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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귀환자-342화 (337/360)

< Chapter 46. 유일신 - 2 >

결계가 깨어졌다. 천공성과 수호성을 품은 공중도시는 순식간에 지구의 상공으로 떠올랐고, 대지에 남은 사람들은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음을 인지하면서도 하염없이 상승하는 도시를 올려다보았다. 그 아래에서 유니가 팔짝팔짝 뛰며 외치고 있었다.

“나중에 크면 대부님하고 결혼할래! 그러니까 무사히 다녀와야 해! 얼굴 다치면 안 돼!”

“꿈 깨렴, 꼬맹아!”

유일한을 노리는 자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응징하는 리에라가 단호하게 외쳤다. 애 상대로 대체 뭐하는 짓인가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유일한은 곧장 워프 스킬을 발동했다.

[지구를 노리는 모든 자를 제거하고 돌아와라, 지배자여.]

혼돈에서 태어나 수호자가 되었으며 끝내 지구 그 자체로 거듭난 이가 유일한에게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일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안심 붙들어 매고 있어.”

차원의 지배자 스킬은 진즉 마스터했다. 지켜야 할 세상이 하나로 통합된 까닭에, 지구를 향해 펼쳐진 방어막 또한 아주 굳건했다. 모든 지구인이 지구로 돌아오는 것을 몇 시간이나마 막고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그래서였다.

“그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지. 아직 지구가 완성이 된 것도 아니고.”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았다구요!?”

에르타가 경악하여 외쳤다. 유일한은 자신이 디디고 서 있는 대지를 툭툭 두드려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잖아, 결국 이 도시도 지구랑 합쳐야 한다고.”

“그러고 보니 이 도시는 지금 정확히 어떤 상태인 거죠? 지구의 일부라는 느낌은 드는데.”

“지구의 일부이면서도 독립된 하나의 소세계라고도 할 수 있지. 요는 인식의 문제야.”

유일한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듣는 이는 하나도 없었으나, 유일한이 이것을 이용해 또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만은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행이 그것을 자세히 추궁하기 전 완벽한 타이밍에 워프 스킬이 발동했다.

그간 유일한은 당연하다는 듯이 워프 스킬을 마스터했기 때문에, 일행은 뭔가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이 곧장 지구로부터 나락으로 이동되고 말았다. 다들 주위 환경에 시선이 팔리고 말았기에 그에게 공중도시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캐물을 수도 없게 되었다.

“나락이야!”

“나락이네!”

“전 나락에 직접 들어와 보는 건 처음이에요.”

한없이 어두워 어딘가 불안함마저 느껴지는 세계. 하늘에서 추락한 사탄이 당도한 세계이며 그의 근본이 깃들어 있는 세상, 다름 아닌 나락이었다.

“이 세상에······ 그래서 지금 사탄이 없다는 말이니?”

김예슬의 물음에 유일한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은 아마 다른 곳일 거야. 사탄과 신이 편을 먹었다고 했으니 아마 신 쪽으로 가 있지 않을까.”

“그 세상은······.”

“아직은 알 수 없지. 하지만 기록되어 있지 않은 세상이라거나 하는 터무니없는 일은 없어. 하늘의 신에게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거든. 그러니 그 정보를 이곳에서 보다 자세히 알아가려고 해.”

“로드, 가능하다면 빨리 가브리엘을······.”

대체 10년이 지나갈 때까지 어떻게 참은 것일까 의아할 정도로 초조해하며 가브리엘을 찾는 우리엘. 유일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 정도 되면 말을 하는 동안에도 하려던 일을 다 할 수 있거든. 지금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 세상의 기록을 파악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는 무사할 거고, 우리는 아빠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네가 아빠를 얻진 못하겠지만.”

우리엘이 시무룩해하건 말건 유일한은 계속해서 나락을 탐색했다. 광휘의 군단의 본영답게 나락은 실로 거대했으며 소름끼치는 마나 밀도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상한 것은 그 안에 단 한 명의 타천사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깨끗할 수 있지?”

