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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PVP(2) (13/107)

12. PVP(2)

“어이!”

저 멀리서 최수호가 다가온다. 건들거리며 손을 흔드는데, 거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우빈은 흥미롭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400만 룬에 달하는 아이템을 구해온 걸까. 아니면 싸구려 아이템을 가져와 값을 맞춰달라 흥정하려는 걸까.

표정을 보아하니, 답은 이미 정해진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수호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뗐다.

“바로 하자고 설마 쫄아서 도망치는 건 아니지?”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 다시 말이 짧아져 있었다.

엘리드의 시스템은 냉정할 정도로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른다. 

이런 야생 속에서 저런 건방을 떨 수 있다는 건 딱 하나의 경우밖에 없었다.

너무 뛰어나 굳이 남의 눈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천재.

저런 새끼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없었다.

띠링-

[마검:기간티스를 장착하였습니다.]

묵직한 대검이 중력에 의해 곤두박질치며 툭- 바닥에 처박히자. 파스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우빈이 무기를 집어 들자, 최수호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메시지를 보냈다.

띠링-

[최수호 용사님이 PVP를 신청하였습니다.]

[PVP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설정된 보상: 화기의 반지]

(최소 가치 3,800,000룬 이상의 물품을 설정해주세요.)

우빈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화기의 반지······.’

저 아이템을 알고 있었다.

S등급으로 체력이 90% 이상이면 모든 데미지가 50% 증가하는 효과를 지닌 히든 아이템.

‘씨발.’

저 아이템은 원래 우빈이 착용하던 아이템이었다. 

던전에서 배신을 당하던 그때, 손가락에서 저 아이템을 빼가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데 저게 왜 저 새끼의 손에 있는 걸까.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 

우빈은 확신했다.

‘그 새끼들한테 받았구나.’

우빈의 눈에 살기가 피어오른다. 

저 아이템의 존재로 사실로 확실해진 게 있다.

무려 S급 장비를 아무 길드원한테 줬을 리가 없다. 

즉, 저놈은 길드에서 나름 케어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원래라면 적당히 밟을 생각이 바뀌었다.

“뭐해? 쫄았어?”

우빈의 분노를 아는지 모르는지, 최수호가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도발을 해왔다.

우빈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말로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만이었으니까.

띠링-

[PVP를 수락하였습니다.]

화아악-

우빈과 최수호를 중심으로 푸른 장막이 생성된다. 

띠링-

[10분 뒤 PVP가 시작됩니다.]

[준비가 완료되면 확인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띠링-

[대전 상대는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창이 떠오르자 고요함이 찾아왔다. 

주변을 가득 메우던 바람 소리, 낙엽이 흩날리는 선율 전부 들리지 않았다.

그저 투명한 막 넘어 최수호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최수호가 검지로 앞을 가리키며 뭐라고 중얼거린다. 보아하니, 준비 완료 버튼을 누르라는 신호 같은데.

‘아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우빈은 최수호를 가볍게 무시하며 상태창을 열었다.

지금 생성된 공간은 PVP에 앞서 주어지는 대기 룸.

원래라면 도핑을 하던가, PVP 전용 스킬 카드, 룬석을 세팅하며 시간을 보낸다.

띠링-

[보유 룬: 4,056,648]

우빈은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룬은 원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아껴두려고 했다. 그러나 계획이 바뀌었다. 

주먹 강타 없이 저 새끼를 짓밟으려면 투자할 필요성이 있었다.

[생명력: 42 → 43]

[26,601룬으로 생명력을 1 올리시겠습니까?]

[생명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우빈은 바로 상태창을 열어 스테이터스를 올렸다.

지금의 스테이터스는 1을 올리는데 2만에 가까운 룬이 필요했다.

[생명력: 43 → 44]

[31,601룬으로 생명력을 1 올리시겠습니까?]

[생명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수치가 1 올랐을 뿐인데, 요구 룬이 5천가량 증가했다. 

룬으로 올릴 수 있는 스테이터스는 한계가 존재했다.

‘50이었지.’

우빈이 기억하기론 효율이 최적인 스테이터스 50.

띠링-

[3,117,070룬으로 스테이터스를 올리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모든 스테이터스를 50으로 맞추자, 필요한 룬의 양이 나왔다.

310만 룬이면 당장 S급 방어구 하나 정도는 장만할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우빈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띠링-

[스테이터스가 상승하였습니다.]

띠링-

[강우빈]

칭호: 3회차 용사

레벨: 125

HP: 2,120/2,120

MP: 180/180

스태미나: 181/181

생명력: 50(+6)

정신력: 50(+5)

지구력: 50(+6)

근력: 50(+11)

기량: 50(+10)

체력: 50(+10)

지력: 50(+5)

감각: 50(+7)

행운: 50(+5)

미분배: 124

폐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충만감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힘이 끓어오른다.

이걸로 룬을 통한 스테이터스 효율은 최대로 뽑았다. 

더 이상 미분배 스테이터스를 남겨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뭘 올리지.’

우빈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막상 스테이터스를 찍으려니, 고민이 됐다.

원래라면 생명력과 체력에 몰빵하려 했다. 

생존만 보장된다면, 주먹 강타 하나로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계획이 바뀌었다. 

저 새끼를 찍어누를 밸런스가 필요했다.

‘권성은 뭘 올렸지.’

직업 중 최악으로 손꼽히는 무투가. 그중의 정점으로 손꼽히는 존재가 있었다.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PVP를 지켜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진짜 개 빠르더라. 그런데 검성한테 1방 맞고 바로 뻗던데.”

“너무 조잡해, 괜히 구린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속도 하나만큼은 존나 빠르더라.”

빠르다.

순간순간 모습이 사라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빠르다고 했다.

‘리치가 짧기 때문인가.’

