금은 빛이나 목소리 따위에 흔들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리에라의 마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초월적인 존재의 마나까지 넘쳐나도록 흘러들어오는 상황, 그 마나를 낭비 없이 아티팩트에 불어넣을 수 있다면······!

[나의······ 눈을······.]

“리에라, 집중해.”

“으, 응.”

유일한의 눈이 더 없이 진지해졌다. 리에라를 강하게 만들어주고자 하는 것이라면 좋다, 지금은 누군지 모를 그의 뜻대로 놀아나주는 수밖에!

리에라의 마나, 유일한의 마나, 아티팩트의 소재가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마나, 어딘지 모를 곳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마나. 유일한의 강렬한 의지가 그것들을 이끌어 한 군데에서 맞물리도록 했다.

리에라 역시 자신의 마나를 극한에 가깝게 뿜어내 그를 도왔다. 지금 이 순간 작디작은 아티팩트 안에서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을 압도적인 양의 마나가 집결하고 있었다!

[지금······ 대비를······.]

대략적으로 마나의 규모에 대해 감을 잡은 유일한은 그 모두에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려 했으나 여기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랑의 신의 마나가 다른 마나를 보듬어 감싸는가 싶더니, 순간 극적인 마나작용을 일으켜 이전과는 아예 다른 구조의 에너지를 탄생시킨 것이다!

“큭?”

“으으윽, 버거워. 버거워어어어.”

하늘의 기운도 사랑의 신의 기운도 유일한의 기운도 리에라의 기운도 아닌, 새로운 에너지. 그것을 과연 마나라고 불러도 될까? 유일한이 알 바 아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에너지가 폭주하기 전 이것을 이용해 고스란히 아티팩트를 강화하는 것뿐!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마나 컨트롤, 나보다 능숙하잖아······!”

“쉿.”

지금 이 자리에 유일한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마도공학과 마나 크래프트의 경지에 이르러있는 유일한이 아니었더라면 그 거대한 힘이 끝내 폭주하여 천공성을 그대로 날려버렸을 지도 모르니까!

[방해······ 그렇······.]

한편 남성의 것으로도, 여성의 것으로도 들리는 목소리는 꾸준히 들려왔다. 유일한을 방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무엇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았지만, 누군가가 주파수를 맞추어주지 않는 한은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신은.]

그러던 한 순간, 돌연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없다.]

그 두 마디를 마지막으로 빛과 목소리가 모두 끊겼다. 한없이 주입되어오던 마나의 흐름까지 갑자기 막혀 폭주를 일으킬 뻔 했으나, 그것까지도 대비하고 있던 유일한은 능숙하게 그것을 이끌어 아티팩트에 불어넣었다. 마침 아티팩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의 최대치에 달해가고 있었기에 적절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리에라의 6차 클래스 시절의 신체를 이용해 만든 아티팩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유혹의 깃털이 완성되었습니다.]

작업이 끝나 그 문구가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 유일한은 집중 상태에서 풀려나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와 계속해서 손을 붙잡고 있던 리에라가 다급히 그를 품 안에 끌어안아 지탱했다.

“괜찮아, 일한아?”

“응,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서 잠깐 긴장했을 뿐이야. 그대로 재료를 날려버릴까 봐 식겁했네.”

“그래도 너무 예쁘게 완성되었는데?”

드레스를 들어 올리는 리에라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세상에서 오직 단 한 명 리에라를 위해 만들어진 드레스. 그녀가 한때 천사였음을,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는 아티팩트다.

“이건 내가 완성한 작품이 아냐.”

하지만 드레스를 바라보는 유일한의 눈빛에는 어째선지 살짝 불만이 어려 있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건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거든. 가능하다는 것도 몰랐고. 그건 사랑의 신의 힘이고 의지였어. ······기록된 신에 불과한 것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강렬한 의지를 발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러게.”

그의 말을 들은 리에라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랑의 신은 그들에게 분명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끝에 한다는 말이······ 신은 없다?

“아마 하늘을 부정하는 말이었겠지······? 어쩌면 신과 그 휘하의 군단 전부를.”

