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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정리(3) (17/107)

16. 정리(3)

짹- 짹-

싱그러운 새소리와 함께, 따스한 햇볕이 얼굴을 두드린다.

끄응-

민주희가 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 찌뿌둥해.”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보지만, 뻐근함이 가시지 않는다.

너무 피곤했다. 야근 2일 차에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누우면 바로 기절할 것만 같았지만, 한숨도 못 잤다.

끼에엑-

이따금 들려오는 짐승의 비명. 크르르릉- 섬뜩한 울림이 어둠을 타고 흘러나왔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바닥이었다.

이불은 고사하고 바닥에 깔 매트조차 없었다. 그래서일까.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으로 땅에서 올라온 냉기가 뼈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허리는 왜 이렇게 쑤시는지.

“하아···”

민주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술을 잘근 물었다.

‘집에 가고 싶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맥주 한 캔 들이키며 침대에서 뒹굴고 싶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한계였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그렇다고 치는데,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다.

만약, 정말 집으로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여기서 계속 살아나갈 수 있을까.

“정신 차려!”

짝-

약지던 마음을 다잡으며 양손으로 뺨을 때렸다. 얼굴로부터 알싸한 통증이 올라오자, 어제 우빈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도움받는 거에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익히세요.”

그 말을 끝으로 우빈과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혼자서 계속 뭘 만지작거리던데, 궁금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스스로 해결···’

민주희는 곰곰이 그 말의 뜻을 생각했다.

‘게임이랑 비슷하다고 했지.’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곳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해본 게임이라면 LOL과 캔크사가 전부였지만,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기엔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게임처럼 레벨이 존재하고, 아이템을 맞추고 괴물을 잡는다. 뭐 이런 건가.’

민주희는 우선 자신의 상태를 파악했다.

띠링-

[민주희]

18회차 용사

레벨: 73

HP: 1,220/1,220

MP: 122/122

스태미나: 51/122

생명력: 20

정신력: 20

지구력: 20

근력: 20

기량: 20

체력: 20

지력: 20

감각: 20

행운: 20

미분배: 72

“레벨이 73? 뭐지 원래 1이었던 거 같은데.”

우빈과 파티를 하고 있어, 레벨이 오른 상태였지만, 민주희는 왜 레벨이 올라있는지 몰랐다.

‘이걸 올리면 된다는 거지.’

민주희의 시선이 미분배 스테이터스로 향한다.

얻은 포인트는 72.

이걸로 능력치를 올리면 육체에 무슨 변화가 찾아오는 것으로 보였다. 

뭘 올려야 하는 걸까. 잘못 올리면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거 같은데.

‘물어보면 또 혼내시겠지···.’

정보를 알고 있는 우빈에게 묻고 싶었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올리기는 또 그렇고.

급하게 올릴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민주희는 다음 시스템을 확인했다.

띠링-

[인벤토리에서 화마의 유산을 불러옵니다.] 

[인벤토리에서 스킬 카드: 파괴 광선을 불러옵니다.] 

민주희의 손아귀로 카드 1장과 지팡이 하나가 튀어나온다.

지팡이야 손에 쥐는 것만으로, 착용됐으니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스킬 카드인데. 어떻게 쓰는 거지?

민주희는 여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로 행동에 나섰다. 

카드를 집어 들고, ‘장착’이라 외치자. 스르륵- 손에 들린 카드가 빛무리로 변하며 몸에 흡수된다.

띠링-

[스킬 카드: 파괴 광선을 첫 번째 슬롯에 장착하였습니다.]

몸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마법처럼 뭔가 딱 떠오를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역시 이거겠지.’

민주희는 지팡이를 움켜쥔 채, 허공을 겨누었다. 

이곳의 시스템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원하는 시스템을 말하거나 떠올리면 알아서 사용되는 방식.

꿀꺽-

지금의 마법 역시 허공에 스킬 명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작동될 것이다. 당장 실험해보고 싶었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스킬 카드: 파괴 광선]

종류: 스킬 카드

등급: S

레벨: 1

형태: 액티브

효과

-강렬한 빛을 모아 모든 것을 분쇄합니다.

‘분쇄···.’

분쇄라니, 쓰여있는 글귀부터 불안했다.

괜히 사용했다가, 쓸데없는 문제라도 생긴다면 곤란했다.

민주희가 고민 끝에, 실험을 포기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쿵!!!

간결한 울림이 대지를 타고 흘러왔고, 크르릉-크르릉- 섬뜩한 숨소리가 피부를 스쳤다.

“뭐야?!”

소리를 따라 옮긴 시선으로 하나의 생명체가 포착됐다.

오소소소-

푸른 피부, 4M에 육박하는 거대한 몸집. 특히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보이는 뾰족한 송곳니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익숙했다.

“저, 저 괴물은···”

주희가 이 지옥에 떨어지고, 만난 첫 번째 괴물. 저 괴물에게 죽은 사람만 4명이 넘어갔다.

