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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이버(1) (9/107)

8. 세이버(1)

상쾌한 풀 내음이 가득한 산 중턱. 

꽈드득-

한 여인이 입술을 잘끈 씹으며 이를 간다. 비릿한 핏물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여기 있었구나.’

그 여인의 관심은 오직 한 사내로 가득했다.

앳된 외모. 그에 상반되는 흑빛 갑옷과 안구가 달린 대검.

저 사내는 여인의 과거 인연이었다. 동료라 생각했으며 목숨을 맡길 전우라 여겼다. 

하지만 그날 모든 것이 무너졌다.

띠링-

[랭킹 51위 김후영 용사님이 도민준 용사님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랭킹을 다시 측정합니다.]

띠링-

[도민준 용사님의 선악 수치가 일정 수치에 도달하였습니다.]

[도민준 용사님이 수배에 오릅니다.]

도민준이 길드 마스터를 죽이고 모든 아이템을 강탈해가 버린 것이다.

여인과 길드원들은 이를 갈며 도민준을 추격했다. 그리고 맞닥뜨렸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길드의 70%가 넘는 전력 사망.

마스터의 아이템을 독식한 도민준은 랭킹 10위를 넘볼 괴물이 돼 있었다.

“그냥 죽이기는 아깝잖아. 다음엔 꼭 죽여보라고.”

도민준은 여흥이라는 이유로 여인을 살려주었다.

꽈드득-

화가 났다. 증오스러웠다.

‘죽인다.’

오직 복수를 위해서 4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여인의 랭킹은 42위에 도달했으며, PVP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자부할 정도로 능숙해졌다.

모든 준비가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라진 도민준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엘리드를 멸망시킬 타락 용사가 용사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소문만이 들려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녀석이 튀어나왔다.

당장이라도 녀석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아직 아니야.’

여인은 주먹을 꽉 쥐며 감정을 죽였다.

놈의 거처가 어디인지, 어느 정도의 전력을 가졌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4년 전. 감정만 앞선 행동으로 모든 것을 잃어보지 않았던가. 똑같은 실수는 절대 해선 안 됐다.

그렇게 여인이 살기를 죽이며 도민준을 관찰하던 그때였다.

처벅-

도민준이 허공에 검을 휘두르자, 검은 연기와 함께, 적대적으로 보이는 사내가 무릎을 꿇는다. 

‘마검: 기간테스···.’

마스터가 자주 사용하던 기술이었다. 

저 연기는 피아를 구분하며, 적으로 인식한 대상은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힘을 잃는다.

여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입술을 잘끈 씹었다.

도민준이 저 사내에게 무엇을 할지 알았기 때문이다.

인체 해부.

“민준아, 그만해. 내가 다 잘못했어.”

“제발··· 살려주세요.”

과거 도민준은 아이템을 빼앗는다는 명목으로 전의를 상실한 길드원들을 상대로 끔찍한 고문을 자행했다.

‘또라이 새끼.’

아니나 다를까.

스릉-

도민준은 해체용 전용 단검을 꺼냈고, 처량하게 쓰러진 사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4년 전 그날과 지금의 사위가 겹쳐진다.

참았던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한 번만 더 참자. 마지막이야.’

이미 신입 용사들이 겁탈당하는 것도 지켜본 그녀이다.

한 명의 희생쯤은 얼마든지 더 참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민서야··· 도와줘···

-제발··· 그만. 그냥 죽여줘···

목숨을 함께한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꽈드득-

‘뭘 기다리는 거야···’

오직 이날만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던가. 병신같이 뭘 확인하고 싶은 거지? 질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끼리릭-

어느샌가 여인의 손엔 거대한 활이 튀어나와 있었다.

우웅-

시위를 당기자 중앙으로 거대한 마력이 모여들었다.

‘시간은 충분해.’

화아악-

여인의 동공이 수축하며, 도민준을 향한다. 

마치 10M 앞에 있는 듯 시야가 확대된다.

“·········”

도민준의 입술이 달싹인다. 사내를 조롱하며 단검을 내지른다.

처음 해체할 곳은 피부. 

얼굴을 시작으로 발바닥까지. 도민준은 저 사내의 전신을 해부할 것이다.

고문을 당하는 저 사내에겐 미안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꽈드득- 

죽기 전에 이 화살이 저 새끼의 대가리를 꿰뚫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여인의 시위로 거대한 마력이 응축하고 수축하였고, 화아악- 모여들 다 못해, 우웅- 대기를 파괴할 수준으로 위력이 치솟는 그 순간이었다.

퍼억-

갑자기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철벅-도민준이 서 있던 장소로부터 핏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뭐야?!’

여인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시전하던 스킬까지 해제하고 시야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 장소엔 더 이상 도민준은 없었다.

그저 부서진 아이템의 파편과 고깃덩어리로 가득할 뿐.

의문을 채 해결하기도 전.

띠링-

여인의 앞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엘리드를 위협하는 현상금 수배자: 도민준이 사망하였습니다.]

***

띠링-

[타락 용사 도민준을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80,000,0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200,000룬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

[선악 수치가 150 상승하였습니다.]

