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부신(2)
후웅 –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강렬한 선이 대지를 갈아내며, 쏘아진다.
“으악!”
“뭐, 뭐야!!!”
대기가 휘청거리며, 사람들이 나뒹군다. 흡사 태풍이 몰아치듯 모래 먼지가 치솟았고, 지면이 요동친다.
펑!!!!!!!!
그 멀리 있는 산으로부터 폭발하는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후웅-
후폭풍이 사람들을 뒤덮는다.
“으악!”
“설마, 월드 몬스터인가···”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비슷한 현상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월드 보스인 사룡 마그나가 5대 왕국 중 하나인 보하나를 절반가량 날려버린 사건이 있었다.
흡사 그때 사룡이 날렸던 브레스의 충격이 지금과 비슷했다.
꿀꺽-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지고, 폭발의 근원지를 응시했다.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걷히자 볼 수 있었다.
미사일이 쓸어간 듯, 선을 그으며 파괴된 지면, 그 끝에 원형으로 꿰뚫린 산이 있었다.
“와···”
“······”
놀랍기도 했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폭발한 방향으로 보나, 도탄이 갈아내고 간 대지의 흔적으로 보나.
“뭐야. 여기서 쏜 거 같은데.”
“저 여자가 쏜거 아니야? 방금 뭐라고 소리쳤던 거 같은데.”
사람들이 민주희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오직 단 한 사람, 김백청만은 도탄이 쏘아진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주르륵-
김백청의 찢어진 볼로 핏물이 흘러내린다.
‘뭐, 뭐야···’
김백청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옆을 돌아봤다.
정장을 입은 여자가 지팡이를 들곤,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중요한 건 여자가 아니었다. 그 뒤에 있는 새끼였다.
상의조차 입지 못한 거지가 주먹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뭐야, 빗나갔네.”
뭔가를 아쉬워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저 새끼가 이렇게 한 거라고?’
레파르도가 갑자기 소멸한 것도 그렇고 조금 전 폭발도 그렇고 그 중심에 전부 저 새끼가 있었다.
정말로 전부 저놈이 한 짓일까.
‘말이 안 되잖아.’
레파르도를 죽인 건 그렇다 치는데, 조금 전 쏘아진 파멸적인 폭발은 아니었다.
이 정도 파괴력은 월드 보스의 특정 패턴에서나 볼법한 위력이었으니까.
처벅-
김백청이 우빈에대한 의심을 이어가던 그때, 우빈이 어느샌가 김백청의 코앞에 도달했다.
“뭐, 뭐?! 해보자고?!”
김백청의 표정에서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빈은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손을 뻗었다.
꿀꺽-
김백청은 그 손짓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마치 길잃은 강아지를 쓰다듬는 듯 동작은 아주 느렸다.
하지만 왜일까. 피할 수가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근-두근-
그렇게 우빈의 손바닥이 김백청의 어깨를 향해 뻗어가던 그 순간이었다.
“동작 그만!!!”
큰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수십 명의 기사가 주변을 둘러쌌다.
“허억-”
순간 김백청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진다.
김백청은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이 새끼 도대체 뭐야.’
***
부신의 경비를 맡고 있던 용사, 이정훈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게 다 뭐야···’
브레스가 쏘아진 듯, 꿰뚫진 산. 그 주변으로 구름까지 원을 그리며 흩날리는 정경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저 용사 간의 시비가 붙었다는 보고만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저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고를 올린 부신 소속 경비가 검지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
“정신 차리세요. 우빈씨 이분 정신을 잃은 것 같아요!”
바닥에 쓰러진 백발의 여인, 그 여인을 흔들어 깨우는 여자.
그 뒤로 이 사건의 원흉으로 보고된 사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김백청···’
유명한 망나니로 소문난 용사이다.
엘리드에 전이된 지는 고작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훈의 귀에도 소문이 들려올 정도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충 상황이 정리된 것으로 보였다.
이정훈은 김백청의 앞으로 다가가 소리쳤다.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면 부신의 출입을 금지하겠습니다.”
“씨발, 넌 또 뭐야.”
갑작스러운 엄포에 김백청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미묘하게 손이 떨리는 게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부신의 경비 대장을 맡은 척결 길드 소속 이정훈입니다. 불만 있으신가요?”
척결이라 하면 요근래 수직 상승 중인 중형길드. 그 소속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김백청의 입을 다물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원래라면 경고로 끝났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뭐? 저 새끼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 내가 왜? 난 피해자라고!”
김청백이 억울하다는 듯 빽빽 소리를 지르며 3명을 가리킨다.
“이거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쓰러진 백발의 여인에게 성배를 주는 누더기 사내.
제대로 된 갑옷조차 못 입었지만, 흘러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인은.
‘올해 기수인가.’
오피스 룩에 흰 피부. 며칠 못 씻은 듯 꾀죄죄했지만,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는 아직 엘리드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성배를 들이킨 백발의 여인이 곧바로 눈을 뜬다.
눈에 띄는 백발, 낡은 갑옷. 엘리드 주민만이 가지는 특유의 마력이 느껴진다.
저 3명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개소리가 확실했다.
“상황 보고는 이미 받은 상태입니다. 탈것으로 주민들을 치고 다니다가. 갑자기 내려서는 구타했다면서요.”
