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7. 내가 가는 곳마다 - 7 >
“마나의 흔적이 너무나 많아요. 대체 그 중 어떤 것을 잡아 열어야 할지 지금은 알 수가 없는 걸요.”
[저희가 돕는다면 몇 번의 시도만으로 끝날 겁니다.]
“설령 알아낸다 하더라도, 그 게이트를 열기 위해선 우리가 혼돈의 벽 너머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을 위한 부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티타에라의 선언과 동시에 그 자리에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천사들. 유일한은 그 면면을 확인하고는 티타에라에게 따졌다.
“7차가 없잖아.”
[천사장은 그렇게 쉬이 움직일 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다.]
“그럼 너희는 이번 전쟁에서조차 그 천사장을 내보내지 않고 있단 얘기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저들도 7차 클래스를 내보내지 않고 있습니다만.]
유일한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고, 티타에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쟤네가 왜 저렇게 화났는지는 알 텐데? 너희 쪽에서 천사장이 나오지 않는 한 제아무리 내분을 조장한들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을걸?”
[천사장에게는 저마다의 역할과 임무가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강미래가 성공적으로 게이트를 연다면 전쟁은 충분히 진화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어마어마한 짓을 하는데 가만히 놔둘 리가 없잖아.”
유일한과 함께라면 처음 마법을 발동할 때까지는 은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광휘의 군단 본영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만들 때까지 몇 번이나 마법을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 강미래에게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곧 들키게 되어 있고, 당연히 적의 표적이 집중될 것이다.
[저희는 이번 일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강미래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미리 갓 등급의 아티팩트를 지급한 것도 저희로서는 굉장한 부담을 무릅쓴 겁니다!]
“그러니까 그 갓 등급의 아티팩트를 지금······ 이런, 젠장.”
안 되겠다, 말이 안 통한다. 유일한은 골치가 아파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 바보들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더라면 보상에만 치중하지 말고 세부적인 협조 사항도 조정할걸!
그러나 이것도 자신의 실수였다. 이제와 누구에게 따질 것인가? 포기가 늦어지면 구질구질해질 뿐, 유일한은 하늘의 군단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접고는 선언했다.
“이렇게 된 이상 두 패로 나뉘는 수밖에. 천사, 너희들은 없는 걸로 생각하고 움직일 거야.”
[······?]
티타에라를 비롯한 천사들이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벙쪘지만 리에라만은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바로 파악했다.
“일한아, 너 지금 강미래가 마법을 발동하는 동안 네가 나서서 시선을 끌겠다는 거야?”
“괜찮아, 이미 어지간한 기록은 모아둔 상태니까. 6차 클래스까지라면 만만해.”
“너······ 너무 멋져.”
“네가 그 말 할 줄 알았다.”
그와 리에라의 대화가 오간 후에야 그가 무슨 짓을 벌일 작정인지 깨달은 천사들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내저었다.
6차 클래스조차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전장에 대체 무슨 배짱으로 뛰어들겠다는 것인가? 또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정신이 나갔을 줄은 몰랐다.
“일한 씨, 안 돼요!”
한편 아직까지 유일한의 무력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강미래는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혼돈의 벽 너머, 무수하게 산란하는 끔찍한 마나의 파편과 고위의 마법, 에너지의 향연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갓 등급의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더라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데!
“저런데 떨어졌다간 죽고 말 거예요! 이건 저한테 온 의뢰니까 일한 씨가 그렇게 부담을 질 필요는 없어요!”
“안 죽어요. 그리고 이건 우리가 같이 하는 의뢰죠. 자꾸 그렇게 외톨이로 만들면 삐질 거예요.”
유일한의 장난스러운 대꾸에 강미래는 그만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때 나유나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앞으로 나섰다.
“괜찮아, 미래야. 일한 씨는 절대 안 죽으니까아. 아, 저는 데려갈 거죠오?”
“아뇨. 유나 씨는 천공성에 꼼짝 말고 박혀 있어요.”
“체에엣, 꼭 이럴 때만 빼놓지. 나두 상위존재 될 때는 전투성녀 같은 거 할 거예요!”
“대신 리에라, 에르타만 나를 도와줘. 유나 씨는 우리 셋한테 미리 축복 걸어줘요.”
“아빠, 나두!”
천사들이 어버버거리는 가운데 번갯불에 팝콘 튀겨먹듯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돌격대 파티가 추려지고, 추가 지원자가 나오고!
