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입 사냥(1)
끼에엑-
띠링-
[소환을 해제합니다.]
옆에서 시끄럽게 울부짖던 에뮤가 빛무리로 사라지며 고삐로 빨려 들어온다.
우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을 지는 하늘 위로 한줄기의 빛기둥이 솟아있다.
바이올렛 우림의 포식자인 자이언트 데스 트리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단 의미였다.
띠링-
[자이언트 데스 트리 수색을 종료합니다.]
이제는 필요 없는 수색시스템을 종료한 뒤 주변을 둘러본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사람의 표정이 박힌 나무. 보랏빛 대지.
그르르르-
파란 피부를 가진 오우거 무리까지.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특징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는 장소였다.
그를 증명하듯 큰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민주희씨 어디 계세요!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이곳까지 본 플레이어는 총 5명.
하나같이 신입 용사를 애타게 찾으며 이 일대를 휘젓고 다녔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은데.’
탈것의 퀄리티로 보나 착용한 갑옷으로 보나 레벨 100대의 용사들로 판단됐다.
원래라면 신입 사냥은 어중간한 녀석들의 전유물이다.
시스템을 거스르고 동족인 용사를 사냥한다는 행위 자체만으로 악행이 쌓이며, 최악의 경우 현상금이 붙어 같은 용사에게 사냥당할 위험이 생겼으니까.
그런데 상급 용사가 직접 나서서 신입 용사를 사냥한다?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었다.
신입 용사를 발굴하기 위해서 찾아온 길드 소속 용사. 혹은 이미 악행 수치가 충만해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타락 용사.
둘 중 누가 됐든 우빈에게 있어 경쟁자일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들보다 빠르게 신입 용사를 찾을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 다른 용사와 대립하는 상황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성장을 이뤄냈고, 즉사급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한들 용사를 상대하기엔 껄끄러웠다.
띠링-
[경매장을 활성화합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스킬 카드]
초급 검술/F/LV.1/판매가: 500룬
초급 무투/F/LV.1/판매가: 200룬
기초 스탭/F/LV.1/판매가: 600룬
중급 그래플링/E/LV.1/판매가: 1,700룬
상급 무투/D/LV.1/판매가: 2,200룬
........
.....
....
.
우빈은 스킬 카드를 구경하다 하나의 스킬 카드를 구매했다.
띠링-
[상급 무투를 구매하였습니다.]
[상급 무투]
종류: 스킬 카드
등급: D
레벨: 1
형태: 패시브
효과
-숙련된 무투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구사율이 증가합니다.)
D급 스킬 카드임에도 다른 E급 카드와 비슷한 가격의 쓰레기 카드였다. 원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투라하면 엘리드에 존재하는 모든 무술을 통틀어 가장 쓸모없는 기술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우빈에겐 나름 쓸만해 보였다.
[스킬 슬롯]
1. [스킬 카드: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
2. [스킬 카드: 대지진]
3. [-]
우빈은 스킬 슬롯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원래 6칸이었는데.’
엘리드의 스킬 시스템은 독특했다.
스킬 카드를 슬롯에 장착하여 사용하는 방식.
언제든 꼈다 뺐다 할 수 있지만, 스킬 슬롯의 개수는 중요했다. 크로노스 던전에 갇히기 전엔 총 6개의 슬롯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고작 3칸뿐이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또 구하는 수밖에.
띠링-
[스킬 카드: 상급 무투를 세 번째 슬롯에 장착하였습니다.]
미약한 빛이 전신을 뒤덮는다. 묘한 기분이었다.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몸에 깃든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후웅-
가볍게 왼쪽 주먹을 뻗는다. 어색함이 사라졌다. 스텝을 밟으며 라이트 훅에 이은 레프트 어퍼.
프로 킥복싱 선수가 된 듯한 감각이다.
실전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레벨 좀 올리고 올까.’
원래라면 이런 패시브 스킬은 수년의 시간이 걸려야만 레벨 10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 산 스킬 카드는 D급이니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3년은 걸릴 터.
하지만 우빈에겐 아니었다.
MP도 가득 찼겠다. 크로노스의 작업실로 들어가 주먹질 몇 번과 발구르기 1번이면 대지진과 상급 무투의 레벨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우빈은 마음을 정한 듯 손바닥을 펼쳤고, 문을 생성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꺄악”
수풀 너머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가 싶더니. 한 여성의 바닥에 고꾸라졌다.
깔끔한 오피스룩, 세련된 목걸이와 반지.