대충 이해가 됐다. 

무투의 특성상 다른 무기에 비해 리치가 비약적으로 짧다. 그걸 커버하기 위해선 상대가 1번 움직일 때, 2번 3번 움직일 수 있는 속도가 필요했을 것이다.

속도를 결정짓는 스테이터스는 기량.

‘찍자.’

결론을 내린 우빈은 바로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띠링-

[기량: 50 → 53]

[784,803룬으로 기량을 1 올리시겠습니까?]

[기량이 3 상승하였습니다.]

남은 룬을 싹 다 써서 기량을 올린 뒤, 여태까지 모은 미분배를 전부 투자했다.

띠링-

기량: 53 → 177(124↑)

순간 땅과 하늘이 뒤바뀌는 듯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두근-두근-

심장이 빨리 뛰는가 싶더니, 꽈드득- 근육이 수축한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힘이 차오른다는 느낌보다는 가벼워졌다는 표현이 더 맞다.

‘얼마나 빨라진 거지.’

우빈이 배신을 당하기 전 기량 수치는 60이었다. 애초에 가장 높던 생명력 수치조차 100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템의 효과조차 받지 않은 순수 스테이터스가 무려 177에 도달했다. 

과연 어떤 성능을 보여줄까.

두근-두근-

오랜만에 느껴보는 증명의 시간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가자.”

우빈은 허공의 시스템창을 클릭하였고,

띠링-

[준비를 완료하였습니다.]

[PVP가 시작됩니다.]

앞을 막던 투명한 막이 사라졌다.

***

띠링-

[대전 상대가 준비를 완료하였습니다.]

[PVP가 시작됩니다.]

파스스-

앞을 가로막던 푸른 막이 사라진다.

‘저 새끼 뭐야 진짜.’

최수호는 눈매를 좁히며 우빈을 응시했다.

파스스-

우빈의 손에 들린 마검으로부터 섬뜩한 연기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후두둑-

하의 갑옷은 한계를 다한 듯, 달그락거렸으며, 헝클어진 머리는 눈을 가릴 정도로 초췌했다.

도시에서 구걸하는 노예도 저것보다는 깨끗하다.

그런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승리 보상]

-강우빈: 펜리르의 안장(추정 가치: 4,800,000룬)

-최수호: 화기의 반지(추정 가치: 3,800,000룬)

‘펜리르라고?’

펜리르, 바람을 다루는 전설의 영물이자, 엘리드에 단 3마리 밖에 없는 최상급 탈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 녀석이 이걸 가지고 있는 것일까. 거기다 출처를 알 수 없는 400만 룬까지.

‘진짜 저 새끼가 도민준을 죽인 건가···’

말도 안 되는 사실들이 계속해서 화민서의 발언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말이 안 되잖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도민준을 죽일 수준의 괴물이라면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 봤어야 정상이다. 

애초에 그런 괴물이 저런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했고.

최수호는 고개를 저으며 자세를 낮췄다.

지금은 의심을 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밟자.’

그저 저 새끼를 밟고 보상을 취할 뿐!

최수호는 있는 힘껏 대지를 박찼고, 후웅- 우빈을 향해 쏘아졌다.

***

후웅-

최수호가 두 다리를 넓게 펼치며 검을 휘두른다. 

어깨를 노리는 종베기. 

캉!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방패치기.

퍽!

콰과과과과-

우빈의 육신이 사정없이 밀려 나간 그때, 후웅- 일격필살의 내려치기가 우빈의 육신을 두 동강 내려는 듯 쏘아진다.

쾅!

바닥을 지지하던 우빈의 다리가 대지가 갈라내며, 처박힌다.

캉! 캉! 캉!

군더더기 없는 연격이 이어졌다. 저건 겨루기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사냥.

‘그래! 잘한다!’

그 광경에 서희빈은 눈을 반짝였다.

“와··· 개쩔어.”

“저 사람 죽는 거 아니야··· 그만 말려봐요.”

서희빈의 옆, 신입 용사들 역시 입을 쩍 벌린 채, 최수호의 무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히려 잘됐네.’

서희빈은 최수호의 제안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뜬금없이 화기의 반지를 빌려달라고 할 때만 해도 드디어 이 새끼가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이런 기특한 짓을 하다니. 

저 눈을 반짝이는 신입 용사를 보라.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따라올 기세이지 않은가.

모든 상황이 기분 좋게 흘러갔다.

“저한테는 굳이 거짓말 안 하셔도 돼요. 저분 길드원 맞죠? 마검까지 맡길 정도면 꽤 친밀한 사이 같은데. 말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죽지는 않아도 아프긴 하잖아요.”

서희빈이 히죽 웃으며 화민서에게 속삭인다. 화민서는 대꾸 없이 저 둘의 싸움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설마 이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서희빈의 히죽거림에 화민서의 눈매가 좁혀진다.

“글쎄요,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알겠죠.”

“풋-”

서희빈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웃음에, 입을 틀어막았다.

“아, 죄송해요. 사레가 들려서.”

서희빈은 자꾸만 떠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드디어 펜리르를 살 수 있어.’

펜리르는 구하겠다 다짐한 지 5년. 

아이템이 나오는 족족 동료에게 팔았고, 도핑할 물약까지 줄여가며 아득바득 모았다.

그렇게 모든 룬은 약 180만 룬이다. 그런데 고작 1번의 PVP로 230만 룬을 준다고? 

너무 행복했다.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이렇게 안 살아.’

펜리르만 구하고 나면 더 이상 아끼면서 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못했던 아이템 쇼핑을 시작으로 스킬 카드 작업까지. 전부 싹 다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 뭐야···”

서희빈의 시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억-허억-”

분명 이기고 있던, 아니 이겨야만 하는 최수호가 거친 숨을 내쉬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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