그러나 유일한은 유미르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미르 네게는 아주 중요한 임무가 있어. 너를 포함한 천공성이 혼돈의 벽 너머로 넘어가서 첫 번째 마법을 개시하는 순간까지 전부 은신시키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어?”
“으음······ 응!”
“좋아. 네가 누나들이랑 할머니를 지키는 거야.”
“알겠어!”
[이 넓은 범위를 전부 은신의 영역 안에 두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에잇.”
유미르가 스킬을 발동하며 타이틀의 힘을 최대한으로 펼쳐내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시간으로 일어났다. 천사들은 태클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 정돈 유일한 일행과 접촉한 이들이 으레 겪는 통과의례나 마찬가지였다.
[자, 잠깐! 정말로 갈 거라면 그 전에 저희에게 축복을 받고 가시죠. 아무리 그래도 하위존재의 축복보다는 저희가 주는 쪽이 더 좋을 겁니다!]
“아니, 미안하지만 우리 사제가 최고야.”
“에헴.”
나유나가 천사들에게 윙크를 하며 한 걸음 나서 유일한과 리에라, 에르타에게 축복을 걸었다. 4차 클래스가 되고 280레벨에 근접하면서 정말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존재가 맞을까 의심이 갈 만큼 아름답게 성장한 그녀는, 그 미모를 고스란히 축복의 힘으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미의 여신 레이트나의 사제!
[세 시간 동안 모든 능력이 43% 증가합니다. 절대 치명타에 당하지 않게 되며, 죽음 직전 단 한 번에 한해 적의 공격을 무조건 피할 수 있습니다. 회복력이 300% 증가합니다.]
[······.]
가뜩이나 무시무시한 전력을 지닌 셋의 힘이 일제히 증폭되는 것을 느낀 티타에라는 끝내 사고를 정지했다. 어쩌면 하늘의 군단으로 영입해야 하는 인재는 누구도 아닌 나유나가 아닐까? 물론 그 소망이 이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다녀와요, 일한 씨!”
“우린 별일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쪽에도 별일 없을 거고.”
유일한은 강미래와 나유나에게 한 번씩 시선을 주고, 이어서 천공성의 대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천공성에 ‘그녀’가 머무르는 한 감히 그 누구도 그의 일행에게 손을 댈 수 없을 것이다.
“위험하다 싶으면 알아서 나설 거예요.”
“믿을게요.”
[뭐죠? 뭐가 나선다는 겁니까?]
그러나 유일한은 티타에라의 의문을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자신과 리에라, 에르타에게 은신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그들과 함께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혼돈의 벽으로 다가갈수록 그들의 눈을 혼란케 하는 상위존재들의 격돌! 그것을 보며 문득 떠올린 것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면 대우주 절단 창술을 아직 안 익히고 있었구나.”
“그걸 이제 떠올리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하다. 그래서? 익힐 거야?”
“응, 익히려고 해.”
사실 유일한은 그려지지 않는 궤적의 창술의 중첩을 통해 보다 높은 경지의 창술을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우주 절단 창술이 더해진다면 어떨까. 두 가지의 상위 단계 창술이 베이스가 되어 완성되는 창술이라!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걸······.”
“상위 등급 동종 무술의 합성 진화라니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만······ 유일한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 무섭네요.”
유일한은 허공을 나는 도중 인벤토리를 뒤졌다. 상위존재의 사체라면 이제 차고 넘치게 있고, 그는 그 중 아무 놈이나 뒤져 5차 클래스 마석을 뽑아내어 곧장 스킬의 합성 진화를 실시했다.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며 유일한을 감싸고, 그의 영육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스피에라가 6차 클래스에 이르며 간신히 이르렀던 영역에 끝내 그가 도달한 것이다.
[대우주 절단 창술을 익혔습니다.]
“스피에라는 유일한이 자신의 기술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한다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일한이가 대우주 절단 창술을 베이스로 상위 창술을 만들어낸다면 더 좋아할걸?”
“자, 그러면 우선 한 방 간다.”
마침 여럿의 상위존재를 상대하던 천사가 뒤로 물러서며 순식간에 십여 명의 상위존재가 그 뒤를 쫓는 상황! 유일한의 창이 먹잇감을 포착한 호랑이처럼 날렵하게 쏘아내졌다.