특히 손에 들린 네모난 스마트폰은 저 여자가 엘리드에 막 전이 된 신입 용사라는 신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찾았다.’
경쟁자가 많아 선점하는 게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좋게 흘러갔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여자의 행색이었다.
“흑···흑···”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흐느낀다. 온몸은 먼지투성이, 무릎과 손바닥은 까져 피가 줄줄 흐른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흠칫!
여성이 우빈을 보더니,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부스럭-
여성의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난다.
“도망가도 소용없다니까?”
휘황찬란한 황금빛 갑옷. 전신으로 피어오르는 금빛 광체.
딱 봐도 엘리드에서 몇 년은 구른 듯한 놈이었다.
“뭐야? 한 마리 더 있었어? 잘됐네. 안 그래도 이 새끼 파밍 못한 게 아쉬웠는데.”
녀석이 섬뜩하게 웃으며 무언갈 집어던진다.
철벅-
비명을 지르며 절명한 사내의 머리였다.
“꿈일 거야··· 꿈일 거야···”
여성은 패닉에 빠진 듯 양손으로 귀를 막곤,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씨발, 정신병 걸리겠네. 안 닥쳐!”
빡!
황금빛 갑옷의 사내가 여자의 머리를 후려친다.
여성이 힘 잃은 인형처럼 바닥에 처박힌다. 충격이 제법 컸는지 미동조차 없다.
“씨발, 기절했네. 아 귀찮게. 일단 너부터 하자. 일로 와서 꿇어.”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우빈에게 명령한다.
우빈은 그 용사를 가는 눈으로 응시했다.
[이무성]
놈의 머리 위로 붉은 글귀의 이름이 보인다.
‘수배자···.’
저 표시는 선악 수치가 일정 수치로 내려가 수배에 오른 용사에게 부여된 페널티였다.
‘비탈 3세트에 노악세라.’
우빈은 빠르게 녀석의 템 세팅을 확인하곤 확신했다.
‘좃밥이잖아.’
비탈의 사원은 당장 레벨 40만 찍어도 돌 수 있는 하급 던전이다. 그런 던전의 아이템도 고작 3개밖에 없다.
아무리 상대의 레벨을 높게 평가해줘도 레벨 50대 언저리.
엘리드에 적응 못 한 병신 혹은 이제 막 1~2년 정도 엘리드에 굴러먹은 초짜란 소리이다.
하지만 저 녀석의 행실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용사를 찾아 아이템을 강탈하는 것을 물론, 목숨까지 빼앗는 강약약강의 표본이지 않은가.
‘뭐 나도 비슷한가.’
우빈 역시 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혐오감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저 기쁠 뿐이었다.
‘저 녀석은 뭘 가지고 있으려나.’
신입 용사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보단 기대치보다는 낮았지만, 그래도 파밍할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니까.
“씨발, 내 말 안 들려? 이 새끼가.”
우빈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귀를 쳐 못 알아들으면 맞아야지!”
후웅-
황금 갑옷의 용사는 우빈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허술하게 올린 팔이 가로로 내려가며 호선을 그린다.
제대로 된 검술 스킬 하나 없는 걸까.
‘50도 너무 높게 쳐줬네.’
레벨 50이라는 예상이 과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조잡한 몸놀림이다. 거기다 기량 수치 또한 낮은지, 슬로우 비디오를 재생한 듯 모든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다.
그대로 머리를 날릴까? 아니면 그냥 피해?
잠깐의 고민 끝에 우빈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일단 제압만 하자.’
다짜고짜 협박하며 공격해오는 상대를 살려둘 정도로 우빈은 무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선 진행해야 할 절차가 있었다.
‘이럴 때 보면 현태 특성이 부럽단 말이야.’
플레이어가 가진 아이템은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정현태의 특성은 그 법칙을 부술 수 있었다.
사용하는 것만으로 상대의 아이템을 랜덤하게 훔쳐 오는 효과를 가진 것이다.
마비에 걸려 아이템을 뜯기던 그 기분은 지금도 울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짜증 났지만, 유용 특성인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특성만 있었다면 귀찮게 적을 살려둬 고문할 이유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캉!!!
그렇게 우빈은 사내를 가볍게 제압하기 위해 휘두른 검을 가격했다.
띠링-
[강연의 펜던트가 176의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주먹을 타고 알싸한 충격이 흘러나오자 볼 수 있었다.
쩡!!!!
놈의 칼이 그대로 폭발하듯, 사라지며 퍼억- 녀석의 상체가 그대로 터지는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