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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정리(1) (15/107)

14. 정리(1)

PVP를 보던, 화민서의 시선이 얇게 좁혀진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화민서는 최수호를 알았다. 

1년 전에 열린 PVP 그랑프리, 비기너 리그의 우승자. 그게 바로 저 최수호였다.

화민서가 이끄는 척결 길드에서도 다수의 인재가 출전했지만, 최수호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1년 전에도 강했었는데, 수개월이 지난 지금. 최수호는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다.

실제로 흘러나오는 마력 또한 그때보다 2배가량 높아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최수호를 어린아이 다루듯 가지고 놀고 있다.

‘도대체 기량 수치가 몇인 거야.’

마법사 영체를 벨 때, 영체를 벤 후 최수호의 지척으로 파고들 때. 우빈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빨랐다.

그렇다는 건 기량 수치가 나랑 비슷하다는 의미인데.

‘기량에 올인이라도 했나.’

화민서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퉁!!! 우빈의 주먹이 최수호의 방패를 두드리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터져 나왔다.

펑!!!! 철벅- 철벅-

최수호의 육체가 그대로 폭발해, 살점이 낭자한 것이다.

띠링-

[PVP가 종료되었습니다.]

[승리자: 강우빈]

[강우빈 용사님에게 승리 상품이 지급됩니다.]

메시지가 떠오르자. 화아악- 폭발했던 자리로, 최수호의 모습이 재생됐다. 

“허억-”

최수호가 깊은숨을 내쉬며, 우엑- 토를 한다.

‘터졌다고?’

화민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물론, PVP를 하다 보면 목이 잘린다던가, 심장이 꿰뚫린다든가 하는 상황을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스피드를 보면 기량에 모든 스테이터스를 올인한 것 같은데, 맨손 공격이 저렇게나 세다니.

‘뭐지 도대체···’

화민서의 눈이 가늘게 좁혀진다.

화민서는 안 그래도 우빈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떻게 도민준을 죽였는지, 그 새끼가 마지막에 뭐라고 말했었는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런데 저걸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위험해.’

화민서가 이끄는 척결 길드는 수배지에 오른 타락 용사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길드이다. 

수많은 범죄자를 만났다.

엘리드의 주민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건 기본. 같은 용사까지 사냥하며 유흥을 즐긴다.

끔찍한 광경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성폭행을 시작으로 서로 싸움을 붙여 내기를 건다. 그중 최악은 식인까지 즐기는 개새끼들이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 새끼들을 볼 때마다 화민서는 다짐했다. 

저런 놈들은 힘을 얻기 전에 싹을 잘라놓아야 한다고.

만약, 저 사내가 타락 용사로 돌아서면 어떻게 될까. 

꿀꺽-

상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쳤다.

‘섣부른 판단은 안 돼.’

화민서는 고개를 저으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저 사내는 아무런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도민준을 처치해 선악 수치가 엄청 높을 것이다.

그런데 악인으로 돌아서는 게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저 사내를 제거할 명분이 될까. 

만약, 그렇게 행동한다면 혐오하던 그 새끼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화민서가 우빈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자, 잠깐만! 거짓말이지? 야! 최수호!!!!!”

서희빈이 헐레벌떡 최수호를 향해 다가간다.

“야! 정신 안 차려? 네가 질 리가 없잖아?”

서희빈이 최수호의 멱살을 움켜잡는다. 

서희빈의 사고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수호는 저렇게까지 맥을 못 추고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아니, 몸까지 터져서 죽었다고?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서희빈 시선이 우빈을 향한다. 

“야! 너 어디가! 일로 안 와?!”

서희빈이 이를 바득 갈며 멀어져가는 우빈을 향해 무섭게 다가간다. 

망설임 없이 우빈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는다. 

흠칫-

하지만 서희빈은 우빈의 어깨를 붙잡지 못했다. 

“건들지 마.”

섬뜩한 울림이 흘러나온다.

우빈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서희빈을 향해 쏘아졌다. 

꿀꺽-

그 눈빛에 서희빈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드래곤의 레이드도 참여한 그녀이다. 브레스로 산이 날아가는 것도 봤으며, 동료가 죽어 나가는 건 일상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오소소소-

전신에 소름이 돋는가 싶더니,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털썩-

그저 주저앉은 채.

“흑···흑···” 

우는 것 말고는.

***

“뭐예요? 저분이 지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와··· 멋있다.”

우빈과 최수호의 PVP를 지켜보던 신입 용사. 조기훈과 김호준이 이 입을 쩍 벌린 채 감탄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민준에게 당했던 굴욕감에 이를 갈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치 무협 영화를 방불케 하는 검술과 보법. 중간에 튀어나온 마법사의 등장은 그야말로 눈을 반짝이게 했다.

하지만 다소 충격적인 장면도 있었다.

“분명 저 사람 폭발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렇게 보이긴 했는데··· 잘못 봤겠죠?”

마지막 일격이 터져 나오던 그때, 최수호의 전신은 그대로 폭발해, 내장이고 뼈고 사방으로 튀어나왔었다. 

그런데 지금 멀쩡히 살아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그러니까. 주희씨 말대로라면, 저분이 저희를 구해주셨다는 거죠?”

우빈의 행색을 보곤 무시하던, 조기훈과 김호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조기훈이라고 합니다.”

“저희를 구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샌가 다가온 우빈에게 90도로 상체를 숙이며 인사한다.

우빈은 조기훈과 김호준의 앞에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김호준이 눈을 반짝이며, 악수를 청한다. 

