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준비(1)
이철영의 입가로 미소가 번진다.
‘이게 웬 떡이냐.’
사무실은 작살났으며, 진행하던 사업은 개 박살이 났다. 영락없이 길거리로 내앉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 기회가 찾아왔다.
“괜찮으세요?”
가녀린 체구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완력,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 또한 상당한 게 딱 봐도 용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조 당할 당시만 해도, 길드 소속 용사인 줄 알고,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노예 거래는 상관없지만, 인신매매는 용사 간에 금기시되는 사항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여자는 길드 소속 용사가 아니었다.
“여기는 저뿐입니다. 아이가 위독해요. 잔해에 머리를 부딪혔는지, 정신을 잃어서···”
“잠시만요! 따라오세요!”
허점투성이인 거짓말에 다급히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엘리드에서 지옥 같은 1년을 보낸 이철영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년이구만.’
이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
성장하지 못한 용사는 블랙 마켓에서도 최상품으로 쳐주는 1등급 특품. 그중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3배는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
‘저 얼굴이면 5배는 더 받지.’
이철영의 표정이 사악하게 변해가던 그때였다.
“우빈씨!”
여자가 다친 아이를 들곤, 한 사내에게 다급히 다가갔다.
“아이가 다쳤어요! 많이 다쳤는데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호들갑을 떨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철영의 입가가 계속해서 실룩였다.
‘역시 동료가 있었구나.’
엘리드의 생태계는 저런 얼빵한 여자가 살아남기 힘든 지옥이다. 당연히 성안까지 도와준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병신 새끼네.’
걱정할 이유가 사라져버렸다.
이철영의 시선이 사내를 훑는다.
후줄근한 평복에 갑옷 하나 입지 못했다.
약간 신경 쓰이는 게 있다고 한다면 검지에 끼워진 반지가 전부인데.
‘저 새끼도 이번 기수인가?’
저 여자보다는 똘똘해 보였지만,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잘만하면 2마리 다 팔 수 있겠는데.’
이철영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둘에게 다가갔다.
가장 처음 해야 할 건 동정심으로 방심을 유발하는 것.
“아이는 괜찮은가요? 제발 도와주세요···. 집도 무너지고, 당장 내일 쓸 돈도 없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가 싶더니, 닭똥 같은 물방울이 또르르 흐른다.
“앗!”
그 모습을 보는 여인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불쌍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비굴하게.’
여기서 쐐기를 박아야 했다. 그대로 무릎을 꿇으려는데,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습니다. 따라오세요.”
“네? 정말 그래도 돼요?”
당연히 여자 쪽이 더 쉽게 설득될 줄 알았는데, 반응은 이상했다.
사내의 수락에 여자가 의문을 품는다.
‘뭐지?’
고개를 갸웃하는데, 사내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재미있는 게 보여서요. 마침 실험할 것도 있고. 같이 가시죠. 따라오세요.”
재미있는 게 보여? 실험? 무슨 개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호구 새끼들.’
이철영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누르며,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각종 환각제를 시작으로 극독까지 가득 들어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이철영은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
심각한 분위기가 감도는 성안.
베드로 남작을 포함 수십 명의 NPC가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외벽에서 이상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키던 경비들 역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악마가 어떻게 부신에 들어왔다는 겐가?”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시장 쪽에서 갑자기 출몰했다는 게 다수의 의견입니다. 성벽 위로 날아서 들어왔다는 가설도 소수 있었습니다.”
큰 언성이 오간다.
그들 중, 무심하게 대화를 듣는 한 사내가 있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 마지막까지 내 발목을 붙잡는구나.’
그 사내의 이름은 정현태, 이번 축제를 연 유엔에서 파견을 나온 인물이자, 김백청에게 사주를 시킨 원흉이었다.
원래 정현태의 계획은 연설이 진행되는 와중, 베드로의 앞에서 김백청이 아드로스의 정기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만 됐다면, 지금처럼 김백청이 뒈졌어도, 베드로가 느낄 압박감은 더욱 강렬했을 테니까.
하지만 김백청은 성에 입성하기 전부터 문제를 일으켰다.
오자마자 감옥에 갇히질 않나, 경비 대장에게 찍히질 않나.
모든 게 뒤죽박죽으로 꼬여갔다.
실제로 노친네의 반응 또한 미적지근했다.
“그래도 피해가 적어서 다행이군. 악마를 쓰러트린 용사는 누구인가?”
“바로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남작의 명령에 한 용사가 들어온다. 정현태의 눈이 그 용사로 향한다.
‘저 새끼가 죽였다고?’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용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임시 경비대장을 맡은 척결 길드 소속 이정훈입니다.”
시답지도 않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 괴물을 알고 있었는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등.
그 광경을 지켜보는 정현태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분명 밀리고 있었는데.’
너무 멀어서 제대로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이정훈은 김백청에게 확실하게 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긴 것일까.
“이건 그 괴물에서 나온 물건입니다.”
이정훈이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강렬한 주황빛을 머금은 타원의 구체.
‘용케 가져왔네.’
저건 아드레스의 정기를 흡수한 생명체에게 생성되는 힘의 원천 같은 부속품이다.
생명체가 죽으면 빛을 잃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쓰레기가 될 텐데.
저걸 굳이 왜 가지고 왔을까. 쓰러트린 증거라 이건가.
정현태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정훈을 판단하는 그때였다.
이정훈이 뜻밖의 정보를 나불대기 시작했다.
“인공 마정석이라고 하는 아이템인데, 몬스터의 핵심 기관으로 판단됩니다.”
드르륵-
그 말에 정현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이정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정현태에게 향한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왜 그러시죠?”
