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입 사냥(3)
흠짓!
여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엉덩이를 뒤로 쓸며 우빈과 거리를 둔다.
“누, 누구세요.”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다. 하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기억 안 나요? 저 사람한테 죽을 뻔한 거···”
우빈은 대략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검지를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검지 끝엔 목만 남은 사내와 상체가 터져 하체만 남은 시체 한 구가 있었다.
여성은 그 광경에 깜짝 놀라더니, 헛구역질해댄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인상을 찡그린다.
“도와준다더니,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혐오감 가득한 표정으로 우빈을 쏘아본다.
아무래도 우빈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목숨을 구해줬다는 명목으로 호감을 살 작정이었는데.
우빈은 한숨을 푹 내쉰 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설명을 한다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설득하는 번거로움은 사절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압박하기보다는 상대의 불리함을 이용한 것이 좋았다.
저 여자의 약점은 고립, 무지, 두려움.
“기껏 구해줬더니, 뭐야. 이래서 도와주면 안 된다니까.”
우빈은 약간의 힌트를 남기곤 망설임 없이 수풀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남은 여인은 멀어져가는 우빈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네? 도, 도와줘?”
괴한으로 생각하던 인물이 순순히 멀어지자, 여자의 사고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황금빛 하의 갑옷과 신발이 눈에 띄어 몰랐는데, 자신을 공격한 괴한과는 뭔가가 달랐다.
자신을 구타하고 동료를 죽인 사내는 50대가 넘는 아저씨였지만, 저 사내는 아니었다. 아무리 높게 봐도 30대 초중반의 외모. 그렇다면 저 남자는 누구일까.
“아.”
여자는 떠올렸다.
살인자로부터 도망치던 와중 숲속에서 마주친 의문의 남성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살인자의 동료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곁에 머물러있었다. 몸에 별다른 이상 점도 없고.
나를 구해줬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붙잡아야만 했다.
“잠, 잠시만요!”
복잡하던 상황을 빠르게 정리한 여인은 다급히 우빈을 향해 뛰어갔다.
“제가 착각했나 봐요. 죄송해요. 도와주신 줄도 모르고.”
여자는 연신 고개를 꾸벅거린다.
“정말 죄송합니다.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여자는 우빈의 손을 꼭 붙잡곤 부탁을 해왔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게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이다.
“저 말고도 조난자가 3명 더 있어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꼭 도움이 필요해요.”
우빈은 그 말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눌렀다.
파밍할 대상이 3명이나 더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었지만 확실하게 해둘 필요성이 있었다.
“제가 왜 도와야 하죠?”
“네? 그··· 그건.”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던 여자는 다급히 입을 뗐다.
“도와주신다면 꼭 답례하겠습니다.”
“뭘 주실 건데요?”
“돈이 필요하시면 원하시는 대로 맞춰 드릴게요.”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후불은 안 받아요.”
“네?”
“그, 그럼 뭘···”
우빈이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여자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얼굴을 붉히며 가슴을 가린다.
아무래도 우빈의 의도를 다르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표정이 경멸로 바뀌더니 공격적으로 답한다.
“사, 사람 잘못 보셨어요! 시대가 어느 때인데. 성상납을···”
“쓸모없는 그딴 거 말고요. 커뮤니티에 글까지 올린 수준이면 시스템을 대충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쓸, 쓸모없는 그딴 거···”
“보상을 말한 겁니다.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보상.”
여자는 우빈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물음에 답하기 시작한다.
“인벤토리요? 저는 잘 몰라요. 커뮤니티도 같이 있던 남자분들이 게임이랑 비슷하다고 이것저것 알려줘서 올리긴 했는데. 제가 게임을 많이 안 해봐서.”
여자의 표정에 절망이 쌓인다. 분위기가 완벽하게 넘어왔다.
“하아··· 알겠습니다. 우선,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여자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시스템 사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용하고 싶은 시스템을 입으로 내뱉거나 마음속으로 떠올리면 눈앞에 나타날 거예요. 인벤토리를 열어 들어있는 물건을 전부 꺼내 보세요.”
우빈은 여자에게 시스템을 설명해주기 시작했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원하는 정보를 전부 얻을 수 있었다.
‘미쳤는데.’