“나도 대충 그럴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어. 왜냐면 새로운 에너지로 탄생해 아티팩트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이 아티팩트에는 하늘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었거든.”

유일한은 연분홍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배틀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그녀에게 대꾸했다. 어쩌면 사랑의 신이 하늘을 증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갈 만큼 완벽하게 하늘의 기운이 제거된 아티팩트는 지금 한층 강력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물론 유일한 또한 하늘과 결별하고 제 갈 길을 걷게 된 리에라에게는 이쪽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냥 의식 한 구석에 처박아두면 되는 일이지. 아, 그리고 앞으로 사랑의 신의 별명은 니체 짝퉁이야.”

“그렇게 부르지 마!”

“그럼 짜라투스트라 짝퉁이 좋아?”

“벌칙 들어갈까?”

“죄송합니다.”

그들은 조금 전 일어났던 일들을 그저 그들의 머릿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존재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사랑의 신의 몇 마디로 생각이나 행동방식을 바꾸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는가. 하늘의 군단에 대해 판단하기에는 유일한의 지식이 아직 너무 짧았다.

“그래도 일단 뭔가 준비는 해둘까. 오늘의 친구가 언제까지고 친구라는 보장도 없고, 하늘의 군단이 혹시 내가 띠껍다고 시비를 걸어올 지도 모르니까.”

“난 네가 그렇게 말할 때가 제일 불안하더라.”

유일한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리에라는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유일한이 만든 배틀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후우.”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디자인하고 만든 옷이기에 더없이 어울린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드레스는 그녀가 다루는 창과 마치 한 세트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 더욱 어울렸다.

“어때?”

“예쁘다.”

유일한의 솔직한 대꾸에 리에라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했다. 그는 마냥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만, 그때 돌연 리에라가 히죽히죽 웃으며 드레스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렸다. 유일한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으와아!”

“벗으려는 거 아니거든! 너 아직 이 옷 정보 확인 안 했지?”

“응, 안 했는데······?”

그렇게 대꾸하다 말고 유일한은 문득 불안해졌다. 설마 사랑의 신이 끼어드는 바람에 아이템의 능력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기라도 했단 말인가!?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나 크래프트의 결과가 그렇게 어긋나지는 않았을 터인데!

“얼른 확인해봐.”

“그래. 젠장, 만약 별로면 어떻게 해야······.”

유일한은 다급히 그녀가 내민 옷자락을 쥐고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바로 그 순간 망막 위로 호화찬란한 글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유혹의 깃털]

[등급 - 갓]

[방어력 – 20,500]

[내구력 – 3,200,000/3,200,000]

[착용제한 – 리에라에게 귀속]

[옵션 -

1.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전투에서 모든 능력 40% 상승

2. 마나를 소모하여 액티브 스킬의 격을 한 단계 높일 수 있게 된다.

3. 모든 마법에 대해 저항 100% 증가

4. 모든 독과 저주에 면역

5. 치명타를 입지 않는다.

6. 마나를 소모하여 비행 가능.]

[최고의 장인이 연인을 위해 탄생시킨 걸작. 그녀의 역사와 흔적이 담긴 옷에 사랑의 신의 힘이 깃들어 탄생한 이 옷은 착용자를 보호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어, 대상에 대한 장인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질 것이다.]

아이템의 능력은 최상이었다. 유일한의 의도는 물론 그가 의도치 않았던 것들까지 모두 구현되어, 정말이지 세상이 덤벼들어도 리에라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완성도의 물건이 탄생한 것이다.

더욱이 전투적인 능력까지 최상이었으니 아이템의 능력이 갓 등급에 도달했다는 사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순수하게 유일한의 능력만으로 탄생시킬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아이템을 설명하는 아카식 레코드의 표현에 있었다.

“······.”

“일한아, 얼굴 왜 빨개진 거야? 응?”

“아카식 레코드 네놈······!”

유일한은 샘솟는 부끄러움을 분노로 치환해 실체조차 없을 아카식 레코드에 퍼부으며 돌아섰다. 리에라가 그런 그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네가 정말 좋아.”

“바보 같기는.”

“정말 정말 좋아.”