공격 방향을 정하는 왼손, 창대를 단단히 붙잡은 오른손. 창날이 오른쪽 아래에서부터 왼쪽 위까지를 잇는 사선을 그려낸다. 검의 날카로움, 채찍의 속도, 둔기의 무게가 한계를 뛰어넘은 육신의 통제력에 의해 창 한 줄기에 담긴 그 순간.
미증유의 기운이 공간을 일자로 긋고, 그 궤적 안의 모든 것을 반으로 토막 냈다.
[크리티컬 히트!]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대우주 절단 창술 스킬의 레벨이 8이 되었습니다.]
“어라.”
유일한은 상위존재들의 사체를 인벤토리로 받아들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에 다 죽이는 바람에 은신이 안 풀렸다.”
“괜찮아, 그래도 제법 많은 놈들이 눈치 챈 것 같으니까.”
유일한은 다시 한차례 대우주 절단 창술을 펼쳤으나 사신 스킬로 인해 위력이 강화되는 바람에 오히려 더욱 많은 숫자의 상위존재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제아무리 상위존재들이 벌떼처럼 몰려든 전장이라고 해도 적의 모습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수십의 상위존재가 죽어나가는 것은 범상치 않은 일. 전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체 뭐지?]
[내 바로 옆을 지나갔다. 분명히 느꼈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자가 있어!]
[천사가 빠지는 순간 이루어진 공격이다. 천사장! 천사장이 모습을 드러낸 건가!?]
아무리 효과적으로 어그로를 끈들 적들이 몰려들지 않으니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 유일한은 한숨을 쉬며 인벤토리에서 브레스를 꺼내어 입을 물었다. 그래도 며칠 동안 제법 만들어둔 덕에 이번 전쟁에서 사용할 분량은 충족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는 창을 있는 힘껏 쥐며 혼돈의 벽에 크게 뚫린 구멍 너머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리에라와 에르타가 자신을 따라잡은 순간, 창끝에 피어오른 백염을 사방으로 퍼트리며 외쳤다!
“폴링다운!”
혼이 깃든 백염이 삽시간에 증폭되며 일대를 물들였다. 유일한이 유지하고 있던 은신이 깨지며 셋의 모습이 그 광활한 공간에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공개되었다.
[이 마나는······.]
[유일한, 유일한이잖아!]
[그가 이곳에 오다니!]
[대체 어떻게!? 아니······ 설마 하늘의 군단에 소속된 것인가!]
[그럴 리가, 그는 아직 하위존재에 불과해!]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유일한의 폴링다운 영역 내에 들어온 모든 상위존재의 격이 일시에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구텐 모르겐이다, 이 개자식들아!”
유일한은 그 위력을 조금 낮추어 마나 소모를 줄인 대우주 절단 창술을, 그려지지 않는 궤적의 창술의 힘을 이용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쏘아냈다. 유일한을 중심으로 하여 행성이 폭발하는 것만 같은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상위존재들을 덮쳤다. 속도와 강함에서 극한에 달한 참격이 마주하는 모든 것을 찢어발겼다.
[크리티컬 히트!]
[크리티컬 히트!]
[크리티컬······.]
[경험치······.]
“맙소사, 이게 뭐야······.”
리에라는 상위 창술이 겹쳐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목도하며 말을 잃었다. 그녀를 대신하여 에르타가 유일한에게 물었다.
“이게 바로 두 개 창술을 합성진화시키면 볼 수 있게 되는 광경입니까?”
“아니.”
유일한은 가볍게 대꾸하며 죽어나간 상위존재들의 사체를 회수했다. 그 숫자는 정확히 백하고도 스물하나. 이 정도라면 전장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잡아당기기에 충분하리라!
“이건 아직 시작도 안 한 건데?”
[놈은······ 유일한이다!]
[유일한이 이곳에 왔다고!?]
[죽여! 놈을 죽여!]
[헬리에나의 원수······ 네놈을 죽이겠다!]
본격적으로 자신에게 쏠리기 시작하는 적의, 살의. 유일한은 그것을 느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수확을 앞둔 황금빛 논을 훑는 농부의 모습과 비슷해보였다면 착각일까?
리에라는 한숨을 쉬며 창을 들었다. 이미 전장의 흐름은 바뀌었다.
지금부터는 유일한이 주도하는 전쟁이었다.
< Chapter 37. 내가 가는 곳마다 - 7 > 끝
ⓒ 토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