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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귀환자-263화 (258/360)

< Chapter 37. 내가 가는 곳마다 - 4 >

강미래가 유일한을 똑바로 보고 물어왔다.

“일한 씨는 어떻게 생각하죠? 하늘의 군단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은데,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힘을 빌려주는 관계에서는 탈피한 건가요?”

“그렇게 보면 되겠네요. 지금도, 굳이 미래 씨를 위험하게 만들면서까지 저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들의 대화에서 진하게 풍기는 절망의 냄새를 맡은 천사가 다급히 외쳤다.

[정말로 심각한 사태다! 하늘의 군단의 존망의 위기란 말이다! 대체 유일한 그대가 어째서 하늘의 군단에 적의를 품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파멸마군에게 세계의 일부라도 잡아먹힌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거야!]

“대충 봐도 미래 씨가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는 건 알겠지만······ 미래 씨의 힘이 너희들 싸움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그건 당연한 일이다!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는가, 나보다 더 많은 권위를 지닌 분이 직접 찾아오시려는 모양이다.]

천사의 머리 위로 떠오른 고리가 환한 빛을 토해내며 점멸하는 것을 보니 지금 한창 신호가 오가는 모양. 유일한은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가, 제도의 시민들이 빛의 기둥과 뒤이어 나타난 공중요새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단 자리를 옮기자.”

“그러죠. 그러면······.”

강미래가 손을 휘휘 젓자 방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마나의 기류가 고스란히 그녀에게로 회수되었다. 마치 무수한 별들이 은하수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와오.”

“정말 아름다운 마나구나. 나는 저렇게는 도저히 다룰 수가 없는데······.”

“미래 씨는 천재거든요. ······하지만 저건 진짜 대단한데.”

푸르게도, 검게도, 붉게도, 노랗게도 빛나는 무수한 마나의 알갱이들이 일부는 그녀의 몸에 흡수되고 일부는 그녀를 호위하듯 떠도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단 한 수만 가지고도 그녀는 여느 상위존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 것이다.

주위에 이런 대단한 이들만 있으니 상위존재가 상대적으로 하찮게 보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실제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천사도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이대로 이동하면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방 안에 대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폐하,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바로 떠나려고 할 줄 알았어.”

워낙 대단한 기운들이 많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방 안에는 여전히 제국의 황제 이르마 안 일르타가 머무르고 있었다. 방대한 마나의 폭주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듯 드레스 뒤에 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유일한은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이거, 가져가.”

“앗, 폐하?”

그녀는 유일한과 눈이 마주치자 한차례 쓴웃음을 짓고는, 손 안에 쥐고 있던 물건을 강미래를 향해 던졌다. 강미래는 자신의 주위를 떠도는 마나를 이용해 그것을 자신의 손에 안착시켰다.

“이건······?”

그것은 작은 함이었는데, 열어보니 한 쌍의 고급스러운 반지가 들어 있었다. 두 눈이 동그래진 강미래에게 황제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유일한 씨가 만드는 아티팩트에 비하면 조악하기 그지없겠지만······ 제국의 모든 정수가 담겨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비보야. 아티팩트 착용제한 여부에 관계없이 착용할 수 있는 거니까, 꼭 유일한 씨랑 하나씩 나눠 끼도록 해.”

“폐하······.”

그녀가 이것을 주는 의도를 모를 리가 없다. 강미래는 뺨을 발갛게 물들였고, 유일한의 탄식은 늘어만 갔다. 그녀는 함의 뚜껑을 닫고 품에 갈무리하며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래, 그런 작별인사를 기대했던 거라구. 우리,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후후, 그럼 됐어. 유일한 씨, 나머지 소동은 제가 정리할 테니 상위존재와의 일은 유일한 씨가 해결해주실래요?”

“그렇게 하죠.”

마냥 장난꾸러기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황제가 되더니 관록이 제법 붙은 모양이다. 유일한은 새삼스러운 부분에서 세월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만.”

유일한은 이르마 안 일르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초조해하고 있는 천사를 비롯한 일행을 천공성으로 안내했다. 천사는 천공성이 가까워져올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이 공중요새는······ 말도 안 돼, 이런 조잡한 재료를 가지고 여태껏 없었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지구인들에게 대관절 무엇이 있기에 역사를 뛰어넘는 일들이 자꾸 발생하는 것이지!?]