“······그래, 나도 네가 좋아. 뭐야, 그 아이템이 말해주고 있는데 뭐 하러 또 굳이 나한테 확인해?”

“네 입으로 듣고 싶었거든. 에헤헤.”

그 둘이 이대로 알콩달콩모드에 돌입하나 싶던 그때, 리에라는 유일한이 뭔가 하나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네 장비는 안 만들어? 카오스 윌의 사체가 아직 절반 남았잖아.”

“그건 지금은 만들 필요가 없어. 나한테는 파염룡신이 있잖아.”

파염룡신을 구성하는 소재 역시 각 세상의 최고급 금속들만을 모아 합금한 것. 아마 6차 클래스의 육신에는 이겨낼 수 없겠지만 파염룡신의 강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5차 클래스 마석을 소모하고, 완벽한 무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는가.

파염룡신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완벽했다. 아티팩트로서의 조형도 구성도 너무나 완벽하여 앞으로도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나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 카오스 윌의 사체를 이용한다면, 여기에 다른 무엇인가를 ‘더해서’ 세트로 만들게 되겠지.”

“아하, 예전에 구상했던 바로 그 갑옷 말이구나.”

“응. 그러니까 아직 아냐.”

카오스 윌의 사체를 써서 새로운 파츠를 만들려면 5차 클래스 마석 정도는 소모해야 될 것이다. 만약 5차 클래스 마석이 더 생긴다면 유일한의 갑옷을 보충하기 전에 유미르가 입은 옷인 황금의 숨결을 강화해주어야 할 터, 아직 갈 길은 멀고도 먼 셈이다.

“이젠 악세서리를 만들어야지. 5차 클래스의 사체로 만드는 악세서리는 마나를 얼마나 빠르게 보충해줄 수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서브 클래스도 안 얻었구나.”

착용 가능한 악세서리의 숫자를 늘려주는 서브 클래스를 갖고 있던 팔라디아의 황녀를 떠올린 유일한은 그제야 서브 클래스에 의식이 가 닿았다.

그러나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처음에는 대장장이 계열의 서브 클래스를 원했던 그이거늘 대장장이 신의 축복을 받고, 마도공학을 깊숙이 익히게 되면서 굳이 대장장이 클래스를 얻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갓 등급의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확인조차 해보지 않은 거야?”

“메인 클래스를 얻고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 너도 그 원인 제공자 중 하나거든?”

“그래도 이젠 슬슬 얻어둬. 아무리 비전투적인 클래스라도 일단 얻어두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게 마련이니까.”

“그래, 그래야지.”

유일한은 자신의 망막 위로 지금의 자신이 선택 가능한 서브 클래스의 목록을 불러냈다. 이전부터 그랬듯이 수십 개도 넘는 숫자의 서브 클래스가 연달아, 줄지어서, 끝을 모르고 나타나 유일한의 망막을 테러했다.

“목수, 대장장이, 세공사, 직인, 상인, 요리사······.”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문자열의 나열. 유일한은 대충 그 중 아무거나 선택해도 괜찮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며 눈으로 글귀들을 훑었다. 어느덧 입으로는 한 단어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악세서리, 악세서리, 악세서리······.”

“아무거나는 개뿔, 완전히 하나만 노리고 있잖아!?”

“나도 마나 회복 속도 500% 한 번 찍어보고 싶단 말이야!”

자신의 능력이라면 그 정돈 가능할 텐데! 유일한은 빠르게 글귀들을 읽어 넘기며 황녀가 얻었을 법한 클래스를 찾아 헤맸다. 헤매다가, 기록의 맨 끝에 도달하여 찾아낸 클래스가 있었다.

[187. 차원 항해자]

“······이거 참.”

그것을 발견한 순간, 유일한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아카식 레코드를 욕했던 것은 취소해야 할 모양이다.

“발견했어, 일한아?”

“아니, 악세서리랑 관련된 건 아니야. 하지만······.”

그의 두 눈이 붉게 빛났다. 그는 벌써부터 저 너머의 일들을 생각하며 감정이 고양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엔딩이, 보였어.”

< Chapter 32. 지금 만나러 갑니다 - 3 > 끝

ⓒ 토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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