[상위 현상금 수배자를 처치하여 추가 보상을 획득합니다.]

[룬석:뇌격을 획득하였습니다.]

우빈은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보상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상상 이상의 보상이었다. 

필드 보스인 아이언 골렘을 웃도는 경험치와 골드라니.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띠링-

[마검: 기간테스+8를 획득하였습니다.]

녀석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 중 멀쩡한 아이템이 마검 뿐이라는 것이다. 

적당히 머리만 날렸다면, 흑요정 갑옷 세트까지 얻었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주먹 강타가 어설프게 빗나갔다면 지금 피곤죽이 된 건 우빈이었을 테니 말이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네.”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녀야 저런 보상이 붙을까. 

아무리 못해도 레벨은 180 이상. 살해한 사람의 숫자는 수백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 괴물이 고작 신입 사냥이나 하고 다니다니.

‘할 만한가.’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160,000,000의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2,400,000의 룬을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우빈은 추가로 들어온 보상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입 용사가 가진 잠재력은 웬만한 필드 보스를 웃돌았다.

띠링-

레벨: 103 → 125(22↑)

우빈은 오른 레벨을 확인했다.

오른 레벨은 무려 22. 평범한 용사라면 1년은 노력해야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레벨이 한 번에 올랐다.

거기다 들어온 룬 또한 미친 수준이었다.

360만 룬이면, 당장 S급 탈것을 1마리 장만할 금액이지 않은가.

“뭐, 뭐야. 이게 말이 돼? 대장이 죽었다고?”

우빈이 보상을 확인하는 그때, 도민준의 부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다.

“히익!”

우빈이 바라보자,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놈에게 있어 도민준의 존재는 신 그 자체였을 것이다.

보상으로 보면 도민준의 권위는 웬만한 왕국의 백작보다도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 존재가 단 1방에 터져 버렸다.

우빈의 존재가 어떻게 느껴질까. 

“으, 으악!!!”

싸운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추격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우빈은 사내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저 사내의 전력은 우빈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

저놈은 풀 세팅을 갖춘 반면, 우빈이 가진 아이템이라고는 마검과 다 부서져 가는 갑옷 2개가 전부였으니까.

우빈은 사내를 깔끔히 포기하고 나머지 보상을 마저 확인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휘이익- 퍽-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으악!!!” 

도망치던 사내의 복부가 그대로 꿰뚫린다.

이윽고, 하나의 신형이 우빈의 앞으로 나타났다.

단단하게 묶은 포니테일, 딱 달라붙은 슈트. 특히 손에 들린 거대한 활은 우빈의 눈을 사로잡았다.

여인은 도민준의 살점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는다.

“진짜 죽었다고?”

입술을 잘끈 씹으며 인상을 구긴다.

‘도민준의 또 다른 동료?’

우빈은 여자의 머리 위를 확인했다. 악인 페널티인 붉은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일반 용사라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죽으면 안 되지.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이렇게 죽으면 안 되지!!!”

콰직!

여인이 울부짖으며, 도민준의 살점을 내려친다. 창자가 으깨지고, 뼈가 조각난다. 끔찍한 광경에 우빈은 확신했다.

‘원한 관계구나.’

저 여자의 분노가 느껴졌다. 처절하고 비통했다. 

여인은 피와 살점이 가득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고운 얼굴로 피가 가득 묻어 내린다.

그 표정엔 하나의 감정만이 떠올라있었다.

허망함.

직접 복수를 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놈의 마지막이 너무 편안해서일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우빈을 배신한 새끼들의 말로 이런 편안한 죽음이라면 우빈 역시 허무했을 것이다.

‘힘이 필요해.’

우빈은 저 모습에 다짐했다. 

즉사기인 주먹 강타를 제외해도 그 새끼들을 짓밟을 힘이 필요하다고.

저 여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긴 싫었다.

띠링-

[도민준]

우빈의 시선이 도민준의 시체 위를 향한다.

용사를 죽이고 나온 루팅은 기본적으로 선착순이다. 

즉, 빠르게 먹지 못하면 저 여자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

우빈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도민준이 떨군 아이템에 손을 넣었다.

띠링-

아이템을 채 확인하기도 전.

“후우···”

여자의 호흡이 차분해지는가 싶더니, 빛을 잃은 동공이 우빈을 쏘아본다.

“너 뭐야.”

날이 선, 물음이었다.

원망스럽다기보다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뭐라고 답해야 좋을까.

‘흠···.’

우빈이 대답을 망설이던 그 순간이었다.

“선배! 찾았어요! 제가 뭐랬어요. 엄청 큰 마력이 느껴졌다고 했죠!”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

중요한 건 사내의 등장이 아니었다.

‘세이버···’

사내의 등 뒤로 펄럭이는 망토. 그 망토에 새겨진 방패 문양이 아주 익숙했다.

우빈이 과거 속해있던 길드. 우빈을 단물 빠진 껌처럼 버린 쓰레기 놈들의 조직.

그 길드원이 지금 우빈의 눈앞에 튀어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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