“친 건 맞는데, 저 새끼가 내 탈것을 죽였다고!”
“저 주민을 구타한 건요?”
“그것도 저년이 먼저 칼을 들이밀었는데, 내가 npc한테 맞고 다녀야 돼?! 이봐, 다들 봤잖아. 뭐라고 말 좀 해봐!”
김백청이 억울하다는 듯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김백청의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할 뿐.
“너 죽고 싶어?! 어디서 고개를 까딱거려! 확 대가리를 뽑아버릴라.”
부정하는 주민을 향해 버럭 소리를 치르는 김백청. 주민이 화들짝 놀라며, 도망친다.
“뭐해, 붙잡아.”
이정훈은 그런 김백청을 바로 제압했다.
30명의 용사가 그를 짓누르며 압박한다.
“괜히 날뛰시면 일만 커지니까. 순순히 따르시죠. 절차만 제대로 밟으시면 바로 풀어드리겠습니다.”
웬만큼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백청은 달랐다.
쿠우우우우-
미묘하게 대지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펑!!! 거대한 충격과 함께, 김백청을 압박하던 10명의 기사가 튕겨 나간다.
“절차는 개뿔.”
“하아··· 진짜. 후회하지 마세요. 오늘 중요한 날이라. 적당히는 못 봐 드리니까.”
이정훈이 인벤토리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꺼냈다. 단순하게 무기를 꺼낸 것뿐인데, 진득한 압박감이 주변을 짓누른다.
“너야말로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사과하지?”
김백청이 자신만만하게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고급스러운 방패 문양이 그려진 서신이었다.
‘저건···’
순간 이정훈의 표정이 변한다.
오늘 부신에선 큰 축제가 열린다. 저 서신은 축제 고위 관계자만이 받을 수 있는 골든 티켓.
김백청이 어떻게 저걸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김백청의 뒤엔 엄청난 거물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엔 안 드는 녀석이었지만, 티켓을 가지고 있는 한 부신에서 대접을 받아야 할 VVIP의 손님.
이정훈이 들고 있던 무기를 인벤토리에 다시 집어넣는다.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이정훈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춘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김백청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린다.
“잠깐만 기다려봐, 아직 저 새끼한데 볼일이 남았으니까.”
김백청이 우빈을 향해 다가가자, 이정훈이 김백청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 꺼져?”
“저 사람들은 저희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더 이상 일이 커지면 곤란해져서요. 양해 바랍니다.”
“싫은데?”
김백청이 히죽거린다. 그 모습에 이정훈은 어쩔 수 없는 제안을 귓가에 속삭였다.
“보는 눈도 많은데, 성에 들어가서 조용히 처리하시죠. 제가 따로 자리를 마련해놓겠습니다.”
그 말에 분노로 가득하던 김백청의 표정이 풀린다.
“정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김백청이 우빈을 보며, 실실 웃는다.
“구속해.”
이정훈의 명령에 쓰러져 있던 기사들이 우빈을 향해 압박하기 시작한다.
우빈은 그 모습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꾸는 부조리함. 엘리드에선 자주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대로 끌려가면 무슨 수모를 당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빠져나가기엔 상대는 부신의 경비.
잘못해서 블랙리스트에라도 올라가는 날엔 부신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주먹 강타로 바닥이라도 부수고 도망쳐야 할까.
‘하아··· 어쩔 수 없네.’
우빈은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띠링-
[자필:화민서]
등급: F
설명
-척결 길드의 마스터 화민서의 자필 서명입니다. 소유권자의 신용은 척결 길드 마스터 화민서가 보장합니다.
[강우빈]
아무런 효과도 없는 그저 이름하나 적힌 종이이다. 하지만 이 종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보증서.
원래라면 화민서의 영향력이 있는 세력에게 신뢰 정도를 주는 용도로 쓸 수 있었겠지만, 척결 길드라고 밝힌 사내에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깐만, 멈춰!”
이정훈이 기사들을 저지하며 다급히 우빈을 향해 다가갔다.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자필 서명을 확인하던 이정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진품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우빈은 이정훈의 귓가에 나지막이 뭔가를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이정훈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진다.
이윽고 스르륵- 이정훈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퍽!!! 김백청의 신형이 고꾸라졌다.
***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철창.
“개새끼들아! 이거 안 풀어?!”
김백청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악을 쓴다. 양팔과 다리에 구속 장치가 그를 옥죄여 온다.
띠링-
[모든 능력치가 99% 하락합니다.]
힘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게 얼떨떨했다.
경비 대장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는지, 왜 자신을 여기 가뒀는지 전부 말이다.
“씨발!!!!!”
울화가 치밀어오르던 그때였다.
처벅- 처벅-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안 풀어?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알면 너희 다 죽은 목숨···.”
김백청이 악을 쓰다, 도착한 사내의 얼굴을 보곤 입을 다문다.
도착한 사내는 아무 말 없이 김백청을 내려다봤다.
그 모습에 김백청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호소했다.
“죄, 죄송합니다. 밖에서 잠깐 일이 있어서···”
하지만 그 어떠한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으악!!!”
그저 김백청의 비명과 미세하게 들어온 빛만이 사내의 망토를 비출 뿐이었다.
사내의 망토엔 아주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견고하면서도 화려한 세이버 고유의 방패 문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