PVP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쓰레기를 보는 듯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대기업 임원이라도 만난 듯한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든 잘 보여서 뭐라도 얻어먹으려는 가식이 느껴졌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혹시 특성이 어떻게 되시죠?”

“네? 특성이요? 아! 그 시스템 창에 쓰여있는 그거요. 잠시만요.”

김호준과 조기훈이 허공에 무언가를 조작한다. 그 모습에 우빈의 눈이 좁혀진다.

‘혹시 모르니까.’

생각보다 쓸만한 특성이라면 데리고 다닐 의향이 있었다. 

뭣하면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 가둬놓고 특성만 강요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천부적인 재능]

종류: 특성

등급: S

효과

-스킬 숙련도가 800% 상승합니다.

[김호준]

[자연의 축복]

종류: 특성

등급: L

효과

-재배 스킬이 강화됩니다.

[조기훈]

‘나쁘지는 않네.’

김호준의 특성은 스킬 숙련도 800% 증가. 조기훈의 특성은 재배 스킬 강화였다.

특히 김호준의 특성은 좋았다. 아니 사기적이었다.

저 스킬을 풀이해보자면 누구는 10년 걸릴 스킬 카드 노가다를 단 1년 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과 비교하면 저 특성은 하위호환을 넘어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별로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는 바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네? 아, 저···”

“······.”

우빈의 물음에 조기훈과 김호준이 답을 못한다. 

아무리 우빈의 무력을 봤다고 한들,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PVP를 하다가 하의 갑옷까지 박살 난 지금. 우빈의 모습은 더욱 처량했다.

애초에 데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다.

“누구를 따라가실 건가요?” 

저들에게 선택지를 추려보자면 4개였다.

1. 세이버 길드인 서희빈을 따라간다.

2. 척결 길마 화민서를 따라간다.

3. 우빈을 따라간다.

4. 누구도 따라가지 않는 개인플레이를 한다.

우빈의 눈이 차갑게 좁혀진다. 

무엇을 선택하든 자유였지만, 딱 하나의 경우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세이버 길드.

그 새끼들한테 18회차 특전을 줄 바엔 선악 수치를 망가트리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제거하는 편이 옳았으니까.

“저는···.”

조기훈과 김호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꽈드득- 

우빈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세이버를 선택하는 순간, 머리를 날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저는 저분을 따라가려고요.”

“저도요.”

조기훈과 김호준이 한 여인을 가리켰다. 가리킴의 끝엔 화민서가 서 있었다. 

하긴 세이버 소속인 최수호는 우빈이게 처참하게 졌고, 그나마 믿음직스럽던 서희빈은 어린애처럼 울고 있다. 있던 믿음마저 사라질 상황.

“주희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는 이분이랑 가려고요.”

“아쉽네요. 같이 갔으면 했는데···.”

주희의 대답에 조기훈이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린다. 

‘왜 저렇게 집착하시지.’

조기훈이 볼을 긁적이며 민주희를 응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 사내가 강하다는 건 직접 봐서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믿고 따라간다는 건 완전 다른 영역의 문제이다.

저 사내를 보라, 제대로 된 옷 하나 걸치지 못할 정도로 경제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화민서는 달랐다. 

피부에서 광이 날 정도로 관리가 잘 돼 있다. 거기다 입은 복장은 또 어떠한가. 깔끔하다 못해 고풍스러운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왜 굳이 저 사람한테 저렇게까지 목을 매는지···.

“지아씨 좀 잘 부탁드려요.”

민주희가 윤지아를 조기훈에게 넘기자, 우빈이 발걸음을 옮긴다.

“잠깐만요! 같이 가요! 그러면 꼭 살아서 다음에 봬요!”

민주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멀어진다. 

그때였다. 여태까지 관망만 하던 화민서가 우빈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척결 길드 마스터이자, 랭킹 42위 화민서라고 합니다.”

화민서가 우빈에게 악수를 청한다. 우빈은 화민서의 손바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기다리고 있었구나.’

언젠가는 말을 걸어올 거란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화민서가 튀어나와 도민준의 살덩어리 으깬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우빈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바쁘신가요.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네. 바쁩니다.”

“잠시만요!”

우빈은 화민서의 말을 무시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띠링-

[환상마 유니콘을 소환합니다.]

히이이잉-

우빈의 앞으로 거대한 말이 한 채 튀어나온다. 화민서가 바로 말을 이었다.

“바쁘시다면 도와드릴게요. 원하시는 목적지까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어림잡아도 3M에 육박하는 거대한 크기. 머리 위로 돋은 갈기와 뿔은 이 탈것의 가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와···”

그 위용에 우빈과 화민서을 지켜보던, 조기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개 쩐다.”

신기하면서도 안도감이 차올랐다.

‘역시 저분을 선택하길 잘했어.’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물도 저렇게 늠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동물을 아무런 조건 없이 소환하는 힘이라니.

‘지금이라도 설득하자.’

조기훈의 눈빛이 변한다. 

바보 같은 선택을 한 민주희를 어떻게든 설득해야만 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띠링-

[펜리르를 소환하였습니다.]

“우왓!”

우빈이 뭐라고 하는 순간, 민주희의 앞으로 한 마리의 늑대가 튀어나왔다. 단순한 늑대가 아니었다. 

화민서가 소환한 유니콘의 1.5배의 크기. 사자 같은 갈기와 고풍스러운 털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와···.”

조기훈은 펜리르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분을 골라야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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