꿀꺽-

그때와 시위가 겹쳐지자, 덜덜 손이 떨려왔다.

“우, 우빈씨··· 우빈씨!”

민주희가 우빈 있던 자리로 고개를 홱 돌린다.

“어?!”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우빈은 저 자리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 장소엔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설마 버리고 간 건가.

의심을 할 새도 없이. 

쿠아아악!!!!

괴물이 민주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호랑이 앞에 있는 토끼처럼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철벅-

그 순간, 하나의 신형이 오우거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건 우빈씨의···.’

우빈이 소환해 놓았던 영체. 비탈의 기사였다.

후웅-

오우거의 손에 들린 몽둥이 공기를 가르며 쾅!! 비탈의 기사를 강타한다.

콰과과과과-

비탈의 기사가 바닥을 뒹굴며 바닥에 처박힌다.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다.

끼리릭- 

비탈의 기사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몸을 일으켜 세운다.

철벅- 철벅-

비틀거리며 오우거를 향해 다시 다가간다.

‘도망쳐야 돼···’

그 광경에 민주희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저 괴물은 우빈의 영체가 상대할 수 없는 포식자. 영체가 사라진다면 다음 사냥감은 민주희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비탈의 기사가 쓰러지기 전, 빠르게 이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도망치라고 본능이 소리쳤다. 분명 그러려고 했었다.

[도움받는 거에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익히세요.]

지팡이를 움켜쥔 민주희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스스로···.’

우빈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 제대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도망친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비슷한 상황이 다시 닥쳐온다면? 그때는 살아서 도망칠 수 있을까?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찾아온다 해도 언제든 뛰어넘을 수 있도록.

쾅!!!!

오우거의 몽둥이가 비탈의 기사를 짓누른다. 파스스스- 비탈의 기사가 빛무리로 퍼지며 사라진다.

스르륵-

오우거의 시선이 민주희를 향한다. 붉은 안구에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쿵! 쿵! 쿵! 

한 걸음 한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손이 떨려왔다. 

‘조금만 더.’

쿵!!! 

오우거가 민주희의 지척에 도달해, 후웅- 거대한 팔을 휘두른다. 

메케한 오물 냄새가 후각을 때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 공격이 절대 빗나갈 수 없는 최적의 간격.

“죽어!!!”

민주희는 있는 힘껏, 지팡이를 내지르며 시동어를 떠올렸다. 

띠링-

[파괴 광선을 사용하였습니다.]

[화마의 유산으로 화속성이 부여됩니다.]

펑!

손끝으로 뭔가가 터지는가 싶더니, 민주희의 시야로 하나의 장면이 흘러나갔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끝을 알 수 없는 불기둥이 괴물의 상체를 시작으로 정면의 숲을 갈아낸다.

철벅-

상체를 잃은 오우거의 하체가 고꾸라진다.

“허억- 허억-”

띠링-

[자이언트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4,5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800룬을 획득하였습니다.]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9,000의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3,600의 룬을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민주희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띠링-

[MP가 부족합니다.]

서 있으려고 했지만, 땅과 하늘이 뒤바뀌는 듯한 울렁거림이 강타한다.

‘이겼어.’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그렇게 한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쿵!!!

등 뒤로 섬뜩한 울림이 들리는가 싶더니.

우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야?!’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분노에 이를 가는 오우거 한 마리가 보였다.

2M에 달하는 거대한 몽둥이가 후웅- 이미 민주희의 몸을 으깨려 쏘아진 상태였다.

‘어!’

주마등이라는 찰나의 기억도 떠오를 새 없이, 민주희가 죽음을 목도 한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민주희의 앞으로 하나의 신형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펑!!!!!

오우거의 모습이 사라졌다.

***

띠링-

[자이언트 오우거를 처치하였습니다.]

[4,5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800룬을 획득하였습니다.]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9,000의 경험치를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18회차 특전으로 인해 3,600의 룬을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우빈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미쳤네.’

원래라면 오우거의 육체가 터져 살덩이가 낭자했을 바닥은 깨끗했다. 마치 원래 아무것도 없는 듯, 고요함마저 느껴졌다.

우빈은 오른손바닥을 꽉 쥐었다. 꽈드득- 검은 가죽 장갑을 연상케 하는 외형. 손등으로 눈알이 번뜩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검: 기간테스+8]

종류: 대검

등급: S

내구력: 143/150

공격력: 9(+8)

근력:+5

기량:+3

감각:+1

룬석: [증폭] [파괴] [절삭]

효과

-마기 속성 생성.

-마기 속성 데미지 150% 증가.

-마검: 기간테스는 외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구나.’

우빈의 오른손에 끼워진 글러브는 외형을 변경한 마검이었다. 

단순히 검의 형태로만 변환이 가능한 줄 알았는데, 고정관념에서 나온 큰 착각이었다.

‘얼마나 더 세진 거지.’