“광휘의 군단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나락인데, 비록 사탄 본인이 일이 있어 나갔다고는 해도 어떻게 본영을 비워둘 수가 있는 거지? 사탄이 이렇게 생각이 없는 자였나?”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비록 기록된 신과 아크 레그나의 연결점을 알아낸 덕분에 사탄이 유일한의 예상을 넘어서는 꿍꿍이를 지닌 라스트 보스였을 가능성은 날아갔지만, 유일한은 그래도 한 집단을 이끄는 남자가, 그것도 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최초로 알아냈던 남자가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장소라면 지키고 있었겠지. 그런데 안 지키고 있잖아. 중요한 장소가 아니라는 얘기지.”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본영이 어떻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유일한은 답했다.

“더 이상 본영이 있을 의미가 없다면 그럴 수 있지.”

“본영이 있을 의미가······ 없다고······?”

방금 한 집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게 본영이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바로 그것을 부정해버리다니. 그것도 집단의 수장이라는 자가!

이해를 못하는 이들을 향해 유일한은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놈이 신한테 붙었다면서. 세상을 새로이 만들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나락도 지우지 않겠어?”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사탄의 힘이······.”

“그 수장을 어떻게든 하기 전까지는 본영을 완벽하게 지울 수 없으니, 정확히는 사탄의 동의하에 신이 나락을 지우게 되겠지. 스스로 약화를 자처하는 셈이라고 봐야겠네.”

“그렇다면 정말 사탄이 순수하게 신을 믿고 그 편에 섰다는 거야······?”

그거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 아닌가! 그러나 유일한은 그들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지킴이가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네. 더구나 나를 인식하고 있기까지 해.”

“어디에 있는데?”

“세상 한가운데. 지금부터 거기로 갈 거야.”

유일한의 마음이 그곳으로 향하자 그의 마음을 전달받은 공중도시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프 스킬까지 가미되는 바람에 도시의 이동속도가 터무니없이 빨라졌지만 일행은 조금의 흔들림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주위 환경이 휙휙 바뀌는 것을 보며 감탄할 따름이었다.

“아, 이젠 나도 느껴져. 굉장한 기운인데.”

“과거라면 두려워했을 기운이군요······.”

에르타가 막연히 중얼거렸다. 반대로 말한다면 지금은 전혀 두렵지가 않다는 뜻이니, 과연 그동안 유일한과 함께 겪어온 나날이 얼마나 농밀했는지 자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눈 한 번 깜박할 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 공중도시는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다. 그것은 실로 거대한 궁전이었는데, 궁전의 동그란 지붕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이가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그곳에 있던 것은 검은 생머리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기본적으로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비단 드레스를 전신에 두르고, 검은 비단 장갑까지 끼고 있어 고풍스러운 행색의 아름다운 아가씨. 그러나 그 등 뒤로 날카롭게 뻗어난 여덟 장의 날개가 그녀가 지닌 힘을 가늠케 했다.

“라지에르, 넌 여자였구나.”

유일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여자의 정체가 광휘의 1익이라는 말에 대부분의 일행은 순간적으로 움찔했으나 정작 그의 말을 듣는 본인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광휘의 1익 라지에르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용의 둥지의 수장 유일한님이시군요.]

“맞아.”

라지에르는 감히 무례해 보일까 저어된다는 듯 아주 조심스러운 눈으로 유일한을 바라보았다. 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존댓말을 해오는 시점에서 예상하기는 했으나 상당히 정중한 녀석이었다.

[원래 빠르게 강해지신 분이라고는 들었습니다만, 설마 거기서 더 강해지실 줄은 몰랐습니다. 8차 클래스에 이른 제 능력으로도 가히 그 힘을 측정하기 어려우니······ 저의 주군이라면 좋은 상대가 되어드리겠군요.]

유일한은 지금 이곳에 이르기까지 파악한 나락의 힘으로 미루어 사탄의 힘을 짐작해보고는 이내 사탄이 지금보다 다섯 배 정도 강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가 틀리면 쪽팔리기 때문에 굳이 입 밖에는 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제가 아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사탄은 정말로 나의 적이야?”

세상이 멈추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경악하며 유일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여태까지 실컷 증오를 불태우면서 사탄을 쳐죽일 준비를 해왔잖아!”