띠링-
[민주희]
18회차 용사
레벨: 1
HP: 210/500
MP: 50/50
스태미나: 48/50
생명력: 20
정신력: 20
지구력: 20
근력: 20
기량: 20
체력: 20
지력: 20
감각: 20
행운: 20
여자의 이름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던 민주희.
시작 스테이터스부터 사기적이었다.
HP와 MP, 스테이터스는 우빈보다 10배 높았으며 스테이터스 또한 모두 15가량 높았다.
물론 스테이터스는 룬으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이건 초반 지원치곤 너무 과분했다.
그러나 우빈은 민주희의 스테이터스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성: [초월의 의지]
특전: [18회차 특전]
민주희가 가진 두 개의 효과가 너무 사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특성을 보자.
[초월의 의지]
종류: 특성
등급: S
효과
-MAX에 도달한 대상에게 한계를 뛰어넘는 특별한 힘을 부여합니다.
효과는 심플했다.
MAX에 도달한 대상. 즉, 레벨을 끝까지 올려 더 이상 성장시킬 수 없는 아이템에 무언가를 부여하는 능력 같았다.
어떤 능력이 부여될까.
설마 한계인 레벨 10을 없애주는 걸까? 아니면 새로운 효과 부여?
당장이라도 시험해보고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였다.
그도 그럴 게 저 효과에 적용되는 대상은 당장 우빈이 가진 스킬 카드를 시작으로 영혼석, 탈것, 심지어 먹을 수 있는 소비 아이템까지 대부분 해당하는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성보다 더 눈이 가는 효과는 18회차 특전이었다.
[18회차 특전]
종류: 특전
등급: L
설명: 18회차 용사에게 부여되는 전용 특전입니다.
효과
- 경험치 획득량 200% 증가
- 룬 획득량 200% 증가
- 아이템 드랍 확률 200% 증가
- 모든 숙련도 200% 증가
- 마스터 지도 활성화
*이 효과는 파티원에게도 적용됩니다.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효과였다.
경험치를 시작으로 룬, 아이템 드랍 확률까지 모두 200% 증가 옵션이라니. 아무리 늦게 시작했다고는 하나 치트키 수준으로 사기적이었다.
그런데 효과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이 효과는 파티원에게도 적용됩니다.]
치트키 수준의 효과를 고작 파티하나 맺는 것으로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의도가 느껴졌다.
18회차 용사를 경쟁의 대상이 아닌 함께할 동료로서 보호하라는 의도.
‘나쁘지 않은데.’
복수를 위해 칼을 갈던 우빈 역시 저 여자를 데려가야겠다, 판단을 내릴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만약, 아이언 골렘을 잡던 당시 저 효과가 있었다면 남은 룬은 무려 200만이며, 레벨 또한 20은 더 높았을 테니까.
“그러면 열게요.”
이제 마지막으로 확인할 건 인벤토리에 지급된 상자를 여는 것.
민주희가 긴장된 표정으로 상자를 열었고, 화아악-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자 아이템이 튀어나왔다.
나온 아이템은 총 4개였다.
띠링-
[화마의 유산]
종류: 완드
등급: S
내구력: 140/140
공격력: 8
지력:+5
감각:+2
행운:+1
효과
-공격 시 화속성 부여.
-스킬 카드 공격력 50% 증가.
-화염 속성 데미지 100% 증가.
[귀속: 민주희]
[스킬 카드: 파괴 광선]
종류: 스킬 카드
등급: S
레벨: 1
형태: 액티브
효과
-강렬한 빛을 모아 모든 것을 분쇄합니다.
[귀속: 민주희]
[스킬 슬롯 확장권]
종류: 확장권
등급: A
효과
-스킬 슬롯을 1칸 확장합니다.
[귀속: 민주희]
[펜리르의 안장]
종류: 탈 것
등급: S
레벨: 1
효과
-펜리르를 소환합니다.
[귀속: 민주희]
‘와···.’
우빈은 최대한 표정을 숨기며 아이템을 확인했다.
스킬 슬롯 확장권은 그렇다치고, 나온 3개의 아이템은 당장 상위 랭커의 아이템과 견주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특히 탈것은 우빈의 구미를 당기게 했다.
[펜리르의 안장]
종류: 탈 것
등급: S
레벨: 1
효과
-펜리르를 소환합니다.
‘펜리르를 소환한다고?’
펜리르는 바람의 정령 중 최상급 영물로서 최상의 탈것중 하나로 손꼽히는 몬스터이다.