주먹 강타. 

맨손일 때조차 대상이 폭발하듯 소멸할 정도로 강렬했다. 당연히 데미지가 올라가도 별다른 차이점을 못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주먹 강타]

종류: 스킬

등급: F

레벨: 1,541,461,513,235

형태: 액티브

효과

-주먹으로 대상을 타격할 시 공격력의 1,541,461,513,335% 데미지를 입힙니다.

하지만 아니었다. 

주먹 강타는 공격력에 비례해서 데미지가 증가하는 퍼센트 형식의 스킬.

마검으로 강해진 주먹 강타를 맞은 오우거는 단순히 폭사를 뛰어넘어 증발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핏물이나 오물 같은 게 없는 건 마음에 들었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나중에 재료 같은 거 구할 땐 조심해야겠네.’

당장 오우거의 가죽만 하더라도 쓰임새가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체까지 남지 않게 증발한다면, 나중에 곤란한 상황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민주희가 우빈에게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인다.

‘나쁘지 않네.’

우빈은 민주희의 행동에 만족했다.

어제 만해도 단순한 물음조차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는 어린애 같았다. 

행동은 굼떴으며 생각은 물러터졌었다.

그러나 조금 전 보여준 판단력은 나쁘지 않았다. 

방심으로 두 번째 오우거의 공격을 허용한 건 매우 아쉬웠지만, 도망치지 않고 도전한 용기는 칭찬할만했다.

‘적응력이 좋은 건가.’

우빈은 민주희를 평가하며 펜리르의 안장을 꺼냈다. 

스킬 카드 작업을 시작으로 아이템 세팅까지. 대략적인 정비는 모두 끝냈다. 

이제 부신으로 가서 그 새끼들의 정보를 얻기만 하면 됐다.

띠링-

[펜리르를 소환하였습니다.]

***

후웅- 

펜리르가 대지를 박찰 때마다, 찢어질 듯한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조금 전 지나친 나무가 점이 돼서 안 보일 정도의 스피드.

“윽!”

민주희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펜리르의 털을 꽉 움켜잡곤 버틴다.

여기서 떨어지면 우빈조차 팔 하나 정도는 각오해야 할 정도의 속도. 무서워하는 건 당연했다.

생각 보다 쓸만한데.

[18회차 특전]

종류: 특전

등급: L

설명: 18회차 용사에게 부여되는 전용 특전입니다. 

효과

- 경험치 획득량 200% 증가

- 룬 획득량 200% 증가

- 아이템 드랍 확률 200% 증가

- 모든 숙련도 200% 증가

- 마스터 지도 활성화

우빈은 민주희와의 파티로 활성화 된 18회차 특전을 바라봤다.

옵션 하나하나가 사기적이라 눈에 안 띄던 효과가 있었다.

띠링-

[마스터 지도를 활성화합니다.]

세계수를 시작으로 5대 왕국이 표시돼있다. 

이 정도 정보는 기본 지도에도 나오는 효과이지만, 마스터 지도는 달랐다.

지금 우빈이 있는 위치, 이동하는 경로가 화살표로 표시되는 가독성. 최신식 내비게이션을 방불케 하는 효과이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우빈의 시선을 잡는 기능은 바로 이것이었다.

띠링-

[다크 엘프의 무덤][던전]

[지룡의 습지대][던전]

........

.....

....

.

엘리드 전역으로 퍼진 던전을 시작으로,

띠링-

[만티코어][월드 보스]

[레디 드래곤][월드 보스]

........

.....

....

.

월드 보스의 실시간 위치까지.

마스터 지도엔 엄청난 정보가 담겨있었다.

원래라면 돌아갔을 길을 최적의 경로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빈의 눈앞에 펼쳐졌다.

언덕 하나 없는 광활한 평야, 구름이 꽉 펼쳐진 하늘 아래. 우뚝 솟아오른 성벽이 있었다.

부신. 하몬 왕국의 영지이자, 중립 무역의 도시. 

원래라면 배신자 새끼들의 정보나 얻으려 들른 장소였다.

‘······’

우빈의 표정이 무섭게 가라앉는다.

피웅- 펑!

부신의 성 위로 폭죽이 터져 나온다. 낮임에도 밝게 보일 정도로 강렬한 보랏빛이 하늘을 물들인다.

‘정현태···’

우빈과 같이 전이된 3회차 용사이자, 가장 믿고 의지했던 동생이 있었다.

그 새끼가 항상 하던 말이 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화려하게 즐겨야죠!!! 

퓨우웅- 펑!!!

특별한 날이 되면 언제나 폭죽을 터트렸다.

물론, 폭죽을 터트린다고 저곳에 정현태가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우빈은 확신했다.

보랏빛 폭죽은 정현태가 가장 좋아하는 폭죽 중 하나였으니까.

우빈의 눈에 강렬한 독기가 흘러나온다.

‘기다려라,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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