[조잡!? 레이디를 보고 조잡!?]

[결과적으로는 칭찬이니 너무 화내지 마라.]

오로치가 달래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스틱은 분노하며 온몸을 뒤틀었다. 헌드레드 아이즈를 발동하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잘 참았다고 칭찬해줄 수 있으리라. 천사는 성에 자아까지 깃든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기겁했으나,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날개를 접어 착륙하고는 유일한에게 짧게 고했다.

[이제 곧 오실 것이다.]

“천공성에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오는 모든 존재는 공격을 받게 되어 있으니까, 성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바깥에 나타나라고 전해줘.”

[······주의하도록 하지.]

천공성의 아티팩트가 상위존재에게도 충분히 유효한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 놈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 정보를 상부로 전달했다. 앞으로 곧 무수한 상위존재들의 사체로 천공성과 수호성이 다시 한 차례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물론 유일한은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오빠, 무사했구나.”

“미래 너야말로······ 너, 제법 달라졌구나.”

강하진은 강미래와 마주하며 놀랐다. 자신과 강미래에게는 분명 똑같은 시간이 흘렀을 터인데, 자신은 별로 변한 게 없고 동생은 그 사이 엄청나게 성숙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비단 그녀가 4차 클래스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눈빛이나 태도 등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역시 유일한 씨는 대단하군.”

“거기서 왜 또 제 얘기가 나오죠?”

반문을 하면서도 대충 그의 말에 담긴 뜻을 읽어내고 있는 유일한은 이미 반쯤 울상이었다.

나유나를 쳐낼 때에도 굉장히 힘들었는데, 강미래에게 거절 의사를 전해야 할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적은 유일한에게는 지금 상황이 이미 재앙이었다. 이런 분에 넘치는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오다니, 젠장!

“미래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

“우리 미르, 누나도 미르가 너무 보고 싶었어.”

“강미래, 제법 예뻐졌다?”

“리에라······ 당신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한편 천공성으로 들어와 일행과 만난 강미래는 본격적으로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천사는 그 광경을 보며 점점 더 낯빛이 안 좋아졌다. 강미래가 단순히 유일한과 엮인 것뿐만이 아니라 일행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천사의 고리가 반짝였다.

[앗, 오시려는 모양이다.]

[이 정도 기운이면 6차 클래스? 주인님, 요격 안 해도 되는 거지?]

“응, 임시 허가.”

천공성의 문이 열리고, 그 너머로부터 두 쌍의 날개를 달고 있는 여성형의 천사가 천천히 날아들어왔다. 유일한은 처음 만나는 이였지만 아무래도 리에라에게는 아닌 듯, 그녀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티타에라!”

[오랜만이네, 리에라. 아니,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니?]

“그대로야. 어쩜, 설마 네가 올 줄은 몰랐어!”

유일한은 리에라의 밝은 낯빛을 보며 마음속 경계도를 한 단계 낮추었다. 아무래도 하늘의 군단도 영 바보는 아닌 듯, 리에라와 좋은 관계에 있던 천사를 내보낸 모양이었다.

그녀는 리에라와 미소로 인사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이내 유일한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그리고 그쪽은······ 당신이 우리 쪽 천사를 두 명이나 빼내어 간 능력남 유일한이군요.]

“한 명 죽이기도 했어.”

[크흠······.]

티타에라의 낯빛이 한순간 어두워졌으나 곧 담담한 얼굴로 돌아왔다. 음, 역시 완벽한 인선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렇게 해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유일한과 강미래, 김예슬, 리에라, 에르타, 티타에라, 처음 강미래를 찾아왔던 5차 클래스의 천사 케두타까지 7명만이 그 자리에 앉았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티타에라가 강력한 선방을 날렸다.

[이번에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여태까지 하늘의 군단과 유일한 씨 사이에 일어났던 일은 모두 잊겠습니다.]

“그건 균형을 맞춘다는 핑계로 다른 상위존재집단과 결탁하여 지구를 내버린 일까지 잊겠다는 의미야?”