“잠,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정현태의 부탁에 이정훈이 마정석을 건넨다.
띠링-
[인공 마정석][종언]
설명: 종언 아드로스의 힘이 깃든 인공 마석입니다. 인위적으로 제작된 만큼 불안정합니다.
‘이, 이게 뭐야!’
마정석을 본 정현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게 원래 정보창이 떴던가? 그건 그러라 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마정석이라니.
너무나도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게 외부로 알려지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대업이 그대로 무너질 정도로.
“왜 그러시나요?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이정훈이 질문을 해왔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무조건 없애야 돼.’
이정훈을 암살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이템이 밖에 알려지는 상황은 막아야만 했다.
판단을 내린 정현태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답한다.
“네. 짚이는 게 있긴 합니다. 혹시 이것 말고 괴물이 떨어트린 아이템이 더 있을까요?”
“하나 더 있긴 합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절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이것만으론 확신하기 힘들어서 그러는데, 혹시 나머지 아이템도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질문을 듣던 이정훈의 눈매가 좁아진다.
‘너무 노골적으로 물어봤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당황했다.
‘설마 나를 의심하지는 않겠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3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5분은 기다린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길드원들이 가지고 가서요. 지금은 보여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별다른 의심을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것만 확인하면 누가 그랬는지, 알 것 같은데···”
“정말인가?!”
정현태의 말에 남작이 끼어든다.
‘노친네가 낄 때 안 낄 때를 구분 못 하네.’
정현태는 가볍게 남작의 말을 무시하며 이정훈에게 말했다.
“바로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적은 도망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이정훈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믿는 눈치였다.
“알겠습니다. 30분 내로 가져오겠습니다. 후문에 있는 폐교회에서 기다려주세요.”
별다른 의심 없이 장소와 시간을 알려왔다.
정현태는 멀어져가는 이정훈을 보며, 표정을 가라앉혔다.
‘귀찮아지겠는데.’
***
깔끔한 방 안.
새근-새근-
기절한 남자아이가 세상모르게 잠들어있다. 그 옆으로 민주희 역시 잠들어있다.
호로록-
오직 우빈과 이철영만이 테이블에 앉아 차를 홀짝인다.
차를 홀짝이는 이철영의 표정이 딱딱하다 못해 경악에 질린 표정이다.
우빈을 힐긋 보더니, 입속에 있는 차를 꿀꺽 삼킨다.
‘저 새끼 뭐야.’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이철영은 수면제가 들어있는 음료를 우빈 일행에게 준 상태였다.
‘분명 레벨 150도 못 버틸 거라고 그랬었는데.’
이걸 판 새끼가 분명 그랬었다. 이 수면제는 레벨 150대 상급 용사도 5초 안에 기절시키는 약이라고, 그런데 저 새끼는 멀쩡하다 못해.
“혹시 한잔 더 있을까요? 맛있네요.”
무려 5잔째 수면제를 처마시고 있었다. 상태창까지 페이크로 넣은 이 음료가 얼마짜리인 줄은 알고 계속 처먹는 건지.
“하하하, 네. 여기 있습니다.”
이철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수면제를 건넸다.
‘젠장···’
철영의 시선이 잠든 주희에게로 향한다.
원래라면 저 새끼와 꼬맹이를 포박하곤, 오랜만에 즐기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게 저 새끼 때문에 꼬여갔다.
‘그냥 죽일까.’
혹시 몰라, 준비해 둔 독약이 있었다.
레벨 150대 용사도 마시면 즉사할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저 새끼가 죽으면 선악 수치가 개판이 될 거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전투에 능력이 없는 이철영으로선 수배에 올라 중립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었다.
‘직접 안주면 그만이잖아.’
선악 시스템은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실제로 이철영은 인신매매를 했지만, 선악 수치엔 변동이 없었다.
사람을 해체하고 거래하는 일을 전부 NPC에게 맡겼기 때문이었다.
이걸 응용하면 선악 수치를 무시하고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독약 역시 직접 주는 게 아닌 저 새끼가 스스로 먹게 하는 것이다.
약간 걸리는 게 있다면 이미 5병의 수면제를 처먹었는데, 과연 1병을 더 마시느냐는 건데.
턱-
이철영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하나의 음료를 올려놓았다.
우빈의 시선이 음료로 향한다.
투명한 것 같으면서도 은은한 보랏빛이 돌아 외관만 보면 맛깔스러워 보인다.
“오, 빛깔이 좋네요. 그건 어디 특산품인가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동남부 최고 왕국. 주안에서 제조한 전통 음료입니다. 새콤하면서도 은은한 과일향이 일품이죠.”
그 말에 우빈의 얼굴에 흥미가 감돈다.
“혹시 그것도 마셔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철영이 음료를 원샷을 때리는 우빈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걸로 꼬였던 실이 전부 풀렸다.
‘이제 나는 부자야.’
확신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아랫도리가 불끈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어 뭐야?’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 마시는 즉시 3초도 못 버티고 즉사할 거라고 했는데.
“맛있습니다.”
왜 이렇게 멀쩡하지?
이철영이 당황스러움에 말문이 막힌 그때, 우빈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너무 얻어먹기만 했네요. 저도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네? 아, 네.”
“따라오시죠.”
우빈은 방구석에 있는 하나의 문으로 이철영을 안내했다.
‘뭐야. 이건.’
이질적인 문이었다. 여타 다른 문과는 디자인부터 다른 게, 마치 던전의 입구 같다고 해야 할까.
원래 이게 여기 있었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들어오세요.”
끼이이익-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방 안에 들어서자 하나의 문구가 이철영을 반겼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 입장하였습니다.]
[압박의 시련이 시작됩니다.]