그걸 이제 막 시작하는 신입 용사에게 그냥 지급하다니. 가지고 싶었다. 빼앗고 싶었다.
“괜찮은 건가요?”
우빈이 아이템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던 그때, 민주희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별로라고 답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답할까.
“좋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최고급 명품이라고 해두죠.”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진짜요? 후··· 다행이다. 그러면 도와주시는 건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선불입니다.”
“아, 그러면··· 뭘 드려야 하지···”
여자가 눈앞의 아이템을 두고 갈팡질팡한다.
어이없을 정도로 무르지 않은가. 협상을 앞에 두고 고민하다니.
우빈은 민주희 앞에 있는 아이템을 전부 집어 들었다.
“네? 다 가져가시는건가요···?”
민주희가 당황한 듯, 눈빛을 파르르 떤다. 사탕을 빼앗기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다.
“네.”
“그, 그래도··· 전부 다 가져가시는 건···”
그래도 눈 뜨고 강도질을 당하는 바보는 아닌 듯싶었다.
솔직히 화마의 유산과 파괴 광선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요? 안 주실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닌데···.”
“똑바로 말하세요. 여기선 얕보이는 것만큼 병신 취급당하는 짓도 없습니다.”
“······”
“지금 주희씨가 넘기는 물건이 목숨을 지켜줄 물건일지도 모릅니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일지도 모르죠.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우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민주희를 쏘아봤다.
“전부 주시죠.”
그 말에 민주희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잘끈 씹는다. 이내, 파르르 떨리던 눈빛이 고정된다. 결심한 것이다.
“싫어요.”
“······.”
“전부 드리는 건 안 됩니다. 여기서 2개만 골라주세요.”
그 모습에 우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습니다. 이거 두 개로 하죠.”
우빈은 펜리르의 안장과 스킬 슬롯 확장권을 선택한 뒤, 나머지 아이템을 돌려주었다.
“네?”
민주희가 진짜 돌려줄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하며 아이템을 받아든다.
‘뭣하면 나중에 빼앗으면 되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특전 때문에 민주희를 데려가야 한다면, 어물쩍거리는 성격은 사양이었다.
우물쭈물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행동은 또 없었으니까.
띠링-
[경고! 펜리르의 안장은 민주희 플레이어의 소유물입니다.]
[경고! 스킬 슬롯 확장권은 민주희 플레이어의 소유물입니다.]
우빈이 아이템을 들고 움직이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앞에 무슨 경고 나오지 않았나요?”
“네. 강우빈 플레이어님이 확장권이랑 안장을 가져갔다고 나왔어요.”
“소유권을 포기해주세요.”
띠링-
[민주희 플레이어님이 펜리르의 안장의 소유권을 포기하였습니다.]
[민주희 플레이어님이 스킬 슬롯 확장권의 소유권을 포기하였습니다.]
민주희가 허공에 무언가를 선택하는가 싶더니, 확장권의 소유권이 사라졌다. 이제 이 아이템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진짜 도와주시는 거 맞죠?”
우빈이 확장권을 가져가자 민주희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온다.
파밍할 대상이 3명이나 더 남았는데 버리고 갈 리가 있나.
우빈은 바로 파티 신청을 보냈다.
띠링-
[민주희 플레이어님이 파티에 들어왔습니다.]
[민주희][LV.1][HP:500/MP:50]
민주희의 머리 위로 간단한 정보창이 떠오른다.
“파티면 이제 같은 편이라는 거죠?”
“네.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빈의 확답에 민주희가 안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빨리 가요! 다들 기다리실 거예요.”
이윽고 바로 어디론가 향하려는데, 우빈은 그런 민주희를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더 있습니다.”
꼭 실험해야 할 요소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띠링-
[스킬 카드: 대지진+10을 탈착하였습니다.]
바로 저 여자의 특성이 정확히 어떤 효과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특성을 사용해주세요.”
“특성이요? 잠시만요···.”
우빈의 말에 민주희가 당황한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으니 사용법 따위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우빈의 다그침 때문인지, 첫 일을 맡은 신입사원처럼 스스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허공에 하나의 문구가 떠올랐다.
띠링-
[민주희 플레이어님이 대지진+10에 특별한 힘을 부여합니다.]
화아악-
강렬한 빛과 함께, 떠오른 메시지에 우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미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