그 순간 강미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 했지만 김예슬이 차분한 미소와 함께 그녀를 다시 앉혔다. 리에라는 이미 이전에 그 사실을 들었음에도 새삼스레 충격을 받았는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것을 본 티타에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물론 그 의사결정에 제 판단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것은 하늘의 군단을 위해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으며 그 사실을 제가 알았더라고 해도 반대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 또한 하늘의 군단에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부정하진 않으시겠지요.]

“그래, 맞아.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야.”

유일한은 어이가 없어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그런 말뿐인 평화조약을 맺어봤자 대체 이쪽에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더욱이 미래 씨가······ 그래, 아무리 본인이 나를 위해 능력을 쓴다고 했어도, 우선은 능력의 소유자인 미래 씨한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제시하는 게 기본 아냐?”

[저희는 보상으로써 그녀를 하늘의 군단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만······.]

강미래의 눈이 슬프게 빛났다. 그녀를 호위하는 마나의 결정마저 빛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저는······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유일한, 당신과 관련된 존재는 높은 확률로 당신의 빛에 매료되니까요.]

“그런 인사치레는 됐어. 미래 씨의 힘을 빌리고 싶다고 말한 이상 평화조약은 기본적인 사항이겠지, 내놓을 수 있는 다른 걸 말해봐.”

“일한이 정말 멋져······.”

“넌 조용히 해.”

[리에라······.]

티타에라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리에라를 바라보았으나 리에라는 고개를 갸웃해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유일한을 설득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에선 유일한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티타에라는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깨닫고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합니다. 사실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혼돈의 벽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강미래의 힘뿐만 아니라 당신의 힘 또한 빌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보상을 조금 더 받아도 괜찮겠네. 우리 쪽 전력은 대충 알고 있지?”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정확히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바로 그 다음 순간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겨났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군요, 각 상위존재집단의 1할에 해당하는 전력을 갖추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세월 기록을 쌓아온 상위존재집단의 1할에 해당하는 전력이라, 그 정도면 실로 후한 평가였다. 유일한은 일행이 그 정도로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일행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힘을 생각해본다면 타격부대로 운용할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무엇을 원하죠? 아티팩트인가요? 제가 아는 가장 훌륭한 아티팩트 장인은 내 눈앞에 있는 당신입니다.]

“하지만 나도 영원의 모래시계 같은 것들을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거든. 일개 개인의 기록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서 탄생하는 아티팩트, 그런 것들은 아직 나한테는 무리야.”

[당신은 지금 갓 등급의 아티팩트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있긴 있구나?”

호오. 유일한의 입가가 히죽, 올라갔다. 그 기분 나쁜 미소와 마주한 티타에라는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자각했다. 그녀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려 애쓰며 말을 돌렸다.

[아니, 그런 물건은 주고 싶어도 더는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조건을······.]

“미스틱!”

물론 상위존재들과 제법 엮일 만큼 엮였던 유일한에게 그런 페이크는 통하지 않는다. 유일한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섰다.

“손님 가신단다. 문 열어드려라.”

[알았어, 주인님.]

천공성의 문이 재차 열렸다. 그와 함께 활성화되는 천공성의 마나! 제 발로 나가지 않는다면 움직이실 필요 없이 직접 지옥까지 보내드리는 천공성의 대출혈 배달 서비스가 개시되기 직전에,

[알겠습니다.]

대천사는 항복을 선언했다.

[갓 등급의 아티팩트를 드리겠습니다.]

유일한이 강미래를 돌아보며 물었다.

“갓 등급 아티팩트라는데 괜찮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네. 저는 하고 싶어요. 하늘의 군단이 세상들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강미래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유일한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티타에라와 마주했다. 그녀의 안색이 훨씬 밝아져 있었다.

[그러면 의뢰를 받아주신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안 되겠지만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되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내가 더 감사하지. 갓 등급 아티팩트 두 개, 고마워.”

[두······!?]

대천사의 경악한 얼굴을 보며 유일한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가락을 세 개 세웠다.

“그럼 세 개?”

[두 개! 두, 두 개!]

티타에라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한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일행은 그 광경을 보며 어째 천사가 더 불쌍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럼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설명해주실까?”

협상이 타결된 순간이었다.

< Chapter 37. 내가 가는 곳마다 - 4 > 끝

ⓒ 토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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