“자기 전 세 번씩 사탄의 이름을 외치며 짚 인형에 못을 박았잖아요!?”

“사탄을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고 다짐했었잖아요오!”

“빈집털이를 할 거라면서 좋아했잖아!”

“중간에 들어간 날조랑 보이즈러브 망상 지워라.”

유일한은 담담하게 오류를 수정했다. 그의 시선은 라지에르에게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제법 귀여웠다. 그가 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어때?”

[사탄께서 당신이 초월자가 되기까지 지켜주셨기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애석하지만 사탄은 분명한 당신의 적입니다. 아직 초월자가 되지 않았다면 모르겠으나 당신은 이미 완성되었죠.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제빵사는 있어도······.]

“그래그래, 다 구워진 빵을 그냥 장식하고 바라보며 만족할 제빵사는 없다 이거지. 알아, 그 얘기는 전에 이미 한 번 들었거든.”

[납득해주셨습니까?]

유일한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어떤 의미로는.”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라지에르가 천천히 일어섰다.

[제가 당신에게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당신을 막아내겠습니다. 그때쯤엔 사탄께서 귀환하시어, 친히 당신의 목을 쳐 없애버리실 겁니다.]

“아니, 나는 너랑 안 싸울 건데.”

[······예?]

“흐.”

유일한이 가볍게 기합을 주며 손을 뻗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라지에르는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분명한 광휘의 군단의 영역에서, 사탄 다음으로 세상의 지원을 많이 받고 있는 8차 클래스의 군단장을 단번에 제압해버린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제아무리 집단의 수장이라도, 제아무리 초월자라도 나를 이렇게 간단히는······.]

“내 능력이 부족했을 땐 적을 모두 죽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어. 난 소설이나 만화에서 주인공이 적을 살려주거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해서 봉변을 당하는 꼴을 볼 때마다 아주 그냥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거든. 어째서 후환을 남겨두는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 가끔은 그냥 악역의 편을 들고 싶어지는 소설마저 있었지.”

“그건 일한이 너도 악역이니까 그런 거 아냐?”

“시끄러. 그래서 나는 적은 일단 죽이고 본다는 컨셉을 유지해왔거든. 그런데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까······ 음, 조금 짜증나는 일도 많았어.”

적인지 아닌지 애매한 놈도 그냥 다 죽여 버리기도 했고, 적이지만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었던 놈도 다 죽여 버리기도 했고, 좌우지간 미래의 부정적인 가능성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미래의 긍정적인 가능성마저 한꺼번에 다 없애온 것이다.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은 생존하기 위해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저를 바로 죽인다고 해도 저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적이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물론 전혀 후회가 되지 않는 살생도 있었지. 개새끼, 진짜 죽이고 싶었던 새끼, 꼭 죽여야만 했던 새끼, 죽이지 않아선 안 될 새끼······. 그런데 여태 내가 저지른 살생이 모두 그렇지는 않았을 거 아냐. 단지 뒤가 찝찝하다는 이유로 죽인 이들이 너무 많아. 그렇다면.”

[그렇다면?]

유일한이 상쾌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미래의 부정적인 가능성을 모두 없앨 수 있다면, 그렇게 찝찝한 살생은 굳이 할 필요가 없어지는 셈 아닐까?”

[······설마 지금, 당신은 저를 죽이지 않겠다고 하는 겁니까?]

라지에르가 경악하며 반문했다. 놀랍게도 유일한은 그것에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맞아. 특히 지금 너처럼 나를 딱히 미워하는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끌다 죽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 녀석들은 진짜 죽이기 싫거든. 괜히 시나리오대로 놀아나는 것 같아서 더더욱.”

[저를 살려두면 반드시 후회하실······.]

“안 해. 방금 말했잖아. 부정적인 가능성을 모두 없앨 거라고.”

유일한이 품에서 자그마한 큐브를 하나 꺼내어 들었다. 라지에르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유일한은 담백한 어조로 답했다.

“이건 재생의 덫이라고 해.”

< Chapter 46. 유일신 - 2 > 끝

ⓒ 토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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